카이런 명의의 위조 명령을 정리하던 밤, 하르트의 책상 위 모래시계가 마지막 알을 떨어뜨렸다. 그가 왕실 기록과 연락망을 후임에게 넘기기로 한 일 년의 종료일이었다.
누구도 그 날짜를 반기지 않았다. 문서고는 반쯤 탔고 벨로스는 왕궁 계단에 남아 있었으며, 위조 인장과 네 번째 약호도 해결되지 않았다.
운영회 의원들은 쿠데타가 끝날 때까지만 하르트의 임기를 연장하자고 청했다. 정확한 날짜 대신 위기가 끝날 때까지라는 말이 다시 나왔다.
루엔도 처음에는 동의했다. 불탄 상자 순서와 왕실 서고의 숨은 통로를 아는 사람은 하르트뿐이었다. 지금 그가 물러나면 복구가 멈출 것 같았다.
하르트는 자기 앞에 놓인 열쇠들을 세었다. 젖은 문서 보관함, 왕실 연락함, 구 의전실, 지방 사본 대조실, 죄수 판결 부본함. 다섯 개였다.
그중 세 개는 이미 둘 이상의 사람이 함께 써야 열렸다. 하지만 오래된 왕실 연락함과 구 의전실 열쇠는 아직 하르트 혼자 갖고 있었다. 인계가 완전하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위기가 크니 제가 더 필요하다는 말은 옛 왕들이 가장 좋아하던 문장이었습니다.” 하르트가 말했다. “제가 그 문장을 받아들이면 일 년 동안 고친 장부가 전부 변명이 됩니다.”
아델린은 임기 연장과 별개로 증언자 역할은 계속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열쇠와 명령권을 내려놓되 질문에 답하고 공개 심리에 출석하는 방식이었다.
하르트는 그 구분을 받아들였다. 물러난다는 이유로 기억까지 감추거나 책임에서 도망칠 수는 없었다. 다만 질문받기 전에 문을 열고 자료를 고르는 권한은 갖지 않기로 했다.
후임 명부에는 루엔을 포함해 여섯 명이 있었다. 수도 서기 둘, 변경 기록자 하나, 사원 보관자 하나, 이용자 대표 하나, 피해자 대표 하나였다. 어느 누구도 하르트의 자리를 그대로 이어받지 않았다.
루엔은 자기 경험이 짧다고 말했다. 하르트는 그래서 혼자 맡지 않는 것이라고 답했다. 경험 부족을 한 명의 노련한 사람에게 매달리는 이유로 쓰지 않고, 서로 다른 경험을 묶는 설계로 바꿨다.
인계는 문서고 안에서 조용히 치르지 않았다. 불탄 외문 앞 벽에 보유 열쇠와 접근 가능한 방, 남은 위험, 미결 사건을 모두 적었다.
첫 번째 미결은 위조 인장 원본이었다. 녹였다는 기록과 비어 있는 입회 서명, 사라진 보급관, 마구간에서 나온 틀이 연결돼 있었다. 확정되지 않은 부분은 점선으로 표시했다.
두 번째는 문서고 화재의 최종 지시자였다. 붙잡힌 장교와 기름 반출은 확인됐지만 벨로스가 직접 지시했는지는 심리가 남았다.
세 번째는 사본이 없는 토지 청원 스무 건이었다. 쿠데타 수사보다 덜 극적으로 보였지만, 주인이 바뀔 수 있는 실제 삶의 문제였다. 하르트는 그것을 목록 아래로 밀지 않았다.
네 번째는 카이런 위조 명령의 네 번째 약호였다. 다섯 번째는 곡물고 재고 차이와 사라진 피난민 배급분이었다. 수습할 사건은 권력자 범죄만이 아니었다.
왕정 지지 시민 하나가 공개 목록을 보고 적에게 약점을 알려 주는 짓이라고 비난했다. 하르트는 빈칸을 숨기면 자신만 그 약점을 쥐게 된다고 답했다.
구 의전실 열쇠를 넘기는 순간 문제가 생겼다. 문 안에는 왕실 비밀 서신과 귀족 가문의 사적인 편지가 섞여 있었다. 모두 공개하면 관계없는 사람에게 피해가 갈 수 있었다.
후임들은 내용 공개와 존재 공개를 나눴다. 상자 번호, 작성 시기, 발신·수신 범위는 목록에 적되 본문은 관련 심리와 당사자 입회 아래서만 열게 했다.
하르트는 마지막으로 혼자 들어가 서신을 정리하겠다고 무심코 말했다. 루엔이 그 말을 붙잡았다. 인계 마지막 날에도 지식을 가진 사람이 먼저 고르는 습관이 남아 있었다.
하르트는 사과하고 문 앞에서 물러났다. 후임 여섯 명 가운데 이해관계가 없는 셋이 입회해 상자 순서만 확인했다. 무엇을 먼저 읽을지도 공개 사유를 남겨야 했다.
왕실 연락함에는 수도 밖 일곱 영지에서 온 봉인 서신이 있었다. 일부 영주는 의회가 왕실 권위를 되살리지 않으면 군량과 병력을 거두겠다고 경고했다.
하르트는 쿠데타가 끝날 때까지 감추자는 유혹을 느꼈다. 수도 안 불만만으로도 버거운데 일곱 영지의 이탈까지 알리면 공포가 커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서신 존재와 도착 시각을 인계 목록에 넣었다. 군사 세부는 운영회 제한 심사로 보내고, 영지 이름과 요구, 답변 기한은 의회에 알렸다.
엘리안은 하르트가 이 정보를 하루만 더 쥐고 있었다면 자신이 수도 수습을 먼저 끝낼 수 있었을 거라고 솔직히 말했다. 그 편의가 바로 마지막 열쇠를 놓아야 하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왕궁 계단에서는 벨로스가 하르트의 퇴임을 행정 붕괴라고 선전했다. 경험자마저 도망가니 왕실 근위가 기록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르트는 반박문에 자기 공로를 길게 쓰지 않았다. 종료일, 인계받는 사람, 질문받을 장소, 미결 목록을 다시 제시했다. 떠나는 사람이 아니라 이어지는 기능을 보여 줬다.
다섯 열쇠의 인계는 각각 다른 방식으로 진행됐다. 보관함은 서기와 피해자 대표, 연락함은 의원과 지방 대표, 대조실은 기록자와 이용자 대표가 함께 받았다.
구 의전실 열쇠는 복제하지 않았다. 기존 자물쇠를 두 개짜리로 바꾸고 서로 다른 보관자에게 나눴다. 이전 열쇠는 입회 아래 망치로 휘어 보관했다.
마지막은 죄수 판결 부본함이었다. 카이런 이름을 이용한 위조 때문에 가장 민감해진 곳이었다. 하르트는 피해자 대표와 심리관에게 열쇠를 건네고 자신은 부본 열람 신청서를 썼다.
그는 그동안 당연히 열 수 있던 함을 이제 허락받아야 했다. 루엔은 불편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하르트는 불편해야 인계가 끝난 것이라고 답했다.
종료 시각이 지나자 운영회 서기는 하르트 이름 옆 직함을 줄로 지웠다. `왕실 기록 인계 책임자` 아래에는 `증언자·자문 신청 가능`이라고 새로 적혔다.
그 순간 왕궁 쪽에서 화살 하나가 날아와 인계 벽판에 박혔다. 종이에는 하르트가 열쇠를 넘기면 후임 가족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협박이 적혀 있었다.
후임 여섯은 흔들렸다. 하르트가 다시 열쇠를 잡으면 적어도 공격의 표적이 한 사람에게 모일 수 있었다. 그는 대신 각 후임 가족에게 같은 보호 절차를 적용하고, 누구도 가족 때문에 직무를 강요받지 않게 임시 교대를 마련하자고 했다.
세라는 화살이 온 지붕을 수색했지만 사수를 잡지 못했다. 실패도 인계 목록에 추가됐다. 하르트가 예전 정보망을 동원해 비밀 체포하는 일은 없었다.
밤이 깊자 그는 빈 허리띠를 만졌다. 평생 열쇠 무게가 있던 자리에는 눌린 가죽 자국만 남아 있었다. 가벼움보다 불안이 먼저 왔다.
루엔이 미결 목록의 첫 야간 교대를 맡았다. 그는 하르트에게 옆에 있어 달라고 하지 않고, 다음 날 공개 질문 시간에 구 의전실 상자 표기의 뜻을 물어보겠다고 했다.
하르트는 대답을 미리 쪽지로 남기려다 손을 멈췄다. 질문과 답이 입회 아래 기록돼야 후임이 또 그의 비밀 주석에 기대지 않는다. 알고 있는 것을 빨리 주는 일도 때로는 인계를 늦출 수 있었다.
하르트는 문서고 바깥 계단에 앉았다. 안쪽 등불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켜졌다. 자기가 없어도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를 그는 처음으로 끝까지 들었다.
마지막 열쇠를 내려놓았다고 위기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누가 무엇을 모르는지가 더 선명해졌다. 그러나 하르트의 일 년은 그가 모든 답을 갖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답하지 못한 일까지 후임 명부에 넘기는 것으로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