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회 표결 다음 날, 왕궁 앞 광장에는 두 군대가 섰다. 북쪽 계단에는 벨로스 직속 근위대가 방패벽을 만들었고 남쪽 시장길에는 수도 민병대와 제한 입성한 회색늑대가 줄을 잡았다.
서로의 숫자는 비슷했다. 근위대 뒤에는 왕궁 사용인과 병사 가족이 남아 있었고 민병대 뒤에는 문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나온 시민들이 몰렸다. 어느 쪽이 밀려도 무장하지 않은 사람이 먼저 밟힐 자리였다.
벨로스는 의회 표결을 반역으로 규정하고 정오까지 광장을 비우라고 명령했다. 그렇지 않으면 왕실 방어 규칙에 따라 진압하겠다고 했다.
민병대장은 문서고 방화와 인질 점거가 확인됐으니 지금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근위대 하급병이 흔들리는 동안 밀어붙이면 짧게 끝낼 수 있다고 계산했다.
세라는 군사적으로 가능하다고 답했다. 하지만 첫 방패벽을 깨면 뒤의 가족과 사용인이 도망칠 길이 없고, 물러나고 싶은 병사도 동료의 창에 막힐 것이라고 했다.
엘리안은 광장 지도를 바닥에 펼쳤다. 중앙에는 동상과 마른 분수, 양쪽에는 천막과 수레가 얽혀 있었다. 공격로는 세 개였지만 비전투자가 빠질 길은 하나도 표시돼 있지 않았다.
“싸움을 이기는 선부터 찾았군.” 그가 말했다. “사람이 싸움에서 나갈 선은 누가 그렸지?”
아무도 답하지 못했다. 벨로스는 이탈자를 반역자로 처벌한다고 이미 공고했고, 민병대 안에서도 근위 복장을 한 채 넘어오면 간첩으로 붙잡자는 목소리가 컸다.
엘리안은 광장 서쪽 시장 통로를 비우자고 제안했다. 양쪽 무장대가 열 걸음씩 물러나고, 가족과 부상자, 무기를 내려놓은 병사가 어느 방향으로든 나갈 수 있게 한다.
민병대장은 그 길로 벨로스가 달아날 수 있다고 반대했다. 엘리안은 지휘 책임자는 별도 확인을 받되, 가족을 붙잡아 지휘자를 가두는 방식은 쓰지 않겠다고 했다.
근위대에는 제안서를 화살로 보내지 않았다. 흰 천을 든 치료관 둘과 양쪽이 아는 시장 상인이 걸어서 전달했다. 문서에는 통로 폭, 시작 시각, 무기 처리, 확인 장소가 적혀 있었다.
벨로스는 투항 통로라는 이름으로 바꾸면 받아들이겠다고 답했다. 빠져나오는 병사는 죄를 인정하고 왕실에 무릎 꿇어야 한다는 조건도 붙였다.
엘리안은 그 조건을 거절했다. 통로를 이용하는 순간 유죄나 무죄가 결정되지 않으며, 당장 싸우지 않겠다는 선택만 확인한다고 공개 답신을 보냈다.
민병대 쪽에서도 불만이 터졌다. 문서고에 불을 놓은 근위병이 평범한 옷으로 갈아입고 도망칠 수 있다고 했다. 루엔은 현장 책임을 확인할 명부와 부상 기록을 통로 끝에서 받되 통과 자체를 막지 말자고 제안했다.
시민 대표들은 서쪽 시장 상점의 차양을 걷고 수레를 옮겼다. 바닥에는 흰 석회로 두 줄을 그었다. 그 사이가 퇴장 통로였다.
회색늑대는 통로 경비에서 빠졌다. 근위대 가족이 용병을 보고 돌아갈 수 있어서였다. 치료관, 시장 상인, 서로 다른 편 의원이 입구와 출구를 맡았다.
정오가 가까워지자 근위대 북이 세 번 울렸다. 첫 북에 방패가 들리고 둘째 북에 창끝이 낮아졌다. 민병대 활잡이도 시위를 당겼다.
엘리안은 어느 쪽 앞에도 서지 않았다. 마른 분수 위에 올라 양쪽이 볼 수 있게 빈손을 들었다. 통로가 열리는 시각과 중단 신호를 다시 읽었다.
벨로스는 그를 저격할 수 있었다. 세라는 분수 아래에서 방패를 들려 했지만 엘리안이 막았다. 지도자가 안전한 뒤에서 통로를 말하면 함정처럼 보일 수 있었다.
셋째 북 직전, 왕궁 세탁소에서 일하는 노인이 먼저 걸어 나왔다. 아들이 근위대 방패벽 안에 있다며 가족 확인패를 들고 있었다. 근위병들은 그를 막지 못했다.
노인 뒤로 아이 둘과 사용인 다섯이 나왔다. 민병대 쪽에서 욕설이 들렸지만 시장 상인이 통로 규칙을 다시 외쳤다. 누구도 왕실에서 일했다는 이유로 붙잡히지 않았다.
근위대 치료병 하나가 다친 동료를 업고 선을 넘었다. 그는 무기를 내려놓았지만 투항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입구 서기가 이름과 부대, 현재 부상, 싸움을 멈춘 시각만 적었다.
벨로스의 부관이 달려와 치료병을 끌어내려 했다. 방패벽 안 병사 셋이 부관을 가로막았다. 그들은 무기를 민병대가 아니라 자기 발 앞에 놓고 통로로 들어왔다.
민병대 활 하나가 실수로 풀렸다. 화살은 흰 선 옆 수레에 박혔다. 근위대 창대가 앞으로 쏠렸고 광장이 한숨처럼 움직였다.
세라는 공격 명령을 내리지 않고 중단패를 울렸다. 민병대 활잡이를 뒤 교대로 빼고 화살이 고의가 아니었음을 양쪽 입회자가 확인했다. 근위대는 창을 다시 세웠다.
벨로스는 가족을 내보내는 척 적이 광장을 비운다고 외쳤다. 그러나 자기 병사 아내와 아이들이 통로로 나가는 모습을 보고도 닫으라고 명령할 수는 없었다.
두 시간 동안 백열세 명이 빠져나왔다. 왕궁 사용인 예순둘, 가족 스물아홉, 부상자 열넷, 무기를 놓은 근위병 여덟이었다. 이름을 숨긴 사람도 둘 있었고 강제로 밝히지 않았다.
신원 미공개자는 치료 뒤 별도 입회 아래 머물렀다. 그 선택이 영구 익명을 보장하지는 않았지만, 광장 한가운데서 가족과 과거를 소리치게 만들지 않았다.
민병대장은 병사가 여덟 명밖에 나오지 않았다며 공격 기회만 잃었다고 했다. 엘리안은 여덟 명이 적게 보이는 계산과, 여덟 사람이 동료에게도 창을 들지 않은 선택을 함께 적으라고 했다.
해 질 무렵 벨로스는 방패벽을 왕궁 계단 쪽으로 물렸다. 광장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가족이 줄어들자 방어선이 좁아졌고, 자기 병사를 붙잡아 둘 명분도 약해졌다.
운영회는 서쪽 통로를 밤에도 유지하되 등불 색을 정했다. 흰 등불은 일반 통과, 붉은 등불은 치료 우선, 꺼진 등불은 양쪽 중단이었다. 어느 군대도 혼자 불을 바꿀 수 없었다.
밤중에 근위대 병사 둘이 갑옷을 입은 채 통로로 달렸다. 민병대가 창을 겨눴지만 둘은 선 안에서 투구와 검을 내려놓았다. 한 명은 벨로스가 새벽에 민병대 가족이 사는 남문 구역을 불태우라 했다고 증언했다.
그 말은 즉시 공격 명분으로 쓰이지 않았다. 명령서를 갖고 온 전령과 같은 지시를 들은 병사를 따로 확인했다. 남문에는 소방 인력과 주민 대피 안내가 먼저 보내졌다.
새벽 공격은 일어나지 않았다. 벨로스가 취소했는지, 전달선이 끊겼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남문 사람은 밤새 자신들이 협상 카드가 된 줄도 모른 채 잠들지 않아도 됐다.
남문 주민들은 경고가 헛소문이었다며 소방 인력을 돌려보내려 했다. 운영회는 결과적으로 불이 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준비를 비웃지 않고, 누가 어떤 증거로 경고했고 어느 시각 해제했는지를 적었다.
대피 준비 중 문을 못 연 집 두 곳도 드러났다. 퇴장 통로를 만든 도시는 성벽 안 골목의 막힌 출구까지 새로 확인했다. 큰 전투가 멈춘 사이 작은 탈출길도 실제 지도로 옮겨졌다.
광장 중앙에는 아무 깃발도 꽂히지 않았다. 마른 분수에서 서쪽 골목까지 흰 두 줄만 남았다. 승자의 땅이 아니라 싸움을 떠날 수 있는 빈 길이었다.
엘리안은 통로 끝에서 마지막 가족의 확인패를 돌려줬다. 그는 군대를 꺾지 않았고 왕궁을 얻지 않았다. 대신 두 군대가 서로를 보던 시야 한가운데, 창을 들지 않는 선택도 보이게 만들었다.
그날 밤 벨로스의 병력은 절반 가까이 남아 있었다. 쿠데타는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광장을 피로 잠가 누구도 물러날 수 없게 하려던 계산은 무너졌다. 다음 싸움은 칼보다, 누구의 이름으로 그들이 아직 서 있는지를 밝히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