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고의 연기가 걷히기도 전에 의회 창문으로 새 안건이 들어왔다. 벨로스와 가까운 귀족 셋이 작성한 섭정안이었다. 엘리안이 왕관을 거절한다면 왕실 혈통인 아델린이 섭정을 맡고 근위대가 질서를 회복한다는 내용이었다.
안건 끝에는 섭정 기간이 적혀 있지 않았다. 의회가 안전을 되찾을 때까지라는 문장만 있었다. 무엇을 안전으로 볼지, 누가 끝을 선언할지도 없었다.
갇힌 의원들 가운데 왕정 지지자들은 타협할 때라고 말했다. 왕을 세우는 것도 아니고 아델린은 헌장을 지지하니, 피를 덜 흘리는 길처럼 보였다.
반대편 의원들은 아델린이 받아들이면 공동 헌장은 장식이 된다고 맞섰다. 논쟁은 곧 그녀 개인의 선함과 충성심을 평가하는 쪽으로 흘렀다.
아델린은 두 주장 모두를 멈춰 달라고 요청했다. 좋은 사람이면 혼자 권력을 가져도 된다는 말과, 왕실 피가 있으면 어떤 공적 역할도 맡지 말아야 한다는 말은 같은 혈통을 중심에 둔다고 했다.
그녀는 섭정안을 큰 소리로 처음부터 읽었다. 근위대 통솔, 군량 배분, 의회 소집, 기록 보호, 봉인 비상 명령이 한 사람에게 모여 있었다. 조항마다 현재 담당자와 겹치는 부분을 붉은 먹으로 표시했다.
마센은 곡물고 안에서 군량 배분권이 섭정에게 넘어가면 벨로스가 점거한 창고를 합법으로 바꿀 수 있다고 전했다. 섭정이 선하더라도 다음 명령을 누가 대신 쓸지 알 수 없었다.
루엔은 젖은 문서고에서 기록 보호권이라는 말을 짚었다. 보호를 명분으로 원본을 옮기다 불이 났는데, 같은 넓은 문장을 새 안건에 다시 넣을 수 없다고 했다.
세라는 근위 통솔권이 가장 위험하다고 보았다. 벨로스가 아델린 이름으로 퇴각 명령을 받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광장 진압을 왕실 명령이라고 꾸밀 수도 있었다.
아델린은 섭정안을 찢지 않았다. 어느 조항이 누구에게 유리하고 누가 서명했는지 남기기 위해 원본을 하르트에게 보냈다.
귀족 대표가 그녀를 찾아와 비밀 면담을 청했다. 섭정을 수락하면 벨로스가 의회문을 열고 인질을 풀며, 열흘 뒤 의회가 권한을 다시 정하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열흘이라는 말은 지금 처음 들었습니다.” 아델린이 말했다. “안건에는 없고, 당신 입에만 있군요.”
대표는 먼저 문을 열어야 문서를 고칠 수 있다고 답했다. 아델린은 먼저 권력을 주어야 안전을 주겠다는 거래가 비상왕 제안과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녀는 면담을 비밀로 하지 않았다. 대표의 동의를 받고 시민 입회자 둘과 서기 한 명을 불렀다. 대표가 거부하자 제안문을 받아 공개 회의에서 답하겠다고 했다.
그 사이 의회 안에서는 임시 운영안을 누가 제출할 수 있는지를 두고 충돌이 났다. 정식 의장이 다쳐 누워 있었고, 부의장은 벨로스 쪽 회의에 참석한 뒤 돌아오지 않았다.
기존 규칙에는 의원 열다섯 명과 시민 청원 삼백 명이 공동 안건을 올리는 길이 있었다. 평시에는 거의 쓰이지 않던 조항이었다. 의원들은 창문으로 이름을 확인하고 시민들은 거리의 공개 명부에 서명했다.
올라온 새 안건은 임시 운영회 구성이었다. 의회문 개방과 근위 재배치가 끝날 때까지 군량, 기록, 통행, 치료를 각각 다른 책임자가 맡는다. 어느 책임자도 다른 기능의 열쇠를 대신 가질 수 없었다.
운영회에는 의원 다섯, 주민 대표 다섯, 실무자 다섯이 들어갔다. 변경 대표나 왕실 혈통에게 따로 보장된 자리는 없었다. 각 기능 결정은 관련 실무자와 이용자 대표의 찬성을 함께 받아야 했다.
효력은 앞서 공개한 공동 운영안과 같은 열흘이었다. 일곱째 날에 공개 중간 심사를 하고, 열흘째 자동 종료한다. 문이 열리지 않아도 종료일은 미뤄지지 않았다.
아델린은 섭정안과 임시 운영회안을 나란히 걸었다. 그리고 왕실 대표가 아니라 의회 의원 자격으로 발언대 앞에 섰다.
“저를 믿으라는 말은 제게 가장 달콤한 왕관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열쇠를 나눌 이유이지, 모을 이유가 아닙니다.”
그녀는 섭정안을 거부했다. 동시에 운영회 의석을 당연히 받지도 않겠다고 했다. 공개된 선출 절차를 거쳐 뽑히면 참여하되 자기 혈통으로 자리를 요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왕정 지지 의원 하나가 지금은 상징이 필요하다고 외쳤다. 병사들이 누구 명령을 따라야 하는지 몰라 광장이 피로 물들 수 있다고 했다.
아델린은 병사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 이름이 아니라 어느 문을 지키고 누구를 통과시키며 어떤 명령을 거부해야 하는지 적힌 좁은 임무라고 답했다. 상징 하나는 모호한 명령을 더 멀리 보낼 뿐이었다.
헌장 지지 의원도 그녀를 영웅으로 치켜세우려 했다. 아델린은 박수를 멈추게 했다. 섭정을 거절한 선택이 운영회안을 자동으로 옳게 만들지는 않으며 조항별로 따져야 한다고 말했다.
표결은 창문과 거리에서 동시에 진행됐다. 갇힌 의원은 번호가 적힌 천 조각을 내렸고, 시민 대표는 자기 구역 명부에 표시했다. 실무자는 맡을 기능과 이해관계를 먼저 밝혔다.
아델린의 차례가 왔다. 서기는 왕실 가문의 표라고 쓰려 했지만 그녀가 고쳤다. `의원 아델린, 한 표.` 그 아래 찬성 이유와 우려를 함께 적었다.
그녀는 운영회안에 찬성하면서도 군량 책임자의 가족 거래를 공개하고, 근위 재배치 명령에 시민 중단권을 넣는 수정안을 붙였다. 이름만 나누고 이해관계를 숨기면 작은 왕들이 생길 수 있었다.
결과는 큰 차이가 아니었다. 의원 표에서는 네 표, 시민 표에서는 열세 표 차이로 통과했다. 반대표와 기권 이유도 같은 벽에 걸렸다.
패배한 섭정안 지지자 둘은 계수표가 조작됐다고 이의를 냈다. 운영회는 결정을 밀어붙이지 않고 창문 표식과 거리 명부를 다시 맞췄다. 중복 이름 하나와 잘못 센 기권표 둘이 발견됐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아델린은 재검표 시간을 낭비라고 부르지 않았다. 자기 편이 이긴 표일수록 반대자가 계산을 확인할 길을 열어야 다음 결정도 한 표의 무게를 가질 수 있었다.
벨로스는 거리 표결은 폭도들의 흉내라고 포고했다. 그러나 곡물고 근위 장교가 운영회 군량 조항을 읽고 마센에게 재고 목록을 넘겼다. 왕실 이름 없이도 좁고 확인 가능한 명령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운영회 첫 결정은 아델린을 대표로 세우는 일이 아니었다. 의회 안 부상자를 내보낼 퇴장 순서와 치료 수레 통과 시각을 정하는 일이었다. 그녀는 자기 차례가 오자 들것을 먼저 보냈다.
귀족 대표는 마지막으로 섭정안에 열흘 조항을 넣겠다고 제안했다. 아델린은 이미 기능별 책임과 종료 장치가 있는 안이 통과됐으니, 더 넓은 권한을 하나 더 만들 이유를 설명하라고 했다.
대표는 답하지 못했다. 그의 뒤에 있던 왕정 지지 시민 몇은 운영회 감시자로 남겠다고 신청했다. 섭정을 원했던 사람이 공동 운영에 참여하는 길도 닫히지 않았다.
해 질 무렵 의회문 틈으로 첫 부상자들이 나왔다. 아델린은 문 앞 중앙에 서지 않고 이름 확인 줄 끝에서 가족을 찾는 일을 도왔다.
벽에는 섭정안 원본도 그대로 남았다. 누구의 피가 다시 쉬운 해결책으로 불렸는지 잊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 옆에는 작게 적힌 아델린의 한 표와 수정 이유가 붙어 있었다.
그 한 표는 왕실을 구원하지도 폐지하지도 않았다. 다만 한 사람의 좋은 뜻에 맡겼던 기능을 여러 손과 기한으로 옮겼다. 광장에서는 여전히 두 무장 대열이 서로를 보고 있었고, 이제 표결 결과를 실제 퇴장 통로로 만드는 더 위험한 일이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