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협곡에는 길이 두 개 있었다. 강을 따라 곧게 난 넓은 수레길과, 절벽 중간을 비스듬히 오르는 염소길. 수레길은 빠르지만 양쪽에서 막히면 돌아설 곳이 없었고, 염소길은 사람만 한 줄로 지나갈 수 있었다.
세라는 정찰 보고를 받고도 첫 군량대를 수레길로 보냈다. 얼음 두께와 적 흔적을 확인하기 위한 빈 수레 셋이 앞섰고, 실제 곡식은 뒤쪽 굽이에 멈춰 있었다. 피난민은 아직 협곡 입구에 대기했다.
정오가 되자 북방 기병이 빈 수레를 덮쳤다. 그들은 포대가 비었다는 것을 확인하고도 수레 하나에 불을 붙였다. 연기가 오르자 카르몬 망루에서는 군량대가 공격받았다는 봉화가 보였다.
바르논은 즉시 기병을 보내 적을 협곡 안에 가두자고 했다. 요새 장교들은 첫 승리를 얻을 기회라며 재촉했다. 적을 좇으면 북쪽 진지를 비울 수 있었다.
세라는 불붙은 수레 뒤 절벽을 봤다. 눈 위에는 말발굽 외에 가벼운 발자국이 있었다. 적이 밤새 염소길 입구까지 살폈다는 뜻이었다. 넓은 길의 습격은 군량을 빼앗기보다 아군 기병을 끌어내기 위한 미끼였다.
마렉이 염소길로 정찰대 둘을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흰 천 신호가 올라왔다. 반대편 좁은 길 아래에 피난민 백여 명이 숨어 있었고, 적 보병이 그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기병을 보내면 저들을 잡을 수 있다.” 바르논이 지도에 손가락을 눌렀다. “피난민은 절벽 위로 올리면 되오.”
염소길에는 얼음이 끼어 있었다. 노인과 부상자를 올리려면 밧줄과 사람이 필요했다. 전투 병력을 추격에 쓰면 그 손이 모자랐다.
세라는 사흘 호송 지휘권의 마지막 날을 앞두고 있었다. 승리를 얻으면 카르몬 병사들의 신뢰를 확실히 만들 수 있었다. 피난민을 구해도 적 기병은 달아나고, 요새 귀족들은 또 용병이 전공을 버렸다고 말할 것이다.
“추격하지 않는다.”
바르논이 탁자를 쳤다. “저 기병이 내일 다시 온다.”
“오늘 절벽 아래 사람들은 내일이 없어.” 세라는 수레길과 염소길 사이 능선을 가리켰다. “두 퇴로를 동시에 연다. 넓은 길은 빈 수레로 막고, 사람은 위로 올린다.”
회색늑대는 빈 수레의 바퀴를 빼 좁은 구간에 눕혔다. 불붙은 수레를 절벽 쪽으로 밀지 않고 눈을 덮어 연기만 남겼다. 적 기병이 아군이 군량을 지키려 모였다고 오해하게 했다.
카르몬 보병은 염소길 위에 밧줄을 박았다. 피난민 한 사람마다 허리에 고리를 걸고, 위에서 둘이 당기고 아래에서 하나가 밀었다. 이름을 부른 뒤 올리고 도착하면 다시 답하게 했다.
첫 번째 노인이 절반쯤 올랐을 때 적 보병의 화살이 날아왔다. 세라는 방패를 든 대원들을 길 아래에 세우고 반격 사격을 제한했다. 위를 향해 쏘면 피난민이 맞을 수 있었다.
마렉은 절벽 반대편 눈더미를 작은 폭약으로 무너뜨렸다. 사람을 덮지 않을 양을 미리 표시해 둔 곳이었다. 눈이 적 보병과 피난민 사이에 낮은 벽을 만들었다.
넓은 길에서는 북방 기병이 빈 수레 방벽을 발견했다. 그들이 돌아 나가려 하자 바르논의 기병대가 추격 대신 협곡 출구만 막았다. 전투를 걸지 않고 피난민을 올릴 시간을 버는 배치였다.
한 아이가 밧줄 중간에서 겁에 질려 움직이지 못했다. 뒤 줄이 멈추고 화살이 가까워졌다. 세라는 지휘를 다른 대원에게 넘기고 아이 아래까지 내려갔다.
“눈을 보지 마. 내 장갑만 봐.”
아이는 세라 손을 잡지 못할 거리에서 장갑의 붉은 꿰맨 자국을 보며 한 걸음씩 올랐다. 세라는 끌어올리지 않고 아이가 발을 놓을 돌을 짚어 줬다.
마지막 부상자가 능선 위에 도착했을 때 빈 수레 방벽이 무너졌다. 적 기병은 좁은 길을 빠져나갔고 카르몬 기병이 뒤를 쫓으려 했다. 세라는 흰 중단기를 세 번 흔들었다.
불만 섞인 말들이 멈췄다. 한 장교는 눈앞의 적을 놓친 책임을 기록하겠다고 했다. 세라는 자기 이름으로 남기라고 답했다. 대신 구한 사람 수와 다친 사람, 놓친 말 한 필도 같은 보고서에 적게 했다.
요새로 돌아가는 길은 더 느렸다. 수레를 탈 수 없는 염소길 피난민을 넓은 길까지 내려보내야 했다. 빈 군량 수레 두 대는 불탔고 한 대는 방벽으로 부서졌다.
마센은 손실표를 만들었다. 수레 셋, 바퀴 여섯, 젖은 포대 네 개, 전투 중 다친 병사 다섯. 승전은 아니었다. 그러나 구조된 사람들의 이름은 백열두 줄이었다.
바르논은 보고서를 보며 물었다. “내일 저 기병이 돌아오면 같은 선택을 할 거요?”
“같은 조건이면.” 세라는 답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배운 흔적 때문에 내일 조건은 달라져야 한다. 염소길 경보와 피난 밧줄을 미리 둔다.”
피난민 가운데 광산 인부들은 협곡 위에 고정 고리 여덟 개를 설치하겠다고 나섰다. 카르몬 병사는 빈 수레 방벽 대신 접이식 말뚝을 만들기로 했다. 다음번에는 구조와 방어를 같은 순간 처음 시작하지 않아도 됐다.
그들은 다음 날 같은 시간에 협곡으로 돌아갔다. 눈 위 전투 흔적이 사라지기 전에 수레가 멈춘 위치, 첫 화살이 닿은 지점, 피난민 줄이 막힌 곳을 돌로 표시했다. 승리 지도 대신 지연과 위험 지도가 만들어졌다.
바르논은 넓은 길에 궁수대를 먼저 숨겼다면 적 기병을 잡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세라는 그 배치라면 피난민이 아군 매복 사이를 지나야 했다는 점을 표시했다. 전술적 가능성과 보호 규칙이 같은 지도에서 비교됐다.
구조된 사람들도 검토에 참여했다. 밧줄 고리가 너무 높아 어린이와 키 작은 노인이 혼자 걸 수 없었고, 위에서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바람에 들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광산 인부는 고리 높이를 세 단계로 바꾸고 줄마다 색 천을 달았다.
불탄 수레의 주인은 손실 정산을 요구했다. 공동 작전에서 의도적으로 방벽에 쓴 수레와 적이 태운 수레를 구분했고, 빈 수레를 낸 사람에게는 일곱 도시 공동기금에서 수리 목재와 운송 일을 우선 제공하기로 했다.
세라는 자기 결정 때문에 생긴 손실표에도 서명했다. 피난민을 구했다는 이유로 수레 주인의 몫이 명예로운 희생으로 사라져서는 안 됐다. 다만 지원은 도시 재고와 실제 수리비를 확인해 나눠 지급했다.
고정 고리 설치가 끝나자 모의 대피가 열렸다. 병사들이 적 역할을 맡아 눈덩이를 던졌고, 주민들은 두 퇴로를 나눠 사용했다. 첫 시도에서 또 병목이 생겨 신호 순서를 고쳤다. 실제 구조의 성공이 다음 시험의 실패를 숨기지 않았다.
세라의 사흘 지휘권은 그날 해 질 때 끝났다. 바르논은 승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연장 반대를 예상했지만, 카르몬 병사와 회색늑대 대표는 새 계획을 공개한 뒤 이틀만 더 연장하기로 표결했다.
표결 전 세라는 자신에게 유리한 구조 인원만 읽지 않았다. 불탄 수레와 다친 병사, 놓친 적 기병, 처음 중단 신호가 늦었던 이유도 함께 보고했다. 연장은 결과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보완된 계획을 다시 맡길지 묻는 결정이어야 했다.
연장 문서에는 적 사살 수가 없었다. 피난민 수습 완료, 두 퇴로 표지, 중단 신호 준수, 수레 손실과 다음 보완이 적혔다. 세라의 이름은 가장 큰 칸이 아니라 현장 지휘 칸 하나에 있었다.
밤이 내리자 협곡 아래 불탄 수레에서 연기가 가늘게 올랐다. 적 기병은 사라졌고 요새의 승전 종도 울리지 않았다. 대신 절벽 위에서 마지막 이름을 확인한 종이 한 번 울렸다.
두 길 가운데 하나를 버리지 않은 대가는 수레와 전공이었다. 세라는 그 손실을 아름답게 부르지 않았다. 다만 그날 전선이 지킨 것이 요새 귀족의 깃발이 아니라, 내일 자기 길을 다시 고를 수 있는 백열두 사람이라는 사실만 장부에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