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런 베도르는 소환 기한을 하루 남기고 나타났다. 회관 밖으로는 베도르 기병 예순을 세워 두고, 안으로는 서기관 두 명과 왕실 예복을 입은 전령을 데려왔다. 북쪽 마을에 아직 탄 냄새가 남아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처럼 그의 장화에는 진흙 한 점 없었다.
"이렇게 많은 분이 제 이름을 부르는데 늦을 수는 없지요."
카이런은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빈 의자 앞에 섰다. 앉지는 않았다. 의자를 차지하지 않고도 회의장의 시선을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려는 태도였다.
왕실 전령이 명령서를 폈다. 로벨 영지의 적통 심사가 끝날 때까지 엘리안의 군사 지휘권을 정지하고, 모든 봉인 기록을 중앙 추밀원에 넘기라는 내용이었다. 발행 날짜는 북부 봉인 공격이 일어나기 전날이었다.
엘리안은 명령서를 곧바로 받지 않았다. "원본을 감찰관과 중립 사원 서기에게 먼저 보여 주십시오. 봉인 밀랍과 발행 대장을 대조한 뒤 효력을 논의하겠습니다."
전령의 손이 멈췄다. 카이런의 미소도 아주 잠깐 굳었다. 예전 같으면 왕실 문양 하나로 문이 열렸을 것이다. 그러나 회관에는 이미 위조 봉인이 사람의 혈통과 용의 봉인까지 바꿔 놓은 기록이 쌓여 있었다.
카이런은 명령서 대신 얇은 장부를 꺼냈다. 북부로 들어오는 소금, 밀, 약초의 거래선과 채권자 명단이었다. 베도르가와 거래를 끊으면 로벨 영지의 비축분은 스무 날, 인근 세 도시는 한 달을 버티지 못한다는 계산이 줄마다 적혀 있었다.
"진실은 훌륭한 식량이 아닙니다."
그가 말했다. "당신들이 제 수송대를 묶는 순간 상단은 멈춥니다. 저를 체포하면 귀족 연합은 국경 병력을 거둡니다. 엘리안 로벨, 당신은 사람을 지킨다고 말하지만 그 선택의 계산서를 본 적이 있습니까?"
회관 뒤에서 불안한 웅성거림이 번졌다. 카이런은 그 소리를 기다렸다. 그는 늘 선택지를 두 개만 남긴 뒤, 자기 쪽을 덜 잔혹한 길처럼 보이게 했다.
하르트가 주민 비축 장부를 폈다. 회수한 곡물과 변경 도시가 약속한 긴급 수송량, 회색늑대가 확보한 서쪽 산길의 수레 수가 적혀 있었다. 넉넉하지 않았지만 스무 날보다 길었다. 곡물을 공동 배급하면 겨울 파종 전까지 버틸 수 있었다.
"각 도시가 단독으로 계산하면 공작님의 숫자가 맞습니다."
하르트가 말했다. "그러나 어제 네 도시가 비축량을 합산했습니다. 누구 하나의 수송 허가에 목을 매지 않기로 했습니다."
카이런은 하르트를 보지 않고 세라에게 시선을 돌렸다. "회색늑대는 계약에 사는 사람들 아닙니까. 로벨이 급료를 못 주면 얼마나 오래 충성할까요?"
세라는 낡은 가죽 문서 하나를 탁자에 던졌다. 빙설 협곡 이전, 왕실 군사고문 시절 받은 철수 명령이었다. 부상자를 버리고 보급 수레를 지키라는 지시 아래 카이런의 부서명이 있었다. 레온과 여러 용병이 죽게 된 작전의 시작이었다.
"당신은 그때도 사람보다 수레가 싸다고 계산했지."
세라가 말했다. "우리는 이제 급료만 받는 계약이 아니다. 죽은 자를 데려오고 살아 있는 사람을 먼저 빼낸다는 맹세로 여기 서 있다. 당신 장부에는 그 값이 없을 거다."
카이런은 여전히 미소를 지었다. "감정은 지휘 원칙이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맹세문과 작전 규칙으로 적어 뒀어. 감정만이었다면 벌써 당신 목을 베었겠지."
드론이 입회자 둘과 함께 들어왔다. 카이런의 시선이 처음으로 크게 흔들렸다. 드론은 북문 밖에 잡혀 있던 동생이 방청석에 앉아 있는 것을 확인한 뒤 증언대에 섰다.
그는 반년 동안 받은 밀랍통 열세 개와 전달 장소를 하나씩 말했다. 세 번째 통부터는 오스렌 카르딘의 약자가 찍혔고, 여덟 번째부터는 카이런의 내실 서기관이 쓰는 숫자 부호가 붙었다. 마지막 명령은 루아의 문서를 빼내고 실패하면 북쪽 봉인 기둥의 경비 배치를 넘기라는 것이었다.
카이런의 서기관 하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협박받은 배신자의 말입니다. 공작가를 모함하면 가족을 살려 주겠다는 거래였겠지요."
"그래서 제 말만 믿지 말라고 했습니다."
드론은 품에서 작은 나무패를 꺼냈다. 매번 밀랍통을 반납할 때 받은 확인패였다. 열세 개의 모서리 흠이 베도르 지급 장부 열세 줄과 맞아들었다. 그 장부는 북부 공격자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중립 상단이 보관한 운송 결산본이었다.
루키안이 회관 천장을 올려다봤다. 왼손의 봉인흔이 천 아래서 다시 붉어지고 있었다. "불을 끄십시오. 서쪽 들보 위에 봉인식이 있습니다."
세라가 탁자를 넘어 몸을 날렸다. 들보에서 검은 망토의 사내가 떨어지며 불붙은 봉인지를 기록 탁자 쪽으로 던졌다. 루키안이 오른손으로 역문을 그어 불길을 옆으로 꺾었고, 세라가 사내를 바닥에 눌렀다. 망토가 벗겨지자 희생자 명단에서 죽은 것으로 처리된 얼굴이 드러났다.
오스렌 카르딘은 머리가 희어졌지만 궁 출입 기록의 인상착의와 왼쪽 귀 흉터가 같았다. 그의 손가락에는 북부 기록석에 남은 개인 봉인이 끼워져 있었다.
카이런은 그제야 미소를 거뒀다. "살아 있었군요, 오스렌. 저는 죽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오스렌이 웃었다. "공작님은 늘 필요한 죽음만 기억하셨지요."
그 한마디 뒤에 회관 공기가 뒤집혔다. 오스렌의 허리 주머니에서는 카이런의 지급 장부와 같은 결산 부호표, 왕실 봉인 밀랍, 북부 공격 명령의 절반이 나왔다. 다른 절반은 공격자에게서 압수한 쪽지와 찢어진 결이 맞았다.
공동 감찰단은 현장에서 오스렌을 구금했다. 카이런에게도 무장 해제와 임시 출석 제한을 고지했다. 그러나 회관 밖의 베도르 기병이 창을 세우자 왕실 전령이 뒷문을 열었다. 카이런은 서기관 하나를 밀쳐 길을 만들고 말에 올랐다.
세라가 곧장 추격하려 했지만 회관 밖 식량 수레에 불화살이 꽂혔다. 베도르 병사들은 주민이 모인 동쪽 길과 남쪽 창고를 동시에 위협했다. 카이런이 다시 두 개의 선택지만 남긴 것이다.
엘리안은 세라에게 불을 끄고 주민 통로를 지키라고 명령했다. 기병 추격은 마렉을 포함한 여덟 명에게 맡겼다. 카이런은 그 틈에 북동쪽 왕실 봉인탑으로 달아났다.
불은 곡물 두 포대를 태우고 꺼졌다. 다친 주민은 없었다. 대신 카이런과 기병 서른이 성 밖으로 빠져나갔다. 엘리안은 그 손실을 숨기지 않고 회의록에 적게 했다.
오스렌은 결박된 손으로 자기 인장을 바라봤다. 루키안이 그 앞에 깨진 북부 기록석 탁본을 놓았다. "이르반 테셀을 죽은 자 명단에서도 지운 이유가 뭡니까?"
"그자는 봉인이 무너지면 주민부터 죽는다고 했습니다. 계획을 멈추자고 했지요. 너무 늦게 양심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은 없었습니까?"
오스렌은 대답하지 않았다. 침묵도 그대로 기록됐다.
카이런이 놓고 간 계산서는 회관 벽에 붙었다. 그 옆에는 공동 비축량, 대체 수송로, 부상자 명부, 전사자 수습 규칙이 나란히 붙었다. 비용을 감춘 정의도 위험하지만, 사람을 지운 계산 역시 통치가 될 수 없었다.
중립 상단 회계관은 두 장부의 수치를 밤새 다시 합산하겠다고 자원했다. 로벨 측 서기만 계산하면 승자의 숫자라는 의심이 남을 수 있었다. 엘리안은 원본을 건네지 않고 같은 자리에서 열람하게 했고, 방청인 둘이 계산 과정을 지켜보게 했다.
엘리안은 왕실 봉인탑 쪽에서 솟는 붉은 신호를 봤다. 카이런은 아직 마지막 숫자를 남겨 두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 계산은 닫힌 방의 비밀이 아니었다. 누가 무엇을 대가로 삼았는지, 모두가 읽을 수 있는 장부 위에 올라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