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없는 창고 수색을 준비하던 중 감호소에서 곽연수의 진술 요청이 왔다. 그는 옛 자금 은닉처 하나가 샛길 근처에 있다고 했다. 조건을 먼저 묻자 직접 만나면 말하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진무백은 둘만의 면담을 거절했다.
감호소 마당에 낮은 탁자가 놓였다. 피해자 입회자 둘, 외부 기록자, 지역 수색 담당, 감호관이 자리를 나눴다. 곽연수는 쇠사슬 없이 앉았지만 출입문은 공동 경비가 지켰다. 공개 진술이 처벌 장면을 과장하는 구경거리가 되지 않게 방청 수를 제한했다.
곽연수는 먼저 감형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기록자는 그 말만 믿지 않고 면담 전후 처우가 바뀌지 않는다는 문서를 읽었다. 진술이 사실로 확인돼 피해 회복에 쓰여도 죄명·감호 기간과 자동 교환되지 않았다. 비밀 거래가 생길 틈을 문장으로 막았다.
그가 가리킨 곳은 샛길의 무너진 돌부처 아래였다. 과거 운송 품삯과 매수금 일부를 기름 먹인 상자에 묻었다고 했다. 조직 해산 직전 누구에게도 넘기지 못했다는 주장이었다. 위치와 금액, 묻은 시각을 따로 적었다.
피해자 입회자는 왜 공개 심판 때 말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곽연수는 그때는 언젠가 거래값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고 답했다. 감호가 길어지고 옛 수레꾼들이 객주 빚에 묶였다는 소식을 들어 이제 말했다고 했다. 늦은 동기까지 선행으로 꾸미지 않았다.
진무백은 아버지 죽음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곽연수의 죄를 용서하지 않는 감정과 현재 위치 진술 검증은 별도였다. 그는 질문권을 피해자와 수색 담당에게 먼저 주고, 자신은 옛 운송 상자 모양만 확인했다. 개인 원한이 진술의 진위를 결정하지 않았다.
곽연수는 상자에 은전 삼백 냥과 번호 장부 한 묶음이 있다고 했다. 금액이 과거 공개 원본의 누락분과 맞는지 아직 알 수 없었다. 기록자는 `예상`이라고 표시했다. 오래된 우두머리의 말도 발견 전에는 증거가 아니었다.
수색대는 감호소에서 바로 출발하지 않았다. 위치를 아는 사람이 많아지면 먼저 파갈 위험이 있었지만, 너무 제한하면 다시 비밀 회수가 된다. 피해자 입회자와 지역 산지기, 외부 기록자 세 명에게 정확한 곳을 나눠 알리고 출발 시각을 공개했다.
곽연수는 자신이 동행하면 빨리 찾을 수 있다고 제안했다. 감호소 밖 이동은 도주 위험과 피해자 안전을 높일 수 있었다. 수색대는 그의 손그림과 지형 질문만 받고 동행을 거절했다. 필요한 지식을 받는 것과 옛 지휘자를 현장 중심에 세우는 일을 나눴다.
돌부처 아래 첫 삽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흙층이 홍수 뒤 바뀌어 있었다. 곽연수 그림의 나무는 이미 쓰러졌고 방향도 조금 달랐다. 산지기는 옛 물길을 계산해 두 길 아래를 제안했다. 진술이 틀렸다고 즉시 결론 내리지 않고 현재 지형을 반영했다.
두 번째 지점에서 기름 냄새가 났다. 사람들은 삽을 서둘렀지만 외부 기록자가 상자 모서리 위치를 먼저 그렸다. 폭약이나 독 분말 가능성도 있어 당문 안전 담당이 흙을 살폈다. 돈이 있다는 기대가 안전 절차를 밀어내지 않았다.
상자 안에는 은전 이백열세 냥과 젖은 번호 장부 반 권이 있었다. 곽연수 말보다 돈은 적고 장부도 불완전했다. 누가 먼저 가져갔는지, 기억이 틀렸는지, 물에 유실됐는지는 알 수 없었다. 발견물 수량과 진술 차이를 그대로 남겼다.
은전은 현장에서 세지 않고 봉인 자루 세 개로 나눠 공동 금고로 옮겼다. 피해자 입회자와 외부 회계자가 서로 다른 저울로 다시 무게를 확인했고, 닳아 값을 매기기 어려운 동전은 별도 감정함에 넣었다. 급한 구호가 있어도 수량 확인을 생략하지 않았다.
은전 표면에는 오대 세력 세 곳의 옛 표식이 섞여 있었다. 이미 공개 심판에서 확인된 자금 경로와 이어졌고 새로운 비밀 원본은 아니었다. 세 원본의 누락 항목을 보완할 보조 자료로 분류됐다. 판결 전체를 다시 여는 구실로 쓰지 않았다.
젖은 장부에는 현재 번호 수레와 맞는 패 여섯이 있었다. 다섯은 이미 심리 중이고 하나는 미확인 상태였다. 구칠은 암호를 읽을 수 있었지만 피해자 대조표와 함께 해석하기로 했다. 곽연수의 옛 풀이도 참고본에만 넣었다.
감호소로 결과가 전달되자 곽연수는 금액이 줄었다며 누군가 훔쳤다고 말했다. 누구인지 묻자 짐작만 있었다. 기록자는 그 이름들을 범인 명단으로 옮기지 않았다. 추가 수색 근거가 되는 물리 흔적과 시간표가 있을 때만 확인하기로 했다.
피해자 대표들은 회수 은전을 어떻게 쓸지 논쟁했다. 옛 납치 피해자 배상, 운반자 가족 구호, 샛길 공개 공사에 모두 필요했다. 곽연수 진술 공로금은 책정하지 않았다. 돈의 원래 출처와 현재 피해 연결을 대조해 우선순위를 정했다.
직접 돈을 빼앗긴 사람과 강제 운송으로 품삯을 잃은 사람이 같은 은전을 청했다. 감사자는 한 사건 이름으로 균등 분할하지 않고 확인된 손실과 긴급도를 표로 만들었다. 이의 기간 동안 다투는 몫은 쓰지 않되, 치료가 급한 몫은 다른 기금에서 먼저 지급했다.
첫 몫은 긴급 치료와 실종자 수색에 배정됐다. 둘째는 번호 빚 강제 이자의 피해 회복, 셋째는 공동 호송로 안전 공사였다. 은전을 피해자에게 똑같이 나누면 실제 손실과 긴급도가 달라질 수 있어 공개 기준을 세웠다. 남은 금액은 이의 기간 동안 봉인했다.
곽연수는 진술 뒤 가족 편지 횟수를 늘려 달라고 요청했다. 감호 처우 위원회는 진술 거래로 다루지 않고 기존 기준에 따라 별도 검토하기로 했다. 편지를 원하는 인간적 필요를 조롱하지 않았지만 피해 자금을 대가로 삼지도 않았다.
진무백은 감호소를 나서며 곽연수에게 감사하지 않았다. 사실이 확인된 부분은 기록될 것이며, 남은 차이도 다시 물을 수 있다고만 했다. 곽연수는 원망도 용서도 얻지 못했다. 그의 말은 현재 수색에 필요한 크기만큼 쓰였다.
수색대는 은닉처 주변에서 작은 발자국과 마른 음식 포장을 찾았다. 불 없는 창고의 아이들이 이곳을 드나들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회수 은전보다 그 흔적이 다음 행동을 바꿨다. 아이가 있다면 포위 전에 먹을 것과 안전 퇴로가 필요했다.
감호소 공개본에는 정확한 남은 위치를 쓰지 않았다. 이미 파낸 장소와 회수 수량, 조사 절차는 알렸고 주변 수색 구간은 안전 사유로 제한했다. 제한 담당과 해제 날짜를 명시했다. 비밀 유지가 곽연수 개인 권력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젖은 번호 장부는 말린 뒤 세 사본으로 나뉘었다. 하나는 피해자 대조실, 하나는 지역 수색소, 하나는 외부 보관함에 갔다. 감호소에는 발견 결과 사본만 제공됐다. 곽연수가 자기 장부를 다시 통제할 수 없었다.
공개 질문 끝에 피해자 한 명이 왜 이제야 말했느냐고 다시 물었다. 곽연수는 감호소에서 아무 쓸모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 두려웠다고 했다. 기록자는 그 두려움을 지웠다가 되살리지 않았다. 유용해지고 싶은 욕망이 진실 일부를 내놓게 했지만 책임을 씻지는 않았다.
그날 밤 은전은 공동 금고에 들어갔다. 열쇠는 피해자 대표와 외부 회계자, 지역 운영자가 나눠 가졌다. 진무백도 곽연수도 갖지 않았다. 옛 자금이 한 사람의 협상패에서 여러 피해 회복 항목으로 바뀌었다.
감호소 문은 이전과 같은 시각에 닫혔다. 감형 표시는 붙지 않았고 추가 진술 요청 창구만 공개됐다. 곽연수의 공개 진술은 새 우두머리를 찾는 열쇠가 아니라 끝난 운송망의 남은 돈과 아이들의 길을 확인하는 자료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