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문 창고 열람을 약속한 아침, 환자 수레보다 검은 가마 세 채가 먼저 공동 진료소에 닿았다. 비단 장막에서 내린 당문 원로들은 향을 피우고 자기 자리를 닦게 했다. 밤새 약을 기다린 사람들은 천막 밖 진흙에 앉아 있었다. 순서를 알리는 발걸음부터 치료와 어긋났다.
선두의 당문 원로 당학경은 해독 분말 열두 첩을 가져왔다고 밝혔다. 대신 누가 받을지는 당문이 정해야 한다고 했다. 처방은 문파의 피와 희생으로 쌓였으므로 가문의 적에게 흘러가면 다음 전쟁에서 모두 죽는다는 논리였다. 약상자는 그의 가마 안에 그대로 있었다.
당소연은 상자를 빼앗지 않고 봉인 번호와 실제 수량을 공개 탁자에서 확인하자고 했다. 당학경은 먼저 환자 명단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옛 흑야루 가담자, 오대 세력 친족, 당문과 거래한 사람을 가려야 한다는 뜻이었다. 치료 앞에 새 심문표가 놓이려 했다.
진료소 환자 대표 연화는 자기 이름을 공개할 수 있지만 다른 환자 과거까지 대신 넘길 수 없다고 말했다. 외부 의원은 증상과 처방 반응을 익명 번호로 제공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원로가 독성 판별에 필요한 정보와 사람을 벌주기 위한 정보가 구분됐다.
당학경은 첫 세 첩을 당문 제자에게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날 창고 상자를 나른 약동 둘이 미열을 보였고, 그들이 쓰러지면 약재 운반도 멈춘다는 이유였다. 진료판에는 그보다 호흡이 느린 나루꾼과 피를 토하는 아이가 있었다. 역할의 중요성이 몸의 위급도를 덮으려 했다.
당소연은 모든 환자를 같은 자리에서 다시 살폈다. 약동 하나는 열이 있었지만 의식과 호흡이 안정됐고, 다른 하나는 손끝 감각만 둔했다. 나루꾼은 숨길이 막힌 듯 입술이 검어졌고 아이는 맥이 끊어질 듯 약했다. 첫 두 첩은 나루꾼과 아이에게 배정됐다.
당학경은 당문 약을 당문이 정하지 못하면 상자를 돌려가겠다고 했다. 당소연은 그 선택도 공개 기록에 남기겠다고 답했다. 문파 소유를 부정하지 않았지만, 사람 목숨을 조건으로 환자 선별권을 사려 한 사실까지 비밀로 해 주지는 않았다.
원로 중 가장 젊은 당명서는 상자 하나를 탁자에 올렸다. 그는 약을 가지고 돌아가다 환자가 죽으면 자기 책임도 된다고 했다. 다만 처방의 일부가 밖으로 새는 데 대한 두려움은 거짓이 아니었다. 당소연은 두려움과 통제권 요구를 같은 것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외부 의원들이 약병을 열자 향과 빛깔은 표준약과 맞았다. 한 병은 습기를 먹어 가루가 굳어 있었다. 수량 열둘을 그대로 유효 열둘이라 적지 않고 온전한 아홉, 시험 필요한 셋으로 나눴다. 당문 체면 때문에 손상 약을 환자에게 쓰지 않았다.
나루꾼에게 첫 약이 들어가는 동안 당학경은 천막 밖으로 나갔다. 그의 수행자들은 원로가 떠나면 약상자를 다시 가져가야 한다고 했다. 당명서는 이미 공동 입회 아래 인계한 약을 개인 명령으로 회수할 수 없다고 맞섰다. 당문 내부에도 하나의 뜻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당소연은 당명서를 개혁 영웅으로 세우지 않았다. 그가 과거 창고 출고표를 눈감아 준 적이 있는지 별도 확인해야 했다. 현재 약을 내려놓은 선택은 기록하되, 그 공로로 지난 감독 책임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선한 한 장면도 면죄부가 아니었다.
두 번째 약을 받은 아이의 출혈은 늦게 줄었다. 당학경은 당문 방식대로 침 자리를 바꾸면 빨라질 수 있다고 멀리서 말했다. 당소연은 그의 전문 의견을 듣되 진료대 접근은 아이와 보호자의 동의를 받았다. 배분 권한을 갖지 못해도 지식까지 배제할 이유는 없었다.
침 자리를 하나 바꾸자 맥이 조금 강해졌다. 외부 의원은 변화 시각을 기록했고, 당학경의 이름도 조언자로 남겼다. 원로는 자신의 지식이 필요함을 보였으니 환자 명단을 달라고 다시 요구했다. 당소연은 필요한 지식이 사람의 신원 소유권을 만들지 않는다고 했다.
오후에 당문 제자 한 명의 상태가 갑자기 나빠졌다. 창고 먼지를 마신 뒤 목 안이 부어 호흡이 가빠졌다. 앞선 약동들과 달리 위급 기준을 넘었다. 당소연은 그가 당문 사람이라서도, 원로 요구를 달래기 위해서도 아니라 현재 호흡 수치 때문에 다음 첩을 썼다.
천막 밖에서는 특혜라는 고함이 나왔다. 연화가 진료판의 이전·현재 수치를 읽어 차례가 바뀐 이유를 설명했다. 환자 대표가 의원 결정을 대신 내리지는 않았지만, 기준이 몰래 움직이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분노를 침묵시키는 대신 같은 숫자를 보게 했다.
당학경은 그 장면을 보고 위급도 판정 자체를 당문이 맡겠다고 제안했다. 당소연은 당문 의원 둘이 재평가에 참여할 수 있으나 단독 판정권은 없다고 했다. 외부 의원과 환자 관찰자가 서로 다른 증거를 확인한 뒤, 긴급할 때는 가장 가까운 의원이 치료하고 사후 검토하도록 정했다.
원로들은 처방 공개가 문파 생존을 위협한다고 거듭 말했다. 당소연은 모든 독 배합과 공격법을 내놓으라는 요구가 아니라고 답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재고 수량, 해독 단계, 부작용, 제조 승인선이었다. 위험 제조법을 숨기는 일과 치료 지식을 독점하는 일을 분리했다.
당학경은 흑야루에 자발적으로 약을 판 자에게도 약을 줄 것이냐고 물었다. 문칠이 천막 안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는 돈을 받고 상자를 옮긴 적이 있으나 내용은 몰랐다고 했고, 그 진술은 아직 심리되지 않았다. 당소연은 치료 뒤 사실을 가리되 약으로 자백을 사지 않겠다고 했다.
원로 수행자가 문칠 약병을 빼앗으려 손을 뻗었다. 혜륜은 팔을 꺾지 않고 탁자를 밀어 거리를 만들었다. 경비 둘이 수행자를 밖으로 데려갔고 행동과 지시 여부를 따로 조사했다. 무공의 강함이 진료 질서를 정하는 장면을 피했다.
문칠은 보조약만 받았지만 맥이 안정됐다. 그는 원로를 용서하지 않았고 당소연에게 고마움을 맹세하지도 않았다. 다음 밤에 다시 나빠질 가능성을 듣고 가족과 관찰표를 챙겼다. 환자가 규칙을 받아들였다는 이유로 만족한 표정을 요구받지 않았다.
해 질 무렵 열두 첩 가운데 여덟 첩이 적절히 사용되거나 비상분으로 봉인됐다. 시험 필요한 셋 중 하나는 독성 침전이 생겨 폐기 보류함에 들어갔다. 나머지 한 첩은 당문 창고에서 밤 이동된 상자와 성분 대조에 쓰기로 했다. 배분과 조사가 같은 약을 다투지 않게 수량을 명시했다.
당명서는 원로회의 공식 조건문을 내놓았다. 환자 선별권을 주지 않으면 추가 재고 공개를 거부한다는 내용이었다. 당소연은 조건문을 찢지 않고 공동 진료소 벽에 붙였다. 누구에게 약을 주지 않으려 했는지 환자 이름 없이도 권력 요구는 읽을 수 있었다.
환자 대표들은 당문을 모두 적으로 돌리자는 의견과 지식 협력을 계속하자는 의견으로 갈렸다. 연화는 원로의 배분권은 거부하되 성분 감별과 부작용 자료는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분노가 협력의 모든 길을 닫지도, 약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조건을 삼키지도 않았다.
당소연은 새 합의 초안을 썼다. 진료 차례는 공동 기준, 재평가는 서로 다른 소속 의원 둘, 긴급 치료는 지체하지 않기, 신원 자료는 당사자 동의 없이 배분자에게 주지 않기. 당문 원로는 독성 지식을 제공할 수 있지만 자기 제자조차 앞줄로 옮길 수 없었다.
당학경은 끝내 지장을 찍지 않았다. 그러나 당명서와 창고 약동 대표는 초안에 이름을 올렸다. 당문 전체의 승복이 없어도 공개된 약은 정한 기준으로 쓸 수 있었다. 미동의자는 무엇을 거부했는지 남기고 다음 회의에서 다시 다투게 했다.
밤에는 당문 제자와 나루꾼이 같은 천막의 다른 자리에서 잠들었다. 둘 다 맥 확인을 받았고 어느 침상에도 가문 깃발은 없었다. 환자보다 먼저 온 원로는 끝내 마지막까지 남았지만, 그의 자리가 치료 순서를 앞당기지 못했다. 당소연은 다음 확인표의 첫 칸에 또다시 출신이 아닌 호흡 수를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