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 중계창은 절벽에 반쯤 묻힌 오래된 소금 창고였다. 구칠이 그린 지도에는 문이 둘이었지만 나준은 세 번째 물길을 가리켰다. 장마 때 소금물을 빼던 좁은 수로였다. 진무백은 공격대를 세우기 전에 갇힌 가족 스물한 명의 이름을 다시 읽었다.
당소연은 수로 물에서 느린 독환 냄새를 맡았다. 흑야루가 탈출자를 약하게 만들려고 상류에 소량을 풀고 있었다. 그녀는 해독초 자루를 물길에 담그고 주민들에게 다른 우물을 쓰게 했다. 곽연수를 놀라게 하지 않으면서 사람을 빼낼 시간이 필요했다.
남궁현은 중계창 정문 호위의 교대표를 실종자 명단 원본과 맞췄다. 번호 열둘은 남궁 호송대에서 ‘처리’된 사람의 후손이었다. 적으로 베면 피해자의 가족을 다시 죽이는 셈이었다. 그는 가문식 암호로 “실종자 가족에게 열람권이 열렸다”는 문장을 문틈에 넣었다.
혜륜과 청연도인은 수로 입구 돌을 들어 올렸다. 구칠이 먼저 들어가려 하자 나준이 막았다. 과거에 판 길을 안다는 이유로 또 혼자 판단하지 말라는 말이었다. 진무백, 구칠, 중계창에서 탈출한 운반자 한 명이 함께 들어가고 바깥에서도 줄을 잡기로 했다.
수로 끝에는 나무 격자가 있었다. 두 번째 인장을 틈에 대자 안쪽 경비가 첫 인장을 요구했다. 구칠은 오래된 집행 암호를 답하지 않고 갇힌 사람 이름 셋을 불렀다. 잠시 뒤 격자 너머에서 같은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돌아왔다. 경비도 배급을 빌미로 묶인 가족 중 하나였다.
격자는 안에서 열렸다. 젊은 경비는 칼을 내려놓고 곽연수가 상층 창고에 있으며 증거를 옮길 준비를 한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아래 저장실에 있고, 서백하라는 노표사가 그들의 배급과 명단을 관리한다고 했다. 진무백은 한동안 말을 잃었다.
“살아 있소?” 질문이 너무 작아 경비가 되물었다. 진무백은 다시 묻지 않고 저장실로 갔다. 돌벽 사이 긴 방에 사람들이 줄지어 앉아 있었고, 한 남자가 빈 곡식 자루에 이름을 쓰고 있었다. 머리는 희었지만 붓을 쥔 왼손과 구부정한 어깨를 알아볼 수 있었다.
서백하는 진무백을 보자 붓을 내려놓았다. 웃거나 제자를 부르지 않았다. “왔구나”라는 두 글자 뒤에 긴 침묵이 놓였다. 진무백도 사부라 부르지 않았다. 먼저 저장실 문과 사람 수, 다친 사람부터 확인했다.
스물한 명 가운데 열아홉은 걸을 수 있었고 둘은 독 때문에 다리가 풀렸다. 당소연이 들어와 해독제를 나눴다. 서백하는 곡식통 아래 숨겨 둔 배급 장부를 내놓았다. 곽연수가 누구의 가족을 어느 명령에 묶었는지 적힌 원본이었다.
진무백은 왜 돌아오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서백하는 하늘문에서 압인을 받지 못한 뒤 흑야루 안으로 들어가 생존자 명단을 빼내려 했다고 했다. 곽연수는 그의 청매표국 경력을 이용해 운송표를 진짜처럼 만들었고, 그 대가로 일부 가족을 풀어 주었다. 서백하는 거래를 끊으면 남은 사람이 죽을까 봐 계속 남았다.
“나올 기회는 없었습니까?” 서백하는 두 번 있었다고 답했다. 첫째는 법경이 죽은 뒤, 둘째는 나준을 내보낸 날이었다. 둘 다 혼자라면 달아날 수 있었지만 사람과 기록을 함께 데리고 나올 길을 찾겠다고 미뤘다. 그 선택에는 책임감뿐 아니라 자신이 한 운송이 드러날까 두려운 마음도 있었다.
서백하는 흑야루 무기 수레를 세 번 옮겼고, 그중 한 수레가 청매표국 표사들을 공격하는 데 쓰였다고 인정했다. 안에서 사람을 살렸다는 이유로 그 운송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했다. 진무백은 스승을 껴안고 싶은 마음과 멱살을 잡고 싶은 마음을 함께 눌렀다.
“아버지 일은 알고 있었습니까?” 진무백이 마침내 물었다. 서백하는 저장실 구석 돌바닥을 들어 올렸다. 안에서 피에 녹슨 작은 놋쇠 모서리와 기름종이 한 장이 나왔다. 놋쇠는 운송 원장 표지의 한쪽 장식이었고, 기름종이는 흑야루 살해 명령표였다.
명령표에는 ‘구휼미 운송 원장 회수, 진씨 표사 제거’라고 적혀 있었다. 집행 책임자 칸에는 다른 수결 없이 곽연수의 검은 누각 인장과 본명이 함께 있었다. 날짜는 진무백의 아버지가 죽은 날과 같았다. 두 번째 인장을 대자 집행 완료를 뜻하는 숨은 먹선도 나타났다.
서백하는 그날을 직접 보았다고 했다. 진무백의 아버지는 원장을 품에 안고 중계창 밖 말터로 나왔고, 곽연수가 존칭으로 원장을 달라고 요구했다. 거절하자 곽연수는 부하에게 시키지 않고 직접 짧은 칼을 가슴에 찔렀다. 서백하는 수레 밑에 숨어 움직이지 못했다.
“왜 시신 곁으로 가지 않았소?” 진무백의 손이 떨렸다. 서백하는 두려웠다고 했다. 곽연수가 떠난 뒤에야 나왔고 이미 숨이 멎은 아버지 손에서 원장 표지 모서리만 떼었다. 원장 본문은 곽연수가 가져갔다. 그는 진무백을 보호한다며 진실을 말하지 않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비겁함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진무백은 살해 명령표를 움켜쥐지 않았다. 당소연이 천 위에 펼치고 청연도인이 먹과 종이를 감식했다. 남궁현은 날짜를 호송 기록과, 구칠은 두 번째 인장 결을 맞췄다. 서백하의 목격 하나가 아니라 물증과 세 원본의 시간이 같은 사건을 가리켰다.
아버지의 죽음이 확정되자 오히려 머릿속이 조용해졌다. 진무백은 복도를 올려다봤다. 곽연수가 있는 상층까지 계단 스물일곱 칸이었다. 지금 뛰어가면 칼을 목에 댈 수 있었다. 그러나 저장실 사람 둘은 아직 걷지 못했고 상층에는 불붙일 기름통이 있다는 말이 나왔다.
진무백은 칼 손잡이에서 손을 떼고 탈출부터 지시했다. 혜륜과 남궁현이 사람을 수로로 옮겼고 청연도인은 배급 장부 사본을 먼저 밖으로 보냈다. 구칠은 가족 이름을 하나씩 불러 빠진 사람이 없는지 확인했다. 서백하도 맨 뒤에서 부상자를 업었다.
상층에서 검은 연기가 내려오기 시작했다. 곽연수가 문서를 태우는 것이 아니라 수로를 막으려고 젖은 짚을 피운 연기였다. 당소연은 바람길을 보고 환기 구멍을 열었다. 진무백은 사람을 재촉하지 않고 호흡이 약한 이에게 젖은 천을 씌웠다.
마지막 가족이 밖으로 나왔을 때 서백하는 다시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살해 명령표 외에 곽연수의 첫 인장이 상층에 있다고 했다. 진무백은 그의 팔을 잡았다. “또 혼자 남아 값을 치른 척하지 마시오.” 서백하는 멈추고 지도를 내놓았다.
지도에는 상층 지휘실, 무기고, 급료 명부, 두 개의 퇴로가 모두 표시돼 있었다. 서백하는 수년간 조금씩 그린 것이었다. 자료를 지킨 공은 있었지만 갇힌 사람에게 탈출 계획을 알리지 않은 잘못도 있었다. 가족 대표가 지도를 확인하고 자신들이 아는 문을 보탰다.
진무백은 서백하에게 공개 심판에서 운송 가담과 침묵을 말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서백하는 제자가 원하는 대답을 하지 않고 “말하겠다”고만 했다. 용서받을 기대도 스승 자리를 되찾을 기대도 없었다. 살아 있으므로 자기 몫을 답해야 한다고 했다.
그때 상층 창문에서 곽연수의 목소리가 내려왔다. “진 소협, 아버님 일을 들으셨군요. 원하시면 제 목을 드리겠습니다.” 늘 존칭을 쓰는 차분한 어조였다. 진무백은 올려다보지 않고 구조된 사람 수를 다시 셌다. 스물한 명 모두 있었다.
“목은 당신 것이 아니오.” 진무백이 답했다.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이 물을 말이 남았소.” 곽연수는 웃지 않았다. 지휘실 문이 닫히고 쇠빗장 소리가 났다. 퇴로 위치는 이미 지도에 있었고 바깥 호송대가 둘 다 막았다. 도망칠 미지의 길은 남지 않았다.
서백하는 아버지 원장 모서리를 진무백에게 건네려 했다. 진무백은 공동 증거함에 넣게 했다. 유품이면서 살해 물증이므로 심판 전까지 혼자 가질 수 없었다. 손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아버지가 누구에게 왜 죽었는지는 처음으로 분명해졌다.
매화 위탁표는 서백하를 살아 있는 자리로 가리켰다. 그는 구원받을 스승으로 기다린 것이 아니라 보호와 거래, 용기와 비겁함을 함께 증언할 사람으로 남아 있었다. 진무백은 사부라는 호칭을 아직 입에 올리지 않았다. 대신 상층을 향해 몸을 돌리며 “함께 올라갑시다. 이번에는 아무도 혼자 남지 마시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