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관 마당 건조대 아래로 전서구 세 마리가 같은 시각에 내려왔다. 한 마리는 당소연의 푸른 약실, 한 마리는 남궁현의 흰 매듭, 마지막은 구칠의 누더기 끈을 달고 있었다. 진무백은 편지를 바로 열지 않고 각자가 정한 확인 표식부터 살폈다.
당소연의 편지 겉면에는 약초 가루가 뿌려져 있었지만 물에 닿자 검은색으로 변했다. 진짜 시약은 푸른색이어야 했다. 남궁현 편지의 매듭도 오른손잡이 방식이었다. 남궁현은 왼손으로 마지막 고리를 묶기로 약속했다. 세 통 가운데 구칠 것만 종이 구멍 일곱 개의 위치가 맞았다.
가짜 두 통에는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당문과 남궁가가 각각 원본을 확보했으니 모두 소림으로 가져오라는 급보였다. 진무백은 오창관에서 나온 명령표와 나란히 놓았다. 원본 세 곳이 움직이면 대조표를 태우고, 나머지 원본을 한 장소로 유인하라는 곽연수의 오래된 계획이 이어지고 있었다.
구칠의 진짜 편지는 짧았다. ‘나준 깨어남. 세 갈래 모두 쫓김. 약속한 글자의 셋째 획을 보라.’ 편지 속 ‘길’ 자의 셋째 획은 일부러 끊겨 있었다. 여섯 사람이 역참에서 정한 신호였다. 구칠은 보호처를 옮기되 공개 대조 장소를 빨리 정하라고 했다.
혜륜은 소림 안에서 원본을 열자고 했고 법정 장로도 동의하는 듯했다. 그러나 범초가 반대했다. 오창관 피해자가 다시 소림 허가를 받아 자기 이름을 읽는 구조가 된다는 이유였다. 당문이나 남궁가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오대 세력의 대전도 공개 심판 장소가 될 수 없었다.
역참지기 고씨가 백매진 폐곡창 마당을 제안했다. 전쟁 때 피난민이 곡식을 나눠 받던 곳이고 지금은 다섯 마을이 공동 관리했다. 큰길 세 개가 만나며 우물과 의원도 가까웠다. 무엇보다 문파 소유가 아니었다. 범초는 그곳이라면 오창관 생존자들이 올 수 있다고 했다.
공개 대조일은 보름 뒤로 정했다. 너무 빠르면 먼 지역 피해자가 오지 못하고, 너무 늦으면 원본이 위험했다. 각 길은 원본을 확보하는 즉시 사본 한 부를 백매진으로 먼저 보내고 원본은 다른 경로로 호송하기로 했다. 모이는 날까지 내용 일부도 숨기지 않았다.
백매진 다섯 마을에는 초청문이 아니라 열람 공지가 보내졌다. 피해를 입증할 문서가 없어도 말할 수 있으며, 숙식은 공동 곡간에서 내고 문파가 비용을 대납했다는 이유로 발언 순서를 사지 못한다고 적었다. 글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장터에서 소리 내 읽어 주었다.
진무백은 세 원본 이름을 큰 종이에 썼다. 당문 창고 출고 원본, 오창관 폐쇄 원본, 실종자 명단 원본. 개방의 검은 장부와 오창관 생존자 대조표는 옆에 놓일 보조 원본이었다. 어느 한 문서가 왕이 되어 다른 증언을 재단하지 않게 배열했다.
당소연에게 보낼 답장은 약재 처방처럼 썼다. 창고에 들어가기 전 외부 의원 둘과 운송꾼 한 명을 입회시키고, 아버지의 수결이 있는 모든 출고를 선악으로 가르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마지막에는 진짜 편지 확인용으로 그녀만 아는 해독제 냄새를 묻혔다.
남궁현에게는 가문패를 사용해 문을 열되 원본을 빼앗는 권리로 쓰지 말라고 적었다. 비고지기에게 반출 사유와 수량을 읽어 주고, 원로가 막으면 몸싸움보다 복사와 공개 증언을 먼저 하라고 했다. 편지 매듭은 남궁현이 정한 왼손 고리로 묶었다.
혜륜은 소림 원본을 맡았다. 무진대사 고백과 염주 번호, 압인을 대조하되 사부가 쓰러지면 심의를 멈추기로 했다. 사부의 몸을 희생해 자백을 얻는다면 곽연수의 강압과 닮아 버린다. 범초와 번호 운반자 가족 둘이 피해자 입회인으로 함께했다.
청연도인은 백매진으로 먼저 가서 공개 마당을 준비하겠다고 했다. 그는 무당의 깃발을 세우지 않고 자료 접수와 사본 봉함만 맡을 생각이었다. 순찰표를 숨겼던 사람이 이제 모든 이동 시간을 게시하는 역할을 자청한 셈이었다. 진무백은 혼자 게시판을 관리하지 말고 마을 서기와 나누라고 했다.
마당 배치도 세부적으로 정했다. 원본 탁자는 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 햇빛 드는 곳에 두고, 증언자 자리를 중앙에 놓았다. 무장한 호위는 울타리 밖에 서며 각 문파 대표는 한 명만 앞줄에 앉았다. 다툼이 나면 기록을 숨기는 대신 낭독을 멈추고 사람부터 분리하기로 했다.
진무백은 서쪽 흑야루 중계창을 정찰하고 싶었지만 세 원본보다 먼저 곽연수를 쫓지 않기로 했다. 대신 오창관에서 구조된 노달이 그린 바깥길만 확인했다. 공격로가 아니라 혹시 갇힌 사람을 빼낼 퇴로를 지도에 표시했다. 칼보다 먼저 나갈 길을 만드는 준비였다.
해 질 무렵 또 한 마리 전서구가 왔다. 이번에는 당소연의 진짜 푸른 시약과 왼쪽 아래 두 번 접는 습관이 확인됐다. 그녀는 아버지가 창고 앞에서 기다리겠다고 했으며, 원본을 내놓는 대가로 자기 이름을 빼 달라는 조건을 걸었다고 썼다. 당소연은 거절하고 외부 입회자를 모으는 중이었다.
진무백은 답장에 아버지를 설득하라고 쓰지 않았다. 조건을 그대로 기록하고 문을 열지 못하더라도 사본 위치를 확보하라고 했다. 당소연이 딸이라는 이유로 부친의 마음까지 책임질 수는 없었다. 다만 자신이 어떤 기록을 공개할지는 선택할 수 있었다.
남궁현의 진짜 전갈도 밤중에 도착했다. 그는 후계 원로들이 비고를 봉쇄했고, 실종자 가족 다섯이 대문 밖에 앉았다고 했다. 가문 무사들은 아직 칼을 뽑지 않았다. 남궁현은 가족들을 입회자로 들이지 않으면 가문패를 반납하겠다고 통보했다.
세 길의 갈등은 서로 달랐다. 당문에서는 혈연과 거래 기록이 맞섰고, 남궁에서는 후계권과 피해자 열람권이 맞섰으며, 소림에서는 사제의 정과 봉인 책임이 맞섰다. 한 가지 명령으로 풀 수 없었다. 그래서 세 원본을 각각 다른 방식으로 열고 같은 공개 기준으로 만날 필요가 있었다.
진본 감식 도구도 한곳에서 만들지 않았다. 당소연의 시약, 남궁 비고지기의 종이 두께 자, 소림의 압인, 개방의 날짜 암호를 각각 다른 사람이 가져오게 했다. 결과가 다르면 다수결로 덮지 않고 왜 다른지 공개 기록에 남기기로 했다. 틀릴 수 있음을 절차 안에 넣은 셈이었다.
호송 도중 사망이나 부상이 생길 경우를 위한 대응도 적었다. 원본 수레는 멈추고 가장 가까운 의원으로 사람을 옮기며, 사본 수레가 먼저 백매진으로 간다. 원본을 지키느라 다친 사람을 버리는 선택은 허용하지 않았다. 곽연수가 사람보다 장부를 앞세운 방식과 선을 긋는 규칙이었다.
범초는 오창관 명부 사본을 세 조각으로 나눠 각 길에 보냈다. 원본 이름과 맞는지 현장에서 확인할 대조표였다. 혹시 편지가 다시 바뀌어도 이름 셋과 날짜 둘을 맞추면 위조를 가릴 수 있었다. 흩어짐은 약점이 아니라 서로를 확인하는 장치가 됐다.
다음 아침 혜륜은 범초와 소림으로 돌아갔다. 청연도인은 고씨와 백매진으로 향했고, 진무백은 노달과 서쪽 길 입구를 살폈다. 구칠은 나준을 데리고 공개 마당에 올 준비를 했다. 당소연과 남궁현은 이미 각자의 문 앞에 서 있었다.
갈라지기 전 진무백은 모두에게 같은 말을 보냈다. 원본을 얻지 못해도 사람을 버리지 말 것, 원본을 얻어도 혼자 영웅이 되지 말 것, 위조를 발견하면 감추지 말 것. 백매진에서 만날 것은 성공한 사람들만이 아니라 실패와 책임까지 들고 오는 증언자들이었다.
오창관 건조대에서 마지막 천 조각이 말랐다. 진무백은 사본 수량을 확인하고 출발 시각을 적었다. 세 갈래 길은 흑야루의 유인에 따라 한곳으로 모이지 않았다. 당문 창고 출고 원본, 오창관 폐쇄 원본, 실종자 명단 원본은 각각 다른 손으로 열려 보름 뒤 같은 햇빛 아래 대조될 예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