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 보관소가 점거된 것은 첫눈이 내린 새벽이었다. 본산 유족 열한 명이 안으로 들어가 문을 걸고 청락을 자신들에게 돌려줄 때까지 나오지 않겠다고 했다. 그들은 칼을 들지 않았지만 창문마다 장롱을 세웠고, 유리함 앞에 사람 둘이 교대로 앉았다.
서진해가 도착했을 때 보관소 밖에는 방계 청년들이 모여 있었다. 백도겸도 청락을 본산에게만 줄 수 없다며 자기 사람을 말리고 있었다. 양쪽의 고함이 커지자 누군가 문을 부수자고 했다. 서진해는 허리에 검이 없는데도 모두 그가 베어 열기를 기다리는 눈치였다.
점거 대표 최문희는 창문 틈으로 요구서를 내밀었다. 청락은 멸문 유족의 상징이므로 외부 서기와 방계가 열쇠를 갖는 것은 모욕이며, 본산 유족에게 영구 보관권을 달라는 내용이었다.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안에서 단식하겠다고 했다.
보관소 안에는 청락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피난 기록 사본과 윤세하의 사문패, 복권 재산 장부도 있었다. 사람이 오래 머물도록 만든 장소가 아니어서 물과 화장 공간이 부족했다. 점거를 비난한다고 그들의 건강 위험을 방치할 수는 없었다.
담소령은 안에 노인 셋과 지병 있는 사람 둘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진료 명단을 공개하지 않고 긴급 약이 필요한 인원수만 협상자에게 알렸다. 창문으로 약과 물을 넣되 투항 조건을 붙이지 말라고 했다. 치료가 문을 여는 대가가 되면 환자들이 약을 거부할 수 있었다.
백도겸 지지자는 물을 막아 빨리 나오게 하자고 주장했다. 그는 즉시 거절했다. 방계가 권리를 빼앗겼던 경험을 내세우면서 다른 유족의 몸을 압박 도구로 삼을 수 없었다. 그는 자기 물통을 먼저 창문 앞으로 가져다 놓았다.
최문희는 물을 받으면 약해 보인다며 거부했다. 안쪽 노인이 쓰러지는 소리가 들리자 다른 점거자가 몰래 물통을 끌어갔다. 서진해는 그 행동을 항복으로 선전하지 않았다. 필요한 물을 받은 사실과 요구의 정당성은 별개였다. 공개 기록에도 수령자 이름을 적지 않았다.
외부 회당은 강제 진입 허가를 준비했다. 문을 부수면 장롱과 유리함이 넘어지고 안 사람도 다칠 수 있었다. 서진해는 하루의 유예를 요청했다. 그동안 세 열쇠 중 아무것도 외부로 옮기지 않고, 보관물 목록을 창문 너머 서로 확인하기로 했다.
점거자들은 서진해가 청락을 숨겨 바꿔치기할까 의심했다. 청락 칼집의 흠과 봉인끈 매듭을 유리 너머 그들이 직접 읽고, 밖의 보관 서기가 같은 내용을 적었다. 검을 꺼내지 않고도 현재 위치와 상태를 확인했다. 의심을 모욕으로 받지 않고 검증 절차로 바꿨다.
밤이 되자 눈이 문턱에 쌓였다. 보관소 굴뚝은 문서 보호 때문에 불을 크게 피울 수 없었다. 서진해는 바깥에 천막과 화로를 세워 나온 사람이 조사 전에 쉴 곳을 만들었다. 문을 연 즉시 포위되거나 비난받지 않을 퇴로가 있어야 선택이 실제가 됐다.
점거자 한 명이 뒷창으로 빠져나왔다. 가족이 걱정돼 나왔지만 동료 이름을 말하지 않겠다고 했다. 감독 서리는 그를 즉시 심문하지 않고 따뜻한 곳으로 보냈다. 빠져나온 사람을 배신자로 만들지 않자 안의 다른 이들도 창문 가까이 와 말을 듣기 시작했다.
최문희는 서진해에게 단둘이 들어와 협상하라고 요구했다. 그는 거절했다. 자신이 마지막 제자라는 관계를 이용해 비공개 약속을 하면 다른 당사자가 배제된다. 대신 유족이 고른 협상자, 방계 대표, 외부 서기, 진료 대표가 문 양쪽에서 함께 듣는 방식을 제안했다.
대화는 작은 음식 전달구를 사이에 두고 시작됐다. 최문희는 청락이 공동 물건이면 멸문한 가족의 자리는 어디냐고 물었다. 백도겸은 본산만 피해자가 아니라고 답하려다 말을 멈췄다. 먼저 유족이 검을 붙든 이유를 끝까지 들었다.
최문희의 남동생은 청락을 찾아 나섰다가 죽었다. 검이 돌아왔는데도 자신들은 유리 밖에서만 봐야 하는 현실이 또 빼앗긴 것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소유 요구 뒤에는 상징을 잃은 슬픔이 있었다. 그 감정이 단독 권리를 자동으로 만들지는 않지만 심리에서 다룰 사실이었다.
서진해는 검을 유족 추모일에 공개 입회로 가까이 볼 수 있는 절차를 제안했다. 만지거나 반출하려면 보존 위험을 검토하고, 방계와 다른 피해자도 같은 신청권을 갖게 했다. 최문희는 특별 대우가 없다고 분노했지만, 자신의 동생 이야기가 설명문에 남을 수 있다는 점에는 귀를 기울였다.
새벽녘 강경한 점거자 둘이 청락 유리함을 깨려 했다. 최문희가 몸으로 막다가 손을 베였다. 서진해는 문밖에서 칼로 빗장을 자를 수 있었지만 깨진 유리와 장롱 위치를 알 수 없었다. 그는 검 대신 문 아래로 두꺼운 천과 지혈끈을 밀어 넣었다.
담소령은 음식구를 통해 지혈 방법을 설명했다. 손을 씻을 물과 압박 시간, 위험 신호를 차례로 말했다. 최문희는 통증 속에서도 문을 열지 않았다. 담소령은 치료를 거부하면 강제로 진입하겠다는 협박을 하지 않고, 의식이 흐려질 경우의 긴급 기준만 알렸다.
안쪽 사람들은 다친 최문희를 지키려면 문을 열어야 한다고 결정했다. 요구를 포기해서가 아니라 동료 치료를 먼저 고른 선택이었다. 문 앞 장롱을 옮기는 동안 밖의 사람들은 세 걸음 뒤로 물러났다. 체포 줄이나 승리의 함성을 만들지 않았다.
문이 조금 열리자 담소령과 점거자 지정 동행 한 명만 들어갔다. 서진해는 밖에 남았다. 최문희가 들것에 실려 나온 뒤에도 청락을 향해 뛰지 않았다. 모든 사람 수와 보관물 상태가 외부 서기와 유족 대표에게 확인될 때까지 문턱을 넘지 않았다.
강제 점거 행위는 회당 심리에 넘겨졌다. 다친 사실이나 유족이라는 지위가 책임을 없애지 않았고, 물과 치료를 제공한 일도 면죄 약속이 아니었다. 반대로 점거자 전원을 흉악범처럼 묶지 않고 유리 훼손, 감금 위험, 협상 참여를 개인별로 확인했다.
청락은 점거 뒤에도 다른 곳으로 숨기지 않았다. 보관소 구조를 고쳐 물건 방과 열람·추모 공간을 분리했다. 다시 누군가 머물러도 기록을 인질로 잡지 못하고, 안전하게 나갈 문이 두 개 생겼다. 사람을 막는 강한 문보다 갈등이 갇히지 않는 퇴로가 중요했다.
최문희는 치료를 마친 뒤 자기 요구를 철회하지 않았다. 다만 단식과 점거 방식이 다른 유족에게도 위험을 줬음을 인정했다. 그녀는 공개 심리에서 청락 접근권과 보관권을 다시 다루자고 신청했다. 문을 열었다고 목소리까지 내려놓을 필요는 없었다.
백도겸은 방계 쪽 물 차단 주장을 기록에 남기고 사과했다. 서진해도 자신이 유예를 요청하며 혹시 더 큰 부상이 생길 위험을 감수한 판단을 설명했다. 성공했다는 결과로 과정의 위험을 지우지 않았다. 다음 대치에는 독립 안전 판단자를 두기로 했다.
보관소 새 문이 달린 날 사람들은 서진해에게 청락으로 첫 못을 쳐 달라고 했다. 그는 목수 망치를 건네받아 문틀을 고정했다. 청락은 유리함 안에 그대로 있었다. 검을 뽑지 않아도 문은 열리고 닫혔으며, 그 사실을 유족과 방계가 함께 확인했다.
저녁에 눈이 그치자 두 출구 앞 발자국이 여러 방향으로 흩어졌다. 최문희는 진료소로, 다른 점거자들은 각자 집과 심리 대기소로 갔다. 누구도 한 줄로 끌려가지 않았다. 청락이 베지 못한 문은 사람을 가두는 빗장이 아니라, 검보다 느린 대화와 물 한 그릇이 끝내 열어 낸 퇴로로 남았다. 열린 문턱에는 승패를 적은 현판 대신 물통을 돌려놓을 낮은 선반이 생겼다. 물통은 다음 아침에도 그 자리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