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산의 네 필사본은 서로 다른 보자기에 싸여 삭풍객잔으로 왔다. 동쪽 보관자는 푸른 베, 북쪽은 거친 마포, 강 건너 보관자는 오래된 장례 천을 썼다. 혜산댁의 것은 표지 없이 나무판 사이에 끼워져 있었다. 네 사람은 같은 방에 들어가기 전 각자 봉인 상태부터 읽었다.
백도겸 계보의 문장과 대조할 부분은 남쪽 별원 창설, 백유강의 입문, 멸문 뒤 피난 기록이었다. 필사본 전체를 공개하면 다른 생존자 거처와 환자 이동로까지 드러날 수 있었다. 감정자는 필요한 문장 앞뒤 세 줄만 가림판으로 열었다. 진본 확인도 무제한 열람권이 아니었다.
첫 필사본에는 백유강이 본산에서 파견된 교관이라고 적혀 있었다. 둘째는 별원 공동 설립자, 셋째는 피난 책임자로 썼고 넷째는 이름만 남겼다. 표현이 다른 것이 위조 증거처럼 보였지만 각 문서의 목적이 달랐다. 인사 기록, 재산 기록, 피난 기록은 같은 사람을 다른 역할로 보았다.
혜산댁은 작성 시각을 먹 번짐과 앞뒤 사건으로 정리했다. 네 본문 모두 백도겸 계보보다 먼저 만들어진 것으로 보였고, 벌레 먹은 구멍과 줄바꿈 위치도 계보가 오래된 원본을 베꼈음을 지지했다. 방계 계보가 후대에 전부 꾸며졌을 가능성은 크게 낮아졌다.
백도겸은 감정 종료를 선언하라고 했다. 혜산댁은 문서 진위와 문서에 적힌 주장의 진위를 나눴다. 오래된 종이가 거짓을 담을 수도 있고, 진짜 계보가 선대 행동의 전부를 말해 주지도 않는다. 마지막 피난 장의 출처가 아직 네 필사본과 맞지 않았다.
강 건너 보관자는 자기 필사본 뒤표지에서 얇은 쪽지 하나를 발견했다. 접힌 면에 `백유강, 학영회와 남문 통행 협약`이라고 적혀 있었다. 날짜는 청문 멸문 석 달 뒤였다. 협약 대가로 별원 식솔 열일곱의 통행을 보장받고 본산 은신처 두 곳을 넘긴 내용이었다.
객잔 안이 얼어붙었다. 서진해 지지자는 방계가 청문을 팔았다고 외쳤다. 백도겸은 쪽지가 위조라며 탁자를 쳤다. 혜산댁은 진위를 확인하기 전 어느 쪽 표현도 기록하지 말라고 했다. 새 불리한 문서가 나왔다고 앞선 계보 감정까지 취소되는 것은 아니었다.
쪽지 종이는 계보와 같은 남쪽 닥나무였지만 먹은 학영회 장부에서 쓰던 붉은 모래 먹과 닮았다. 백유강 지장은 계보 끝의 것과 일치했고, 남문 통행표 번호는 회당 압수 장부에 실제로 존재했다. 협약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러나 누가 강요했고 무엇이 실제로 넘어갔는지는 더 봐야 했다.
백도겸은 조부가 사람들을 살리려고 어쩔 수 없이 거래했을 것이라고 했다. 서진해는 그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았다. 동시에 은신처 두 곳의 사람들이 그 거래 때문에 잡혔다면 피해도 사라지지 않는다고 했다. 구조한 열일곱과 위험에 빠뜨린 사람을 한 저울에서 상쇄할 수 없었다.
네 필사본에는 협약 뒤 사건이 다르게 남았다. 동쪽 본은 별원 식솔 열세 명이 통과했다고 했고, 북쪽은 열일곱, 강 건너는 숫자를 쓰지 않았다. 혜산댁 본에는 남문에서 네 명이 되돌아갔다는 짧은 주석이 있었다. 보장받았다는 인원과 실제 살아난 인원이 같지 않았다.
백도겸은 조부의 죄까지 자기가 져야 하느냐고 물었다. 유족 최문희는 선대 피해 덕분에 권리를 요구하면서 선대 잘못은 관계없다고 할 수 있느냐고 맞섰다. 공개 감정 자리는 혈통이 책임과 권리를 어느 범위까지 잇는지 묻는 회의로 바뀌었다.
혜산댁은 감정을 멈추고 휴식 시간을 두었다. 분노한 상태에서 종이를 만지면 해석뿐 아니라 원본도 위험했다. 네 보관자는 각자 문서를 다시 봉하고 열쇠를 바꿔 맡았다. 어느 한 사람이 불리한 쪽지를 없애도 다른 기록의 공백이 드러나게 했다.
담소령은 백도겸이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는 것을 보고 진료를 제안했다. 그는 적에게 약을 받을 수 없다고 거절했다. 담소령은 자신이 어느 편 감정인도 아니며, 치료를 받아도 문서 의견을 바꿀 의무가 없다고 했다. 백도겸은 물만 받고 약은 거절했다.
밤에 누군가 강 건너 필사본을 훔치려 했다. 침입자는 백도겸 지지자의 옷을 입었지만 얼굴은 객잔 사람이 알지 못했다. 윤세하는 붙잡힌 자의 자백을 길에서 받지 않고 외부 감독에게 넘겼다. 한 사람의 옷차림으로 방계 전체가 문서 파괴를 시도했다고 선언하지 않았다.
침입자 품에서는 학영회 옛 인장이 나왔다. 학영회가 다시 살아난 조직이라는 증거가 아니라 시장에서 거래되던 폐인장일 수 있었다. 인장 가장자리의 새 흠집은 최근 사용을 보여 줬지만 배후를 말하지 않았다. 감정자들은 사건과 계보 진위를 따로 두었다.
다음 공개 대조에서 백도겸은 협약 쪽지 원문을 직접 읽었다. 목소리가 `은신처 제공`이라는 말에서 끊겼다. 그는 조부가 영웅이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고 했다. 문서가 진짜라면 자기 삶을 지탱한 전승이 무너진다고 솔직히 말했다.
서진해는 사부의 검에서 새 피를 발견했을 때 자기도 같은 두려움을 느꼈다고 했다. 그래서 사실을 늦추고 혼자 답을 정하려 했던 일이 더 많은 의심을 만들었다. 그는 백도겸에게 조부를 악인이라 부르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확인된 행동과 모르는 동기를 함께 두자고 했다.
남문 통행 생존자 후손 셋이 찾아왔다. 한 집은 백유강 덕에 살았다고 증언했고, 다른 집은 되돌려진 네 명 중 하나의 유족이었다. 셋째는 자기 조상이 어느 쪽인지 공개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공개본에는 두 진술만 이름과 함께, 하나는 존재 여부만 남았다.
협약으로 넘겨진 은신처 두 곳의 피해도 대조됐다. 한곳은 이미 비어 있었지만 다른 곳에서는 여섯 명이 체포됐다. 백유강이 비어 있다고 믿었는지, 알고도 넘겼는지 근거는 없었다. 죄책과 의도를 확정하지 않되 결과 피해는 방계 계보 아래 주석으로 붙었다.
백도겸은 주석을 떼 달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대신 통행으로 살아난 사람들의 숫자도 같은 크기로 적어 달라고 했다. 유족들은 동의했다. 영웅 또는 배신자 한 단어로 조부를 소유하지 않고, 선택이 살린 사람과 해친 사람을 모두 남기는 방식이었다.
최종 감정표는 `계보 진본 가능성 매우 높음`, `백유강의 청문 소속 확인`, `학영회 통행 협약 확인`, `의도 미확정` 네 줄이었다. 백도겸은 정당한 방계 생존자로 인정됐다. 동시에 그 인정은 선대의 불편한 문장을 삭제할 권리를 주지 않았다.
혜산댁은 네 필사본을 한곳에 모으지 않았다. 각 지역으로 돌려보내되 이번 감정의 해시 대신 전통 방식인 문장 첫말·끝말·종이 결 표본을 공유했다. 한 보관소가 타거나 장악돼도 다른 셋이 변경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혜산은 조직의 이름이 아니라 대조하는 약속으로 남았다.
백도겸은 자기 계보 원본도 다섯째 보관본으로 넣자고 제안했다. 혜산댁은 당사자 문서와 독립 필사본을 같은 지위로 섞지 않고, 출처를 표시한 별도 참조본으로 받았다. 참여를 환영하되 검증자와 주장자의 역할을 흐리지 않았다.
감정이 끝난 날 백도겸은 사문패를 목에 걸지 않았다. 계보 보따리와 함께 품에 넣었다. 서진해도 자기 옛 패를 벽에 걸지 않았다. 두 사람은 국상에서 백유강 이야기를 더 하지 않았다. 한 사람의 선대가 진짜라는 사실은 자랑만도 수치만도 아닌, 앞으로 권리를 나눌 때 함께 들고 가야 할 무게가 됐다.
네 필사본이 각자 길을 떠날 때 객잔 종이 네 번 울렸다. 책을 운반하는 사람도 서로 다른 길을 골랐다. 백도겸은 어느 수레가 불리한 쪽지를 싣는지 묻지 않았다. 문서가 진짜이므로 싸움은 쉬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 존재와 조부의 타협을 동시에 인정한 뒤에야 그는 서진해와 같은 탁자에서 다음 질문을 시작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