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보 중간 감정이 진본 쪽으로 기울자 백도겸은 청락을 돌려 달라고 요구했다. 삭풍객잔의 아침 밥상에서 한 말이라 숟가락 소리까지 멎었다. 그는 방계가 멸문 뒤에도 혈통을 지켰으니 검과 잔화심결, 복권된 밭과 창고의 관리권이 자신들에게 돌아와야 한다고 했다.
서진해는 청락이 든 보관함 쪽을 보지 않았다. “무엇을 누구에게서 돌려받는다는 뜻입니까?” 백도겸은 본산이 빼앗아 간 별원의 몫이라고 답했다. 서진해 개인에게서 받는 것이 아니라 원래 사문 질서를 복원하는 일이라는 주장이었다.
유족 최문희는 백도겸 편에 섰다. 마지막 제자 한 사람이 검을 보관하는 것보다 여러 방계가 계보대로 맡는 편이 낫다고 했다. 다른 유족은 별원이 멸문 때 본산을 돕지 않았다는 소문을 들었다며 반대했다. 오래 묻힌 감정이 검 한 자루 위로 모였다.
막금산은 청락 보관함을 다른 방으로 옮기자고 했다. 말싸움이 격해지면 누군가 검을 잡을 수 있었다. 서진해는 몰래 옮기지 않고 유족 대표와 백도겸 앞에서 봉인 상태를 확인한 뒤 세 사람 입회로 옮겼다. 안전 조치가 한쪽의 점유로 보이지 않게 했다.
청락에는 멸문 뒤 새로 묻은 피의 의문이 이미 공개 증언으로 끝나 있었다. 검을 가져온 노인의 정체와 막금산의 지연도 기록돼 있었다. 백도겸은 그 설명을 다시 조사하자고 했다. 서진해는 기존 기록을 열람할 수 있지만 새로운 근거 없이 같은 상처를 비밀로 되돌리지는 않겠다고 했다.
잔화심결 사본은 더 복잡했다. 죽이는 절초가 아니라 피난과 방어에 맞게 바뀐 여섯 갈래 훈련법이 여러 사람에게 나뉘어 있었다. 완전한 비급 한 권은 존재하지 않았다. 백도겸은 서진해가 정통 무공을 변형해 훼손했다고 비난했다.
윤세하는 과거 잔화심결을 무기로 쓰려 했던 요구가 사람을 어떻게 죽였는지 증언했다. 그러나 자신이 사형이니 해석이 옳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백도겸에게도 훈련 기록 열람권을 주되, 위험한 동작을 복원하거나 독점 교본으로 묶는 일은 공개 안전 심리를 거쳐야 한다고 했다.
복권 재산은 밭 여섯 마지기, 무너진 수련장 터, 창고 둘, 회수된 은자와 곡식이었다. 일부는 이미 피해 유족 치료와 피난 호송에 쓰였다. 백도겸은 사전 동의 없이 썼다면 방계 몫을 침해한 것이라 했다. 유족들은 그 재원이 누구의 상속인지 다시 묻게 됐다.
서진해는 모든 물건을 한 묶음으로 다투지 말자고 제안했다. 검의 보관, 무공 지식의 사용, 토지와 곡식의 관리, 청문 이름의 대표권을 각각 다른 탁자에서 심리한다. 계보가 진짜여도 네 권리가 같은 답을 가질 필요는 없었다.
백도겸은 쪼개서 힘을 빼려는 술수라고 의심했다. 혜산댁은 과거 학영회가 검과 장부와 땅을 한 봉인에 묶어, 하나를 쥔 사람이 전부를 지배하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권리를 나누는 일은 방계만 약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서진해의 권한도 줄였다.
첫 회의는 청락의 현재 상태부터 확인했다. 검은 서진해 개인 물품 명부가 아니라 청문 피해 기록물 목록에 있었다. 출전 때 빌리려면 유족 대표와 보관 서기의 입회가 필요했다. 백도겸은 왜 마지막 제자가 자기 검을 빌려 쓰느냐고 놀랐다.
서진해는 청락을 받은 순간부터 소유했다고 믿은 적이 있다고 인정했다. 그 믿음 때문에 검의 피와 노인의 말을 혼자 해석했고 사람들을 위험하게 했다. 복권 뒤에는 검을 증거이자 기억물로 돌렸지만 최종 소유 규칙은 정하지 못했다. 백도겸의 등장이 미뤄 둔 질문을 드러냈다.
두 번째 회의에서 방계 노인들은 잔화심결을 혈통 교육용으로 되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담소령은 훈련 중 다친 사람의 기록을 근거로 위험을 설명하되 환자 이름과 상처 위치는 가렸다. 안전 통계는 공유할 수 있지만 진료 명단이 계보 증명이 되지는 않았다.
백도겸은 자기도 잔화심결 첫 수를 안다며 마당에서 보여 주겠다고 했다. 서진해는 결투나 시연으로 정통성을 가리지 않겠다고 했다. 무공 숙련이 혈통과 문서의 사실을 증명하지 못하고, 더 강한 사람이 청문 이름을 얻는다면 복권은 다시 칼의 판결이 된다.
세 번째 회의에는 밭을 경작하던 농민들이 왔다. 땅이 청문에 복권되기 전부터 세금을 내며 살아 온 사람들이었다. 방계에게 돌려준다는 말이 소작 퇴거로 이어질까 두려워했다. 백도겸은 조상의 땅을 찾는 것뿐이라고 했지만, 조상의 권리가 현재 사람의 지붕과 부딪혔다.
서진해는 자신도 농민을 대표할 수 없다고 했다. 토지 심리에는 현재 경작자와 유족, 방계, 공동 부조 이용자 모두가 참여해야 했다. 복권은 과거 명의를 되살리는 일이면서 그동안 생긴 삶을 지우지 않는 과정이어야 했다. 당장 소유 명의를 바꾸지 않고 사용 현황을 먼저 기록했다.
백도겸 지지자 한 명이 밤에 보관소 자물쇠를 만지다 붙잡혔다. 그는 검을 훔칠 생각이 아니라 진짜 있는지 보려 했다고 했다. 서진해 지지자들은 방계 전체를 내쫓자고 소리쳤다. 백도겸은 그 사람을 감싸지 않고 개인 행동으로 심리받게 했다.
서진해도 자기 편 사람이 백도겸 방 앞에 모욕문을 붙인 사건을 같은 심리표에 올렸다. 어느 편의 잘못도 상대 권리 전체를 없애는 증거로 쓰지 않았다. 두 사람은 지지자 통제에 실패한 책임을 인정하되, 대신 처벌을 지시하는 권한은 회당에 넘겼다.
청락 보관함 앞에서는 매일 공개 봉인 확인이 열렸다. 검을 보여 달라는 호기심 때문에 칼날을 꺼내지 않고 끈과 자물쇠, 열람대장만 확인했다. 백도겸은 세 번째 날부터 자기 사람에게도 보관소를 흔들지 말라고 했다. 칼을 쥐지 않아도 실재와 안전을 검증할 수 있음을 배웠다.
최문희는 서진해에게 백도겸이 진짜면 검을 놓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진짜인지와 상관없이 검이 자기 것이어야 할 이유를 심리받겠다고 답했다. 내려놓는 모습을 영웅적 양보로 칭송하지 말아 달라고도 했다. 원래 공동 권리였다면 돌려주는 일이 선행은 아니었다.
백도겸은 자신이 검을 받으면 별원 제단에 모시고 후손에게 전하겠다고 했다. 유족 하나가 후손이 또 나타나지 않으면 누가 결정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답하지 못했다. 혈통은 연결을 설명할 수 있어도 미래의 공백과 갈등을 자동으로 관리하지 않았다.
회의 끝에 임시 원칙 네 줄이 합의됐다. 감정 종료 전 소유 변경 없음, 청락 반출 중지, 훈련법은 안전 교육만 지속, 복권 재산은 기존 치료·호송을 멈추지 않음. 어느 쪽도 승리하지 않았고 필요한 일도 멈추지 않았다. 임시라는 날짜가 큰 글씨로 붙었다.
백도겸은 국상에서 서진해 맞은편에 앉았다. “검을 내놓지 않으려고 시간을 버는 줄 알았소.” 서진해는 “내놓는 것으로 끝낼 수 없어서 시간을 쓰는 겁니다”라고 답했다. 백도겸은 그 말이 핑계인지 책임인지 아직 판단하지 못했다.
담소령은 두 사람 앞에 같은 크기 그릇을 놓았다. 청문의 본산과 별원을 구분하는 색도 없었다. 백도겸은 처음으로 국값을 스스로 냈고, 서진해는 공동 부조 장부에 자기 몫을 따로 적었다. 사문 관계가 일상의 비용을 대신하지 않았다.
밤이 되자 청락 없는 보관함 방은 조용했다. 검은 유족 입회실 안쪽으로 옮겨져 있었고, 서진해의 허리도 백도겸의 손도 비어 있었다. 검을 돌려 달라는 요구는 거절되거나 받아들여진 채 끝나지 않았다. 누가 검을 가질지보다, 왜 가져야 하는지를 여러 사람이 묻는 동안 청락은 처음으로 양쪽 모두의 권위에서 같은 거리를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