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풍객잔 문턱에 선 사내는 자신을 청문의 마지막 제자라고 소개했다. 방 안에서 국을 먹던 사람들이 동시에 서진해를 돌아봤다. 마지막이라는 말은 오랫동안 그의 상처이자 책임이었고, 이제는 객잔 기록판에조차 쓰지 않는 호칭이었다. 사내는 먼지 묻은 보따리와 검은 사문패를 탁자에 내려놓았다.
“백도겸이오. 청문 남쪽 별원의 제자였던 백유강의 손자요.” 그는 족보 두루마리를 펼치려 했다. 서진해는 막지 않았지만 손부터 대지도 않았다. 새 문서가 나타났다는 이유로 사기라 외치거나, 청문이라는 두 글자만으로 친족처럼 맞을 생각은 없었다.
백도겸의 사문패에는 구름 아래 떨어지는 잔화 세 점이 새겨져 있었다. 서진해가 지닌 옛 패와 모양은 닮았지만 나무결과 모서리 홈이 달랐다. 윤세하는 멀리서 패를 보자 남쪽 별원에서 쓰던 문양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자기 기억을 확정이 아니라 첫 진술로 적어 달라고 덧붙였다.
객잔 사람들은 백도겸을 둘러쌌다. 누군가는 멸문 때 어디 있었느냐고, 누군가는 왜 복권이 끝난 뒤에야 나타났느냐고 따졌다. 백도겸은 외조부가 이름을 숨기라고 했고 최근에야 계보함을 열었다고 답했다. 설명은 가능했지만 편리하게 들렸다.
서진해는 질문을 잠시 멈추게 했다. “오늘 여기서 진짜와 가짜를 정하지 않겠습니다. 패와 계보가 누구 손을 거쳤는지부터 보겠습니다.” 백도겸은 마지막 제자인 자신을 의심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진해는 그 호칭부터 감정 대상이라고 말했다.
담소령은 두루마리 주변에 물그릇을 치웠다. 종이에 약재 냄새가 배어 있었지만 코를 가까이 대지 않고 얇은 천 위에 펼치자고 했다. 손상된 기록을 보존하는 일과 내용을 믿는 일은 별개였다. 백도겸은 자기 문서를 빼앗는 줄 알고 손을 얹었다가 천을 직접 펴는 조건으로 동의했다.
계보에는 청문 본산과 남쪽 별원의 사제 관계가 열세 대까지 이어졌다. 마지막 장에는 멸문 직전 백유강이 별원 사람 스물셋을 데리고 피신했다는 글이 있었다. 서진해가 알던 공식 명부에는 별원 이름이 셋뿐이었다. 기록 누락인지 후대의 부풀림인지 확인해야 했다.
막금산은 객잔 금고에 있는 옛 출입 장부를 가져오려다가 멈췄다. 과거처럼 자기가 자료를 고르고 보여 주면 감정 방향을 통제하게 된다. 그는 장부 보관함 열쇠를 당사자 대표와 회당 서기에게 넘겨 함께 꺼내게 했다. 자신은 발견 경위만 설명했다.
출입 장부에는 백유강이라는 이름이 두 번 있었다. 멸문 여섯 해 전 약재를 사고, 두 해 전에는 곡식을 빌렸다. 필체와 지장이 계보 끝의 것과 비슷했다. 백도겸이 완전히 꾸며 낸 이름은 아닐 가능성이 커졌다. 방 안의 경계가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유족 최문희는 백도겸의 손을 잡으려 했다. 자기 어머니가 남쪽 별원 출신이라며 같은 피일 수 있다고 했다. 백도겸은 그 손을 피하지 않았지만 곧 계보를 가리켰다. “그러니 청문 이름과 물건을 우리에게 돌려야 합니다.” 반가움과 권리 요구가 같은 숨에 나왔다.
서진해는 그 말을 기록하게 했다. 혈연 가능성을 확인하는 일과 청문 재산의 귀속은 따로 심리해야 했다. 백도겸이 진짜 생존자여도 모든 검과 땅을 받는다는 결론은 자동으로 생기지 않는다. 반대로 재산 요구가 있다는 이유로 그의 출신까지 거짓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공개 감정인은 혜산댁과 지역 기록 보관자 둘, 종이 장인 하나로 정했다. 서진해와 윤세하는 청문 당사자이므로 최종 감정표를 받지 않았다. 백도겸도 자기 감정인을 한 명 추천할 수 있었다. 그는 처음에는 자기 문서인데 남들이 판정하느냐고 반발했다.
혜산댁은 혜산이 사람 이름이 아니라 보관 책임을 이어 쓰는 전승명임을 설명했다. 감정자 한 명이 사라져도 다른 필사본과 대조할 수 있고, 틀린 판단도 기록으로 남는 구조였다. 백도겸은 비밀 고수가 나올 줄 알았던 표정으로 그녀를 보다가, 평범한 중년 여인의 잉크 묻은 손을 오래 바라봤다.
첫 검사는 종이 섬유였다. 계보 앞장은 남쪽 닥나무, 중간은 북방 삼베, 마지막은 근래 황주 종이가 섞여 있었다. 여러 시대에 이어 쓴 문서라면 자연스러울 수 있었다. 한 장의 재료 차이를 위조 증거로 단정하지 않고 각 장의 추정 시기를 적었다.
먹에는 쑥재와 소나무 그을음이 번갈아 쓰였다. 종이 장인은 별원 주변에서 쑥재 먹을 많이 썼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그 제조법은 시장에도 알려져 있었다. 백도겸은 모든 단서가 왜 확정이 되지 않느냐고 답답해했다. 혜산댁은 진짜 문서는 단서가 겹쳐지는 것이지 한 번에 빛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사문패 뒷면에는 작은 약초 칼집이 있었다. 담소령은 어머니 약첩에서 같은 모양을 본 기억이 났지만 약첩을 곧바로 가져오지 않았다. 환자 이름과 치료 내용이 섞인 기록이었다. 필요한 문양만 당사자 동의와 가림 절차를 거쳐 비교하기로 했다. 계보 감정이 진료 비밀을 여는 열쇠가 되지 않았다.
백도겸은 객잔에서 머물 방을 요청했다. 일부 유족은 그가 문서를 바꿔치기할까 걱정했다. 객잔은 그를 죄수처럼 가두지 않고 일반 손님 방을 내줬고, 원본은 백도겸과 감정 대표가 함께 봉했다. 사본 한 벌을 그에게 돌려줘 자기 자료에서 배제되지 않게 했다.
밤에 누군가 백도겸 방 문에 `가짜 후손`이라 쓴 종이를 붙였다. 윤세하는 떼어 버리려다 발견 위치를 기록하고 외부 서기를 불렀다. 백도겸은 서진해가 시켰다고 의심했다. 서진해는 모욕을 부정하면서도 자기 지지자들이 한 일일 가능성을 숨기지 않았다.
다음 날 공개 자리에서 서진해는 자기를 마지막 제자라 부르는 현판이 남아 있는지 모두 확인해 달라고 했다. 객잔 창고 뒤 작은 기념패 하나가 발견됐다. 막금산이 복권 직후 손님들이 세운 것을 그냥 둔 것이었다. 서진해는 패를 부수지 않고 감정 탁자 옆에 놓았다. 자기 정통성도 같은 질문을 받아야 했다.
백도겸은 처음으로 서진해에게 왜 청락을 차고 있지 않느냐고 물었다. 검은 객잔 보관함에 있었고 서진해는 호송 때도 필요를 검토해 빌렸다. 그는 검을 몸에서 멀리 두는 것이 청문을 버린 뜻이 아니라고 했다. 백도겸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조롱하지도 않았다.
감정 사흘째, 계보 중간에서 실제 벌레 먹은 구멍이 네 필사본의 같은 문장과 이어졌다. 후대 위조자가 알기 어려운 결손 순서였다. 혜산댁은 문서가 상당 부분 진본일 가능성이 높다고 중간 의견을 냈다. 유족들이 백도겸을 환영하려 하자 그녀는 마지막 장의 전승 경로가 아직 비어 있다고 막았다.
백도겸은 왜 좋은 결과를 말하지 못하게 하느냐고 따졌다. 서진해는 자기도 생존자로 인정받을 때 한 줄 증언이 다른 사람의 죄를 덮는 데 쓰이는 것을 봤다고 답했다. 환영을 미루는 일이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며, 확인된 부분은 이미 공개판에 붙었다.
백도겸은 밤상에서 처음 국 한 그릇을 비웠다. 막금산이 돈을 받자 그는 청문 후손에게도 값을 받느냐고 물었다. 막금산은 혈통에 따라 밥값을 달리하면 객잔이 다시 문파 식당이 된다고 했다. 다만 길에서 굶었다면 공동 부조로 누구든 먼저 먹을 수 있었다.
공개 감정 일정표에는 백도겸의 이름과 서진해의 이름이 같은 크기로 적혔다. 어느 쪽에도 마지막이라는 말은 붙지 않았다. 사문패 두 개는 서로 닿지 않게 놓였고, 각자의 발견 경로가 옆에 쓰였다. 진실은 누가 먼저 칼을 들었는지가 아니라 여러 손을 지나도 같은 흔적이 남는지로 다가오고 있었다.
해 질 무렵 백도겸은 객잔 문을 나서지 않았다. 그는 계보 사본을 품고 감정 탁자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서진해도 주인 자리에 서지 않고 유족들 사이 빈 의자를 골랐다. 청문의 두 번째 마지막 제자가 온 날, 두 사람은 마지막 자리를 놓고 싸우는 대신 그 자리가 애초에 한 사람 몫인지부터 묻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