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도겸이 진짜 방계 생존자로 인정되자 삭풍객잔에는 축하보다 더 많은 싸움이 생겼다. 전날까지 그를 내쫓자던 사람은 사과 대신 조용히 사라졌고, 지지자들은 즉시 청문 대표 자리를 내놓으라고 서진해를 몰아붙였다. 거짓이면 끊어 버릴 수 있었던 요구가 진짜 계보 위에 서자 훨씬 무거워졌다.
백도겸은 감정표를 들고 본산 후손 대표를 자처했다. 자기 선대가 학영회와 타협한 사실도 인정했으니 더는 숨길 것이 없다고 했다. 진실을 감당한 사람이 권리를 맡을 자격이 있다는 논리였다. 유족 일부는 서진해보다 떳떳하다고 박수를 쳤다.
서진해는 대표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는 말을 바로 하지 않았다. 물러나는 동작 하나로 모든 문제가 백도겸에게 넘어가면 책임을 피하는 일이 될 수 있었다. 그는 청문 이름 아래 현재 누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목록부터 펼쳤다. 기록, 진료, 피난 호송, 공동 부조, 토지 관리가 서로 다른 사람 손에 있었다.
“이것을 한 의자에 다시 모을 이유가 있습니까?” 서진해가 물었다. 백도겸은 문파에는 중심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중심이 없으면 외부가 청문을 업신여기고 책임질 사람도 사라진다는 걱정이었다. 과거의 상처에서 나온 말이라 단순한 권력욕으로 밀어낼 수 없었다.
당사자 회의는 객잔 큰방이 아니라 마당 네 탁자에서 열렸다. 계보·이름, 기록, 생활 재산, 검과 훈련을 따로 놓았다. 참가자는 방계 후손, 본산 유족, 현재 경작자, 진료 이용자, 호송 노동자였다. 어느 탁자도 서진해나 백도겸이 단독 진행하지 않았다.
계보 탁자에서 백도겸은 청문 역사 교육에 방계 이야기를 넣을 권리를 요구했다. 유족들은 동의하되 백유강 협약 피해도 함께 가르치자고 했다. 백도겸은 처음에는 선대 비난이 반복될까 걱정했다. 그러나 생존과 타협을 함께 쓰는 조건으로 방계 이야기 담당자 자리를 받아들였다.
청문 이름의 사용 규칙도 논의됐다. 누구나 기록·진료·호송 활동을 할 때 청명한 문이라는 뜻으로 쓸 수 있지만 혈통 우월이나 상품 장사를 위해 사용하지 못한다. 방계 행사에 `정통 청문` 현판을 거는 안은 부결됐다. 본산 쪽 `유일 계승` 문구도 함께 내려갔다.
기록 탁자에서는 혜산 필사망의 독립성이 우선됐다. 백도겸은 계보 원본 제공자로 열람 설명을 받을 수 있지만 다른 생존자 문서를 검열할 권리는 없었다. 서진해도 같은 제한을 받았다. 마지막 제자라는 경험은 증언 자격을 주되 보관함 열쇠를 자동으로 주지 않았다.
생활 재산 탁자에서는 논쟁이 가장 거칠었다. 방계 가족들은 조상의 밭 일부를 되찾아 정착할 곳이 필요했다. 현재 경작자들은 쫓겨날 수 없다고 했다. 공동 부조 이용자들은 치료와 겨울 곡식이 끊길까 불안해했다. 하나의 복권 재산이 세 무리의 오늘과 닿았다.
회의는 토지를 소유 명의와 사용권, 수익 배분으로 나눴다. 현재 경작자는 장기 사용권을 유지하고 수익 일부는 유족·방계 정착과 공동 부조에 공개 비율로 나눴다. 방계 중 실제 거처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비어 있는 수련장 터를 먼저 제공했다. 조상 명의가 현재 사람의 퇴거 명령이 되지 않았다.
백도겸 지지자는 그가 너무 많이 양보한다고 비난했다. 진짜 후손이라 인정받고도 남는 것이 이야기 담당과 빈 터뿐이냐고 했다. 백도겸은 감정 전이라면 같은 말을 했을 자신을 떠올렸다. 그러나 문서 속 조부가 사람을 살리고 해친 일을 함께 보자 권리는 깨끗한 상속물처럼 보이지 않았다.
검과 훈련 탁자에서 서진해는 청락을 공동 보관하자는 의견을 냈다. 백도겸은 최소한 방계 열쇠 하나를 요구했다. 유족 대표는 본산과 방계가 하나씩 가지면 둘이 합쳐 다른 당사자를 배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열쇠는 혈통 대표, 피해자 대표, 외부 보관자 셋으로 나누고 둘만으로는 열지 못하게 했다.
서진해는 자기 열쇠가 없다는 사실에 잠시 놀랐다. 제안한 공동 보관을 마음으로는 여전히 자신이 감독할 거라 생각했던 셈이었다. 그는 그 모순을 회의에서 인정했다. 청락을 내려놓는다고 말하면서 마지막 확인권을 쥐려 했다는 자백에 박수도 비난도 나오지 않았다.
잔화심결 교육은 혈통 교습과 공공 안전 훈련으로 분리했다. 방계는 역사와 기본 호흡을 전할 수 있으나 위험한 동작을 독점 시험으로 만들지 못했다. 공공 호송 훈련은 문파 밖 사람도 배웠고 칼 없이 참여할 수 있었다. 무공을 모르면 청문 사람이 아니라는 기준을 없앴다.
담소령은 진료 탁자에서 자기 약첩을 청문 재산 목록에서 빼 달라고 했다. 어머니가 남긴 치료 지식은 교육용으로 나눌 수 있지만 환자 이름과 구체 병력은 문파 계보에 속하지 않았다. 백도겸은 혈통 질병을 확인하는 데 필요하다고 했지만, 당사자 동의 없는 명단 열람은 거절됐다.
방계 노인은 청문 후손에게만 나타나는 기맥 질환이 있다며 예외를 요구했다. 담소령은 익명 증상 통계와 자발적 진료 안내는 제공하겠다고 했다. 질환을 예방한다는 목적이 개인 병력을 혈통 조사표로 바꾸지는 못했다. 백도겸은 불만을 품으면서도 다른 자료 경로를 받아들였다.
회의 이튿날 방계 청년 둘이 독자 수련회를 열었다. `진짜 청문 후손만` 입장할 수 있다는 표를 걸었다. 백도겸은 처음에는 가족 모임일 뿐이라고 했다. 그러나 청문 이름 사용 규칙에 혈통 우월 표방 금지가 적힌 것을 보고 현판을 내리게 했다. 자기 편에 규칙을 적용하는 첫 선택이었다.
서진해 쪽 청년도 맞은편에 `본산 생존자 수련` 현판을 세웠다. 서진해 역시 떼게 했다. 두 현판은 증거처럼 보관하지 않고 글자를 지워 공동 대피 훈련 안내판으로 다시 썼다. 누가 먼저 잘못했는지 겨루는 대신 같은 제한을 양쪽에 적용했다.
백도겸은 회의 중 학영회 협약 유족에게 직접 사과하고 싶다고 했다. 유족은 만남을 거부했다. 그는 사과문을 공개 벽에 붙이려 했지만, 그 행동이 유족을 용서하지 않는 사람으로 드러낼 수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문서는 비공개 전달함에 넣고 수신 여부를 재촉하지 않았다.
정당한 생존자로 인정된 날부터 백도겸은 더 많은 거절을 경험했다. 그것은 인정이 취소돼서가 아니라 다른 당사자의 권리도 함께 살아났기 때문이었다. 그는 진짜라면 문이 열릴 줄 알았지만, 진짜이므로 여러 문 앞에서 각각 허락을 구해야 했다.
서진해는 자기 호칭을 `마지막 제자`에서 `호송인`으로 바꾸자는 안을 냈다. 회의는 과거 기록에서 호칭을 지우지 않고 현재 운영 명단에서만 바꾸기로 했다. 상처의 역사를 삭제할 필요는 없지만 현재 권한의 근거로 계속 쓸 이유도 없었다.
당사자 회의 결론은 한 장의 화려한 헌장이 아니라 탁자별 네 문서였다. 백도겸은 계보 발언권과 방계 정착 참여권을 얻었고, 서진해는 호송과 증언 역할을 유지했다. 어느 쪽도 청락·기록·토지·진료를 한꺼번에 소유하지 못했다. 책임도 네 갈래로 나뉘었다.
최문희는 결과가 너무 복잡하다고 투덜댔다. 막금산은 복잡한 삶을 한 사람 이름 아래 묶어 쉬워 보이게 했던 대가를 이미 치렀다고 말했다. 문서 읽기 탁자는 매주 결정을 쉬운 말로 설명하기로 했다. 복잡함을 핑계로 다시 대표 한 명에게 넘기지 않았다.
백도겸과 서진해는 마지막으로 서로의 사문패를 바라봤다. 두 패가 진짜여도 한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더 마지막일 수는 없었다. 백도겸은 자기 패를 품에 넣었고, 서진해는 자기 패를 증거 탁자에 남겼다. 선택은 달랐지만 어느 쪽도 상대의 패를 빼앗지 않았다.
저녁 국상에는 네 탁자 대표들이 섞여 앉았다. 백도겸은 자기 이름 옆 `방계 이야기 담당`이라는 새 역할을 소리 내어 읽었다. 권력을 덜 얻은 패배가 아니라 실제로 할 일이 생긴 자리였다. 서진해는 맞은편에서 빈 허리를 만졌다. 진짜이므로 어려워진 싸움은 상대를 쓰러뜨리지 않고도 두 사람의 몫을 더 정확히 나누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