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잔보감 후반부는 청동 그릇 안에 있지 않았다. 문유백의 선발대를 붙잡은 다음 날, 주명한은 폐염창고 바닥에 남겨 둔 죽간을 가져왔다. 소금더미 가장 깊은 곳의 한 묶음에서 얇은 동판 세 장이 나왔다. 열을 받으면 글자가 떠오르는 봉인 안료가 발라져 있었다.
두 번째 봉인을 맞추면 동판의 글을 온전히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맞추는 순간 누군가 그 과정을 기억하게 된다. 한소령은 마루에 모인 사람들에게 먼저 물었다. 읽지 않고 없앨 것인지, 위험 부분과 증거 부분을 가려낼 만큼만 확인할 것인지. 누구도 혼자 결정하지 않았다.
담여화가 동판 가장자리의 성분을 살폈다. 막리연은 오방맹 거래 장계와 항목을 대조했다. 주명한과 임계산은 운송 날짜를 확인했고, 윤채는 자신이 들었던 도현진의 경고를 적었다. 팽노는 다섯 사람의 말을 종이 한 장에 나란히 기록했다.
"전부 태우면 가장 쉽다."
팽노가 말했다. "하지만 쉬운 것이 옳다는 뜻은 아니지. 사람 이름까지 태우면 문유백이 바라던 것과 같아진다."
동판 첫 장에는 수명을 내공으로 바꾸는 호흡 순서가 있었다. 두 번째에는 일곱째 식 이후 경맥 역류를 억지로 밀어붙이는 혈도와 약재가 적혀 있었다. 세 번째에는 실험 대상과 운송 보관자, 지급 상단, 승인자의 표식이 섞여 있었다. 위험 지침과 피해 증거가 한 판에 새겨져 있어 함부로 부술 수 없게 만든 구조였다.
한소령은 자기 등에 새겨진 길과 닮은 선을 보았다. 시선을 오래 두지 않았다. 첫 여섯 식 뒤에 이어지는 선을 따라가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앎 자체가 유혹이 될 수 있었다. 그는 한 걸음 물러서 윤채에게 말했다. "사형, 위험한 구결은 소리 내어 읽지 마십시오."
윤채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이라면 자신이 외워 두겠다 했을 사람이었다. 오늘은 눈을 가늘게 뜨고 이름과 날짜만 골라 종이에 옮겼다. 막리연이 원장 항목과 맞는지 대조했고, 담여화가 혈도나 약재 이름이 섞이면 먹으로 덮었다. 두 사람이 읽고 한 사람이 가리는 동안 누구도 완전한 문장을 보지 못했다.
보관자들의 실제 이름이 하나씩 나왔다. 주명한, 임계산, 주명오의 형 주명석. 그 밖에 이미 죽은 스물세 사람. 번호만 남았던 이들에게 고향과 가족, 마지막 운송지가 붙었다. 주명한은 죽은 동료의 이름을 읽을 때마다 손가락으로 바닥을 한 번 눌렀다.
"삼십칠호가 아니었소. 내 이름은 주명한이오."
팽노가 그 말을 첫 장 맨 위에 적었다. 임계산도 자기 이름을 말했다. 돈을 받고 기록을 팔려 했던 사실까지 함께 적어 달라고 했다. 굶주림을 숨기면 문유백의 호적 미끼가 왜 통했는지 남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해가 중천에 올랐을 때 피해자·거래 기록의 필사가 끝났다. 원본과 대조한 사본은 다섯 벌이었다. 하나는 파서진 현청, 하나는 남쪽 보관자 집, 하나는 오방맹 공개 심문, 하나는 담여화의 약재상 지하, 마지막은 취선객잔의 솥 아래가 아니라 손님들이 보는 선반에 둘 예정이었다. 숨기는 보관에서 서로 확인하는 보관으로 바꾸는 일이었다.
각 사본의 마지막 장에는 대조한 사람 둘과 읽지 못한 글자 수를 적었다. 흐린 글자를 억지로 짐작해 채우지 않았고, 빈 곳은 빈 네모로 남겼다. 주명오는 다섯 벌의 종이 결이 서로 다르다는 점도 기록했다. 누군가 한 벌을 통째로 바꿔치기하면 빛에 비친 섬유만 보고도 알아볼 수 있었다. 막리연은 이 절차를 번거롭다고 말하지 않았다. 한때 상급자의 도장 하나로 보고를 접었던 사람이었기에, 여러 손을 거치는 불편이 왜 필요한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한소령의 등은 대조 대상에서 제외했다. 윤채가 기억하는 검로와 동판을 맞춰 보자는 의견이 잠깐 나왔지만 한소령이 거절했고, 다른 사람들은 그 거절을 기록에 남겼다. `당사자가 신체 확인을 허락하지 않았으며 피해·거래 사실의 증명에는 필요하지 않음.` 담여화가 그 문장 아래 가장 먼저 손도장을 찍었다. 몸은 열쇠가 아니라는 선언이 실제 절차가 되는 순간이었다.
이제 위험 지침을 처리할 차례였다. 팽노는 뒷마당에 작은 화로를 놓았고 담여화는 물독과 젖은 모래를 준비했다. 불이 번지지 않도록 지붕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막리연은 폐기할 부분의 위치를 기록한 표를 만들되 내용을 적지 않았다. `첫 장 위쪽 열두 줄`, `둘째 장 전부`, `셋째 장 혈도 표시 일곱 곳`처럼 범위만 남겼다.
두 봉인은 끝내 맞추지 않았다. 담여화가 서로 다른 약상자에서 꺼내 동판 양쪽에 따로 대자 숨은 글자의 위치만 희미하게 드러났다. 한소령은 눈을 감고 있었다. 윤채가 범위를 확인했고 주명한이 집게로 동판을 들었다.
"마지막으로 묻겠다."
막리연이 말했다. "이 지침을 남겨 봉인할 것인가, 다시 읽을 수 없도록 할 것인가."
한소령은 눈을 뜨지 않은 채 답했다. "없앱니다. 힘을 입증할 증거는 필요 없습니다. 피해를 입증할 기록은 이미 나누었습니다."
주명한이 동판을 화로 위에 놓았다. 담여화가 준비한 식초와 소금물을 위험 지침 부분에만 부었다. 뜨거워진 금속에서 검은 연기가 얇게 올라왔고 글자들이 번져 서로 엉겼다. 윤채는 칼끝으로 혈도 선을 가로질러 긁었다. 팽노는 여섯 점 바깥의 일곱 번째 홈을 망치로 눌러 펴 버렸다.
한소령은 마지막에 집게를 잡았다. 동판 둘째 장을 뒤집어 화로 깊숙이 넣었다. 불길이 아니라 산과 열이 글자를 먹었다. 수명을 바꾸는 호흡 순서가 검은 얼룩으로 무너졌다. 그는 그 과정을 지켜보되 외우려 하지 않았다.
"검결을 버리는 거냐?"
윤채의 질문에 한소령은 고개를 저었다. "첫 여섯 식은 사람을 지키는 데 씁니다. 버리는 것은 사람을 태워 힘으로 바꾸는 길입니다. 청명잔영검과 천잔보감을 같은 것으로 부르지 않을 겁니다."
폐기가 끝난 뒤 동판은 세 조각으로 잘라 각기 다른 보관자가 맡았다. 글자는 읽을 수 없었지만 한때 위험 지침이 존재했고 정해진 절차로 폐기했다는 물증은 남았다. 폐기 입회서에는 팽노, 담여화, 막리연, 윤채, 주명한, 임계산, 한소령이 모두 서명했다.
화로의 재도 그냥 버리지 않았다. 담여화가 젖은 모래와 섞어 굳혔고 주명한이 세 덩이로 나눴다. 다시 글자를 건질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되 누가 몰래 완전한 동판을 빼돌렸다는 의심은 남지 않게 하려는 조치였다. 세 덩이의 무게를 재고 봉함한 다음 폐기표에 수치를 적었다. 힘을 버리는 일도 말 한마디로 끝내지 않고 확인 가능한 흔적을 남겨야 했다.
저녁에는 사본 첫 장을 객잔 벽에 붙였다. 손님들이 읽을 수 있는 것은 구결이 아니라 이름이었다. 번호 옆에 실제 이름, 살아 있는지, 가족을 찾았는지, 마지막으로 본 장소가 적혀 있었다. 주명오는 형 주명석의 이름 아래 `소금강 북쪽에서 사망, 증언 둘`이라고 썼다. 손이 떨렸지만 글자는 지우지 않았다.
한소령은 도현진의 이름도 적었다. `봉쇄 설계와 보관자 탈출에 가담. 제자의 몸에 동의 없이 검결을 새김.` 선의와 잘못을 한 줄 안에 함께 두었다. 팽노는 그 문장을 오래 보았지만 고치지 않았다.
문밖에서 북소리가 들린 것은 그때였다. 파서진 현청의 아전 둘이 오방맹의 소장을 들고 왔다. 봉함에는 문유백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 내용은 천잔보감이라는 맹의 중요 증거를 한소령 일당이 고의로 없앴으니 공개 심문에 출석하라는 것이었다.
막리연이 소장을 읽고 헛웃음을 흘렸다. "예상보다 빠르네."
한소령은 벽의 이름들과 폐기 입회서를 번갈아 보았다. 증거를 없앴다는 말은 절반만 맞았다. 위험한 힘의 사용법은 없앴다. 하지만 사람들이 없었다고 만들 수 없도록 이름과 거래 기록은 더 많이 남겼다. 그 차이를 강호 앞에서 말해야 했다.
"갑시다."
그는 소장을 접어 원본 함이 아닌 자신의 품에 넣었다. 이번에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숨는 것으로 끝낼 수 없었다. 닫힌 것은 검결의 위험한 길이었고, 열린 것은 번호 뒤에 있던 이름들이었다. 그 이름들이 다시 닫히지 않게 하는 싸움이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