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채는 정문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새벽 장사를 앞두고 한소령이 우물에서 물을 긷는데, 지붕 위 기와가 한 장 미세하게 울렸다. 검을 잡기도 전에 검은 도복 자락이 마당으로 내려앉았다. 윤채는 빈손을 보인 채 서 있었지만 오른쪽 소매가 부자연스럽게 무거웠다.
"사형."
윤채의 눈썹이 아주 조금 떨렸다. 광장에서 그 이름을 거부했던 사람은 이번에는 부르지 말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객잔 창문들을 훑었다. 마루에는 보관자 둘이 번갈아 자고 있었고, 부엌에는 팽노가 불을 지피고 있었다.
"사람이 많아졌구나."
"이름을 찾으러 온 사람들이오. 사형은 무엇을 찾으러 왔습니까."
윤채는 대답 대신 소매 안에서 천 꾸러미를 꺼냈다. 바닥에 놓자 금속이 돌에 닿는 소리가 났다. 한소령은 손을 뻗지 않았다. 팽노와 막리연, 담여화가 마당으로 나올 때까지 그대로 두었다.
천 안에는 검은 쇳조각이 있었다. 팽노가 국그릇에 넣어 둔 조각과 모양이 반대였다. 초승달의 잘린 면이 서로 맞물리도록 생겼고, 작은 점 여섯 개 바깥에 일곱 번째 홈이 깊게 파여 있었다. 두 번째 봉인이었다.
막리연이 벽에 기대며 물었다. "어디서 났지?"
"청명문이 불타던 날 내가 가져왔다."
윤채의 대답은 짧았다. 팽노의 손이 식도 자루로 갔고 주명한이 방문 안에서 몸을 일으켰다. 한소령은 아무도 먼저 칼을 뽑지 못하게 두 사람 사이에 섰다.
"처음부터 말하십시오."
윤채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멸문 사흘 전 도현진은 수제자인 그에게 봉인 절반을 맡겼다. 후반부를 열지 말고 남쪽 보관자에게 전하라는 명령이었다. 하지만 윤채는 떠나지 않았다. 천잔보감을 완성하면 오방맹도 혈사문도 꺾고 청명문을 지킬 수 있다고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그는 봉인을 숨긴 길도 빠짐없이 말했다. 처음 석 달은 청명산 북벽의 무덤 돌 밑에 묻었고, 장마가 온 뒤에는 빈 검집 안쪽에 넣어 등에 지고 다녔다. 설리항 곁에 들어간 뒤에는 오방맹 연무장 우물의 마른 벽돌 틈으로 옮겼다. 누구에게도 맡기지 않은 것이 신중함이라고 여겼지만, 실은 언제든 자기가 다시 꺼낼 수 있는 거리를 지킨 셈이었다. 윤채는 은닉 장소와 이동 날짜를 막리연의 종이에 모두 적었다. 각 장소에서 봉인을 보았던 마부와 수문인의 이름도 기억나는 만큼 덧붙였다.
"사부님께 봉인을 달라고 했다. 내게 힘이 있으면 누구도 문을 넘지 못한다고. 사부님은 거절하셨다. 그래서 불이 난 밤, 혼란을 틈타 내가 가져갔다."
"그리고 설리항에게 갔습니까."
"곧장 간 것은 아니다."
윤채는 그 말이 변명처럼 들렸는지 입을 다물었다가 다시 이었다. 봉인을 혼자 열 수 없다는 사실을 안 뒤 그는 설리항과 거래했다. 청명문 생존자를 찾고 명예를 돌려주면 자신이 봉인을 넘기겠다고 했다. 설리항은 약속하는 척하며 윤채를 곁에 두었고, 그가 죄책감과 욕망 사이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동안 멸문 책임을 청명문에 돌리는 재판을 준비했다.
"광장에 선 것도 거래였습니까."
"처음에는 그랬다. 네가 사형이라 부르기 전까지는."
한소령은 그 말을 위로로 받지 않았다. 이름 한 번이 사람의 모든 선택을 바꿨다는 식의 이야기는 쉬웠다. 윤채는 이미 여러 번 돌아설 기회가 있었고 그때마다 침묵했다.
"제가 불렀기 때문에 멈춘 것이면, 제가 부르지 않았을 때 한 일도 제 책임이 됩니까?"
윤채의 얼굴이 굳었다. "아니다. 내 책임이다."
"그럼 그 말부터 기록하십시오."
막리연이 종이와 붓을 내왔다. 윤채는 마당 평상에 앉아 자신이 봉인을 가져간 시각, 설리항과 만난 장소, 건넨 조건, 오방맹 재판에서 하려 했던 증언을 적었다. 글씨는 청명문 시절과 다르지 않게 반듯했다. 한소령은 그 반듯함이 오히려 아팠다. 사형의 손을 알아볼 수 있다는 사실과 그 손이 거짓 증언을 준비했다는 사실은 함께 있었다.
담여화가 두 번째 봉인을 집게로 들어 살폈다. 홈 사이에 검붉은 가루가 끼어 있었다. "피가 아니야. 주사와 철가루를 섞은 봉인 안료야. 열을 받으면 홈이 드러나는 방식 같은데."
윤채가 고개를 끄덕였다. 설리항은 여러 번 불에 달구라고 했지만 윤채가 거부했다고 했다. 그것이 그가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거부였고, 동시에 봉인을 계속 자기 손에 쥔 구실이었다.
팽노가 부엌에서 첫 번째 조각이 든 국그릇을 가져왔다. 두 조각을 한 자리에 놓되 맞추지는 않았다. 틈은 손가락 하나만큼 남겨 두었다. 그 좁은 사이로 모두의 시선이 오갔다.
"맞추면 어떻게 됩니까."
임계산의 물음에 윤채가 답했다. "청동 그릇의 바깥 잠금이 풀린다. 하지만 그릇이 어디 있는지는 모른다. 그리고 안의 운용법이 있어도 소령의 몸은 열쇠가 아니다. 사부님이 내게 그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그 말을 숨겼다."
한소령의 턱이 굳었다. 팽노가 이제야 밝혔던 사실을 윤채는 세 해 전부터 알고 있었다. 사람들이 한소령을 열쇠라 부르며 쫓는 동안, 사형은 그 거짓을 바로잡지 않았다.
윤채가 한소령 앞에 무릎을 꿇었다. 사죄의 모양이었지만 한소령은 절을 받지 않았다. 옆으로 한 걸음 비켜섰다.
"제 앞에서 무릎 꿇으면 끝나는 일이 아닙니다. 사슬에 묶인 사람들, 번호로 죽은 사람들, 오방맹 재판에서 잔당이라 불린 이름들 앞에 서십시오."
"서겠다."
"용서받으려고 서지 마십시오. 사실을 말하려고 서십시오."
윤채가 천천히 일어났다. 눈빛에는 안도 대신 두려움이 남았다. 한소령은 그 편이 옳다고 생각했다. 용서를 확신한 고백은 다시 거래가 되기 쉬웠다.
두 봉인은 담여화가 맡기로 했다. 팽노도, 윤채도, 한소령도 아니었다. 담여화는 각각 다른 약상자에 넣고 봉함 종이에 네 사람의 손도장을 받았다. 어느 한쪽 상자가 열리면 종이가 찢어지고, 다시 맞추려면 보관자 대표까지 불러야 했다.
"왜 제가 맡습니까?" 담여화가 물었다.
한소령이 대답했다. "누가 다치면 물건보다 사람을 먼저 볼 사람이니까."
"그건 맞지. 대신 내 약재 건드리면 손목 부러뜨릴 거야."
팽노가 처음으로 숨을 길게 내쉬었다. 윤채는 자기 손에서 봉인이 떠나는 것을 끝까지 바라봤다. 손가락이 두 번 움찔했지만 되찾으려 하지 않았다. 그 작은 움직임까지 한소령은 보았다. 욕망을 버린다는 것은 욕망이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처럼 구는 일이 아니었다. 다시 손을 뻗지 않는 일이었다.
주명한은 윤채의 손목을 잠시 보더니 자기 흉터 난 손을 내밀었다. 악수도 용서도 아니었다. "그 봉인을 옮기다 죽은 사람의 이름을 나중에 읽어 주시오. 당신이 가져간 뒤 길에서 사라진 사람들까지." 윤채는 그 손을 잡지 않고 두 손을 모아 예를 올렸다. "내가 아는 이름부터 쓰겠습니다." 주명한은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저 물러섰다. 해야 할 일이 관계의 이름보다 먼저 놓였다.
아침 손님이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한소령은 윤채에게 국밥 그릇을 내밀었다. 윤채가 받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팽노가 말했다. "먹어. 심문대에 서려면 살아 있어야지."
윤채는 마루 끝에 앉아 국밥을 먹었다. 한소령은 맞은편에 앉지 않고 다른 손님들의 그릇을 날랐다. 사형과 사제의 관계가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다만 숨긴 절반이 밝은 곳에 나왔고, 숨긴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책임을 적었다.
해가 처마를 넘어 두 약상자에 닿았다. 봉함 종이의 손도장들이 선명해졌다. 한소령은 그 빛을 보며 검을 닦았다. 완성할 수 있는 물건이 가까이 모였지만, 누구도 맞추지 않았다. 맞추지 않는 선택을 지키는 데에도 사람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