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칠은 청문이 다시 열린 지 이레째 되는 밤에 나타났다. 왼쪽 귓바퀴가 찢어진 사내는 회당 기록 창고 지붕 위에 앉아 누런 봉투들을 바람에 흩뿌렸다. 봉투마다 실종자 이름이 적혀 있었고, 처마 아래에는 기름이 가느다란 줄로 번지고 있었다.
“잔화의 마지막 절식을 내놓으면 불씨를 끄지.” 두칠이 외쳤다. 장터에 퍼진 전설은 담소하에게 사라진 열넷째 식이 있다고 했다. 그 한 수가 기록국 지하문을 열고 사람의 기억까지 베어 낸다는 허황한 말이었다. 두칠은 거짓 전설로 담소하를 창고에서 떼어 내고 싶어 했다.
담소하는 비급이 없다고 대답하지 않았다. 없다는 말을 믿게 하려고 결투에 응하는 순간 이미 상대가 고른 판에 서게 된다. 그는 먼저 마당 사람들에게 물통이 아니라 모래 자루를 옮기게 했다. 기름불에 물을 부으면 불길이 문서 보관함까지 번질 수 있었다.
두칠은 지붕 끝에서 칼을 뽑았다. 칼날에는 불붙은 천이 감겨 있었다. 그가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불씨가 마른 처마에 튀었다. 노경천이 올라가려 하자 담소하는 창고 뒤 환자 숙소부터 비우라고 했다. 싸움 구경에 모인 사람도 골목 끝으로 물렸다.
묘련은 진료장 환자 명단을 들고 사람 수를 확인했다. 한 아이가 약장 아래 숨은 것을 발견해 업고 나왔다. 백천리는 기록 사본을 지키려 창고로 들어가겠다고 했지만, 담소하는 원본보다 사람을 먼저 세라고 했다. 사본은 이미 다섯 곳에 나뉘어 있었다.
두칠은 담소하의 망설임을 겁으로 여겼다. 지붕에서 내려오며 첫 칼을 어깨로 찔렀다. 담소하는 칼날을 맞받지 않고 기름통을 묶은 밧줄만 끊었다. 통이 마당 모래 구덩이로 굴러 떨어져 넘어졌고, 번지던 기름줄 하나가 끊겼다.
두 번째 칼은 창고 문빗장을 노렸다. 담소하는 검집으로 손목을 밀고, 칼끝이 빈 벽을 긁게 했다. 두칠은 잔화검법의 이름을 하나씩 조롱하며 숨은 초식을 쓰라고 외쳤다. 담소하는 초식명을 부르지 않았다. 베어야 할 것은 사람의 목이 아니라 불이 움직이는 길이었다.
창고 양옆에서 회계 무리 여섯이 횃불을 들고 나타났다. 그들은 두칠을 구하려는 척하면서 흩어진 봉투를 주워 달아났다. 각 봉투 안에는 진짜 이름과 가짜 위치가 섞여 있었다. 추격대를 분산시키려는 미끼였다. 노경천은 혼자 좇지 않고 골목 봉쇄를 감독 서리에게 맡겼다.
담소하는 처마를 타고 흐르던 불붙은 기름 홈을 세 군데 잘랐다. 검끝은 나무와 흙만 베었다. 잘린 홈 아래에 모래 자루가 쌓이자 불은 짧은 웅덩이마다 갇혔다. 두칠은 그 틈에 담소하의 옆구리를 그었다. 피가 옷을 적셨지만 깊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담소하에게 끝내라고 소리쳤다. 두칠은 과거 수십 명의 이름을 팔았고 지금도 창고를 태우려 했다. 죽여도 누구도 탓하지 않을 순간이었다. 담소하는 칼등으로 그의 무릎을 쳤지만 목을 겨누지 않았다. 쓰러진 사내가 품에서 작은 불통을 꺼낼 것을 기다렸다.
예상대로 두칠은 자기 옷까지 태울 불통을 깨려 했다. 담소하는 그의 손을 베는 대신 소매 끝을 바닥에 못 박듯 검으로 눌렀다. 묘련이 젖은 가죽을 덮고 불통을 빼냈다. 죄수의 화상을 치료할 사람과 증거를 봉인할 사람이 동시에 움직였다.
두칠은 바닥에서 웃었다. “날 살려 두면 이름 하나도 못 찾는다. 죽이면 네가 영웅이지.” 담소하는 숨을 고르며 대답했다. “네가 살아야 네 말이 검증되고, 네가 말하지 않아도 장부는 남는다. 어느 쪽도 내 영웅담에는 필요 없다.”
회계 무리 가운데 둘은 골목에서 붙잡혔고 넷은 달아났다. 백천리는 추격보다 흩어진 봉투 위치를 표시했다. 아이들이 줍지 못하도록 돌로 둘레를 만들고, 각 봉투를 발견한 사람의 이름을 적었다. 가짜 정보도 누가 어디에 뿌렸는지 알면 거래망의 길을 보여 줄 수 있었다.
불길은 창고 북벽까지 닿았지만 안쪽 보관함은 타지 않았다. 더 중요한 것은 환자와 숙박자 스물일곱 명이 모두 확인된 일이었다. 묘련은 마지막 사람 수를 세고 나서야 담소하의 상처를 꿰맸다. “비급이 있었으면 덜 다쳤을까요?” 그가 묻자 묘련은 실을 세게 당겼다.
“사람을 죽이는 쉬운 수가 비급이라면 없어서 다행이죠.” 묘련의 말에 담소하는 입을 다물었다. 상처를 참는 것이 고결해서가 아니라, 싸움 중 자기 몸의 위험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길 뻔했다는 지적을 알아들었다. 다음에는 부상 신호도 동행 절차에 넣기로 했다.
두칠의 허리띠 안에서는 작은 나무 활자 서른두 개가 나왔다. 사람 이름을 문서에 빠르게 찍어 바꾸는 도구였다. `강`, `우`, `목`, `이` 같은 글자가 여러 벌 있었고, 빈 활자에는 새 이름을 새길 칼자국이 남았다. 숨은 절식보다 훨씬 평범한 도구가 수십 사람의 삶을 지웠다.
연비화는 활자의 닳은 면과 장부 인장을 대조했다. 곽진해가 말한 두 번째 이름들 대부분이 같은 활자에서 찍혔다. 다만 두칠 혼자 모든 일을 했다는 결론은 내리지 않았다. 활자를 만든 목수, 운반한 상단, 문서를 승인한 서리가 각각 따로 있었다.
새벽 공개 확인에서 두칠은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고문해야 한다고 외쳤다. 최해연은 차폐막 뒤에서 `말하지 않는 입보다 이미 남은 손자국을 보라`고 했다. 활자에 묻은 붉은 흙은 북창이 아니라 남궁 서쪽 인쇄방의 흙과 같았다.
감독 서리들이 인쇄방을 수색하자 불타지 않은 원판과 배상표 위조 틀이 나왔다. 그곳에는 열일곱 이름 중 아홉의 원래 본명과 이동 번호가 남아 있었다. 두칠이 목숨값으로 쥐고 있다고 믿은 비밀은 여러 물건에 나뉘어 존재했다. 그의 침묵은 더 이상 사람들을 볼모로 잡지 못했다.
두칠의 심리에서는 방화, 문서 위조, 인신 강제 이동 관여가 따로 다뤄졌다. 담소하와의 결투는 영웅의 승부로 기록되지 않았다. 창고 방화 저지 중 체포됐다는 한 줄과 사용된 무기, 부상자 수, 소실 문서 수가 적혔다. 두칠이 원한 전설은 숫자와 절차 속에서 작아졌다.
아이들은 다음 날 마당에서 검 자국을 찾았다. 담소하는 벽에 난 흠집보다 잘린 기름 홈을 보여 주었다. “여기가 싸움의 자국이냐”고 묻는 아이에게 그는 “불이 더 가지 못한 자리”라고 대답했다. 아이는 멋이 없다며 웃었지만 모래로 홈을 메우는 일을 도왔다.
노경천은 달아난 네 사람의 방향표를 확인한 뒤 동행대를 꾸렸다. 이번에는 감독, 상인 대표, 사본 기록자가 처음부터 명단에 있었다. 담소하는 상처 때문에 따라가지 않았다. 자기 부재로 조사가 멈추지 않는 것을 보며 아쉬움보다 안도감을 먼저 느꼈다.
해 질 무렵 타다 남은 처마가 내려왔다. 사람들은 새 나무를 올리며 비급 이야기를 또 꺼냈지만, 진도명은 현판 아래 작은 설명을 붙였다. `이곳에는 숨은 초식이 없다. 사본과 증인과 서로 다른 열쇠가 있을 뿐이다.` 문장은 투박했으나 아무도 고치자고 하지 않았다.
담소하는 붕대를 감은 채 검을 닦았다. 칼날에는 두칠의 피보다 기름과 탄 나무가 더 많이 묻어 있었다. 그는 날을 번쩍이게 세우지 않고 조용히 검집에 넣었다. 창고 안에서는 젖은 종이가 한 장씩 마르고, 밖에서는 붙잡히지 않은 이름들을 찾는 이들이 여러 길로 추적을 시작했다. 결투는 끝났지만 어느 누구의 목숨도 결말의 마침표로 쓰이지 않았고, 불길을 멈춘 빈 홈만 다음 날까지 분명히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