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진해의 공개 심문 날, 회당 앞마당에는 칼보다 의자가 먼저 들어왔다. 피해자 가족, 염부 대표, 남궁 창고 사람, 기록 서리들이 서로 등을 보이지 않도록 반원을 만들었다. 곽진해는 쇠사슬을 찼지만 입에 재갈은 없었다. 그가 말할 수 있어야 거짓도 모두의 귀 앞에 놓일 수 있었다.
담소하는 심문을 시작하기 전 세 가지를 알렸다. 곽진해의 말만으로 누구의 생사도 확정하지 않을 것, 모욕이나 구타로 답을 강요하지 않을 것, 공개를 원치 않는 생존자의 현재 이름은 읽지 않을 것. 사람들은 느리다고 불평했지만 최 노파가 첫 줄에 앉아 조용히 손을 들었다.
첫 질문은 열일곱 이름의 운송표였다. 곽진해는 코웃음을 치며 자신은 이미 끝난 사람이라고 했다. “내 목 하나 자르면 속이 시원할 텐데 왜 종이 놀음을 하지?” 담소하는 칼을 만지지 않았다. “당신 목은 네 사람의 마지막 길을 말해 주지 못한다.”
곽진해는 누런 봉투의 가명 가운데 `소두`를 안다고 했다. 본명은 말하지 않고 두 번째 이름이 `강우`였다고 던졌다. 방청석이 술렁였다. 강우는 이미 삼 년 전 수몰 사고 사망자로 배상된 이름이었다. 한 사람이 두 피해 사건에 걸쳐 서로 다른 죽음으로 기록된 셈이었다.
연비화는 곽진해의 말을 곧바로 받아 적지 않았다. 먼저 그가 강우라는 이름을 언제, 어떤 종이에서 봤는지 물었다. 곽진해는 황주 운송패 뒷면이라고 했다. 운송패는 통상 앞면만 기록하므로, 실제 취급자만 알 법한 세부였다. 그러나 세부를 안다고 전체 진술이 참인 것은 아니었다.
곽진해는 이름을 겹쳐 붙이는 방식을 설명했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 이미 죽은 사람의 두 번째 이름을 주면 식량과 노역 인원이 동시에 사라졌다. 한쪽 장부에는 배상 완료, 다른 장부에는 신규 배치가 적혔다. 차이는 중간 운송 서리가 챙긴 곡식으로 메웠다.
“그 운송 서리가 누구냐.” 피해자 대표가 물었다. 곽진해는 담소하를 보며 웃었다. “내게 물 한 그릇 주면 말하지.” 물은 거래가 아니었다. 묘련이 직접 그릇을 가져와 입술이 터진 죄수에게 마시게 했다. 곽진해는 기대한 흥정이 사라지자 웃음을 거뒀다.
그가 말한 이름은 두칠이었다. 기록국에 정식 품계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나루마다 짐꾼 이름을 바꿔 적는 운송패 작성자였다. 두칠은 글을 못 읽는 척했으나 숫자와 봉인 색을 기억했고, 어느 문서에도 자기 지장을 남기지 않았다. 곽진해는 그의 왼쪽 귓바퀴가 찢어졌다고 덧붙였다.
최 노파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편을 마지막으로 데려간 짐꾼에게 같은 흉터가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곽진해 쪽으로 달려들지 않았다. “내가 본 것은 귀다. 이름은 못 들었다.” 기억의 빈자리를 분노로 채우지 않는 한마디가 심문의 방향을 붙잡았다.
곽진해는 두칠이 백하 나루에서 죽었다고 말했다가, 잠시 뒤 북창으로 달아났다고 바꿨다. 담소하는 모순을 지적해 망신주지 않고 두 진술의 시각을 따로 물었다. 죽었다는 소문을 들은 날과 직접 마지막으로 본 날이 달랐다. 둘 다 사실일 가능성이 생겼다.
남궁 창고지기는 두칠에게 지급된 겨울 신발표를 가져왔다. 백하 사망 소문 뒤 석 달 동안 신발 두 켤레가 북창에서 수령됐다. 수령자는 본인이 아닐 수도 있었지만, 표 뒷면에는 누런 봉투와 같은 소금 얼룩이 남아 있었다. 소금 창고가 단순한 은신처가 아니라 이름 교환 장소였음이 드러났다.
곽진해는 마지막으로 자기 형량을 줄여 달라고 요구했다. 담소하는 자신에게 그 권한이 없다고 말했다. 진술 협조는 심리에서 기록될 수 있지만, 한 사람의 행방과 죄를 맞바꾸는 약속은 하지 않았다. 곽진해는 욕설을 퍼부었고, 그 욕설까지 시간과 함께 기록됐다.
오후 심문에서는 공개할 수 없는 이름 두 개가 나왔다. 기록자는 소리 내어 읽지 않고 번호표로 바꿨다. 방청객들은 감춰진 이름이 특혜라고 항의했다. 그러자 최해연이 얼굴을 가린 채 천막 뒤에서 말했다. “당신들이 궁금하다는 이유로 살아 있는 사람이 또 도망칠 필요는 없소.”
심문이 끝났을 때 확정된 것은 많지 않았다. 두칠이라는 운송 작성자, 백하 사망 소문과 북창 수령표의 불일치, 강우라는 겹친 이름, 네 실종자의 운송 묶음 번호였다. 곽진해가 떠든 수십 마디 중 검증 가능한 네 조각만 회당 벽에 붙었다.
분노한 청년 하나가 곽진해에게 돌을 던졌다. 돌은 쇠사슬 옆 바닥에 맞았다. 노경천은 청년을 베지 않고 팔을 잡아 내렸다. 자신도 형의 동패를 보고 같은 충동을 삼켰다고 말하자 청년은 손에서 두 번째 돌을 놓았다. 곽진해는 그 모습을 비웃지 못했다.
밤에 연비화는 강우가 등장하는 장부를 모두 펼쳤다. 글씨의 번짐과 종이 결을 대조하니 수몰 사고 명부의 강우는 다른 사람의 사망 기록 위에 덧씌운 이름이었다. 소두의 생사는 여전히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가짜 죽음 하나는 벗겨졌다. 그 자리에 `생존 가능, 본명 비공개`라는 새 상태가 적혔다.
담소하는 심문록 끝에 곽진해의 서명을 받으려 하지 않았다. 그가 서명하지 않아도 여러 사람이 같은 자리에서 들었고, 각자 쓴 기록이 남아 있었다. 곽진해는 끌려가며 “두칠을 찾으면 더 큰 이름이 나온다”고 소리쳤다. 담소하는 그 말을 예언처럼 받지 않고 `검증되지 않은 주장` 칸에 넣었다.
심문 뒤 세 기록자가 쓴 문장은 스물세 곳에서 달랐다. 한 사람은 곽진해가 `강우를 보았다`고 적었고, 다른 둘은 `강우라는 이름을 보았다`고 적었다. 작은 차이가 생존 목격과 문서 목격을 갈랐다. 녹취를 맡은 진도명은 다수 표현을 택하지 않고 실제 질문과 답을 다시 읽어 첫 기록을 정정했다.
피해자 가족들은 곽진해의 얼굴을 공개 벽보에 그리자고 했다. 다른 협력자를 찾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었지만, 분노한 사람들이 길에서 닮은 사람을 해칠 위험도 있었다. 회당은 찢어진 귀 같은 두칠의 특징만 감독 서리에게 제한 배포하고, 곽진해의 초상은 심리 자료 안에 뒀다. 공개가 항상 안전을 키우는 것은 아니었다.
최 노파는 강우 유족에게 직접 소식을 전하겠다고 나섰다가 문 앞에서 멈췄다. 가짜 죽음 기록이 발견됐다는 말이 진짜 강우가 살아 있다는 오해를 만들 수 있었다. 그녀는 회당 설명자와 함께 가서 확인된 사실, 아직 모르는 사실, 다음 검토 날짜를 세 문장으로 나눠 말했다. 유족의 울음 앞에서도 희망을 보태지 않았다.
곽진해가 말한 북창 수령표는 종이만 맞고 인장은 달랐다. 누군가 진짜 장부에서 떼어 낸 종이에 가짜 인장을 찍은 것이었다. 연비화는 자기 과거 동료 중 인장틀을 다룬 사람 넷을 밝혔다. 친분이 있던 이름도 빼지 않았고, 의심만으로 체포하지 말라는 말도 함께 남겼다.
공개 심문 규칙에는 다음 심문부터 휴식 시간이 추가됐다. 오래 듣다 보면 분노와 피로 때문에 같은 말을 다르게 기억할 수 있었다. 피해자도 죄수도 물을 마시고, 기록자는 앞선 문장을 교차 확인한 뒤 이어 갔다. 진실을 재촉하는 분위기가 오히려 거짓 확신을 만들지 않도록 심문의 속도를 낮췄다.
마당의 의자를 치우고 나니 흙바닥에 반원 모양 자국이 남았다. 최 노파는 남편 이름이 아직 없다는 사실에 고개를 숙였지만, 강우 아래 겹쳐 죽은 사람의 빈칸을 손으로 쓸었다. 그날 심문은 악인의 입에서 완전한 진실을 얻지 못했다. 대신 거짓말조차 혼자 소유하지 못하게 했고, 네 갈래 길에는 처음으로 함께 확인할 수 있는 표지가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