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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5-6화]

용서하지 않은 증인

작성: 2026.09.01 19:51 조회수: 1
창작물 안내
[AI 생성물] 본 소설의 내용과 표지는 인공지능(AI) 모델을 통해 기획 및 작성된 허구의 창작물입니다.
본 작품은 무협 장르 창작물로, 등장하는 무공·문파·인물·사건은 모두 허구입니다. 작중 폭력 묘사는 장르 관습에 따른 것이며 현실의 폭력을 조장하지 않습니다.

백하 약방 다락에서 발견된 여인은 이름을 세 번 바꾸어 살고 있었다. 회당 명부에는 최해연, 염전 장부에는 해월, 약방 사람들은 유모 최씨라고 불렀다. 담소하가 어느 이름으로 기록할지 묻자 여인은 약탕기 불을 줄이며 “오늘은 최해연으로 하죠”라고 말했다.

그 이름을 들은 연비화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 열한 해 전 남궁 외곽 이송표에 `최해연, 자진 이주`라고 적고 서명한 사람이 그녀였다. 당시 스무 살이던 연비화는 상관이 내민 빈칸을 채웠고, 그 한 줄 때문에 최해연 가족은 강제 노역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최해연은 회당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했다. 약방 주인의 손주를 돌보고, 밤에는 염부들의 화상을 치료하며 살고 있었다. “내가 살아 있다는 걸 알리면 또 누가 친척이라며 찾아오겠지. 이름이 돌아가는 것과 내가 돌아가는 건 다른 일이오.” 담소하는 그 차이를 기록 첫 줄에 적었다.

연비화는 다락 계단 아래서 기다렸다. 최해연이 만나지 않겠다고 하면 그대로 물러날 생각이었다. 그러나 여인은 약재를 빻던 절구를 멈추고 그녀를 올려 보냈다. 좁은 방 한가운데에는 의자가 하나뿐이었다. 연비화는 앉지 않고 문 옆에 섰다.

“그때 몰랐다는 말을 하러 왔소?” 최해연이 물었다. 연비화는 준비한 사과문을 소매 안에서 꺼내지 않았다. “일부는 몰랐고, 일부는 알면서도 묻지 않았습니다. 제가 쓴 글이 어떤 일을 하는지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변명할 자리를 남기지 않은 대답이었다.

최해연은 남편이 염전에서 죽은 날을 말했다. 자진 이주자로 적혀 장례 곡식도 받지 못했고, 어린 딸은 빚 대신 다른 집으로 보내졌다. 딸의 행방은 아직 몰랐다. 연비화가 찾아보겠다고 하자 최해연은 손바닥을 들어 말을 끊었다. “나를 위해 찾는 척하며 당신 마음을 가볍게 하지 마시오.”

연비화의 손이 소매 속 사과문을 구겼다. 그녀는 용서를 구하면 적어도 무엇을 해야 할지 정해질 거라 믿었다. 거절은 벌보다 모호했다. 계속 일해야 하지만 그 일이 상처를 덜어 주는지 확인받을 수 없었다. 최해연은 바로 그 모호함을 그녀에게 남겼다.

“용서하지 않겠소.” 여인은 분명히 말했다. “당신이 눈앞에서 죽어도 남편이 돌아오지 않으니 죽으라는 말도 하지 않겠소. 대신 당신 손으로 쓴 모든 이송표를 읽고, 그 사람이나 후손이 원할 때까지 증언하시오. 내가 그만하라 할 권리도 없고, 당신이 충분하다 말할 권리도 없소.”

연비화는 무릎을 꿇으려 했다. 최해연은 절구공이로 바닥을 쳤다. “그 자세도 나를 당신 죄의 판관으로 만들지. 서서 들으시오.” 연비화는 다시 일어났다. 다리에 힘이 빠졌지만 벽을 짚지 않았다. 상대가 요구하지 않은 참회의 모양을 더 보태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날 오후 약방 뒤뜰에서 공개 확인이 열렸다. 최해연은 얼굴을 가리고 목소리만 내기로 했다. 담소하는 천막을 치고, 질문자는 피해자 대표 한 명으로 제한했다. 기록자 셋은 같은 말을 따로 적었으며, 연비화는 가장 멀리 앉아 자신의 옛 필체와 현재 증언을 대조했다.

연비화가 작성한 이송표에는 최해연 외에도 여섯 이름이 같은 붓으로 적혀 있었다. 그중 `정분`이라는 여자의 나이와 출신지가 최해연의 딸과 맞았다. 그러나 이름 하나가 닮았다는 이유로 모녀 상봉을 선언할 수는 없었다. 최해연은 기대를 기록에 넣지 말라고 했다.

연비화는 정분 관련 문서의 이동 경로를 설명했다. 남궁 창고, 기록국 분류소, 황주 포목방을 거쳤고 마지막 인수 표시는 허만복 상단의 옛 표식이었다. 자신이 기억하는 것과 문서에서 확인되는 것을 나눠 말했다. 확실하지 않은 부분마다 `추정`이라는 붉은 표지를 붙였다.

밤이 되자 약방 앞에 연비화를 욕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누군가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잘라 문에 걸자고 했다. 최해연은 그들을 말리지 않다가, 약방 유리창에 돌이 날아오자 밖으로 나섰다. “내가 용서하지 않는 것과 당신들이 내 집을 깨는 건 같은 일이 아니오.” 그녀는 연비화를 보호한 것이 아니라 자기 삶의 경계를 지켰다.

담소하는 연비화에게 회당으로 돌아가도 된다고 했다. 연비화는 약방에 남겠다고 고집하지 않았다. 최해연이 자기 곁에서 벌 받으라고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대신 다음 날부터 여섯 이송표의 행방을 찾는 조사 계획을 써서 최해연에게 검토받되, 답을 재촉하지 않기로 했다.

사흘 뒤 최해연은 계획서 여백에 한 줄을 보탰다. `찾은 사람에게 내 이름을 알리지 말 것. 서로 원할 때만 연결할 것.` 연비화는 그 문장을 회당 규칙으로 확대 적용하자고 제안했다. 살아 있는 피해자를 한데 모으는 것이 회복이라는 단순한 생각이 처음으로 공식 문서에서 지워졌다.

정분은 황주에서 이미 다른 이름으로 가정을 이뤘다는 소식이 왔다. 그녀는 친모일 가능성을 들었지만 당장 만나지 않겠다고 했다. 최해연은 울지도 화내지도 않고 약재 무게를 쟀다. “그 아이가 고른 때가 내 때요.” 연비화는 그 대답을 그대로 적고 어떤 감정도 덧붙이지 않았다.

떠나는 날 연비화는 구겨진 사과문을 최해연에게 건네지 않았다. 다락 화로에 태우지도 않고 자기 기록철 맨 뒤에 넣었다. 용서를 얻지 못한 사실과 계속할 책임을 함께 기억하기 위해서였다. 최해연은 배웅 대신 다음 환자의 맥을 짚었다.

회당으로 돌아온 연비화는 자기 책임 기록의 제목을 `속죄`에서 `이송표 추적`으로 바꿨다. 속죄라는 말은 언젠가 끝났다고 선언할 사람을 자신으로 만들 수 있었다. 반면 추적은 찾은 것과 못 찾은 것, 확인받은 말과 거절당한 접촉을 구체적으로 남겼다. 감정의 크기가 사실의 빈칸을 가리지 못하게 했다.

그녀는 매달 보고서를 최해연에게 보냈지만 답장을 요구하지 않았다. 봉투 겉에는 열지 않아도 되는 문서이며, 수신 거부 시 즉시 중단한다는 표시를 넣었다. 석 달째 봉투 하나가 뜯기지 않은 채 돌아왔다. 연비화는 이유를 캐지 않고 그달 발송을 멈춘 뒤, 공개 기록에 `당사자 접촉 보류`라고 적었다.

정분에게는 친모 가능성을 다시 묻는 사람이 여럿 찾아갔다. 아름다운 상봉을 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장사꾼의 탐욕보다 덜 위험해 보였지만, 결과는 같은 압박이었다. 청문은 두 사람의 연락패 번호를 아는 서기를 한 명으로 제한하고, 무단 중개를 한 자의 접수 권한을 정지했다.

최해연은 반년 뒤 짧은 쪽지를 보냈다. `정분이 원하면 내 약방 주소를 주어도 좋소. 내가 원한다는 말은 전하지 마시오.` 연비화는 문장 하나도 고치지 않고 정분 쪽 중개자에게 전달했다. 만나고 싶은 마음과 상대를 재촉하지 않을 책임이 한 쪽지 안에 함께 있었다.

연비화는 그 쪽지를 자신의 용서 증거로 보관하지 않았다. 원본은 최해연의 선택 기록함에, 사본은 정분의 동의함에 따로 들어갔다. 자신에게는 전달 날짜와 경로만 남겼다. 두 사람 사이의 가능성조차 중개자가 소유하지 않도록 한 뒤, 그녀는 다시 남은 이송표 한 장을 펼쳤다.

약방 처마 아래서 연비화는 새 증언 일정표를 펼쳤다. 끝나는 날짜 칸은 비워 두었다. 비에 번질까 몸으로 종이를 가리면서도 얼굴은 들지 않았다. 문 안에서 절구 소리가 일정하게 울렸고, 그것은 사과를 받아 주는 신호도 내쫓는 소리도 아니었다. 누군가의 용서 없이도 멈추지 않아야 하는 일의 박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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