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주 서문 밖 장터에는 돈을 빌려 주는 탁자가 일곱 개 있었다. 봄 종자를 사려는 농부, 약값이 급한 유족, 겨울을 넘기며 장례비를 빚진 사람이 그 앞에 줄을 섰다. 장문기의 장부를 따라온 담소하는 가장 작은 탁자 위에서 회당의 푸른 배상표를 발견했다.
배상표는 돈이 아니었다. 남궁과 기록국에서 돌려받을 곡식, 치료, 생업 손실을 확인한 임시 증표였다. 그런데 장터 사내들은 표 한 장에 은자 다섯 냥을 주고 있었다. 몇 달 뒤 받을 몫은 그 열 배가 넘었다. 오늘 굶는 사람에게 몇 달 뒤의 권리는 종이보다 가벼웠다.
담소하는 탁자를 뒤엎지 않았다. 먼저 줄 뒤에 섰다. 앞에 있던 여인은 아이 약값 때문에 남편의 배상표를 내놓았다. 사내는 글을 읽어 주는 척하면서 `모든 청구와 이의 권리를 양도한다`는 줄을 빠르게 넘겼다. 여인은 자기 이름만 겨우 쓸 줄 알았다.
연비화가 장터 반대편에서 계약 필체를 살폈다. 기록국 하청 서리들이 쓰던 줄임표와 같았다. 공식 문서에는 쓰지 않지만 내부 운송표에서 사람을 물건처럼 묶을 때 쓰던 표시였다. 그녀는 아는 체하지 않고 옆 포목점에서 천을 고르는 척했다.
여인이 붓을 들려는 순간, 묘련이 아이 기침을 들었다. 그녀는 계약을 막는 대신 아이부터 진료장으로 데려가겠다고 했다. 약값을 나중에 받겠다는 말도, 공짜라는 생색도 내지 않았다. 공동 회복 재원에서 긴급 치료 몫을 쓸 수 있음을 설명하고 여인이 직접 신청할 사람을 불렀다.
탁자 주인 허만복이 일어섰다. “남의 장사를 방해하오?” 담소하는 배상표를 손대지 않고 계약서를 소리 내어 읽어 달라고 청했다. 허만복은 바쁜 사람 붙들지 말라며 종이를 접었다. 줄에 선 사람들 얼굴에서 처음으로 의심이 번졌다.
그때 장터 양쪽 골목에서 칼 찬 사내들이 나타났다. 계약 원본을 수레에 싣고 옮기려는 움직임이었다. 백천리는 수레 말의 고삐를 붙잡지 않고 바퀴 앞에 빈 술통을 굴렸다. 말이 놀라지 않은 채 수레만 멈췄다. 노경천은 감독 서리에게 먼저 원본 압수 근거를 확인시켰다.
허만복은 원본을 불태우려 화로를 걷어찼다. 담소하는 불씨를 검으로 치지 않았다. 시장 우물에서 물을 긷던 아이들이 위험할 수 있었다. 그는 긴 장대 끝으로 화로 뚜껑을 덮고, 장터 상인들이 젖은 포대를 올리게 했다. 불은 계약서 두 장 가장자리만 그을리고 꺼졌다.
칼잡이 하나가 여인을 붙잡아 배상표를 내놓으라 했다. 담소하는 그 손목을 베지 않고 소매와 탁자 사이를 검집으로 눌렀다. 여인이 빠져나오자 백천리가 칼집째 무기를 걷어냈다. 사람을 먼저 떼어 낸 뒤에야 증거 수레를 둘러쌌다.
수레 안에는 양도 계약 일흔네 장과 이름별 예상 배상액, 매입가가 적힌 대장이 있었다. 일흔네 명 중 스물한 명은 글을 읽지 못한다는 표시가 붙었다. 열두 명은 실종 상태라 친족을 대신 세울 계획이었고, 그 목록에 누런 봉투의 세 가명도 있었다.
허만복은 자신들이 급한 사람에게 현금을 준 것뿐이라고 주장했다. “몇 달 뒤 받을지 못 받을지도 모르는데 우리가 위험을 떠안았소.” 최 노파가 줄 앞으로 나왔다. “위험을 산 게 아니라 우리가 굶는 시간을 샀겠지. 싸게.”
담소하는 계약을 그 자리에서 모두 무효라고 선언하지 않았다. 일부는 당사자가 내용을 알고 돈을 받은 계약일 수 있었다. 한꺼번에 찢으면 이미 받은 돈을 갚으라는 빚이 더 생길 수도 있었다. 그는 원본을 공동 봉하고 계약자에게 한 사람씩 내용을 다시 설명하는 심리를 요청했다.
장터에서 회당까지 가는 호송은 세 갈래로 나뉘었다. 원본 수레는 노경천과 감독 서리가, 사본은 백천리와 상인 대표가, 증언자들은 담소하와 묘련이 맡았다. 어느 한 길이 막혀도 사람과 종이가 함께 사라지지 않게 했다. 연비화는 아무 길에도 단독으로 서지 않고 필체 감정자로 동행했다.
호송 중 옛 하청 서리 둘이 도망쳤다. 노경천은 쫓아가면 잡을 수 있었지만 수레를 떠나지 않았다. 예전의 그는 중요한 이름을 쥐면 혼자 능선을 넘었다. 이번에는 도주 방향만 기록하고 원본 곁에 남았다. 담소하는 멀리서 그 선택을 봤다.
회당 심리 첫날, 아이 약값 때문에 서명하려던 여인은 계약을 철회했다. 이미 받은 은자는 긴급 치료 재원에서 허만복에게 대신 갚지 않았다. 불공정한 압박 아래 건넨 돈인지 먼저 판단하기로 했다. 돈을 준 사실이 사람의 미래 권리를 자동으로 사지는 못했다.
둘째 계약자는 내용을 알고도 표를 팔았다고 말했다. 그는 겨울 장례비를 마련하려고 당시 받을 수 있는 돈을 택했고, 이제 와서 선택을 없던 일로 만들고 싶지 않다고 했다. 심리자는 피해자라면 모두 속았을 것이라는 가정도 버렸다. 다만 매입가와 실제 예상 몫의 차이를 제대로 들었는지 다시 확인했다.
셋째 계약자는 허만복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줄을 손으로 가리고 서명시켰다고 증언했다. 포목점 주인이 옆에서 이를 보았지만 장사 보복이 두려워 침묵했다. 상인 조합은 증언자의 가게 이름을 공개하지 않고 별도 진술을 받았다. 시장을 지키려면 용기를 칭송하기 전에 보복 경로를 끊어야 했다.
일흔네 계약은 `유지`, `철회 심리`, `서명 부인`, `당사자 실종` 네 묶음으로 나뉘었다. 어느 묶음도 자동 결론은 아니었다. 글을 읽었다는 표시가 있어도 실제 설명을 들었는지, 현금을 받았어도 급박한 치료가 선택을 왜곡했는지 한 사람씩 살폈다. 느린 절차 때문에 장터에서는 불평이 이어졌다.
남궁세는 배상 지급을 앞당기면 거래가 줄 것이라고 했다. 최 노파는 맞는 말이지만 지급을 미끼로 계약 철회를 강요해서도 안 된다고 했다. 이미 표를 판 사람에게 창피를 주거나 회복 대상에서 빼면 다시 허만복에게 의존하게 된다. 청문은 원래 피해 자격과 계약 분쟁을 서로 다른 장부로 나눴다.
긴급 치료 재원은 묘련 혼자 결정하지 않도록 세 사람의 확인을 받게 했다. 다만 피를 흘리거나 숨이 막히는 경우에는 먼저 치료하고 다음 날 공개 가능한 범위의 지출만 검토했다. 허만복 같은 장사꾼이 느린 지급 틈을 파고들지 못하게 하면서도, 환자의 병명을 장부에 펼치지 않는 규칙이었다.
도망친 하청 서리들의 집에서는 빈 인장과 배상표 색을 흉내 낸 염료가 발견됐다. 그러나 가족을 함께 잡아오라는 요구는 거절됐다. 아내와 아이가 같은 지붕에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공모자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발견 물건의 소유와 사용 흔적을 따로 확인한 뒤, 한 가족은 그날 바로 집으로 돌아갔다.
허만복은 심리 막바지에 자기가 없으면 급한 사람에게 돈을 줄 이가 없다고 맞섰다. 장터 상인들은 그 말의 일부가 사실임을 인정했다. 그래서 그를 몰아낸 자리에는 처벌 현판만 세우지 않고 작은 무이자 곡식 창구를 만들었다. 회복 재원이 부족하면 수량과 대기 순서를 공개해 뒷거래를 줄였다.
계약 읽기 탁자를 맡은 첫 사람은 서명 직전 아이 약값을 걱정했던 여인이었다. 글을 겨우 읽던 그는 매일 저녁 진도명에게 배워, 어려운 문장을 쉬운 말로 바꾸는 법을 익혔다. 자기 계약을 철회한 경험을 다른 이의 정답처럼 강요하지 않고, 선택지와 결과를 모두 읽어 주었다.
밤이 되자 장터 탁자 일곱 개 중 여섯 개가 비었다. 하나는 글을 읽어 주는 공개 탁자로 바뀌었다. 진도명과 상인 조합 아이들이 계약서를 천천히 읽었고, 모르는 글자는 그 자리에서 물을 수 있었다. 담소하는 칼을 세워 두지 않았다. 사람이 자기 이름 아래 무엇이 쓰였는지 들을 수 있는 목소리가 그날 장터에서 가장 오래 길을 지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