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장 문에 자물쇠가 걸린 것은 문을 닫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묘련은 안에 환자가 있을 때만 문 옆 작은 나무패를 뒤집었다. `진료 중, 이름을 묻지 마시오.` 그 문장이 보이면 담소하도 함부로 들어가지 않았다. 청문의 다른 방보다 작은 공간이었지만 그 안에서는 묘련이 문지기였다.
눈 녹은 물이 처마에서 떨어지던 아침, 붉은 비단옷을 입은 사내가 찾아왔다. 그는 자신을 황주 포목상 장문기라 소개하고 실종자 `목이`의 외삼촌이라고 했다. 누런 봉투 소문을 어디서 들었는지 묻자 피해자 모임에서 알았다고 답했다. 하지만 봉투 내용은 아직 모임 전체에도 공개되지 않았다.
장문기는 은자 열 냥을 탁자 위에 올렸다. “조카가 살아 있다면 어릴 적 왼쪽 다리를 다친 기록이 있을 겁니다. 묘 의원 어머니의 약첩에 이름이 남았다고 들었소. 한 줄만 확인하면 내가 데려올 수 있소.” 말은 정중했지만 은자를 놓는 손은 이미 거래가 끝난 사람처럼 느긋했다.
묘련은 돈을 쳐다보지 않았다. “어디가 아파서 오셨습니까?” 사내가 웃으며 환자는 자기가 아니라고 하자 묘련은 문을 반쯤 닫았다. “그럼 진료장에 들어올 이유가 없네요. 가족관계 확인은 사무방에서 하십시오.”
장문기는 문틈에 손을 넣었다. 그의 손등에는 포목상보다 칼잡이에게 흔한 굳은살이 있었다. 담소하가 마당에서 한 걸음 움직였지만 묘련은 고개를 젓지 않았다. 그저 문 안쪽 절굿공이를 손 가까이에 세웠다. 자기 문은 자기가 먼저 지키겠다는 뜻이었다.
“사람 목숨이 걸렸소.” 장문기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기록을 숨기다가 조카가 죽으면 누가 책임지겠소?” 묘련은 손가락이 끼지 않게 문을 조금 열었다. “사람 목숨을 말하면서 왜 그 사람이 당신을 만나고 싶은지는 묻지 않습니까?”
사내는 목이가 어릴 때 왼쪽 무릎 아래에 칼자국이 있었다고 말했다. 진료 기록이 맞으면 친족 증명은 충분하다고 우겼다. 묘련은 어머니 약첩에 환자 이름을 적은 장과 약 배합만 적은 장이 따로 있음을 알고 있었다. 어느 쪽에도 장문기가 알아야 할 권리는 없었다.
담소하는 사무방에서 회당 명부를 가져왔다. 목이의 본명은 민서경으로 추정됐고, 가족 칸에는 어머니 한 명만 적혀 있었다. 어머니는 멸문 이듬해 사망했다. 외삼촌 기록은 없었지만 그것만으로 장문기가 거짓말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지워진 가족은 얼마든지 더 있었다.
묘련은 사내에게 세 가지를 물었다. 민서경이 다친 계절, 상처를 꿰맨 실 색, 약을 먹지 않으려고 숨긴 장소였다. 장문기는 계절만 맞혔다. 나머지는 대답 대신 화를 냈다. “의원이 사람을 시험하오?”
“아닙니다. 당신이 알고 있는 사람과 제가 치료 기록에서 본 사람이 같은지 확인하는 겁니다.” 묘련은 환자 기록을 펼치지 않았다. 질문의 답도 알려 주지 않았다. 틀린 사람이 정답을 배워 다시 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때 장문기의 소매 안에서 얇은 종이 한 장이 떨어졌다. 담소하가 집지 않고 발로 바람만 막았다. 종이에는 실종자 이름 열둘과 예상 배상액이 적혀 있었다. 이름 옆에는 `신체 흉터 확보`, `친족 서명 대기` 같은 문구가 붙어 있었다.
장문기는 달아나려 했다. 담소하가 길을 막았지만 검을 뽑지 않았다. 객잔 손님과 환자들이 보는 앞에서 그를 넘어뜨리면 진료장이 싸움터가 됐다. 백천리가 바깥문을 닫고, 노경천은 감독 서리와 함께 양쪽 퇴로를 막았다. 묘련은 떨어진 종이의 위치와 시각을 먼저 적게 했다.
사내는 배상 권리를 대신 청구해 주는 일이라고 변명했다. 살아 돌아온 사람이 글을 모르거나 기억이 흐리면 흉터와 진료 기록으로 신원을 세운 뒤 절반을 수고비로 받는다는 것이었다. 담소하는 절반이라는 말보다 `살아 돌아온 사람`이라는 표현에 귀를 기울였다. 장문기는 누군가의 현재 위치를 알고 있었다.
묘련은 그가 말할 때까지 치료를 거부하겠다고 협박하지 않았다. 오히려 장문기의 손목에 난 베인 상처를 씻고 붕대를 감았다. 다만 치료가 끝나자 진료장 밖 심문 탁자로 보냈다. “상처를 치료한 것은 입을 열라는 값이 아닙니다. 당신이 한 일에 답하는 것도 치료비가 아닙니다.”
장문기 장부의 열두 이름은 공동 봉인됐다. 약첩은 묘련이 다시 진료장 안 보관함에 넣고, 열쇠 하나는 자신이, 다른 하나는 환자 대표가 가졌다. 담소하는 열쇠를 받지 않았다. 청문 대표라는 이유로 모든 문을 열 수 있다면 기록국과 다른 이름만 가질 뿐이었다.
심문 탁자에서 장문기는 민서경이 황주 남쪽에 있다고 말을 바꿨다. 정확한 거처를 알려 주면 자기 죄를 덜어 달라고 요구했다. 담소하는 거래를 약속하지 않고 그가 위치를 어떻게 알았는지 물었다. 장문기는 직접 본 것이 아니라 흉터를 확인했다는 하청 의원에게 들었다고 했다. 생존 정보조차 여러 사람의 이익을 거쳐 변형돼 있었다.
묘련은 하청 의원 이름을 듣고 오래된 의학 모임 명부를 확인했다. 그런 이름의 의원은 없었지만 약재상 견습으로 쫓겨난 자가 같은 별호를 쓴 적이 있었다. 그는 상처 치료보다 노역자 몸의 표식을 적는 일을 했고, 기록국 해산 뒤 행방이 끊겼다. 진료 기록을 훔치려는 무리가 치료자의 외양까지 이용한 셈이었다.
환자 대표는 두 번째 열쇠를 맡기 전에 자기가 약첩 내용을 볼 수 있느냐고 물었다. 묘련은 열쇠가 열람권을 뜻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보관함이 몰래 열리지 않았는지 함께 확인하는 역할일 뿐, 다른 환자의 이름을 읽을 권리는 없었다. 대표는 역할의 한계를 문서에 적고 지장을 찍었다.
진료장 밖에는 방문 기록판이 새로 생겼다. 이름 대신 들어간 시각, 나온 시각, 진료 여부만 표시했고 병명은 적지 않았다. 조사자가 방문 사실을 묻더라도 당사자 동의 없이는 색패 번호만 답했다. 기록을 덜 남기는 것이 무책임해 보였지만, 필요한 책임과 불필요한 노출을 구분한 결과였다.
장문기의 은자 열 냥은 압수품으로 곧바로 가져가지 않았다. 발견 위치와 그가 제시한 목적을 적고,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무게를 잰 뒤 봉했다. 묘련은 그 돈을 진료비로 받을 생각이 없다고 공개적으로 확인했다. 치료한 손목의 비용은 일반 환자와 같은 기준으로 별도 청구했고, 돈을 냈다고 기록을 살 수 없게 했다.
늙은 염부는 자기 무릎 흉터가 신원표로 팔릴까 두려워 치료를 망설였다. 묘련은 상처 모양을 글이나 그림으로 남기지 않고 통증과 움직임만 기록하는 방법을 보여 줬다. 노인은 기록하지 않는 부분을 직접 확인한 뒤에야 바지를 걷었다. 신뢰는 비밀을 맡아 달라는 말보다 무엇을 남기지 않는지 보여 줄 때 생겼다.
담소하는 사무방의 실종자 확인 절차도 고쳤다. 친족을 자처한 사람이 신체 특징을 먼저 말하면 정답 여부를 알려 주지 않고, 독립된 기억과 문서 셋 이상을 대조하도록 했다. 당사자가 살아 있다면 친족 확인보다 만남 의사를 가장 먼저 물었다. 혈연이 사실이어도 만날 권리까지 자동으로 생기지는 않았다.
묘련은 나무패 뒷면에 한 줄을 더 새겼다. `치료를 받았다는 사실도 환자의 말이다.` 글씨가 작아 가까이 가야 읽을 수 있었다. 그녀는 큰 현판으로 자랑하면 오히려 진료장을 특별한 비밀 장소로 낙인찍을 수 있다며, 환자에게만 조용히 설명하기로 했다.
저녁에 묘련은 나무패를 다시 뒤집었다. `진료 가능.` 첫 환자는 장문기에게 이름이 팔릴 뻔한 늙은 염부였다. 노인은 이름 대신 무릎 통증부터 말했다. 묘련도 그의 과거를 묻지 않고 바지를 걷어 상처를 살폈다. 잠긴 진료장은 비밀을 쌓는 방이 아니라, 사람에게 자기 이름을 언제 말할지 고를 시간을 돌려주는 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