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사본은 같은 날 같은 붓으로 쓰지 않았다. 오문 회당, 황주 상단, 피해자 모임, 남궁 본가, 무림맹 감찰원이 각자 다른 필사자를 세웠다. 그래서 글씨는 달라도 줄 수와 첫말, 끝말은 같아야 했다. 반년 대조일 아침, 남궁 본가 사본의 삼백열두 번째 줄만 끝말이 달랐다.
진도명이 다섯 종이를 길게 펴 놓았다. 네 사본에는 `운하촌 염부 유족 스물셋`이라고 적혀 있었고 남궁 사본에는 `운하촌 염부 유족 열셋`이라고 적혀 있었다. 먹색도 미세하게 진했다. 숫자 하나가 열 사람의 곡식과 치료비를 지워 버린 셈이었다.
남궁세는 말을 타고 정오 전에 도착했다. 그는 종이를 보자 가문 서리의 실수일 수 있다고 말했다가 곧 입을 다물었다. 실수라는 말도 확인 전에는 변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챈 얼굴이었다. 그는 사본을 가져가겠다고 하지 않고 청문 탁자 앞에 앉았다.
“남궁 봉함고 열람표를 전부 가져오겠습니다.” 남궁세가 말했다. “가문 이름을 가리면 더 빨리 확인할 수 있겠지만, 이번에는 가린 칸까지 열겠습니다.” 담소하는 그에게 열쇠를 넘기지 않았다. 애초에 청문에는 남궁 봉함고 열쇠가 없었다. 남궁 안에서 문을 열 사람과 밖에서 확인할 사람이 함께 움직여야 했다.
다음 날, 담소하와 묘련, 피해자 대표 최 노파가 남궁세와 함께 본가로 갔다. 노경천도 가고 싶다고 했지만 감독 기간의 접촉 목적을 먼저 기록한 뒤에야 합류했다. 일행은 화려한 정문이 아니라 문서 운반인이 다니는 서쪽 문으로 들어갔다. 서리들은 최 노파가 앞에 서자 눈을 피했다.
봉함고는 세 사람이 세 열쇠를 돌려야 열렸다. 남궁세, 임시 운영회 서리, 피해자 대표가 각자 하나씩 잡았다. 문이 열리자 향 냄새보다 방충 약재 냄새가 먼저 났다. 안쪽 벽에는 지난 석 달의 열람패가 날짜순으로 걸려 있었다.
문제의 사본은 대조일 열흘 전에 한 번 열렸다. 열람자는 남궁 원로 남궁진석, 배상 담당 서리 허도원, 경비 둘이었다. 사유 칸에는 `종이 습기 확인`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러나 그날은 건조한 북풍이 불었고 봉함고 습도표에도 이상이 없었다.
허도원은 불려오자 숫자를 잘못 베꼈다고 인정했다. 손이 떨려 보였지만 묘련은 겁만 보지 않았다. 그의 오른손 엄지에 붉은 실 자국이 있었다. 최근 무거운 곡식 자루를 묶은 사람의 흔적이었다. 서리 일만 한 손은 아니었다.
최 노파가 물었다. “열 사람 몫을 어디로 보냈소?” 허도원은 고개를 숙이고 원로가 운영하는 겨울 검술장으로 곡식 마흔 가마를 옮겼다고 말했다. 후계 제자들을 먹이는 일이 가문을 살리는 길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대가로 병든 아들의 약값을 받았다.
남궁세의 얼굴이 굳었다. 허도원을 당장 베거나 내쫓는 것은 쉬웠다. 하지만 그러면 지시한 원로와 곡식을 받은 창고, 약값을 건넨 장부는 남았다. 그는 경비에게 칼을 거두게 하고 허도원의 아들 치료가 끊기지 않도록 별도 진료를 요청했다. 심문과 아이의 약을 거래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남궁진석은 가문의 겨울 수련도 강호 질서를 위한 비용이라고 주장했다. 담소하는 그 말에 답하지 않고 최 노파에게 먼저 발언권을 줬다. 노파는 운하촌 열 사람이 죽었는지 살아 있는지도 모른 채 명부에서 두 번 지워졌다고 말했다. “당신들 칼이 강해지는 동안 우리 애들은 숫자부터 작아졌소.”
사본을 고치는 자리도 공개됐다. 지운 숫자 위에 다시 스물셋을 쓰지 않았다. 원래 잘못 바뀐 흔적을 남기고 옆 칸에 정정 날짜, 지시자, 실행자, 되돌릴 물자 수를 적었다. 나머지 네 보관처에도 같은 정정표가 보내졌다. 틀린 흔적까지 남아야 누가 다시 손댔는지 알 수 있었다.
남궁세는 임시 운영회에 남궁진석의 재정 권한 정지를 청했다. 허도원은 기록 위조와 물자 전용을 심문받되 아들 치료는 공동 진료소가 맡았다. 훔친 마흔 가마는 원로 개인 창고에서 회수하고, 모자란 열 가마는 검술장 운영비에서 채우기로 했다. 가문 전체의 자비처럼 보이지 않게 출처도 적었다.
돌아오는 길, 남궁세는 담소하에게 물었다. “내가 가주가 되면 이런 문을 더 빨리 열 수 있을 것 같소?” 담소하는 눈길을 앞길에 둔 채 답했다. “당신이 열쇠를 더 많이 가지면 빨라질 수는 있겠지요. 대신 당신이 틀렸을 때 문을 열 사람이 줄어듭니다.”
남궁세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는 가문패를 만지다가 허리에서 떼지 않았다. 아직 맡은 책임이 있는 물건이었다. 다만 패를 앞세워 길을 비키게 하지는 않았다. 최 노파의 수레가 진창에 빠지자 내려서 함께 바퀴를 밀었다.
운하촌에 정정 소식이 닿자 유족들은 숫자가 돌아온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했다. 지워진 열 사람 가운데 셋은 치료를 기다리다 이미 다른 고을로 떠났고, 둘은 빚 때문에 밭을 넘겼다. 곡식 마흔 가마를 되돌려 놓아도 지연된 계절은 돌아오지 않았다. 피해는 원래 수량과 늦어진 시간으로 나눠 계산해야 했다.
최 노파는 마을 사람을 불러 필요한 회복을 한 사람씩 물었다. 어떤 이는 곡식보다 약재를, 어떤 이는 밭을 되살릴 소를 원했다. 남궁세는 가문 창고 물자를 똑같이 열 몫으로 나누려 했으나 노파가 막았다. 공평하다는 이름으로 서로 다른 손실을 같은 자루에 담을 수 없었다.
허도원은 자기 아들의 치료가 계속되자 오히려 심문에서 더 오래 침묵했다. 약이 끊길까 두려워 거짓말했다는 변명을 잃었기 때문이다. 사흘째 그는 남궁진석 외에 장부를 보던 경비 하나가 숫자를 고칠 종이칼을 건넸다고 말했다. 아이를 인질로 잡지 않아야 진술의 책임도 온전히 그의 것이 되었다.
그 경비는 자신이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고 했다. 공개 심리에서 연비화는 옛 기록국에서도 같은 말이 쓰였다고 증언했다. 지시는 위에서 왔어도 누가 문을 열고, 누가 칼을 건네고, 누가 숫자를 썼는지 각각 남겨야 했다. 죄를 한 원로에게 몰아넣으면 다음 사람은 다시 명령 뒤에 숨을 수 있었다.
남궁세는 사본 보관 규칙을 바꾸는 안을 냈다. 가문 사람 둘만 들어가던 봉함고에 피해자 대표의 상시 열람권을 두고, 습기 확인 같은 모호한 사유는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열람할 때마다 원본을 펼치기 전과 후의 수량, 먹색, 봉함 상태를 따로 기록하게 했다. 자기 가문을 믿어 달라는 요청 대신 믿지 않아도 확인할 장치를 내놓았다.
최 노파는 피해자 대표가 항상 옳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고 지적했다. 대표 임기는 세 달로 하고 같은 집안 사람이 연이어 맡지 못하게 했다. 당사자가 원하면 자기 몫의 기록만 따로 확인할 길도 만들었다. 대표 한 사람이 유족 전체의 뜻을 대신 소유하지 않도록 작은 문을 더 냈다.
정정표 사본을 운하촌에 붙이는 날, 글을 읽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진도명이 한 줄씩 소리 내어 읽었다. 수량뿐 아니라 잘못을 만든 사람과 되돌리는 시한도 읽었다. 남궁세는 사람들 앞에서 고개를 숙였지만 용서를 청하지 않았다. 지급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사과를 결말처럼 내놓고 싶지 않았다.
첫 곡식 수레가 도착했을 때 가마니마다 `남궁의 하사`가 아니라 `운하촌 미지급분`이라는 패가 달렸다. 주민들은 패를 떼지 않고 창고에 넣었다. 누구의 선의로 받은 것이 아니라 이미 자기 것이었던 몫이라는 흔적이었다. 남궁세는 그 글을 보고도 가문 이름을 덧붙이지 않았다.
청문으로 돌아온 다섯 사본의 삼백열두 번째 줄은 여전히 서로 달라 보였다. 남궁 본가 것에만 검은 취소선과 붉은 정정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그 차이는 은폐가 아니라 발견된 잘못의 자리였다. 담소하는 정정표를 빈 벽에 붙였다. 문을 연 공로자 이름보다, 지워졌던 열 사람이 먼저 읽히도록 가장 위에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