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문 사무방 문틈으로 들어온 것은 칼끝이 아니라 누런 봉투였다. 바깥에는 첫눈이 내리고 있었고, 운교객잔 처마 밑에는 젖은 짚신 열 켤레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담소하는 봉투를 집기 전에 문밖 발자국부터 살폈다. 눈 위에는 작은 신발 자국 하나와 수레바퀴 자국이 겹쳐 있었다.
봉투 앞면에는 받는 사람 이름이 없었다. 대신 `돌아오지 않은 열일곱 이름을 맡은 문`이라고 적혀 있었다. 글씨는 반듯했지만 마지막 획마다 먹이 번졌다. 추운 데서 얼어붙은 붓을 억지로 움직인 흔적이었다. 담소하는 맨손으로 봉함을 뜯지 않고 진도명을 불렀다.
진도명은 새 청문에서 가장 느리게 걷는 사람이었다. 지팡이를 짚고 마구간 사무방까지 오는 동안 묘련이 먼저 따뜻한 물과 얇은 장갑을 가져왔다. 연비화도 안쪽 탁자에서 일어나 봉투와 두 걸음 거리를 두었다. 과거 기록국에서 쓰던 봉함과 다른지 묻자 그녀는 눈으로만 테두리를 훑었다.
“밀랍이 아니라 쌀풀입니다. 기록국은 급한 문서에도 검은 밀랍을 썼어요.” 연비화는 손을 대지 않았다. “이 봉투는 숨기려는 사람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이 봉한 겁니다. 다만 가난하다는 것과 믿을 만하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죠.”
입회자는 네 사람이 됐다. 진도명이 봉투 모서리와 수신 문구를 적고, 묘련이 쌀풀을 미지근한 김으로 불렸다. 담소하는 작은 칼로 종이를 베지 않고 붙은 면만 떼었다. 안에서는 종이 세 장과 소금가루 한 줌이 나왔다. 소금은 회색이었고 모래가 섞여 있었다.
첫 장에는 `하진`, `목이`, `소두`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모두 회당의 미확인 명부에 있는 사람들의 가명이었다. 세 이름 아래에는 강서 염전의 창고 번호와 다음 보름에 황주로 오는 곡물선 시간이 쓰여 있었다. 마지막 줄은 다른 필체였다. `찾았다고 먼저 떠들면 세 사람은 다시 사라진다.`
담소하의 손끝이 종이 가장자리에서 멈췄다. 세 사람이 살아 있다는 말만 믿으면 당장 말을 달리고 싶었다. 그러나 살아 있는 사람을 찾았다는 소문은 가족보다 장사꾼과 옛 기록국 잔당에게 먼저 닿을 수 있었다. 그는 종이를 접지 않은 채 묘련에게 소금을 봐 달라고 했다.
묘련은 소금 한 알을 혀에 대지 않았다. 물에 풀어 가라앉는 흙과 냄새를 살폈다. “강서 큰 염전 소금은 아니야. 바닷물보다 우물 염수가 많은 작은 염막에서 나오는 색이야. 그리고 약초 찌꺼기가 섞였어. 상처를 씻고 남은 물을 같은 솥에서 졸인 것 같아.”
백천리는 점심 무렵 돌아왔다. 그는 봉투를 보자마자 길을 나서자고 했지만 담소하는 수레바퀴 폭부터 재게 했다. 객잔 앞에 멈춘 수레는 상단의 큰 수레가 아니라 채소 장수의 외바퀴 손수레였다. 문을 밀어 넣은 아이도 먼 길을 온 사람이 아니었다. 누군가 황주 안에서 마지막 전달만 시킨 셈이었다.
노경천은 호송 기록을 펼쳐 지난 닷새 동안 들어온 채소 수레를 찾았다. 예전 같으면 혼자 장터를 돌았겠지만 그는 감독 서리에게 먼저 동행을 청했다. 담소하는 그 짧은 요청을 듣고도 아무 말하지 않았다. 달라진 선택은 칭찬보다 반복으로 확인해야 했다.
해 질 무렵, 채소 장수의 딸이 객잔에 다시 왔다. 열 살쯤 된 아이는 문 앞에서 겁먹은 눈으로 뒤를 돌아봤다. 묘련은 질문부터 하지 않고 뜨거운 팥죽을 내밀었다. 아이는 반 그릇을 비운 뒤에야 서문 빨래터에서 모르는 할머니가 동전 두 닢과 봉투를 줬다고 말했다.
“그 할머니 얼굴을 그릴 수 있겠니?” 진도명이 물었다.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얼굴은 천으로 가렸어요. 그런데 손가락이 두 개 없었어요. 그리고 자꾸 하진 오라버니가 밥을 먹느냐고 물었어요.” 하진의 명부에는 누이도 어머니도 없었다. 가족관계 자체가 지워져 있었다.
담소하는 생존 표시를 명부에 쓰지 않았다. 세 이름 옆에 `봉투 제보, 미확인`이라고만 적고 봉투의 소금과 전달 경로를 따로 봉했다. 가족들에게도 같은 문장을 보냈다. 희망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 확인되지 않은 희망이 또 다른 칼이 되지 않게 하는 일이었다.
그날 밤 일행은 곡물선을 덮칠 계획이 아니라 맞이할 계획을 세웠다. 백천리는 부두 바깥길을 보고, 노경천과 감독 서리는 서로 떨어지지 않기로 했다. 연비화는 가명과 옛 운송 번호를 대조하고, 묘련은 신원을 밝히고 싶지 않은 사람을 위한 별도 진료방을 준비했다. 담소하는 세 사람을 데려오는 것보다 먼저 물을 질문을 종이에 썼다.
`당신은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고 떠날 권리가 있습니다.` 그 아래에는 `가족에게 무엇까지 알려도 됩니까`라고 적었다. 담소하는 마지막으로 자기 이름을 쓰지 않았다. 청문의 도장도 찍지 않았다. 답을 요구하는 편지가 아니라 선택을 돌려주는 빈칸이어야 했다.
진도명은 종이 세 장의 가장자리를 포개 보다가 한 장만 칼로 잘린 것이 아니라 손으로 찢겼다고 했다. 찢긴 결은 오래된 장부에서 떼어 낸 종이와 같았고, 뒷면에는 희미한 곡식 수량이 비쳤다. 연비화는 운송 번호를 가린 채 옛 사본과 대조했다. 봉투를 보낸 사람이 새 종이를 구할 수 없는 처지이거나, 일부러 기록국 장부 조각을 증거로 보낸 것이었다.
백천리는 곡물선 시간을 그대로 믿지 말자며 사흘치 물때를 확인했다. 적힌 시각에는 큰 배가 부두에 닿을 수 없었고, 작은 나룻배만 갈대 수로를 지날 수 있었다. 덫일 가능성이 커졌지만 동시에 보름이라는 말이 날짜가 아니라 창고 교대 암호일 수도 있었다. 일행은 확신 하나를 세우는 대신 가능한 뜻을 셋으로 나눴다.
채소 장수의 딸은 집으로 돌아가면 할머니를 다시 알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담소하는 아이를 데리고 빨래터를 돌자는 말을 삼켰다. 기억을 확인한다는 명목으로 위험한 사람 앞에 다시 세우는 것은 증언을 이용하는 일이었다. 그는 아이와 어머니에게 위험을 설명하고, 원할 경우 보호받는 곳에서 그림과 목소리만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아이의 어머니는 처음에는 돈을 받았으니 끝까지 도와야 한다고 딸을 다그쳤다. 묘련은 동전 두 닢을 탁자에 놓고도 돌려주라고 하지 않았다. 전달 일을 했다는 사실과 추가 위험을 감수할 의무는 별개라고 설명했다. 아이는 빨래터에 가지 않고, 할머니의 잘린 손가락이 오른손이었다는 사실만 스스로 덧붙였다.
노경천은 황주 손수레 조합에서 바퀴 자국을 찾았다. 같은 폭의 수레가 마흔두 대나 되어 특정할 수 없었지만, 한 바퀴 테두리에 박힌 삼각 못이 눈 자국과 맞았다. 수레 주인은 그날 빈 채로 빨래터에 두었고 누가 썼는지 보지 못했다고 했다. 노경천은 그를 공모자로 묶지 않고 수레 대여 시각만 받았다.
묘련은 별도 진료방 안에 퇴로를 두 개 만들었다. 생존자가 청문 사람을 믿지 못할 경우 객잔 주방을 거치지 않고 뒷골목으로 나갈 수 있었다. 방 안에는 이름표 대신 원하는 색의 나무패를 고르는 상자가 놓였다. 진료 내용과 신원 확인 문서는 서로 다른 서랍에 들어가도록 열쇠도 갈랐다.
연비화는 가명 셋을 소리 내어 읽다가 `소두` 옆 운송 번호가 한 획 모자란 것을 알아냈다. 잘못 쓴 것이 아니라 옛 기록국에서 생존 여부를 모를 때 일부러 끝획을 떼던 표시였다. 그녀는 그 관습을 예전에 알면서도 묻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담소하는 자책을 적는 대신 그 표시가 쓰인 다른 장부 목록을 요청했다.
출발 명단 끝에는 귀환 시각과 연락이 끊겼을 때의 행동도 적혔다. 한 조가 늦어도 다른 조가 임의로 구하러 들어가지 않고, 지정된 나루와 회당에 동시에 알리기로 했다. 사람을 찾으러 간 이들이 또 실종자가 되는 일을 막기 위한 약속이었다. 백천리는 답답해했지만 자기 지장을 가장 먼저 찍었다.
새벽이 되자 눈이 그쳤다. 누런 봉투는 증거함에 들어갔지만 소금 한 알은 흰 접시 위에 남았다. 묘련이 등불을 끄며 말했다. “살아 있으면 좋겠다.” 담소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우리가 좋다는 말을 그 사람들 대답보다 먼저 쓰지는 맙시다.” 문밖에서 첫 수레가 지나갔고, 바퀴가 새 눈 위에 아직 어느 이름도 아닌 길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