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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4-12화]

불씨는 사람 곁에

작성: 2026.08.30 18:40 조회수: 1
창작물 안내
[AI 생성물] 본 소설의 내용과 표지는 인공지능(AI) 모델을 통해 기획 및 작성된 허구의 창작물입니다.
본 작품은 무협 장르 창작물로, 등장하는 무공·문파·인물·사건은 모두 허구입니다. 작중 폭력 묘사는 장르 관습에 따른 것이며 현실의 폭력을 조장하지 않습니다.

운교객잔으로 돌아온 지 석 달째 되는 날, 담소하는 새벽 첫닭보다 먼저 눈을 떴다. 다락의 얇은 포대자루도, 낮은 천장도 예전 그대로였다. 달라진 것은 그가 왼손을 이불 밖에 내놓고 잤다는 사실뿐이었다.

우물까지는 여전히 마흔두 걸음이었다. 담소하는 오른발부터 세지 않았다. 졸린 채로 걷다 보니 어느 발이 먼저였는지도 몰랐다. 두레박 줄을 왼손으로 잡아 물을 길었다. 지나가던 행상 둘이 굳은살을 봤지만 누구도 그를 찾던 수배문을 떠올리지 않았다. 수배문은 회당 판정 뒤 모두 거둬졌다.

물항아리 세 개를 채우고 나자 묘련이 부엌문을 열었다.

"또 혼자 다 했어? 환자 물도 남겨야 한다고 했잖아."

"세 번째 항아리는 안 썼습니다."

"그건 국 끓일 물이야."

예전과 같은 잔소리였다. 담소하는 대꾸하지 않고 장작을 옮겼다. 묘련은 한숨을 쉬면서도 입꼬리가 조금 올라갔다.

객잔 옆 빈 마구간은 작은 사무방으로 바뀌었다. 문 위에 새 현판이 걸려 있었다. '청문' 두 글자뿐이었다. 검파라는 말도, 잔월이라는 말도 붙이지 않았다. 현판은 백천리가 깎고 진도명이 글씨를 썼으며, 묘련이 글자가 너무 크다며 두 번 다시 칠하게 한 물건이었다.

새 청문이 하는 일은 세 가지였다. 먼 길을 가는 증인을 호송하고, 여러 곳의 기록 사본을 보관하며, 문파 싸움이나 산적을 피해 달아난 사람이 머물 자리를 찾는 일이었다. 검을 배우러 오는 사람보다 편지를 맡기러 오는 사람이 더 많았다.

담소하는 장문이라 불리지 않았다. 문지기라는 호칭도 스스로 거절했다. 회당 명부에는 '증언 보호인 담소하'라고 적혔다. 청문의 중요한 결정은 묘련, 연비화, 유족 대표와 호송인들이 함께 정했다. 유일 생존자가 혼자 문을 소유하지 않기로 한 판정의 약속을 지키는 방식이었다.

연비화는 사무방 가장 안쪽 탁자에서 지워진 이름을 복원했다. 원본 장부를 늘 곁에 두지 않았다. 필요한 날에만 세 보관인의 봉인을 함께 풀었다. 평소에는 유족의 말과 지역 기록을 대조해 한 사람씩 제 이름을 돌려놓았다.

그녀에 대한 심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한 달에 두 번 회당에 나가 질문을 받고, 자기가 옮겨 적은 처분 명단의 가족을 만났다. 용서한 사람도 있었고 얼굴조차 보기 싫다는 사람도 있었다. 연비화는 어느 반응도 기록에서 빼지 않았다.

묘련은 객잔 부엌과 작은 진료방을 오갔다. 어머니의 약첩은 유리함 속에 모셔 두지 않았다. 낡은 장을 보호하는 새 표지를 달고 실제 치료에 계속 썼다. 다만 환자 이름과 사적인 사정은 별도 장부에 가명으로 적었다. 과거를 밝힌다는 이유로 새 사람의 비밀을 함부로 공개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노경천은 그날도 호송 일을 마치고 정오에 돌아왔다. 회당 감독 서리와 함께였다. 이동 기록과 만난 사람, 사용한 돈을 모두 적은 뒤에야 검을 풀었다. 독자 행동 제한은 아직 반년 남아 있었다.

담소하는 형에게 물 한 사발을 건넸다.

"다친 곳은요."

"없다. 이번에는 길이 지루할 만큼 평안했어."

"그게 좋은 호송입니다."

두 사람은 예전처럼 모든 것을 말하지는 못했다. 가끔 침묵이 길어졌고 사부 이야기가 나오면 공기가 굳었다. 그러나 노경천은 침묵을 이용해 계획을 숨기지 않았고, 담소하는 의심이 생기면 그 자리에서 물었다. 형제의 관계는 용서 한마디가 아니라 작은 확인들로 다시 이어졌다.

남궁세는 해 질 무렵 수레를 끌고 왔다. 수레에는 남궁 창고에서 보낸 쌀과 목재가 실려 있었다. 피해 배상 물품 목록과 사용처 공개표가 함께 붙었다. 남궁 임시 운영회는 아직 다투는 일이 많았고, 남궁현을 따르던 원로 일부는 남궁세를 배신자라 불렀다. 그는 그 말까지 회의록에 남겼다.

"새 가주가 될 생각은 없습니까?"

백천리가 술병을 흔들며 묻자 남궁세는 짐을 내리다 웃었다.

"문이 안에서 열리는 법부터 배운 뒤 생각하겠습니다."

백천리는 서쪽 보관처에서 가져온 사본 대조표를 내놓았다. 그는 칼보다 먹병을 더 자주 차게 됐다고 불평했지만, 다음 호송 길도 이미 받아 둔 상태였다.

진도명은 오래 걷지 못해 한 달에 한 번만 객잔에 왔다. 그날은 새로 복원된 이름 세 개를 들고 왔다. 마흔세 명 중 스물여섯 명의 행방이 확인됐고, 살아 있는 다섯은 가족과 연락이 닿았다. 남은 이름을 찾는 일은 몇 해가 걸릴지 몰랐다.

곽진해는 감찰 옥에서 공개 심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죄가 끝난 것도, 남궁현의 배상 절차가 완성된 것도 아니었다. 담소하는 완결을 모든 일이 사라지는 순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무도 마음대로 멈출 수 없는 과정이 생긴 것, 그것이 끝낼 수 있는 싸움의 형태였다.

저녁 장사가 시작되자 운교객잔은 금세 시끄러워졌다. 묘장덕은 쌀을 아끼라 잔소리하면서도 솥에 고기를 평소보다 많이 넣었다. 긴 탁자에 담소하, 묘련, 연비화, 노경천, 백천리, 남궁세, 진도명이 둘러앉았다. 회당 감독 서리와 피난길에 들른 모녀도 자리를 함께했다.

첫날 객잔에 왔던 태산검객 같은 손님 하나가 술이 미지근하다며 소리쳤다. 담소하는 예전처럼 반 보 물러서되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뜨거운 차는 드릴 수 있습니다. 행패를 부리시면 문밖으로 모시겠습니다."

손님이 담소하의 왼손과 허리의 검을 번갈아 보다가 자리에 앉았다. 묘련은 부엌에서 웃음을 참느라 국자를 떨어뜨릴 뻔했다.

밥상 한가운데에는 팥죽이 놓였다. 묘련은 팥이 묵어서 끓였다고 했고, 담소하는 이번에도 핑계인 것을 알았다. 연비화가 첫 숟가락을 뜨며 천천히 먹었다. 예전에 거래를 하러 왔을 때와 같은 속도였지만 지금은 달아날 문을 살피지 않았다.

노경천이 술잔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대신 숭늉을 따랐다. 담소하는 형의 선택을 묻지 않았다. 필요한 날에는 스스로 말할 것이다.

묘련이 담소하 앞에 밥그릇을 놓으며 말했다.

"내일부터 사무방 지붕 고쳐. 비 새."

"사람을 더 받으면 방도 모자랍니다."

"그러니까 네가 고치라고. 검으로 줄만 자르지 말고 망치도 좀 잡아."

담소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할 일이 있다는 말이 이상하게 좋았다. 원수를 쫓는 길이 아니라 지붕을 고치고 기록을 옮기고 사람을 맞을 하루였다.

식사가 끝난 뒤 그는 뒷마당으로 나왔다. 감나무 아래에는 예전에 부러뜨린 나뭇가지의 흔적이 없었다. 대신 어린 피난민 둘이 새 목검으로 기본 자세를 흉내 내고 있었다. 담소하는 칼을 가르치기 전에 물 긷는 법과 다친 사람을 부축하는 법부터 배우자고 했다.

하늘에는 이지러진 달이 걸려 있었다. 담소하는 잔월십삼식을 펼치지 않았다. 검을 뽑을 일이 없는 밤에는 뽑지 않는 것이 마지막 식의 또 다른 쓰임이었다.

부엌에서 묘련이 불렀다.

"소하야, 그릇 안 치워?"

담소하는 달에서 눈을 떼고 안으로 들어갔다. 긴 탁자 위에는 사람들이 먹고 남긴 그릇이 가득했다. 그는 왼손으로 첫 그릇을 들었다. 숨기지 않은 손이었다.

문밖 청문 현판 아래에는 아직 빈 못 하나가 남아 있었다. 언젠가 이곳을 거쳐 간 사람들이 지켜야 할 규칙을 함께 정하면 작은 판에 새겨 달 자리였다. 담소하는 자기 좌우명을 먼저 걸지 않았다. 새 문은 완성된 가르침을 내거는 곳이 아니라 들어오는 사람의 말로 계속 고쳐질 곳이었다.

아궁이 속 불은 크지 않았다. 솥을 데우고 젖은 옷을 말릴 만큼만 타고 있었다. 재 아래 남은 불씨는 홀로 빛나지 않았다. 밥 냄새와 사람 목소리 곁에서, 누군가 돌아올 문을 오래 따뜻하게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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