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세가의 정문은 검혼장 때보다 더 높아 보였다. 문 앞에는 남궁 검객 스무 명이 두 줄로 서 있었다. 남궁세가 맨 앞에 섰고, 그 뒤에는 오문 회당 서리 둘과 무림맹 감찰원 넷, 담소하 일행이 따랐다.
남궁세가 공동 영장을 펼쳤다. 문지기는 읽지도 않고 고개를 저었다.
"가주께서 외부인을 들이지 말라 하셨습니다. 도련님도 예외가 아닙니다."
"나는 오늘 도련님으로 온 것이 아니다. 남궁의 인장을 대조할 증인으로 왔다."
남궁세는 허리에서 가문의 명패를 풀어 문지기 앞에 내려놓았다. 남궁 이름을 버리는 동작이 아니라, 그 이름으로 문을 독점하지 않겠다는 표시였다. 그는 검도 함께 풀어 맡겼다.
문지기 뒤의 검객들이 웅성였다. 남궁세는 큰소리를 내지 않았다.
"문을 막으면 영장 불응까지 기록된다. 열면 안에서 무엇을 찾든 함께 확인할 수 있다. 어느 쪽이 남궁에 남을 선택인지 각자 정하라."
가장 나이 많은 문지기가 빗장을 풀었다. 다른 검객들은 칼을 뽑지 않았다. 거대한 문이 안쪽으로 열리며 검혼장까지 이어지는 돌길이 드러났다.
봉함고는 기록고 아래에 있었다. 남궁현이 담소하에게 일부 기록을 보여 줬던 방의 선반을 밀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왔다. 계단 끝 철문에는 새 인장 세 개와 뱀 문양 하나가 맞물린 자물쇠가 달려 있었다.
남궁세는 자기 손가락을 베어 피를 묻히려 했다. 가문 혈통을 확인하는 옛 장치라고 했다. 묘련이 손목을 붙잡았다.
"피까지 바칠 필요 없어요. 자물쇠 틈에 약재 진액이 굳어 있어요. 열로 녹이면 됩니다."
그녀는 등잔 기름에 소금을 섞어 금속을 데웠다. 굳은 진액이 풀리자 남궁세의 명패 없이도 톱니가 움직였다. 피로만 열린다는 규율은 누군가 문을 독점하려 만든 이야기였다.
철문 안에서 연기 냄새가 났다. 담소하가 문을 조금 열자 뜨거운 바람이 밀려 나왔다. 안쪽 서가에 이미 불이 붙어 있었다. 기록국 인원들이 영장보다 먼저 들어와 문서를 태우고 있었다.
"물길부터!"
묘련이 외쳤다. 지하 벽에는 화재를 막기 위한 수로가 있었지만 손잡이가 쇠사슬로 묶여 있었다. 담소하는 검을 뽑아 사슬을 한 번 쳤다. 끊어지지 않았다. 두 번째에는 칼날이 상할 각도였다. 그는 검을 거두고 남궁세와 함께 손잡이를 반대 방향으로 밀었다. 녹슨 걸쇠가 빠지며 천장 수로에서 물이 쏟아졌다.
노경천과 감찰원들은 기록국 인원들을 쫓지 않고 출구를 막았다. 검은 옷 둘이 불붙은 장부를 안고 달아나려 하자 연비화가 앞을 가로막았다.
"그 장부의 셋째 칸은 빈 종이예요. 진짜를 태우는 척 빠져나갈 길을 만드는 거죠."
그녀의 말대로 한 사내의 품 안에 작은 인장함이 숨겨져 있었다. 남궁현의 가주 인장, 유태문의 기록 수정 인장, 곽진해의 수령 표식을 한꺼번에 찍을 수 있는 모각 세트였다. 감찰 서리가 현장에서 모양을 대조했다.
담소하는 가장 안쪽 서가로 들어갔다. 물과 재가 발목까지 찼다. 청문이라는 글자가 적힌 붉은 봉투 하나가 불길 가장자리에서 말려 올라가고 있었다. 손을 뻗으면 잡을 수 있었지만 위에서 들보가 흔들렸다.
노경천이 옆에서 들보를 받쳤다.
"가져와. 나는 보이는 곳에 있다."
담소하는 젖은 천으로 봉투를 덮어 꺼냈다. 두 사람은 함께 뒤로 물러났다. 들보가 바로 앞에 떨어졌지만 누구도 다치지 않았다.
봉투 안에는 청문검파 제거 의뢰 원본이 있었다. 표면에는 남궁현의 인장과 날짜, 흑풍채 곽진해에게 지급할 금액이 적혀 있었다. 이유 항목에는 혈야맹 기록 유출 가능성, 연비화 및 암호 열쇠 회수라고 쓰여 있었다.
그 아래 덧붙인 쪽지는 유태문의 필체였다. 생존자가 확인되면 남궁 암부가 아닌 흑풍채 이름으로 처리하고, 압송 기록은 기록국이 회수한다. 남궁의 체면과 혈야맹 잔존망을 동시에 보존한다는 문장이 있었다.
남궁세는 원본을 읽다가 벽을 짚었다. 자기 가주가 명령했다는 사실을 짐작하는 것과 손글씨로 보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연비화는 그를 위로하지 않았고, 묘련은 앉을 의자만 가져다줬다.
서가 다른 칸에서는 위무강의 자복문을 찾으려 한 수색 명령과 노경천에게 건넨 후반부 죽피의 사본도 나왔다. 남궁현은 노경천을 회유하면서 동시에 기록국에 감시하게 했다. 누구도 온전히 같은 편으로 믿지 않은 흔적이었다.
감찰원은 문서마다 발견 위치와 물에 젖은 정도를 적었다. 연비화가 내용을 읽고, 남궁세가 인장을 확인하며, 회당 서리가 번호를 붙였다. 담소하는 칼을 들고 있었지만 문서에 손대지 않았다. 생존자의 손으로 찾았다는 사실보다 여러 눈으로 함께 확인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불이 완전히 꺼졌을 때 포로 중 하나가 유태문은 이미 황주 오문 회당으로 갔다고 말했다. 남궁현도 공개 심문에 출석하겠다며 아침에 본가를 떠났다고 했다. 둘이 함께 갔는지는 알지 못했다.
감찰 서리는 젖은 문서가 마르며 글씨가 번질 것을 걱정했다. 묘련은 약재를 말릴 때 쓰는 대나무 발을 가져오게 해 종이를 서로 닿지 않게 펼쳤다. 연비화는 읽을 수 있는 줄을 그 자리에서 소리 내고 두 서리가 각각 받아 적었다. 원본이 마르는 동안 생길 변화까지 기록에 남기는 작업이었다.
남궁세는 가문 곳곳의 문을 열어 하인과 서고지기가 자유롭게 나가도록 명했다. 조사라는 이름으로 집안 사람을 가두면 또 다른 침묵이 생긴다고 했다. 떠나는 사람에게는 이름과 맡았던 일만 묻고, 증언 여부는 회당에서 스스로 정하게 했다. 몇몇 하인은 처음으로 봉함고에 옮긴 상자의 날짜를 말하기 시작했다.
한 늙은 하인은 멸문 의뢰 봉투를 직접 옮겼다고 자청했다. 그는 봉투가 닫혀 있어 내용을 몰랐지만 남궁현이 인장을 두 번 찍은 시각과 유태문이 후문으로 들어온 날을 기억했다. 감찰원은 모른 내용을 추측하게 하지 않고 운반 경로와 본 사람만 그리게 했다. 그의 평범한 동선이 의뢰 원본의 발견 위치와 정확히 맞았다.
남궁세는 그 증언 때문에 하인을 벌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자기 권한으로 하지 않았다. 대신 회당 보호를 요청하고 임시 운영회가 보복 금지 조항을 채택하게 했다. 좋은 후계자의 선의보다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규칙이 오래갈 수 있었다.
"가주께서 왜 이제 와 출석을……"
남궁세가 중얼거렸다.
연비화가 젖은 명령서를 보며 답했다.
"기록으로 막을 수 없으면 말로 질서를 지켰다고 설득할 겁니다. 남궁현은 자기 죄를 죄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지상으로 올라오자 남궁 검객들이 마당에 모여 있었다. 남궁세는 의뢰 원본을 숨기지 않았다. 다만 멀리서 흔들어 보이며 선동하지도 않았다. 회당에서 누구나 확인할 수 있도록 봉인했다고 알렸다.
젊은 검객 하나가 물었다.
"그럼 우리는 이제 누구 명을 따라야 합니까?"
남궁세는 한참 생각한 뒤 말했다.
"오늘은 누구도 개인의 명을 따르지 마라. 문을 지키되 사람을 가두지 말고, 기록을 지키되 태우지 마라. 그 이상은 회당의 판단을 함께 듣자."
남궁의 문은 열린 채로 남았다. 담소하 일행은 의뢰 원본과 인장함을 들고 나왔다. 들어올 때 막아섰던 문지기가 이번에는 길을 비켰다. 허리를 굽히지는 않았지만 눈을 피하지도 않았다.
멀리 황주 쪽 하늘에서 회당 종이 울렸다. 남궁현이 도착했다는 세 번의 종이었다. 담소하는 청문의 멸문 의뢰가 든 봉인함을 서리에게 맡기고 걸음을 재촉했다. 이제 문서 뒤에 숨은 사람이 강호 앞에서 자기 논리를 말할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