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문 회당에는 문이 여섯 개였다. 다섯 문파 대표가 드나드는 문과 누구나 방청할 수 있는 남쪽 큰문이었다. 그날 아침에는 남쪽 문이 가장 먼저 열렸다. 포목상, 짐꾼, 장터 상인, 멸문당한 문파의 유족들이 긴 줄을 이루어 들어왔다.
회당 가운데에는 높은 단이 없었다. 증언하는 사람과 묻는 사람이 같은 높이에 앉도록 둥근 탁자만 놓였다. 연비화는 가림막을 치겠다는 서리의 제안을 거절했다. 얼굴을 숨기고 싶으면 스스로 결정하겠지만, 남궁이나 기록국이 자신을 숨긴 것처럼 보이게 두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남궁세가 자리는 비어 있었다. 그는 가문의 문을 열기 위한 회당 영장을 받으러 감찰원에 갔다. 남궁현의 자리도 비었다. 대신 가주 명의의 짧은 답신만 도착했다. 암부 장부는 위조됐으며 도망친 장부지기의 말은 믿을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연비화는 그 답신을 먼저 읽게 해 달라고 했다. 서리가 문장을 읽자 방청석 여기저기서 야유가 나왔다. 연비화는 손을 들어 소리를 가라앉혔다.
"저 말에는 사실도 있습니다. 나는 도망쳤고, 장부를 훔쳤습니다. 그리고 남궁 암부의 장부를 관리했습니다. 내가 쓴 기록 때문에 죽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 사실부터 말하겠습니다."
그녀는 자기 이름과 나이를 밝혔다. 여덟 살에 혈야맹 기록국에 들어가 글을 배웠고, 열한 살에 처분 명령을 받아 위무강과 탈출했다. 운교의 약방에서 치료받은 뒤 다시 남궁 행렬에 섞여 들어갔다. 그 선택이 어린아이의 온전한 판단이 아니었다는 것과, 그래도 자신이 기억하는 이유를 함께 말했다.
"밖에 남으면 나 하나는 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안으로 돌아가면 이름들을 지킬 수 있다고 믿었어요. 하지만 처음 몇 해 동안 나는 이름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시키는 대로 옮겨 적었고, 처분 명단의 길을 정리했습니다."
회당 서리가 날짜를 물었다. 연비화는 원본이 아닌 대조 사본에서 세 줄을 찾아 읽었다. 한 증인의 이동 경로, 한 상단의 비밀 지급, 청문검파 감시 명단. 그녀의 필체가 남아 있는 장에는 주홍색 표식이 붙었다.
방청석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그럼 당신도 살인자 아닌가!"
연비화는 고개를 피하지 않았다.
"그 질문을 피하려고 나온 게 아닙니다. 내가 칼을 들지 않았다는 말로 죽음에서 빠져나갈 수 없어요. 다만 내가 한 일을 밝히면, 같은 장부에 명령한 사람과 돈을 낸 사람과 실행한 사람도 함께 보입니다. 나 하나를 벌주고 장부를 닫지 말아 주십시오."
진도명이 들것에 기대 앉아 증언을 이었다. 연비화가 옮겨 적은 세 장의 원기록을 자기가 확인했고, 그 위에 유태문의 수정 인장과 남궁현의 지급 인장이 있었다고 했다. 그는 자기 역시 기록을 고친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묘련은 약첩의 필요한 장만 펼쳤다. 열한 살 여자아이의 자상 위치, 침묵독 증상, 치료 날짜, 반쪽 새 화인. 서리는 연비화의 오래된 흉터를 공개할 필요가 있느냐고 물었다. 연비화는 의녀인 묘련과 여성 서리 한 명에게만 확인을 맡겼다. 두 사람은 가림막 안에서 상처 위치를 대조하고 확인문만 밖으로 내보냈다.
"증거라고 해서 사람 몸을 구경거리로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묘련의 말에 회당 대표들이 동의했다. 방청석의 웅성임이 잦아들었다.
백천리는 세 보관처에서 가져온 필사본을 탁자에 나란히 놓았다. 날짜, 금액, 인장을 따로 적은 조각을 맞추자 원본 사본의 문장과 일치했다. 어느 한 사람이 나중에 꾸몄다면 서로 다른 지역의 종이와 먹, 봉인 시각까지 맞출 수 없었다.
남궁 측 서고지기가 반대 증인으로 나왔다. 그는 연비화가 암부 장부를 고칠 권한이 있었으므로 원본도 조작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연비화는 그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맞습니다. 그래서 내 말 하나로 믿어 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내가 고칠 수 없던 지급 창고의 물품표, 초소의 압송 기록, 남궁세의 인장 대조가 필요합니다."
그녀는 자기 증언의 약점을 스스로 적어 회당 서리에게 건넸다. 장부 관리 권한, 원본 접근 기간, 도망 이후 기록 공백. 믿어 달라는 호소보다 검증할 길을 내놓는 태도였다.
담소하는 방청석 맨 앞에 앉아 있었다. 청문의 생존자 자격으로 먼저 말하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거절했다. 오늘은 연비화가 자기 이름으로 서는 날이었다. 담소하의 슬픔이 그녀의 목소리를 덮어서는 안 됐다.
연비화는 마지막으로 청문 멸문 의뢰 장을 펼쳤다. 남궁현의 지급 인장과 곽진해의 수령 표식, 기록국의 수정 부호가 한 줄에 있었다. 그 아래에는 노경천과 담소하에 관한 감시 기록도 있었다.
"나는 이 장을 십 년 동안 지켰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정확히는 이 장을 이용해 내 목숨을 지켰고, 때로는 다른 사람보다 내가 먼저 살았습니다. 이제 내놓는다고 앞선 선택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녀는 붓을 들어 증언문 끝에 연비화 세 글자를 썼다. 혈야맹이 붙인 번호도, 남궁 암부의 직책도 덧붙이지 않았다.
회당 대표는 장부를 임시 증거로 채택하되 추가 대조가 필요하다고 선언했다. 연비화에게 면죄도 유죄도 그 자리에서 선고하지 않았다. 대신 증언자 보호와 조사 참여 권리를 보장했다. 그녀가 원한 것은 영웅의 칭호가 아니라 끝까지 말할 자리였다.
연비화는 보호를 받는 대신 어디에 머물지 스스로 고르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회당은 강제로 격리하지 않고 이동할 때 두 명의 호송인과 기록 서리를 붙이기로 했다. 감시와 보호의 경계가 흐려지지 않도록, 호송인은 그녀의 문서를 열 수 없고 서리는 치료 기록을 볼 수 없다는 제한도 명시했다. 연비화는 그 조건을 읽고 자기 손으로 동의 표시를 남겼다.
피해 유족에게도 질문을 맡기는 방식이 정해졌다. 분노한 사람이 연비화와 홀로 마주쳐 다치거나 다시 상처 입지 않도록, 질문은 서면으로 먼저 받고 원하면 같은 방에서 직접 읽게 했다. 연비화는 답하지 못하는 부분을 모른다고 쓸 권리와, 자기 심문에 필요한 장부를 열람할 권리를 받았다. 보호가 한쪽의 입을 막는 장치가 되지 않게 하려는 절차였다.
휴정 종이 울린 뒤에도 방청객들은 쉽게 일어나지 않았다. 아까 살인자라고 외친 중년 사내가 연비화 앞으로 왔다. 그의 형 이름이 처분 명단에 있었다. 그는 용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용서해 달라고 하지 않겠습니다."
연비화가 답했다.
"다만 형님의 원래 기록을 찾는 데 내가 아는 것을 전부 말하겠습니다."
사내는 한참 그녀를 보다가 이름이 적힌 쪽지를 놓고 돌아갔다. 관계가 풀린 것도, 상처가 닫힌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지워진 사람 하나를 다시 찾는 일이 시작됐다.
회당 밖으로 나오자 남궁세가 말을 달려 도착했다. 손에는 남궁 봉함고를 조사할 수 있는 공동 영장이 들려 있었다. 그 뒤로 무림맹 감찰 서리 넷이 따라왔다.
연비화는 자기 증언문 사본을 접어 품에 넣었다. 원본 장부는 다시 봉인했다. 담소하가 괜찮냐고 묻자 그녀는 잠시 생각한 뒤 말했다.
"괜찮지는 않아요. 그래도 내 이름을 내가 썼습니다. 오늘은 그걸로 됐어요."
회당 남쪽 큰문은 여전히 열려 있었다. 들어올 때 연비화는 그 문을 혼자 걸었지만 나갈 때는 묘련이 옆에 섰다. 담소하는 두 사람보다 반걸음 뒤에서 걸었다. 뒤는 숨는 자리가 아니라, 누군가 다시 입을 막으러 오는지 지키는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