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로 나루에 도착했을 때 강 위로 아침 안개가 낮게 깔려 있었다. 옛 창고 지붕은 물새 배설물로 희었고, 문은 반쯤 열려 있었다. 불 냄새는 나지 않았다. 대신 젖은 종이와 송진 냄새가 강바람을 타고 왔다.
담소하는 정문을 피해 강 쪽 벽을 따라 돌았다. 노경천은 포로 인계를 마친 뒤 합류했고, 남궁세는 상처 입은 팔을 몸에 붙인 채 걸었다. 묘련은 피가 다시 배어 나오면 돌아가겠다고 세 번 경고했다. 남궁세는 세 번 모두 고개를 끄덕였지만 돌아가지는 않았다.
창고 안에서 칼 가는 소리가 났다. 담소하가 문틈으로 들여다보자 흰 수염의 도객 하나가 숫돌 앞에 앉아 있었다. 백천리였다. 그는 칼날이 아니라 붓대를 숫돌에 문지르고 있었다.
"늦었네. 불 지르러 온 놈들은 어젯밤에 다녀갔어."
백천리는 뒤쪽 기둥을 턱으로 가리켰다. 검은 옷 사내 둘이 포승줄에 묶여 코를 골고 있었다. 둘 다 크게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장부는요?"
담소하가 물었다.
"어느 장부?"
백천리가 웃으며 창고 바닥을 발로 두드렸다. 널빤지 아래에서 빈 울림이 났다. 바닥을 들어 올리자 기름종이에 싼 얇은 책자들이 줄지어 나왔다. 같은 장부를 나눈 필사본이었다. 한 권에는 날짜만, 다른 권에는 금액만, 또 다른 권에는 인장 모양만 적혀 있었다.
"한 권을 빼앗으면 아무것도 모르고, 셋을 맞추면 한 줄이 되는 방식이지. 남쪽 사찰, 동쪽 염전, 북쪽 표국에도 같은 조각이 있어."
"누가 시켰습니까."
노경천의 물음에 백천리는 숫돌에서 붓대를 들었다.
"시킨 사람 없어. 부탁한 사람은 있었지."
창고 뒤쪽 어둠에서 비파 줄 하나가 울렸다. 연주라기보다 존재를 알리는 짧은 음이었다. 담소하는 그 소리를 기억했다. 정묵산 빈 서고에서 처음 마주친 여자가 기둥 뒤에서 걸어 나왔다.
연비화는 남궁 암부의 검은 옷도, 떠돌이 악사의 포도 입지 않았다. 빛이 바랜 회색옷에 머리를 단단히 묶었고, 등에 비파 대신 길쭉한 나무함을 메고 있었다. 눈 아래 피로는 더 짙어졌지만 미소는 없었다.
묘련이 가장 먼저 다가갔다. 반가움이나 원망을 말하기 전에 연비화의 손목을 잡고 맥을 짚었다. 연비화가 놀라 손을 뺄 듯하다가 그대로 두었다.
"갈비 아래 상처, 아직 아파요?"
연비화의 눈이 커졌다.
"그걸 어떻게……"
"우리 엄마가 치료했어요. 약첩을 찾았어요."
묘련은 더 묻고 싶은 얼굴이었지만 어머니의 편지를 떠올린 듯 손을 놓았다.
"왜 돌아왔어요? 은혜 갚으라는 말은 안 할게요. 그냥 당신 이유를 들을 거예요."
연비화는 한동안 강 쪽 열린 문을 바라봤다. 안개가 조금씩 걷히고 있었다.
"거래하러 객잔에 갔을 때는 살고 싶었어요. 그래서 장부를 값으로 내걸었죠. 담소하가 대답을 미루자 화가 났고, 동시에 부끄러웠어요. 내 목숨을 또 다른 사람의 문파 이름에 맡기려 했으니까."
그녀는 등에 멘 나무함을 내려놓았다. 자물쇠 대신 붉은 실 세 가닥이 묶여 있었다. 실을 하나씩 끊자 오래된 장부 한 권이 나왔다. 표지는 불에 그을렸지만 속지는 멀쩡했다. 첫 장에는 반달을 삼킨 뱀과 남궁의 새가 나란히 찍혀 있었다.
"그래서 사라졌어요. 내 목숨도, 이 장부를 내놓을 때도 내가 정하려고. 백천리 대협에게 조각을 나눠 달라 했고 나는 원본을 가지고 암부 안으로 돌아갔어요. 누가 어떤 기록부터 없애는지 보려고."
남궁세가 장부 앞에서 무릎을 굽혔다. 인장을 가까이 보려는 동작이었지만 가문의 죄 앞에 무릎을 꿇은 것처럼 보였다. 그는 남궁현의 인장을 확인하고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담소하는 연비화에게 죽간을 내밀었다. 세 글자가 드러난 장이었다.
"사부가 당신을 데리고 나왔다고 적었습니다. 열한 살 때였다고."
"구해 준 것도 맞고, 버려 둔 것도 맞아요."
연비화는 죽간을 만지지 않았다.
"위무강은 나를 남궁 행렬에서 끌어내려 했어요. 내가 거부했죠. 하지만 어른이라면 열한 살 아이가 위험 속으로 돌아가겠다는 말을 그대로 선택이라 부르면 안 됐어요. 그분도 나중에 그걸 알았을 거예요."
노경천이 고개를 숙였다. 연비화는 그를 오래 보지 않았다. 아직 그의 고백을 들을 자리가 아니었다.
그녀는 원본 장부를 펼쳤다. 청문검파 멸문 의뢰 아래 곽진해에게 지급된 금액과 남궁현의 인장, 암부 인원 명단이 있었다. 다른 장에는 혈야맹 시절 위무강의 이름도 있었다. 증인 세 명을 기록에서 지우는 결재에 위무강이 서명한 흔적이었다.
"이 장부는 남궁현만 무너뜨리지 않아요. 위무강도, 노경천도, 나도 깨끗하게 남겨 두지 않습니다."
연비화는 자기 이름이 있는 장을 펼쳤다. 암부 장부를 관리하면서 처분 명단 두 개를 옮겨 적었고, 한 차례는 남궁현의 지시로 증인의 이동 경로를 기록했다. 그 경로 끝에서 사람이 죽었다고 했다.
"몰랐다고 말할 수 없어요. 그때 나는 열여덟이었고, 살기 위해 시키는 대로 썼어요. 나중에 이름을 빼돌리고 장부를 복사한 일이 먼저 쓴 죽음을 지우지는 않아요."
묘련이 장부 옆에 깨끗한 종이를 펼쳤다.
"그럼 둘 다 적어요. 한 일을 빼지 말고, 그 뒤에 한 일도 빼지 말고."
연비화는 묘련을 바라보다가 처음으로 아주 작게 웃었다. 준비된 미소가 아니라 울음을 참다 잘못 나온 표정에 가까웠다.
백천리는 바닥의 필사본을 네 묶음으로 나눴다. 담소하는 원본을 자기가 들겠다고 하지 않았다. 누가 지킬지 먼저 물었다. 연비화는 원본은 자신이 들겠다고 했다. 백천리는 한 조각, 남궁세는 인장 대조본, 묘련은 약첩과 신원 기록을 맡았다. 노경천과 담소하는 아무 기록도 품지 않고 사람들의 앞뒤를 지키기로 했다.
분산 필사본마다 서로 다른 매듭과 일련 표시를 달았다. 백천리는 어느 조각이 어디로 가는지 전체 목록을 만들지 않았다. 한 사람이 붙잡혀도 모든 보관처가 드러나지 않게 하되, 오문 회당의 봉인 장부에는 조각이 존재한다는 사실만 남기기로 했다. 숨기기 위한 비밀과 되찾기 위한 분산은 목적부터 달랐다.
연비화는 원본 장부 첫 장 안쪽에 작은 문장을 새로 썼다. 이 장부를 발견한 자는 내용을 소유하지 말고 서로 다른 세 사람 앞에서 열 것. 과거 기록국은 발견한 사람이 곧 기록의 주인이 되는 구조였지만, 이제는 혼자 읽는 권한부터 없애려는 규칙이었다. 백천리는 그 문장을 필사본에도 같은 위치에 옮겼다.
"공개할 겁니까?"
남궁세가 연비화에게 물었다.
"내가 직접 읽을 거예요. 남이 나를 피해자나 배신자로만 부르기 전에."
연비화는 나무함을 다시 등에 멨다. 담소하는 그 선택을 막지 않았고 대신 호송 길을 물었다. 북쪽 큰길은 남궁 눈이 많고 강길은 혈야맹 잔당이 지켰다. 백천리가 황주 오문 회당을 제안했다. 다섯 문파와 상단이 공동으로 쓰는 공개 회당이라 한 집안이 문을 닫을 수 없다고 했다.
창고 밖에서 물새가 날아올랐다. 안개가 걷히며 강 맞은편 길이 드러났다. 그 길 끝에 검은 점 셋이 보였다. 추적자가 다시 오는 것이었다.
연비화는 원본 장부를 품에 안지 않고 등에 단단히 묶었다. 두 손을 비워 둔 채 말했다.
"이번에는 달아나지 않아요. 다만 여기서 싸우지도 않을 겁니다. 장부가 아니라 우리가 회당에 도착해야 하니까."
담소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불타지 않은 것은 종이만이 아니었다. 장부 속에서 지워진 이름들이 자기 목소리로 걸어 나갈 길이 이제 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