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세는 해가 완전히 진 뒤에 왔다. 약속대로 갓은 쓰지 않았고 검은 여관 주인에게 맡겼다. 다만 빈손은 아니었다. 남궁세가 문양이 찍힌 작은 등잔과 봉랍 한 조각을 들고 있었다. 죽간의 먹을 읽을 때 쓰는 물건이라고 했다.
담소하의 방에는 서안 하나뿐이었다. 묘련이 그 위를 깨끗이 닦고 약첩을 한쪽에 놓았다. 노경천은 문 가까이에 앉았고, 남궁세는 창문 쪽에 앉았다. 누구도 서로의 등을 맡기지 않는 자리였다. 담소하는 가운데에 죽간 묶음을 내려놓았다.
끈을 푸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낡은 대나무 조각들이 서로 스치며 메마른 소리를 냈다. 담소하는 남궁 기록고에서 세 번 읽었던 장을 펼쳤다. 위무강이 혈야맹을 떠난 날짜 아래, 칼끝으로 긁어낸 듯 흐려진 세 글자가 있었다.
"이름이 지워졌는데 어떻게 읽었소?"
남궁세가 물었다. 담소하는 죽간을 등잔 가까이 밀었다.
"먹은 긁어냈지만 대나무 결은 눌려 있습니다. 빛을 옆에서 비추면 획이 남아요."
묘련이 등잔 심지를 낮추고 남궁세가 가져온 봉랍을 불 아래 댔다. 녹은 밀랍의 연기가 죽간 위로 얇게 흘렀다. 눌린 홈에 그을음이 걸리자 세 글자의 윤곽이 천천히 떠올랐다. 첫 글자는 이을 연, 두 번째는 붉을 비, 마지막은 꽃 화였다.
"연비화."
담소하가 소리 내어 읽었다. 방 안의 공기가 멎었다. 묘련의 손이 등잔 옆에서 굳었다. 정묵산 빈 서고에 비파를 메고 서 있던 여자, 운교객잔으로 찾아와 장부와 목숨을 거래하던 여자의 얼굴이 네 사람 사이에 나타난 듯했다.
남궁세가 먼저 고개를 들었다.
"암부의 장부지기. 가주께서 이미 처리됐다고 했던 사람입니다."
"살아 있었소. 적어도 우리 객잔을 떠난 날까지는."
담소하가 말했다. 시선은 노경천에게 가 있었다. 형은 죽간이 아니라 바닥의 나뭇결을 보고 있었다. 손가락 끝으로 무릎을 한 번 눌렀다 놓는 동작이 보였다.
"형은 알고 있었죠."
노경천이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여관 아래층에서 술잔 부딪히는 소리가 올라왔다. 누군가 크게 웃었다. 이 방과 아무 상관 없는 웃음이 끝나고서야 형이 입을 열었다.
"이름은 알고 있었다. 살아 있는지는 확신하지 못했다."
"언제부터요."
"멸문의 밤 전부터."
담소하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분노가 치밀 것이라 생각했는데 먼저 온 것은 피로였다. 형이 숨긴 것이 하나 더 늘어난 게 아니라, 이미 늘어나 있던 것을 이제야 셌다는 피로였다.
노경천은 품에서 낡은 천 조각을 꺼냈다. 한때 흰색이었을 천에는 같은 세 글자가 연한 먹으로 쓰여 있었다. 그 아래에는 위무강의 손도장이 찍혀 있었다.
"사부님이 내게 맡겼다. 연비화가 살아 돌아오면 먼저 숨기고, 등에 남은 검결의 후반부를 넘겨받으라고. 그 아이는 혈야맹 기록을 읽는 열쇠를 외우고 있었고, 사부님은 그 열쇠를 소하 네 등에 나눠 숨겼다."
"사람을 열쇠라고 부르지 마세요."
묘련의 목소리가 칼처럼 들어왔다. 노경천이 그녀를 보았다. 묘련은 피하지 않았다.
"연비화는 객잔에서 밥을 먹었어요. 잠도 잤고, 자기 목숨을 자기가 흥정했어요. 누가 남긴 물건이 아니에요."
"맞다."
노경천이 낮게 말했다. 변명하지 않는 대답이라 오히려 방이 더 조용해졌다.
남궁세는 죽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암부 장부지기라고 부른 입술이 굳어 있었다. 그는 연비화를 사람보다 직책으로 먼저 기억한 자신을 알아챈 듯했다.
"가주께서는 연비화가 장부를 훔쳐 달아났고, 노 대협이 숨겨 주었다고 했소. 그래서 담 공자의 죽간을 쫓으면 둘 다 찾을 수 있다고."
"당신 보고서는 아직 백지입니까."
담소하가 물었다.
남궁세는 품에서 종이를 꺼내 서안 위에 놓았다. 여전히 아무 글자도 없었다. 그는 남궁 명패도 그 옆에 올려놓았다.
"내가 본 것은 쓰겠소. 그러나 누구에게 보낼지는 결정하지 못했소."
담소하는 죽간의 다음 줄을 읽었다. 연비화의 이름 뒤에는 짧은 문장이 붙어 있었다. 어린 기록 서기를 빼내 북행한다. 운교의 의원에게 상처를 맡긴다. 추적이 붙으면 새 화인을 보여라. 마지막 네 글자에서 묘련이 몸을 앞으로 숙였다.
"운교의 의원."
묘련은 자기 약첩을 급히 펼쳤다. 마지막 장 귀퉁이에 찍힌 새 화인을 죽간 옆에 맞댔다. 남궁 명패의 새와 모양은 닮았지만 날개 방향이 반대였다. 남궁의 새가 아래를 내려다본다면 약첩의 새는 날개를 펴고 밖으로 향했다.
"엄마가 이걸 찍은 게 아니었어. 보여 받은 거야. 도망치는 사람이 도움을 청할 때 쓰라고."
그녀는 페이지를 빠르게 넘겼다. 해독 기록 사이에 날짜 없이 적힌 처방 하나가 있었다. 어린 여자아이, 갈비 아래 자상, 단향 냄새, 말을 못 하게 하는 독. 묘련은 그 줄을 손끝으로 짚었다. 손이 처음으로 떨렸다.
"어머니가 연비화를 치료했어."
노경천이 죽간을 보며 눈을 감았다. 그에게도 처음 맞춰지는 조각이었다. 담소하는 천 조각과 죽간, 약첩을 한 줄로 놓았다. 사부가 숨긴 이름과 형이 품은 명령과 묘련 어머니의 손이 같은 서안 위에 모였다.
"연비화는 장부를 주는 대신 살려 달라고 했습니다. 나는 답을 미뤘고, 그 뒤로 그 사람은 사라졌어요."
담소하는 자기 잘못도 그 줄 위에 놓았다. 선택을 미룬 동안 누군가 또 위험해졌을 수 있었다. 그러나 후회만으로 사람을 찾을 수는 없었다.
남궁세가 명패의 뱀 표식을 짚었다.
"이 표식을 쓰는 봉함고가 남궁 본가 지하에 있소. 가주도 직접 들어가는 걸 본 적이 두 번뿐이오. 연비화가 원본 장부를 가져갔다면 그곳의 사람들이 먼저 움직였을 겁니다."
"그럼 찾는 길은 둘입니다."
묘련이 약첩을 덮었다.
"연비화가 지나간 치료 흔적을 따라가거나, 연비화를 찾는 사람을 거꾸로 따라가거나."
담소하는 남궁세에게 백지 보고서를 돌려주었다.
"한 줄만 쓰시오. 죽간에는 이름이 없었다고. 거짓말의 값은 나중에 우리에게 받으십시오. 그 사이 우리는 약첩의 길을 따라갈 겁니다."
남궁세는 붓을 들었다. 첫 획을 긋기까지 오래 걸렸다. 죽간에서 확인할 이름 없음. 그 한 줄은 사실이 아니었다. 그러나 사람을 물건처럼 넘기라는 명령에서 벗어나는 첫 거짓말이었다.
밤이 깊자 네 사람은 서로 다른 방으로 흩어졌다. 묘련만 약첩을 품에 안고 남았다. 담소하는 죽간을 다시 묶으며 연비화의 이름을 속으로 한 번 더 불렀다. 이번에는 열쇠도, 장부지기도 아니었다. 살아서 찾아야 할 한 사람의 이름이었다.
그는 죽간 매듭에 새 실을 쓰지 않았다. 오래된 끈을 그대로 묶되 매듭 모양을 종이에 그려 두었다. 누군가 밤사이 펼치면 네 사람이 모두 알아볼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남궁세도 자기 명패 봉랍을 한 방울 떨어뜨렸다. 서로를 믿는다고 선언하는 대신, 서로가 확인할 수 있는 흔적을 함께 남겼다.
묘련은 어머니의 약첩에서 연비화 처방만 베껴 별지로 만들었다. 원본을 들고 다니다 잃으면 어머니의 다른 환자 기록까지 사라질 수 있었다. 담소하는 죽간도 필요한 장만 탁본해 원본과 나눠 두자고 제안했다. 남궁세는 남궁 종이를 쓰면 추적될 수 있다며 여관 주인이 장부에 쓰는 거친 종이를 사 왔다. 네 사람은 밤새 이름 하나를 지키는 방식부터 새로 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