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터를 벗어난 뒤에도 세 사람은 여관으로 곧장 돌아가지 않았다. 묘련이 먼저 염색집 처마 아래로 들어갔고, 노경천은 대추 장수에게 길을 묻는 척 반대편 골목으로 흘렀다. 담소하는 약재 꾸러미 하나만 든 채 북문 쪽으로 걸었다. 서로 눈짓도 하지 않았다. 장터에서 세 번이나 같은 갓을 본 뒤에는 말보다 보폭이 빨랐다.
담소하는 유리창 대신 놋거울을 파는 가판대 앞에서 멈췄다. 닦이지 않은 거울에는 사람의 얼굴이 일그러져 비쳤다. 채소를 안은 아낙, 짚신을 끄는 노인, 그리고 스무 걸음 뒤에서 검은 갓을 누른 사내. 사내는 담소하가 멈추자 옆 가판대의 붓을 살피는 척했다. 오른발 끝이 바깥으로 벌어져 있었다.
그는 품 안을 누르지 않았다. 죽간이 있다는 것을 상대에게 알려 주는 버릇은 한 번이면 충분했다. 대신 좌판의 작은 목경 하나를 들어 햇빛에 비췄다. 반사된 빛이 염색집 처마를 한 번 스쳤다. 묘련이 보기로 한 신호였다.
묘련은 쪽빛 천 한 필을 펼쳐 값이 비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상인이 발끈해 천을 잡아당기는 사이 파란 천이 골목 절반을 가렸다. 그 짧은 순간 담소하는 가판대 뒤로 몸을 낮춰 빠졌다. 갓 쓴 사내가 붓을 내려놓았다. 망설임은 한 호흡뿐이었다. 사내는 담소하가 사라진 골목으로 따라 들어왔다.
골목 끝에는 노경천이 있었다. 담소하의 보따리와 비슷하게 천으로 감싼 죽간 묶음을 허리에 찬 채였다. 형은 일부러 묶음의 귀퉁이를 드러내 보이고 북쪽 담을 넘었다. 갓 쓴 사내의 고개가 그쪽으로 돌아갔다. 담소하가 아니라 죽간을 따라가는 눈이었다.
사내가 담을 넘는 순간, 담소하는 염색집 뒤편 계단을 올라 지붕을 가로질렀다. 기와가 발밑에서 낮게 울렸다. 아래 골목에서는 묘련이 약재 꾸러미를 내려놓고 반대쪽 출구를 막았다. 그녀의 손에는 칼이 아니라 길고 단단한 절굿공이가 들려 있었다.
폐염색장 마당에서 노경천이 걸음을 멈췄다. 사방에 비를 맞아 빛이 빠진 천들이 걸려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회색 천막이 사람처럼 부풀었다. 갓 쓴 사내가 세 걸음 떨어진 곳에 섰다. 한쪽 손은 검 손잡이 가까이에 있었지만 잡지는 않았다.
"남의 짐을 오래 봤으면 값을 치러야 하지 않겠소."
노경천이 천 꾸러미를 바닥에 놓으며 말했다. 사내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때 담소하가 지붕에서 내려와 뒤를 막았다. 묘련도 골목 쪽 문에 절굿공이를 걸었다. 셋의 그림자가 천막 사이에서 사내를 둘러쌌다.
"누구를 따라왔습니까."
담소하의 물음에 사내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갓 아래 턱선이 햇빛에 드러났다. 검혼장 황토 바닥, 떨어진 검, 패배를 인정하며 고개를 숙이던 얼굴이 겹쳐졌다. 담소하의 입에서 이름이 먼저 나왔다.
"남궁세."
사내가 갓을 벗었다. 남궁현의 후계 검객은 검혼장에서보다 수척해 보였다. 오른쪽 관자놀이에 새로 굳은 상처가 있었고, 도포 소매 안쪽에는 남궁의 새 인장이 찍힌 끈이 매여 있었다. 묘련의 시선이 그 끈에 박혔다.
"싸우러 온 것은 아니오."
"싸우지 않는 사람은 사흘씩 남의 뒤를 밟지 않습니다."
묘련이 받아쳤다. 남궁세는 잠깐 그녀를 보다가 노경천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 눈에는 적의보다 확인하려는 기색이 짙었다.
"가주께서 확인하라 하셨소. 기록고에서 빠져나간 죽간이 누구 손에 있는지, 그 안의 세 글자를 누가 읽었는지. 특히 노 대협이 알고 있는지를."
노경천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담소하는 그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남궁세가 말한 세 글자와 품속 죽간의 이름이 같은 것임을 형은 이미 알고 있었다. 모른 척할 수 있는 침묵이 아니었다.
"죽간을 회수하라는 명도 받았습니까."
담소하가 물었다. 남궁세는 소매 속 끈을 풀어 바닥에 내려놓았다. 새 인장이 찍힌 명패였다.
"명은 받았소. 그러나 검을 뽑으라는 명은 받지 않았고, 내 손도 아직 결정하지 못했소. 그래서 얼굴을 보이지 않은 채 따라왔소. 당신들이 무엇을 하려는지 먼저 보려고."
"보고서에는 뭐라고 썼죠?"
묘련이 물었다.
"아직 보내지 않았소."
남궁세는 허리 뒤에서 접힌 종이를 꺼냈다. 백지였다. 한 줄도 적히지 않은 종이가 바람에 펄럭였다. 담소하는 그것이 결백의 증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아직 선택하지 않았다는 증거는 될 수 있었다.
노경천이 바닥의 명패를 발끝으로 뒤집었다. 뒷면에는 작은 뱀 하나가 반달을 삼킨 모양이 새겨져 있었다. 흑풍채 습격 때 객잔에 남았던 철편과 같은 형상이었다. 남궁세도 그 표식을 처음 본 듯 눈썹을 좁혔다.
"남궁의 명패에 왜 이게 있지?"
"가주 직속 명령에는 원래 없는 표식이오. 서고 안쪽 봉함에서 가져온 명패라 들었소."
묘련이 절굿공이를 문에서 빼지 않은 채 말했다.
"그럼 따라온 사람도, 따라오게 한 사람도 자기가 누구 손을 빌리는지 다 아는 건 아니겠네요."
담소하는 남궁세의 검을 보았다. 검혼장에서 자신을 향했던 칼이었다. 지금은 칼집에 잠겨 있었다. 그는 길을 비키지 않고 말했다.
"오늘 밤 여관으로 오시오. 갓은 두고. 죽간은 우리가 함께 펼칠 겁니다. 거기 적힌 이름을 형도, 당신도, 묘련도 같은 자리에서 보게 하겠습니다. 다만 그 뒤에 어느 쪽 문으로 나갈지는 스스로 정하십시오."
남궁세는 한참 담소하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검혼장에서 패배를 인정했을 때와 비슷했으나 이번에는 더 오래 걸렸다. 그는 빈 보고서를 접어 품에 넣고 갓을 바닥에 놓았다.
묘련은 바닥의 갓을 뒤집어 안쪽 땀자국과 수선한 실을 살폈다. 사흘 동안 같은 물건을 쓴 흔적이 분명했다. 남궁세가 다른 미행자를 대신 세운 것이 아니라 직접 세 사람의 뒤를 밟았다는 뜻이었다. 그는 변명 대신 추적한 날짜와 장소를 백지 보고서 뒷면에 적었다. 주막, 갈림길, 약재 장터. 담소하는 세 사람의 기억과 맞는지 하나씩 확인했다. 사과보다 먼저 사실을 맞추는 일이 필요했다.
남궁세는 자신 말고도 반나절 간격으로 따라온 그림자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남궁 암부 복장이 아니었고, 자신이 방향을 바꾸면 오히려 죽간 쪽 지름길을 택했다. 미행자를 붙잡았다고 안심하는 순간 다른 눈을 놓칠 수 있었다. 담소하는 갓을 증거로 챙기지 않고 남궁세에게 돌려주었다. 다음에 쓸 때는 숨기기 위한 물건이 아니라 햇빛을 가리는 물건으로만 쓰라고 했다.
묘련은 남궁세에게 오른발을 다친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검혼장 수련 중 발목을 접질린 뒤 남궁 보법의 바깥 디딤으로 버텨 왔다고 답했다. 작은 부상을 숨긴 습관이 사흘간의 미행을 드러낸 셈이었다. 묘련은 걸음 하나에도 지나온 일이 남는다며, 앞으로 사실과 다른 보고를 쓰더라도 자기 몸까지 거짓말해 줄 거라 믿지는 말라고 했다. 남궁세는 그 말을 백지 가장자리에 적었다.
담소하는 자신도 왼손을 감추려고 오른손으로 삼 년을 일했던 일을 떠올렸다. 숨길수록 몸에는 다른 흔적이 생겼다. 미행자를 알아낸 것은 뛰어난 무공이 아니라 세 사람이 서로 다른 흔적을 기억했기 때문이었다. 얼굴을 본 담소하, 발을 본 묘련, 죽간을 향한 시선을 본 노경천. 하나만 빠졌어도 남궁세를 놓쳤을 것이다.
세 사람이 염색장을 나설 때 노경천만 잠시 뒤에 남았다. 담소하는 골목 모퉁이에서 돌아봤다. 형은 반달을 삼킨 뱀 명패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있었다. 그 표식을 모르는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담소하는 형이 따라오기를 기다리지 않았다. 오늘 밤 죽간이 열리면, 형의 침묵도 함께 열릴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