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오전, 도현우는 자기 명함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한참 바라봤다. 업무용 번호가 인쇄돼 있다는 사실과 그 번호가 직장 게시판에 계속 올라가도 된다는 동의는 같은 문장이 아니었다.
서아라는 감사 지원 때 보았던 일반 안내문 양식을 공식 운영 담당자에게 문의했다. 특정 직원의 상담 여부는 묻지 않고, 외부 상담 연락처를 게시할 때 필요한 승인과 개인정보 항목만 확인했다.
운영 담당자는 회사 복지정보 게시판이 의무 프로그램이 아니며, 외부 연락처 제공자는 배포 기간과 대상 범위를 동의해야 한다고 답했다. 기존 안내문에는 그 기록이 없었다.
현우는 오진수에게 안내문을 당장 지우라고 하지 않고, 담당 부서가 새 동의를 받기 전까지 게시를 중지해 달라는 요청서를 보냈다. 제목과 업무용 번호 외에 자신의 경력이나 상담 평가 문구를 새로 보태지 말라고 했다.
"꼼꼼하다는 말도 빼요?" 민재가 물었다.
"그건 누군가의 경험이지 모든 상담에서 확인된 품질 표시가 아니야. 안내문에는 상담 범위와 직접 연락 방식만 있으면 돼."
아라는 소개 절차 표를 만들었다. 첫 칸은 소개자의 역할이었다. 당사자에게 현우의 업무용 연락처를 전달할 수 있지만, 상대의 번호를 현우에게 넘기려면 명시적인 동의가 필요했다.
두 번째 칸은 소개받은 사람의 선택이었다. 직접 연락하지 않으면 상담은 시작되지 않는다. 안내문을 봤다는 이유로 잠재 고객 목록에 이름을 넣지 않는다.
세 번째 칸은 결과 비공유였다. 소개자는 상대가 상담했는지, 계약했는지, 무엇을 물었는지 받을 수 없다. 당사자가 구체적인 범위를 정해 요청한 경우에만 그 범위에서 확인한다.
현우는 기존 소개 건을 이 기준에 맞춰 점검했다. 박미경·오진수·강준혁·임도현은 모두 자신이 직접 연락했다. 그들의 번호가 김정호나 오진수에게서 현우에게 먼저 넘어온 기록은 없었다.
다만 예약 시스템의 소개자 칸에는 김정호 이름이 계속 붙어 있었다. 상담자가 그 이름을 보면 결과를 알려 줘야 할 것처럼 느낄 수 있었다. 현우는 소개 경로와 정보 공유 권한을 분리하는 칸을 추가했다.
"소개자 이름을 아예 지우면 경로를 못 보잖아." 아라가 말했다.
"경로는 남기고 결과 공유 권한 없음이 같이 보여야 해요. 소개받았다는 사실이 동의 범위를 넓히지 않게."
두 사람은 기존 활성 건을 당사자별로 확인하기로 했다. 확인 연락 자체가 새 권유가 되지 않도록 상담 결과가 아니라 연락 방식과 후속 연락 의사만 물었다.
첫 번째는 윤상철이었다. 다음 달 다시 만나자고 했지만 구체적인 일정이 잡히지 않은 채 시간이 흘렀다. 현우는 현재 검토를 계속할지, 필요한 때 직접 연락할지 선택할 수 있는 짧은 메시지를 보냈다.
윤상철은 한 시간 뒤 전화했다. "정리해 준 자료는 갖고 있습니다. 지금은 새로 진행할 생각이 없고, 필요하면 제가 연락할게요. 정호한테 결과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현우는 답했다. "알겠습니다. 추가 권유 연락은 멈추고 자료 보관·삭제 기준은 안내드리겠습니다. 소개자인 김정호 고객님에게 상담 여부나 선택을 전달하지 않겠습니다."
윤상철은 마지막으로 물었다. "제가 다시 연락하면 처음부터 또 설명해야 합니까?"
"보관기간 안에 남아 있는 본인 확인 자료가 있으면 동의를 다시 확인하고 이어 볼 수 있습니다. 보관이 끝났거나 정보가 바뀌면 새로 확인해야 합니다."
그는 알겠다고 하고 통화를 마쳤다. 현우는 열린 약속을 계약 가능성으로 남겨 두지 않고 '현재 검토 종료, 당사자 재연락 시 재개'로 바꿨다.
박미경에게는 기존 계약 정리 요청의 후속 연락 범위가 남아 있었다. 그는 문서가 준비되면 한 번 연락받고 싶다고 답했다. 그 외 상품 안내는 요청하지 않았다.
강준혁은 비교 자료 전달 한 번, 임도현은 공식 문의 결과 전달 한 번에 동의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일정이나 결과를 현우가 확인해 주는 데 동의하지 않았다.
오진수는 자기 상담 결과뿐 아니라 자신이 소개한 동료의 결과도 묻지 않겠다는 확인을 보냈다. 직장 단체방에는 당사자끼리 상담 내용을 공유하지 말라는 명령 대신, 각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결과는 본인에게만 간다는 안내를 올렸다.
민재가 말했다. "사람들끼리 자기가 말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잖아."
"맞아. 당사자가 자기 경험을 말하는 건 자기 선택이야. 우리가 소개자에게 자동으로 알려 주거나 서로의 파일을 확인해 주지 않는 게 우리 경계지."
안내문 새 초안에는 이름과 업무용 연락처, 상담 가능 범위, '원하는 사람이 직접 연락'이라는 문장만 있었다. 계약 혜택이나 회사 추천, 동료 평가 문구는 없었다.
현우는 그 문장 옆에 '당사자 직접 연락'이라고 운영 기준을 명시했다. 소개자가 상대의 번호를 대신 건네거나 예약을 확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상담을 원하는 사람이 자기 시각과 채널을 골라 문을 여는 절차였다.
현우는 배포 범위를 해당 회사 게시판 한 곳, 기간을 한 달로 제안했다. 연장하려면 다시 확인하고, 문서를 다른 단체방에 옮기는 것은 별도 동의를 받도록 했다.
"업무용 번호인데 너무 까다로운 거 아닐까?" 권태수가 말했다.
"번호가 공개돼도 누가 어떤 맥락으로 추천하는지는 상담 기대와 개인정보 흐름에 영향을 줍니다. 범위를 정하면 오히려 소개받은 사람이 의무 상담으로 오해하지 않습니다."
권태수는 상담 건수가 줄 수 있다는 말을 하려다가 멈췄다. 아라는 소개 수와 동의 기록을 같은 실적표에 넣지 말자고 했다. 현우는 그 의견을 운영 회의 안건으로 남겼다.
오후 세 시, 회사 담당자가 기존 안내문 게시 중지와 새 문안 검토를 확인했다. 기존 게시물의 열람자가 누구였는지 개인별 추적은 하지 않았다. 필요한 것은 향후 연락과 배포 경계를 세우는 일이었다.
현우는 자신의 동의서에 서명했다. 업무용 번호, 배포 게시판, 한 달, 기존 계약 정리 상담 범위. 서명은 회사 직원들의 상담 동의가 아니라 자기 연락처 배포 범위에 관한 것이었다.
서아라는 소개 접수 화면을 수정 요청했다. '소개자', '연락처 전달 동의', '결과 공유 동의'를 따로 두고 결과 공유 기본값은 없음으로 했다.
"없음도 기본 답이면 문제 아니에요?" 민재가 웃으며 물었다.
아라가 답했다. "권한은 동의가 확인되기 전에는 없는 게 기준이야. 고객 사실을 추정하는 기본값과는 다르지만, 화면에는 왜 없는지 설명을 붙여야 해."
현우는 그 차이를 기록했다. 고객의 직무 사실은 미확인으로 두고, 개인정보 공유 권한은 동의 전에는 허용하지 않는다. 빈칸 하나에도 성격이 달랐다.
퇴근 전 윤상철 상태 변경이 완료됐다. 후속 상담 알림이 사라지고, 재연락은 당사자가 시작할 때만 열리도록 표시됐다. 소개자에게 가는 알림은 생성되지 않았다.
현우는 김정호에게 윤상철의 선택을 말하지 않았다. 김정호의 옛 상담 파일도 열지 않았다. 소개의 출발점이었던 사람에게 결과를 돌려주는 것이 신뢰를 갚는 방식은 아니었다.
새 안내문은 아직 게시되지 않았다. 담당 부서 승인과 기간 설정이 남아 있었다. 현우는 그 미결 상태를 숨기지 않고 다음 확인일을 적었다.
소개가 건너가는 거리는 짧을수록 좋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번호 하나가 빠르게 오가면 상담이 열린다고. 이제 현우는 그 짧은 거리에도 경계가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누가 번호를 건네고, 누가 직접 연락하고, 무엇이 다시 돌아가지 않는지까지 보여야 문이 제대로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