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오후 한 시, 도현우의 모니터에는 같은 이름이 붙은 파일이 네 개 떠 있었다. 이소진_상담예약, 이소진_상담요약, 이소진_비교안초안, 이소진_고객확인대기. 제목만 보면 무엇이 공식 서류이고 무엇이 내부 메모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현우는 파일을 열기 전에 종이에 네 칸을 그렸다. 고객이 직접 준 정보, 지점 내부 메모, 서명된 공식 서류, 외부로 전송된 기록. 마지막 두 칸은 현재 조회에서 비어 있었다.
민재가 옆 의자를 끌어왔다. "형, 아까 말한 체크리스트 찾았어. 예약 정보를 넣으면 요약 파일이 자동으로 만들어져. 그런데 배달 칸은 내가 누른 기억이 없어."
"기억으로 결론 내리지 말자. 네 계정이 마지막 저장자로 보이는지, 처음 생성한 사람인지도 다를 수 있어."
현우는 화면 기록을 같이 봤다. 파일 생성 시각은 전날 오후였고 마지막 저장자는 공용 상담준비 계정이었다. 민재가 예약 목록을 변환한 시각과 같았지만, 항목별 입력 이력은 별도 로그를 받아야 했다.
"공용 계정이면 누가 했는지 모르는 거 아니야?" 민재가 물었다.
"모른다는 사실도 기록해야지. 대신 변환 작업표와 로그인 기록, 서식 버전을 맞춰 보면 범위는 좁힐 수 있어."
둘은 먼저 이소진 파일의 상태부터 나눴다. 예약 문자에 이소진이 직접 적은 것은 꽃집 운영, 상담 희망 시간, 기존 계약 정리라는 세 가지였다. 배달 여부는 없었다.
내부 메모에는 매장 판매, 화훼 제작, 배달 없음이 적혀 있었다. 누가 어떤 질문을 했는지 출처 칸은 비어 있었다. 비교안 초안은 그 내부 메모를 불러왔지만 아직 상품 제안 화면으로 전송되지 않았고, 고객 확인 대기 표지만 붙어 있었다.
현우는 비교안 초안을 삭제하지 않았다. 파일 이름 앞에 '사용금지'를 붙이고 접근 권한을 읽기 전용으로 바꿨다. 삭제하면 잘못된 문구가 어디까지 복사됐는지를 거꾸로 확인할 수 없었다.
민재가 물었다. "고객한테는 외부로 안 나갔다고 하면 되는 거지?"
"현재 조회에서 전송 기록이 없다고 말해야 해. 다른 시스템까지 전부 없다고 단정하지 말고, 전송 로그 담당 회신을 받은 뒤 범위를 붙이자."
현우는 회사 내부 문의 창구에 조회를 요청했다. 상담 요약 파일 번호, 생성 시각, 사용된 서식 버전, 외부 전송 여부, 동일 서식으로 생성된 파일 수. 고객의 꽃집 주소나 주문 내역은 넣지 않았다.
오후 두 시, 지점장 권태수가 지나가다 두 사람의 화면을 봤다. "계약도 아닌 상담 준비 건인데 이렇게까지 해야 해? 오늘 상담 다시 잡아야 하지 않나."
현우는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고 답했다. "서명된 공식 서류는 아닙니다. 그래서 더 쉽게 지우고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내부 메모가 다음 비교안의 출발점이 되니 작성 경로를 먼저 확인하겠습니다."
권태수는 실적판 쪽을 한 번 보았다. "고객이 화난 건 아니고?"
"정정과 영향 범위를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감정 상태를 제가 대신 이름 붙이지는 않겠습니다."
말을 하고 나니 목이 말랐다. 현우는 종이컵을 들었지만 물은 이미 비어 있었다. 권태수는 오늘 안에 첫 회신을 보내고, 계약 진행을 조건으로 서두르지는 말라고 했다. 업무 지시인지 경고인지 애매했지만 현우는 답변 시각만 받아 적었다.
오후 세 시 십 분, 전송 로그 담당자가 1차 답을 보냈다. 해당 파일 번호로 보험사 심사나 청약 시스템에 전달된 이력은 없었다. 다만 지점 내부 비교안 생성 과정에서 요약 값이 한 번 불러와진 기록은 있었다.
현우는 이소진에게 전화를 걸기 전에 문장을 썼다. '공식 서류가 아닙니다'와 '중요하지 않습니다'가 섞이지 않게 했다. '전송되지 않았습니다'에도 조회한 시스템과 시각을 붙였다.
"이소진 님, 현재 확인한 범위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문제 문구는 서명된 신청서나 보험사 심사 자료가 아니라 지점 내부 상담 요약에 있었습니다. 오늘 세 시 기준 외부 청약·심사 시스템 전송 기록은 없습니다."
이소진이 바로 물었다. "그럼 아무 문제 없는 건가요?"
"그렇게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내부 비교안이 그 문구를 한 번 불러왔고, 같은 서식이 다른 파일에도 쓰였는지 확인 중입니다. 이소진 님 파일은 사용 중지 상태로 두었습니다."
"제가 전에 전화로 배달 얘기를 했을 수도 있잖아요. 통화는 확인했어요?"
현우는 예약 통화 녹취가 있는지부터 확인했다고 말했다. 녹취 동의가 된 업무 통화 한 건이 있었고, 상담 시간과 꽃집 운영 사실만 나왔으며 배달 질문은 없었다. 사적 휴대전화 통화는 없었다.
"그러면 제가 안 한다고 말한 것도 아니고, 누가 그냥 넣은 거네요."
"현재 확인으로는 이소진 님의 답을 옮긴 근거가 없습니다. 누가 그냥 넣었다고 결론 내리기 전에 서식과 작성 경로를 더 보겠습니다."
이소진은 잠깐 침묵했다. "제가 다시 뭘 써야 해요?"
"원하시면 실제 직무 사실만 별도 문서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수집하고 어디에 쓸지 먼저 보내 드리고, 동의하신 뒤에 진행하겠습니다. 지금 잘못된 내부 메모에 바로 덧붙이는 방식은 쓰지 않겠습니다."
"오늘은 내용부터 보내 주세요. 꽃집 주소나 손님 배달지는 필요 없죠?"
"개별 고객 주소와 주문 내역은 받지 않겠습니다. 매장 업무와 배달 방식, 빈도처럼 필요한 직무 사실 범위를 제안드리겠습니다. 불필요하다고 보시는 항목은 빼셔도 됩니다."
통화가 끝난 뒤 현우는 기록을 세 문서로 나눴다. 원본 내부 메모, 사용 중지 사본, 고객 정정 요청. 고객이 새로 확인할 직무 사실문은 아직 만들지 않았다.
민재는 공용 폴더에서 같은 서식 이름이 붙은 파일 목록을 찾아냈다. 수가 예상보다 많았다. 현우는 고객 이름을 화면에 늘어놓지 말고 파일 번호와 생성일만 뽑으라고 했다.
"전부 잘못된 거면 어떡하지?" 민재가 말했다.
"전부라고 말할 근거가 아직 없어. 같은 서식을 썼다는 것과 같은 문구가 들어갔다는 것도 따로 확인해야 해."
현우는 확인 범위를 최근 서식 버전이 배포된 날짜 이후로 잡았다. 이전 파일까지 무작정 열면 필요한 범위를 넘어 고객 정보를 보게 될 수 있었다. 우선 자동 생성된 내부 요약의 해당 칸만 비교하도록 조회 항목을 제한했다.
오후 네 시 사십 분, 이소진에게 직무 사실문 초안이 아니라 수집 항목 안내가 전송됐다. 목적, 보관 위치, 내부 정정에 쓰는 범위, 공식 문의가 필요할 때 다시 동의를 받는다는 문장이 있었다.
현우는 다섯 시가 되기 전에 첫 회신 기록을 닫았다. 공식 서류와 내부 메모 사이에 선을 그었다고 잘못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어느 문서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구분해야, 내부의 틀린 한 줄이 공식 답처럼 커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퇴근 준비를 하던 민재가 물었다. "형, 나 때문에 생긴 일이면 말해 줘."
현우는 화면에서 눈을 떼고 민재를 봤다. "책임은 확인할 거야. 그런데 기억이나 죄책감으로 정하지 않을 거야. 누가 서식을 만들고, 누가 값을 옮기고, 누가 검토했어야 했는지 각각 보자."
사무실 불이 한 줄씩 꺼졌다. 현우의 화면에는 네 칸짜리 표가 남아 있었다. 고객이 준 정보와 내부 메모, 공식 서류와 전송 기록. 같은 이름 아래 붙어 있던 것들이 처음으로 서로 다른 자리에 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