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오전 아홉 시 십 분, 도현우는 빈 상담실 유리창에 붙은 손자국을 닦고 있었다. 서아라가 감사 지원으로 자리를 비운 뒤부터 그는 상담 시작 전 해야 할 일을 한 가지씩 더 만들었다. 물컵을 채우고, 의자를 맞추고, 예약 메모를 다시 읽는 동안에는 모르는 질문이 오기 전의 불안을 잠깐 잊을 수 있었다.
오늘 첫 예약은 이소진이었다. 역 뒤 골목에서 작은 꽃집을 운영하고, 기존 계약을 정리한 뒤 필요한 것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다고 했다. 예약 메모에는 업종과 연락 가능 시간만 적혀 있었다. 현우는 그 빈칸이 불편했지만, 미리 답을 채워 두지는 않았다.
민재가 복합기에서 종이를 들고 왔다. "형, 상담 요약 출력했어. 새 체크리스트로 뽑으니까 한 장에 다 나오네."
종이 상단에는 고객이 알려 준 이름과 업종, 상담 목적이 있었다. 아래에는 직무 관련 확인 항목이 표로 붙었다. 현우는 출력물을 빠르게 읽고 파일 앞장에 끼웠다. 배달 여부 칸에 이미 글자가 들어 있었지만, 예약 메모를 옮긴 부가 항목쯤으로 생각하고 손을 멈추지 않았다.
열 시 정각, 이소진이 상담실 문을 열었다. 검은 앞치마 위에 긴 코트를 걸쳤고, 손가락 마디에는 초록색 줄기 물이 희미하게 배어 있었다. 현우가 악수를 권하자 그는 손을 한번 내려다보고 웃었다.
"오늘 꽃을 많이 만져서 손이 이래요. 괜찮으시면 그냥 인사만 할게요."
현우는 손을 거두고 고개를 숙였다. "네, 편하게 앉으세요. 먼저 제가 적어 둔 내용이 맞는지 같이 보겠습니다."
그 말은 아라가 없는 동안 스스로 정한 순서였다. 설명 자료보다 상담 요약을 먼저 보여 주고, 고객이 말하지 않은 답이 들어 있지 않은지 확인하는 일. 현우는 파일 첫 장을 이소진 쪽으로 돌렸다.
이소진은 이름과 상호를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영업시간에서 한 번 멈춰 오후 여덟 시를 일곱 시 반으로 고쳤다. 마지막으로 직무 표를 내려가던 검지가 한 줄에서 멈췄다.
"여기, 배달 없음이라고 되어 있네요."
현우가 종이를 당겨 보았다. 분명 그렇게 적혀 있었다. 그가 입력한 기억은 없었다. 예약 메모에도 배달에 관한 말은 없었다.
"제가 아직 여쭤보지 않은 내용입니다. 이 문구가 왜 들어갔는지 먼저 확인하겠습니다."
"배달을 안 하는 꽃집이 얼마나 있겠어요." 이소진의 말은 날카롭지 않았지만 손가락은 문구 위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근조화환은 외부 기사님이 가고, 가까운 꽃다발은 제가 직접 갈 때도 있어요. 둘 다 있는 게 맞아요."
현우는 바로 볼펜으로 줄을 긋고 싶었다. 틀린 답 옆에 정확한 답을 써 주면 당장 눈앞의 문제는 작아질 것 같았다. 그러나 이미 출력된 문구가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고쳐 쓰면, 나중에는 처음 무엇이 적혔는지 설명할 수 없었다.
그는 종이 오른쪽 위에 시간을 적고 '사용 중지, 고객 이의 확인'이라고 썼다. 원문 위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이소진이 그 동작을 지켜봤다.
"잘못됐으면 그냥 고치면 되는 거 아닌가요?"
"고쳐야 합니다. 다만 누가 언제 어떤 근거로 썼는지 남겨 둔 다음에 고치겠습니다. 이 종이는 지금부터 상담 판단이나 제출에 쓰지 않겠습니다."
이소진은 의자 등받이에 기대지 않은 채 물었다. "이게 보험회사로 넘어간 건가요?"
현우는 화면을 열어 현재 상태를 확인했다. 고객 이름 아래에는 '상담 준비'만 표시돼 있었다. 청약 번호도, 심사 접수 번호도 없었다. 서명된 신청서도 없었다.
"현재 화면에서는 신청이나 심사 접수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이건 지점 내부 요약입니다. 그렇다고 틀려도 되는 기록은 아닙니다. 다른 문서로 옮겨졌는지도 별도로 확인해서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럼 지금은 제가 뭘 서명하면 안 되겠네요."
"네. 이 항목을 확인하기 전에는 새 서명이나 전송을 진행하지 않겠습니다. 원하시면 오늘 상담도 여기서 멈출 수 있습니다."
이소진은 잠시 생각하다가 가방에서 작은 수첩을 꺼냈다. 꽃집 하루 일정이 시간대별로 적혀 있었다. 새벽 시장 방문, 오전 매장 정리, 점심 무렵 근처 배달, 오후 주문 제작, 외부 기사 인계. 현우는 수첩을 보려고 몸을 기울이지 않았다.
"이걸 다 복사해 가실 건 아니죠? 손님 이름하고 주소도 있어요."
"복사하지 않겠습니다. 오늘은 잘못된 문구를 확인했다는 사실과, 소진 님이 정정을 요청했다는 내용만 남기겠습니다. 실제 직무는 필요한 범위를 먼저 합의한 뒤 다시 확인하겠습니다."
이소진은 수첩을 닫았다. 얼굴의 긴장이 조금 풀렸지만 의문은 남아 있었다. "제가 발견하지 않았으면 계속 배달 안 하는 걸로 있었겠네요."
현우는 괜찮았을 거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럴 가능성을 확인해야 합니다. 발견해 주셨다는 말로 제 책임을 줄이지 않겠습니다."
민재가 상담실 문을 두드렸다. 현우가 밖으로 나오자 민재는 새 체크리스트에 문제가 있느냐고 낮게 물었다. 현우는 고객이 들리지 않는 복도 끝까지 가지 않고, 필요한 말만 했다.
"배달 여부에 입력하지 않은 답이 들어가 있어. 같은 서식으로 만든 다른 요약은 우선 쓰지 말고, 파일 위치와 만든 시각만 알려 줘. 고객 이름은 여기서 더 말하지 말고."
민재의 얼굴이 굳었다. "내가 뭘 잘못 옮겼나?"
"지금은 원인을 정하지 말자. 원본을 지우거나 다시 저장하지 말고 그대로 둬."
상담실로 돌아온 현우는 이소진에게 내부 확인 번호와 답변 예정 시간을 적은 접수 메모를 건넸다. 오후 다섯 시까지 외부 전송 여부와 작성 경로를 먼저 확인하고, 직무 사실을 다시 받을 방법은 그 뒤에 제안하겠다고 적었다.
"오늘 원래 보험 정리하러 왔는데, 이상한 것부터 정리하게 됐네요." 이소진이 말했다.
현우는 억지로 웃지 않았다. "맞습니다. 지금은 이 기록부터 정리해야 다른 설명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소진은 파일 앞장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다고 했다. 현우는 다른 고객 정보가 없는지 확인한 뒤 자신의 '사용 중지' 메모와 문서 제목이 함께 보이도록 촬영 범위를 잡아 주었다. 지점 내부 경로와 직원 계정은 가렸다.
그가 떠난 뒤 현우는 상담실 의자를 바로 밀어 넣지 않았다. 테이블 위에는 아무 서명도 없는 출력물 한 장이 남아 있었다. 종이 한 장이 공식 계약은 아니었다. 그러나 다음 질문과 설명을 밀어내는 힘은 충분히 가질 수 있었다.
현우는 원본 파일의 읽기 전용 사본을 확인하고 정정 요청을 등록했다. 제목은 '이소진 내부 요약 사실 불일치'였다. 원인을 '입력 실수'라고 쓰지 않고 '작성 경로 확인 중'이라고 적었다.
오후가 되자 실적판 아래에서 누군가 계약 건수를 이야기했다. 현우는 화면을 끄지 않았다. 오늘 상담은 계약으로 이어지지 않았고, 설명 자료도 한 장 넘기지 못했다. 대신 배달이 없는 꽃집이라는 잘못된 한 줄이 더 멀리 가기 전에 멈췄다.
정정 요청 화면에는 원문 사본의 보관 위치와 사용 중지 시각이 따로 표시됐다. 다른 직원이 같은 파일을 열면 먼저 중지 사유를 읽어야 했고, 답변 칸을 고쳐 새 문서로 저장할 수 없었다. 현우는 시험 계정으로 그 안내가 실제로 보이는지 확인한 뒤에야 창을 닫았다.
그는 이소진에게 약속한 시간을 수첩 맨 위에 썼다. 오후 다섯 시, 첫 확인 회신. 빈칸이 무섭다고 아무 답이나 채우던 때와 달리, 오늘은 틀린 답을 빈칸으로 돌려놓는 일이 먼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