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저녁, 식탁 위에는 보험 서류 대신 대학 노트가 놓였다. 이준수가 표지를 넘기자 첫 장에 숫자들이 줄을 맞춰 서 있었다. 등록금, 반액 장학금, 학자금대출, 편의점 급여, 교통비, 교재비.
강민주는 밥그릇을 내려놓고 노트를 봤다. "이걸 언제 다 적었어?"
"세탁소 옷 목록 정리하다가요. 어차피 숫자는 안 적는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준수는 다음 장을 펼쳤다. 세탁소 하루 평균 매출, 월세와 관리비, 기계 할부, 약품비, 휴업 중에도 나가는 고정비, 고객 옷 이관 비용이 적혀 있었다. 정확하지 않은 값에는 물음표가 붙어 있었다.
"내 통장을 왜 네가 계산해?" 민주가 먼저 날이 선 목소리를 냈다가 멈췄다.
준수는 노트를 덮지 않았다. "엄마 통장 본 거 아니에요. 전에 같이 계산했던 숫자하고 이번 영수증만 쓴 거예요. 모르는 건 물음표고. 보여 주기 싫은 건 안 보여 줘도 돼요."
민주는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서로의 계좌를 마음대로 보는 것도, 걱정시키기 싫다는 이유로 아무 숫자도 말하지 않는 것도 같은 식탁을 어렵게 만들었다. 그는 자기 앞에 있던 고정비 세 항목을 정확한 금액으로 고쳤다.
준수는 편의점 근무표를 꺼냈다. 주중 야간 세 번, 주말 야간 한 번. 수업이 있는 날에도 새벽까지 일하고 아침 강의를 들었다. 보건실에 실려 갔던 주에는 근무가 한 번 더 있었다.
"이건 줄여야 해." 민주가 말했다.
"그럼 등록금 남은 걸 어떻게 해요? 세탁소도 닫았는데."
"내가 다 낸다고는 안 할게. 그런데 네가 쓰러지는 방식으로 맞추지는 말자."
준수는 한동안 계산기만 눌렀다. 반액 장학금을 빼고 남은 등록금, 이미 승인된 학자금대출, 납부를 나눌 수 있는지 확인할 금액을 세 칸으로 나눴다. 대출은 공짜 돈이 아니라 상환 조건을 확인해야 한다는 문장도 적었다.
월요일 학교 학생지원 창구에 물을 항목이 생겼다. 등록금 분납 가능 여부, 긴급 생활비 지원 요건, 장학금 유지 학점, 야간 근무를 줄였을 때 이용할 수 있는 교내 근로. 받을 수 있다고 미리 계산하지 않고 문의할 것만 적었다.
준수는 보건실에서 받은 휴식 권고도 노트에 끼웠다. 진료 세부 내용은 엄마에게 모두 보여 주지 않았지만, 연속 야간 근무와 결식이 다시 나타나면 근무표를 즉시 조정한다는 기준에는 동의했다. 건강을 돈 표의 맨 아래 주석으로 밀어 두지 않았다.
민주는 준수가 수업을 빠졌던 날과 편의점 근무를 대조하려다 멈췄다. 아들의 동의 없이 학교 출결을 검사하는 대신, 장학금 유지에 필요한 출석을 준수가 매주 스스로 확인해 표에 표시하기로 했다. 신뢰는 아무것도 묻지 않는 것도, 전부 감시하는 것도 아니었다.
민주는 세탁소 쪽 숫자를 나눴다. 안전 때문에 확실히 나가는 비용, 공사 기간에 발생할 수 있는 비용, 보험이나 건물주에게 제출하되 회수 여부가 확정되지 않은 비용. 마지막 칸은 수입으로 잡지 않았다.
"보험에서 나올지도 모르는 돈을 여기 넣으면 안 돼." 민주가 말했다. "전에 그거 기다리다가 더 겁났잖아. 결정서 오기 전에는 없는 돈으로 보자."
준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건물주가 휴업 기간 월세를 줄일지도 모르는 것도요?"
"합의서에 서명하기 전에는 없는 걸로. 제안하고 확정된 건 달라."
두 사람은 한 달 현금흐름을 세 가지 경우로 만들었다. 일주일 안에 재개하는 경우, 두 주 걸리는 경우, 더 길어지는 경우. 기간을 예언하려는 표가 아니라 어느 시점에 누구에게 연락하고 어떤 지출을 미룰지 정하는 표였다.
각 경우에는 멈춤선이 있었다. 생활비가 정한 금액 아래로 내려가면 새 대출을 바로 받지 않고 상담을 요청하고, 세탁소 휴업이 예상보다 길어지면 고객 이관과 기계 할부를 먼저 협의한다. 준수의 근무시간이 다시 늘어도 모른 척하지 않기로 했다.
준수는 주간 시간표에 수업, 이동, 식사, 수면, 근무를 다른 색으로 칠했다. 빈칸이 있어야 쉬는 것이 아니라, 잠과 밥도 먼저 칸을 차지했다. 남는 시간만 일에 쓰기로 하자 가능한 야간 근무 수가 숫자로 줄었다.
준수의 야간 근무는 주중 세 번에서 한 번으로 줄이기로 했다. 주말 낮 근무 하나는 수업과 건강 상태를 보고 유지하되, 연속 야간 근무는 하지 않는다. 편의점 관리자에게 일정 변경을 요청하는 문자를 그 자리에서 작성했다.
"싫다고 하면요?" 준수가 물었다.
"그럼 다른 일 알아보자. 당장 그만두라는 건 아니지만, 네 몸을 담보처럼 내놓고 버티지는 말자."
준수는 엄마가 대신 모든 돈을 주겠다고 하지 않은 것을 오히려 오래 들었다. 자기가 돕고 싶다는 마음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도움의 한도를 정하는 말이었다.
민주도 자기 몫을 적었다. 세탁소가 재개하면 첫 달에는 과도한 물량을 받지 않고, 이관 비용과 미처리 옷부터 정산한다. 새 기계를 사거나 대출을 늘리는 결정은 공사·보험 결과가 나온 뒤로 미룬다.
박명자가 제안했던 월세 조정도 확정 칸에서 뺐다. 대신 협의할 항목으로 적었다. 안전명령으로 닫은 기간, 공용 배선 공사 때문에 사용하지 못한 범위, 기존 누수 합의와 중복되지 않는 기간을 따로 계산하기로 했다.
저녁 아홉 시, 편의점 관리자에게 답이 왔다. 다음 달부터 야간 근무를 줄일 수 있고 이번 주 한 번은 다른 직원과 바꿔 보겠다는 내용이었다. 준수는 확정된 일정만 표에 반영했다.
민주는 준수의 학교 알림에서 장학금 유지 조건을 함께 읽었다. 성적만 있는 게 아니라 최소 이수학점과 출석 요건이 있었다. 야간 근무 때문에 수업을 놓치면 당장 버는 돈보다 더 큰 부담이 생길 수 있었다.
"엄마도 약속 하나 해요." 준수가 말했다. "가게 돈 부족하다고 혼자 적금 깨거나, 명자 할머니한테 몰래 빌리지 않기."
민주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이미 예전에 적금을 해지한 일을 아들이 알고 있었다. "빌릴 일 생기면 먼저 말할게. 대신 네 대출도 조건 바뀌면 말해."
둘은 노트 맨 아래에 각자 서명하지 않았다. 가족 합의가 법률 문서라서가 아니라, 다음 주 일요일에 다시 숫자를 고치기로 했기 때문이다. 날짜와 확인할 사람만 적었다.
식은 국을 데우며 민주는 처음으로 준수의 성을 또렷하게 불렀다. "이준수, 밥부터 먹어."
준수가 웃었다. "갑자기 풀네임은 왜 불러요."
"네 이름이 숫자보다 먼저라고 기억하려고."
노트에는 아직 물음표가 많았다. 공사기간도, 휴업 손해도, 보험 판단도 몰랐다. 그러나 준수가 밤마다 몇 시간을 일하고 어떤 수업을 지켜야 하는지, 민주가 한 달에 반드시 내야 할 돈이 얼마인지는 더 이상 서로의 등 뒤에 숨지 않았다.
설거지가 끝난 뒤 준수는 알람을 새벽 한 시가 아니라 아침 일곱 시로 맞췄다. 야간 근무를 줄였다고 모든 빚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대신 다음 날 수업에 깨어 있을 가능성이 커졌다.
다음 점검 때는 실제 입금과 지출만 영수증으로 맞추고, 예상보다 부족하면 어느 한 사람이 몰래 근무나 빚을 늘리지 않기로 했다. 먼저 학교 상담과 납부 일정, 가게 지출 협의 순서로 다시 표를 열기로 했다.
민주는 식탁 위 노트를 닫지 않고 그대로 뒀다. 젖은 장부와 숨긴 통장으로 시작했던 숫자들이 이번에는 같은 페이지에 있었다. 모자라는 돈은 여전히 모자랐지만, 누가 쓰러져서 그 빈칸을 메울지는 계획에서 지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