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오전 열 시, 차진혁은 넥타이를 매지 않고 회의실에 들어왔다. 늘 반듯하던 셔츠 깃 한쪽이 재킷 안으로 접혀 있었다. 서하는 그 작은 흐트러짐을 보고도 뜻을 붙이지 않았다. 오늘 기록할 것은 표정이 아니라 입 밖으로 나온 문장과 문서였다.
탁자 한쪽에는 감사 담당자와 한재원이 앉았고, 반대편에는 차진혁과 인사 입회자가 앉았다. 보상팀에서는 박성준, 도윤, 수진, 지우, 서하가 참석했다. 감사 담당자는 녹음 동의와 진술 정정 절차부터 읽었다.
"기억나지 않는 부분은 모른다고 답하셔도 됩니다. 진술은 관련 문서와 따로 대조하며, 이 자리의 말만으로 보상 판단이나 인사 조치가 확정되지는 않습니다."
차진혁은 동의서에 서명했다. 펜 끝이 종이를 긁는 소리가 회의실에 오래 남았다. 서하는 E자로 시작하는 사건번호가 적힌 자기 질문표를 내려다봤다. 손을 들 차례를 기다렸다.
감사 담당자가 먼저 물었다. "고액 장기보험 소송 보고 기한을 앞당기라고 지시했습니까?"
"지시했습니다. 패소 가능성이 수치에 반영되기 전에 대응 방향을 정해야 한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누구에게서 받은 보고입니까?"
차진혁은 박성준 쪽을 보지 않았다. "정례 실적회의에서 박 상무가 손해율과 장기 미결 건수를 강하게 지적했습니다. 다만 특정 사건의 배당을 바꾸라고 말한 것은 아닙니다. 제가 그 말을 소송 건에 적용했습니다."
박성준은 끼어들지 않았다. 감사 담당자가 회의록에 '특정 지시 여부 별도 확인'이라고 말해 기록시키고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도윤이 물었다. "저에게 보고 창구를 하나로 맞추라고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보고가 여러 갈래로 올라가면 대응 문구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선에서 먼저 정리하려 했습니다."
"박 상무에게 직접 올리지 말라는 뜻이었습니까?"
차진혁은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렇게 받아들였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는 제가 먼저 보겠다는 뜻이었지만, 거부하면 불이익이 있을 것처럼 말했습니다. 그건 인정합니다."
지우의 펜이 멈췄다. 차진혁은 지우 쪽을 보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실적이 흔들리면 팀 통폐합을 피하기 어렵다고 여러 번 말했고, 민원과 재검토가 늘어나는 것을 팀의 부담으로 표현했다고 했다. 그 말이 누군가에게 문제를 제기하지 말라는 압박이 될 수 있다는 걸 당시에는 숫자 관리로 합리화했다고도 했다.
수진이 질문했다. "2019년 재검토 의견을 공식 시스템에서 내린 적이 있습니까?"
"제가 직접 내리지는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제가 수진 씨의 상급자가 아니었습니다. 다만 월말 정리 회의에서 오래된 보류 건을 종결 대상에 포함시키자는 의견에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공동 승인계정 사용을 알고 있었습니까?"
"야간 일괄 정리에 쓰인다는 것만 알았습니다. 개별 사건 상태를 바꿀 수 있다는 건 나중에 알았습니다."
감사 담당자는 미리 보존한 예외 승인 신청서를 화면에 띄웠다. 신청자는 오승우, 업무 확인자는 차진혁이었다. 차진혁의 전자서명 시각은 고액 소송 배당이 바뀌기 하루 전이었다.
"이 문서를 기억합니까?"
차진혁은 오래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승우가 보고 양식을 고치려면 임시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저는 자료 열람 범위라고 생각하고 확인했습니다."
서하가 처음으로 손을 들었다. "신청서에는 처리 상태와 배당 이력 변경 권한이 포함돼 있습니다. 권한 항목을 확인했습니까?"
"제대로 보지 않았습니다. 오승우가 기술적인 항목이라고 했고, 기획조정실 운영 쪽에서 범위를 줄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강민주 파일의 마감 시각을 오승우 씨에게 전달했습니까?"
차진혁은 바로 답하지 못했다. 그는 그날 오전 회의에서 팀별 지연 목록을 공유했고, 오승우가 기획조정실 보고 자료를 만든다는 이유로 목록을 받아 갔다고 했다. 민주 사건의 내용이나 가족 정보는 전달하지 않았지만 사건번호와 지연 일수는 목록에 있었다.
"누수 건의 처리 상태를 바꾸라고 지시했습니까?"
"아닙니다. 그 사건을 따로 지목한 적도 없습니다."
서하는 그 답을 회의록에 그대로 남겨 달라고 했다. 전달한 목록과 지시하지 않았다는 진술은 함께 검증될 일이었다. 어느 하나를 먼저 진실로 고를 필요는 없었다.
한재원이 오승우의 이메일을 제시했다. '실적표 반영 전에 장기 건을 정리할 수 있도록 예외 경로를 열어 달라'는 문장이 있었다. 참조자는 차진혁이었고, 승인 요청은 당시 기획조정실 운영책임자에게 전달돼 있었다.
차진혁은 그 메일을 받은 것은 인정했지만 공동계정으로 상태를 바꿀 줄은 몰랐다고 했다. 다만 오승우가 정식 보고 경로를 우회하려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기한을 맞추면 된다고 생각해 막지 않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도윤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때 저한테는 절차를 지키라고 했습니다."
"맞아요." 차진혁이 말했다. "겉으로는 그렇게 말하고, 안쪽에서는 결과를 먼저 맞췄습니다. 제가 직접 계정에 접속하지 않았다고 해서 책임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회의실 공기가 잠시 멎었다. 그 문장은 자백처럼 크지 않았고, 그래서 오히려 오래 남았다. 차진혁은 모든 일을 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실적 압박을 아래로 전달했고, 우회 요청을 알고도 확인 서명을 했으며, 다른 사람들에게는 원칙을 요구했다.
감사 담당자가 상위 승인 경로를 물었다. 차진혁은 예외 신청이 기획조정실 운영책임자의 확인을 거친 뒤 임원 보고 목록에 올라갔다고 설명했다. 임원이 세부 권한을 봤는지는 모른다고 했다. 자신이 참석한 회의에서는 사건번호 대신 지연 건수와 예상 손실액만 공유됐다고 덧붙였다.
박성준이 그제야 말했다. "내가 받은 보고와 당신이 올린 자료를 대조합시다. 기억으로 서로 책임을 밀지 맙시다."
차진혁은 고개를 들었다가 내렸다. "네."
두 시간 가까운 진술이 끝나자 감사 담당자는 차진혁에게 회의록 초안을 읽을 시간을 줬다. 그는 '조작 지시'라는 말이 없는지부터 찾지 않았다. 자신이 한 말 중 '불이익이 있을 것처럼 말했다'는 문장을 한 번 고쳐, '팀 통폐합과 평가 불이익을 함께 언급했다'고 더 구체적으로 적었다.
서하는 그 수정을 봤다. 더 무거운 문장으로 바꾸는 데도 용기가 필요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그 용기가 과거의 압박을 지워 주는 것은 아니었다. 인정은 책임의 시작이지 면제가 아니었다.
차진혁이 나간 뒤 지우는 한동안 빈 의자를 봤다. "사과 한마디면 좀 풀릴 줄 알았는데, 별로 안 풀리네요."
수진이 질문표를 접었다. "사과를 받으려고 기록한 건 아니니까. 다시 같은 방식이 못 돌아오게 하려고 한 거지."
감사 담당자는 차진혁의 진술을 오승우의 신청서, 기획조정실 승인 기록, 박성준의 당시 보고 자료와 대조하겠다고 했다. 오늘 확인된 것은 차진혁이 실적 압박과 우회를 묵인한 자기 역할을 인정했다는 사실까지였다. 실제 계정 사용자는 아직 문서 대조가 남아 있었다.
서하는 자기 질문표 맨 아래에 한 줄을 썼다. '책임은 버튼을 누른 손에만 있지 않다.' 그리고 바로 옆에 덧붙였다. '그렇다고 버튼을 누른 손을 추측으로 정하지 않는다.' 두 문장을 나란히 두자, 오늘 들은 진술의 경계가 비로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