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아침, 작은 회의실 벽에는 길이가 다른 종이 세 장이 붙어 있었다. 맨 위는 2019년 배관 수리 종결 기록, 가운데는 고액 장기보험 소송의 배당 변경, 맨 아래는 강민주 파일의 사흘 공백이었다. 세 사건은 시기도 사람도 달랐다.
서하는 각 종이의 왼쪽 위에 사건번호 대신 짧은 이름을 적었다. 과거 종결, 소송 배당, 민주 재검토. 이름을 단순하게 쓰면 섞이지 않을 것 같았다. 한재원은 그 옆에 다른 색 펜으로 '사실관계 공동 사용 금지'라고 적었다.
"같이 보되 합치지는 않는다는 뜻입니다." 한재원이 말했다. "같은 계정이 나왔다고 한 사건의 자료를 다른 사건 판단에 가져다 쓰면 안 됩니다. 오늘 보는 건 시스템 운용 방식뿐이에요."
민수진은 2019년 자료부터 펼쳤다. 당시 현장 종결 검토는 도윤이 했지만 최종 상태를 닫은 계정은 사람 이름이 아니라 서비스계정이었다. 야간 자료 이관과 대량 상태 변경을 위해 만든 공동 승인계정. 마지막 접속은 밤 열한 시 십사 분이었다.
도윤은 화면을 오래 보지 않았다. "그날 저는 여덟 시 전에 퇴근했습니다. 제 검토 의견이 부족했다는 책임과, 밤에 누가 공동계정으로 종결했는지는 따로 확인해야 합니다."
수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윤의 잘못을 덜어 주려는 것도, 더 얹으려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재검토 요청을 충분히 따라가지 않았고, 상위 종결은 다른 계정으로 이뤄졌다. 두 문장은 동시에 남을 수 있었다.
가운데 종이에는 고액 소송의 배당 변경 시각이 적혀 있었다. 처음에는 도윤에게 배당됐다가 담당자 공란을 거쳐 다른 보고 경로로 옮겨 간 기록이었다. 변경이 일어난 시각은 일요일 새벽 두 시였다. 그때도 처리자 표시는 같은 서비스계정 계열이었다.
한지우가 의자를 앞으로 당겼다. "오승우가 자료를 달라고 했던 건 평일이었어요. 그런데 실제 배당 변경은 일요일 새벽이었고요. 사람이 직접 예약했는지, 배치 작업에 태웠는지는 아직 모르는 거네요."
"맞아." 수진이 말했다. "오승우가 접근을 시도한 기록과 서비스계정이 변경한 기록 사이에 승인 단계가 있어. 그 단계를 찾아야 해."
서하는 세 번째 종이를 읽었다. 강민주 누수 건의 접수일과 초기 안내일 사이 사흘. 담당자 이름이 비어 있던 구간의 시작 시각에도 같은 계열의 서비스계정이 있었다. 다만 여기서 바뀐 것은 배당이 아니라 처리 상태였다. '접수'가 '분류 대기'로 옮겨졌다가 사흘 뒤 다시 '접수'로 돌아왔다.
"민주 씨가 낸 자료가 사라진 건 아니죠?" 서하가 물었다.
한재원은 보존 목록을 확인했다. "현재 대조한 범위에서는 첨부 원본이 그대로 있습니다. 안내가 늦어진 것과 자료 삭제는 다른 문제예요. 상태가 왜 되돌아갔는지, 그 사이 안내 책임이 누구에게 있었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그 말은 서하에게 중요했다. 공백이라는 단어가 자꾸 무언가를 빼앗긴 것처럼 들렸지만, 실제로 확인된 것은 처리 순서의 변경이었다. 민주가 기다린 사흘의 무게는 줄지 않았다. 다만 그 무게를 설명할 정확한 이름이 생겼다.
한재원은 보안센터가 보낸 계정 운용 문서를 화면에 띄웠다. 서비스계정은 원래 야간 자료 이관용이었고 개인이 직접 로그인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예외 작업이 필요할 때는 운영책임자가 신청하고, 상위 승인자가 사용 시간과 대상 묶음을 지정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 세 사건 모두 예외 승인 번호가 있었다. 번호 형식도 같았다. 신청 부서는 서로 달랐지만 승인 단계의 마지막 두 칸은 같은 경로를 거쳤다. 기획조정실 운영 확인, 임원 보고 완료.
지우가 화면을 가리켰다. "그럼 기조가 세 번 다 한 거잖아요."
서하가 먼저 고개를 저었다. "기조가 승인 경로였다는 것까지예요. 실제로 신청한 사람도 다르고, 마지막에 버튼을 누른 사람이 같은지는 아직 안 나왔어요."
지우는 손을 거뒀다. "그래. 또 사람부터 정할 뻔했네."
도윤이 종이 세 장 사이에 얇은 선을 그었다. 선은 사건 내용이 아니라 승인 번호에서 출발했다. 2019년에는 수리 종결 자료가 부족하다는 의견 위로 공동계정 종결이 실행됐고, 고액 소송 때는 배당 변경이 실행됐으며, 민주 건에서는 처리 상태가 왕복했다.
"같은 건 결과가 아니라 방식이네요." 도윤이 말했다. "사람 이름이 남는 결재 대신 서비스계정으로 마지막 상태를 바꾼 방식."
박성준이 뒤늦게 회의실에 들어왔다. 그는 세 장을 한참 읽은 뒤, 임원 보고 완료 칸을 봤다. "이 문구가 있다고 해서 당시 임원이 세부 변경까지 승인했다는 뜻은 아닐 수 있습니다. 보고 제목만 받았는지, 대상 사건까지 봤는지 결재 문서를 확인해야 해요."
서하는 박성준의 얼굴을 살폈다. 방어하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었지만, 박성준은 자기 이름이 걸릴 수 있는 경로까지 같은 기준으로 나누고 있었다. 그는 2019년 당시 자신이 어떤 보고를 받았는지도 감사팀에 제출하겠다고 했다.
점심을 건너뛴 채 자료 대조가 이어졌다. 수진은 각 사건의 원본 해시값과 변경 전후 상태를 적었고, 지우는 당시 메일함에서 예외 작업 안내를 찾았다. 도윤은 자신이 작성한 검토 의견의 시각을 다시 확인했다. 서하는 누가 무엇을 제출했고 누구에게 설명받아야 하는지를 표 오른쪽에 붙였다.
오후 두 시 반, 지우가 오래된 메일 하나를 찾았다. 제목은 '월말 수치 정리 협조'였다. 본문에는 사건번호가 없고, 처리 지연 건을 공용 경로로 정리해 달라는 문장만 있었다. 발신자는 당시 기획조정실 운영책임자였다. 참조란에는 차진혁과 오승우의 이름이 서로 다른 시기에 반복돼 있었다.
"이 메일로 세 사람이 공모했다고 쓸 수는 없어요." 한재원이 말했다. "하지만 예외 승인을 요청하게 된 업무 배경과 관계자를 확인하는 질문은 만들 수 있습니다."
도윤은 출력된 메일에 손대지 않고 보존번호부터 요청했다. 예전 같으면 아는 이름을 보고 먼저 전화를 걸었을 사람이었다. 이제는 누구도 사적인 해명을 받으러 움직이지 않았다.
오후 네 시, 세 사건 시간표가 완성됐다. 서로 다른 세 줄은 서비스계정 예외 승인 칸에서만 겹쳤고, 다시 각자의 결과로 갈라졌다. 강민주의 누수 판단에는 누수 자료만, 고액 소송 판단에는 그 소송 기록만 쓰였다. 공동으로 검토할 것은 계정 통제와 승인 책임뿐이었다.
서하는 연결표 하단에 열람 제한도 적었다. 각 사건 담당자는 자기 사건의 원자료만 보고, 감사 담당자는 사건 내용이 아니라 변경에 필요한 최소 항목만 대조하도록 했다. 연결을 발견했다는 이유로 고객의 사정까지 공동 자료가 되는 것을 막는 선이었다.
서하는 벽에서 한 발 물러섰다. 같은 시간에 움직인 것처럼 보였던 사건들은 실제로 같은 날 벌어진 일이 아니었다. 다만 조직이 숫자를 빨리 정리해야 할 때마다 사람 이름 대신 공동계정이 앞으로 나오는 습관이 반복됐다.
한재원이 회의록 끝에 썼다. '동일 행위자 미확정. 동일 운용 방식 확인.' 그 아래에는 다음 입회 대상이 적혔다. 차진혁.
퇴근 무렵, 서하는 세 종이를 따로 떼어 각 사건철에 돌려놓고 연결표만 감사 파일에 남겼다. 벽이 비자 회의실이 갑자기 넓어 보였다. 사건을 한데 붙여야만 진실에 가까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서로 섞이지 않게 떨어뜨려 놓고도, 반복된 손의 방향은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