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오전을 넘겨서도 그치지 않았다. 서쪽 창고 골조 위에 깔아 놓은 방수포가 빗물을 받아 한쪽으로 처지면서 인부 두 명이 뛰어나와 밧줄을 고쳐 묶었다. 그 소동이 안마당에 잠깐 소음을 만들었다가 사라졌다. 엘리안은 복도 창에 등을 기댄 채 그 장면을 보았다. 비가 이틀째 이어지면 골조 목재가 뒤틀린다. 하르트가 어제 그 말을 두 번 했다. 두 번째에는 엘리안을 보지 않고 했다.
식당 안은 오전 중에는 조용했다. 점심 전 조리 인부들이 솥을 거는 소리만 간간이 들렸다. 루키안이 탁자 한쪽에 앉아 종이 두 장을 나란히 펼쳐 놓고 있었는데, 엘리안이 들어섰을 때 그는 왼쪽 종이의 어느 줄을 손가락으로 짚은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 손가락이 아직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이 이상했다.
"뭔가 나왔어?"
루키안은 손가락을 떼지 않고 고개를 들었다.
"나왔다고 하기엔 너무 단정적이고, 없다고 하기엔 너무 선명해."
그가 오른쪽 종이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선왕 재위 말기 궁 출입 기록이야. 이건 아델린 쪽에서 얻어야 한다는 거 알고 있었는데, 어젯밤에 마도회 분관 기록 필사본을 다시 훑다가 한 가지 걸리는 게 생겼어."
엘리안이 탁자 맞은편에 앉았다.
"말해봐."
"두 번째 이름."
루키안이 왼쪽 종이를 엘리안 쪽으로 밀었다.
"이 사람이 분관 붕괴 시점 기준으로 이년 전부터 수도에 체류 기록이 있어. 봉인 유지 담당이 왜 수도에 있었는지 마도회 공식 기록엔 아무 설명이 없고. 그런데 같은 기간에 궁 내 마도사 용역 계약서 목록에 비슷한 이름 패턴이 하나 보여."
그가 오른쪽 종이의 한 줄을 손으로 가렸다. "아직 일치라고 말할 수 없어. 이름이 약자 처리가 되어 있거든. 확인하려면 원본이 필요해."
원본. 엘리안은 그 단어를 혀 위에 잠깐 올려 두었다. 원본은 두 곳에 있을 수 있었다. 마도회 중앙 기록소, 혹은 왕실 서무처. 두 곳 모두 이쪽 손이 직접 닿지 않는 자리였다. 다만 아델린은 달랐다.
"아델린한테 물어봐야 한다."
"그 생각은 나도 했지."
루키안이 종이를 다시 당겼다.
"근데 문제가 있어. 어제 아델린이 두 번째 이름에 반응했을 때, 나는 그게 단순한 기억 불확실성이라고 봤거든. 그런데 오늘 아침에 다시 생각해 보니까 아닌 것 같아. 그녀는 그 이름을 알고 있었어. 말하지 않은 거야."
엘리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루키안의 말이 맞다는 것을 어제 탁자에서 이미 느꼈다. 아델린이 죽 그릇을 손에 쥔 채 그 이름 앞에서 눈을 한 번 내렸을 때, 그건 기억을 더듬는 사람의 눈이 아니었다.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 다음 말을 고르는 눈이었다.
"왜 말하지 않았을까."
루키안이 어깨를 으쓱했다.
"선택지가 두 개야. 확신이 없어서, 아니면 확신이 있어서. 나는 두 번째라고 생각해."
그가 램프 쪽을 바라보다가 덧붙였다.
"그리고 확신이 있는데 말하지 않는 사람은 그걸 먼저 써먹을 자리를 보고 있는 거야. 나쁜 뜻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그냥 그게 아델린이 움직이는 방식이잖아."
엘리안은 창 쪽을 보았다. 빗줄기가 유리를 타고 내려갔다. 아델린이 이 판에 직접 발을 들인 것은 어제 아침이었다. 그 선택이 얼마나 무거운지 엘리안은 알고 있었다. 왕실 사생아가 마도회 조사에 얼굴을 내미는 순간, 그 움직임은 카이런이든 마도회든 어느 쪽에서든 포착될 수 있었다. 아델린도 그것을 모를 리 없었다. 그런데도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이름 앞에서 입을 닫았다.
"오늘 오후에 아델린을 만나야 해."
엘리안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멈췄다.
"드론은?"
루키안이 손을 흔들었다.
"세라한테 물어봐. 나는 종이 보는 사람이야."
세라는 안마당 처마 아래에 있었다. 용병단 막사 쪽 인부 두 명이 빗속에서 귀리 포대를 나르는 것을 팔짱 낀 채 보고 있었는데, 엘리안이 가까이 가자 눈을 들지 않고 먼저 말했다.
"오늘 아침 드론이 동쪽 창고를 먼저 돌았어. 어제까지는 서쪽부터였거든."
그녀가 인부들이 사라진 창고 문을 잠시 바라보았다.
"비 때문일 수도 있어. 서쪽 방수포가 처졌으니까 창고 점검 순서를 바꿀 이유가 있긴 해. 그런데."
세라가 처음으로 엘리안을 보았다. "그 방수포가 처진 걸 드론이 알 수 있는 시각은 아침 기상 나팔 이후야. 드론이 동쪽을 먼저 도는 결정을 한 건 나팔이 울리기 전이었어."
엘리안은 그 말을 한 번 되새겼다.
"나팔 전에 창고 쪽으로 나갔다는 거야?"
"나왔다가 들어갔어."
세라가 처마 기둥에 기대었다.
"짧게. 서쪽 담벼락 방향은 이번에도 피했어. 이건 이제 우연이 아니야."
두 사람은 잠깐 침묵했다. 안마당에 빗소리가 일정하게 깔렸다. 드론이 서쪽 담벼락을 이틀 연속으로 피하고 있다는 것은, 그가 담벼락 두 번째 기둥 돌 틈을 알고 있다는 뜻이거나, 혹은 그 방향을 피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뜻이었다. 전자라면 쪽지가 이미 사라진 이후다. 후자라면 이쪽 감시 전략 전체가 누군가에게 넘어가 있다.
"일단 드론은 오늘 오후 안에 결론 낼 수 없어."
엘리안이 말했다.
"아델린 쪽을 먼저 움직여야 해."
세라가 눈썹을 올렸다.
"무슨 이유로?"
"두 번째 이름을 아델린이 알고 있어. 어제 반응이 그걸 보여줬어. 루키안이 궁 출입 기록에서 같은 이름 패턴을 하나 더 발견했는데, 약자 처리된 원본이 필요해. 그걸 확인할 수 있는 건 아델린뿐이야."
세라가 잠시 생각하는 것처럼 빗속을 바라보았다.
"아델린이 왜 어제 말을 안 했는지는 물어봤어?"
"아직."
"그거 먼저 알아야 하는 거 아닌가."
세라가 팔짱을 풀었다.
"모르는 척 아는 사람한테 정보 요청하면, 그 사람은 자기 패를 얼마나 쥐고 있는지 다 보여줄 이유가 없어. 아델린이 왜 입을 닫았는지를 알아야 다음 요청의 무게를 맞출 수 있어."
엘리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세라의 말이 맞았다. 아델린이 침묵한 이유가 기억의 불확실성이라면 지금 당장 접근해도 된다. 그런데 만약 다른 계산 때문이라면, 이쪽이 먼저 원본 필요성을 꺼내는 순간 아델린은 그것을 거래 조건으로 쓸 수 있었다. 그리고 아델린이 요구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엘리안은 아직 가늠하지 못했다.
오후 늦게 하르트가 서재 쪽에서 엘리안을 찾았다. 이틀째 비가 그치지 않으면 서쪽 골조 기초 부분이 물을 먹는다고, 목재 납품 계약을 다시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엘리안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하르트의 눈을 잠깐 보았다. 하르트는 평소와 같은 표정이었다. 짧고 절제된 얼굴. 그러나 어젯밤에 아델린이 식당에 들어와 자리에 앉은 것을 하르트도 보았다. 그때 하르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지금 생각하면 이상했다.
"하르트."
"예."
"아델린이 어제 두 번째 이름 앞에서 눈을 내렸어. 알고 있었던 것 같아."
하르트가 잠깐 멈췄다. 아주 짧게.
"그 이름이 어디서 나온 것인지에 따라 다를 겁니다."
"무슨 뜻이야."
"아가씨께서 알고 계신 이름이라면, 그분이 그것을 어디서 들었는지가 먼저입니다."
하르트가 손에 든 계약서 꾸러미를 한 번 고쳐 잡았다.
"선왕 재위 말기에 궁 안을 드나든 사람의 이름은, 아가씨처럼 그 시절 궁 안에 있었던 분만이 기억할 수 있습니다."
하르트는 그 말을 끝으로 더 덧붙이지 않았다. 엘리안은 그를 잡지 않았다. 서재 문이 닫히고 나서야 하르트가 지금 무엇을 말한 것인지가 분명해졌다. 아델린이 두 번째 이름을 알고 있다면, 그건 서류에서 배운 것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직접 보거나 들은 것이었다. 그리고 선왕 재위 말기에 궁 안에서.
엘리안은 창밖을 보았다. 빗속에 드론이 동쪽 창고 처마 아래에 서 있었다. 아무 이유 없이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아무 이유 없이 서 있는 사람은 이 성 안에 없었다. 두 번째 이름과 궁 출입 기록, 아델린의 침묵, 드론의 꺾인 동선이 오늘 하루 동안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직 그 방향에 이름을 붙일 수 없었다. 그러나 내일 아침 아델린을 만나기 전까지, 이 연결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를 먼저 알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