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고 안의 공기는 바깥과 달랐다. 무당산 한낮의 바람이 소나무 향을 데리고 다니는 동안, 이 안에는 종이가 오래 눌려 있을 때 나는 냄새, 먹이 번진 뒤 굳어 버린 냄새, 그리고 매화 향이 뒤섞여 있었다. 세 가지가 각자 다른 두께로 쌓여 있었다. 진무백의 코는 그중 매화 향을 제일 먼저 골라냈다. 반 보 뒤로 물러선 채 손은 아직 검파 위에 얹혀 있었고, 발바닥은 문지방 안쪽에 걸쳐 있었다. 들어온 것도 아니고 나간 것도 아닌 자세였다.
여자는 기록고 안쪽 선반 앞에 서 있었다. 등을 보이는 자세였다. 진무백이 들어선 소리를 듣고도 돌아보지 않았고, 청연도인이 그 뒤를 따라 들어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한쪽 손이 선반 가장자리에 얹혀 있었다. 힘을 주고 있는 손이었다. 손가락 마디가 희게 떠 있는 것이 진무백의 눈에 들어왔다. 저 여자는 지금 무언가를 참고 있다. 아니면 기다리고 있다.
"방문 기록이 한 권 더 있습니다."
여자가 먼저 말했다. 돌아보면서가 아니었다. 등을 보인 채였다. 목소리는 낮았고, 말끝이 조금 거칠었다. 잠을 많이 못 잔 사람의 목소리이거나, 오래 울었다가 멈춘 사람의 목소리였다. 진무백은 두 가지 중 어느 쪽인지 아직 판단하지 않기로 했다.
"어디 있소."
진무백이 물었다. 질문이라기보다 확인이었다. 여자가 그제야 돌아섰다. 손에 얇은 책자 하나를 들고 있었다. 표지에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실로 묶인 자리가 낡아 있었고, 한쪽 귀퉁이가 눌려 있었다. 오래된 물건이었다.
"선대 보관인이 따로 남긴 것입니다. 저도 사흘 전에야 찾았어요."
청연도인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여자와 책자 사이의 거리를 눈으로 잰 것 같은 움직임이었다. 소매가 스치는 소리가 기록고 안의 정적 속에서 작게 들렸다.
"그 책자를 보여 줄 수 있겠습니까."
청연도인의 말은 또박또박 잘렸다. 존칭을 썼지만 요청이 아니었다. 여자는 잠깐 망설였다. 망설임이 길지 않았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했다. 진무백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너무 빨리 내밀었다. 이미 보여 주기로 결정했다는 뜻이거나, 아니면 이쪽이 먼저 요구하기를 기다렸다는 뜻이었다. 어느 쪽이든 이 여자는 이 책자를 오늘 이 자리에서 꺼낼 생각으로 왔다.
책자 안에는 방문자 기록이 날짜 순서로 적혀 있었다. 대부분 두세 줄짜리 짧은 기록이었다. 청연도인이 책자를 펼쳐 훑는 동안 진무백은 어깨 너머로 시선을 걸었다. 날짜는 삼 년 전부터 시작됐다. 그리고 맨 마지막 기록 두 개가 다른 필체로 적혀 있었다. 앞의 기록들과 먹 색깔도 달랐다. 오래 묵은 먹이 아니었다. 누군가 나중에 끼워 넣은 것이었다. 진무백은 그 두 줄을 보는 순간 숨을 한 박자 늦췄다.
"이게 뭐요."
진무백이 그 두 줄을 손끝으로 짚었다. 여자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마지막 방문자가 남기고 간 것입니다. 이름이 없습니다."
"방문자가 직접 썼다는 거요."
"그렇습니다."
청연도인이 책자를 더 가까이 들었다. 나중에 끼워 넣은 두 줄 중 첫 번째 줄에는 날짜와 함께 짧은 문장이 하나 있었다. 봉인은 사람이 치는 것이 아니라 기록이 친다. 두 번째 줄에는 그보다 더 짧게, 글자 네 개만 있었다. 매화. 그리고 아래에 작은 문양 하나. 먹이 번지지 않게 눌러 찍은 것이었다. 손이 떨리지 않은 사람의 흔적이었다.
진무백의 손이 소매 안쪽으로 갔다가 멈췄다.
청연도인이 그 순간을 봤다. 두 사람의 시선이 한 점에서 만났다가 각자 거뒀다. 청연도인이 입을 열었다.
"이 문양을 이전에도 본 적이 있습니까."
여자에게 묻는 말이었다. 그러나 진무백은 그 질문이 자신에게도 향한다는 것을 알았다. 청연도인은 지금 두 방향을 동시에 보고 있었다. 진무백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여자가 대답하기 전에 기록고 바깥에서 소리가 들렸다. 발소리가 아니었다. 패를 두드리는 소리였다. 무당 도관 특유의 경패 소리, 규율 집행 순찰이 돌 때 내는 것이었다. 오늘 이 시간에 기록고 구역으로 순찰이 들어온다는 말은 사전에 없었다. 진무백은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청연도인의 얼굴을 봤다.
굳어 있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굳어 있었다. 그것이 진무백에게는 답이었다. 청연도인은 이 순찰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 시간에 기록고 안에 있으면 안 된다는 것도. 그렇다면 왜 이 시간에 들어왔는가. 진무백은 그 질문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나가야 합니까."
진무백이 낮게 물었다. 청연도인은 잠깐 침묵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도문 규율상 외인이 기록고 안에 있는 것을 순찰 중에 발각되면 위탁 열람 권한 자체가 무효가 됩니다. 지금 나가야 합니다."
"편리한 규율이군요."
진무백이 말했다. 청연도인이 눈을 들었다. 진무백은 이미 돌아서고 있었다. 비꼰 것인지 그냥 한 말인지 알 수 없는 온도였다. 여자가 책자를 다시 손에 쥐었다. 진무백은 시선을 그 책자에서 떼지 않은 채 쪽문 쪽으로 걸었다. 뒤통수로 매화 향이 따라오는 것 같았다.
세 사람이 쪽문 밖으로 나왔을 때 경패 소리는 이미 담장 바로 바깥에 있었다. 진무백은 담벼락에 등을 붙이고 서서 발소리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청연도인은 그 옆에 서 있었고, 여자는 두 사람 뒤로 한 발 물러나 있었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발소리가 가까워졌다가 방향을 틀었다. 골짜기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소리였다. 진무백은 그 소리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숨을 얕게 쉬었다. 내공을 억누르고 있는 숨이었다.
발소리가 끊기고 나서야 진무백이 여자를 돌아봤다.
"그 책자. 오늘 안에 다시 볼 수 있소."
여자는 대답하지 않고 청연도인을 봤다. 진무백은 그 시선의 방향이 불편했다. 자신에게 물어봐야 할 것을 왜 청연도인에게 물어보는가. 이 여자는 처음부터 청연도인을 기준으로 이 자리를 읽고 있었다. 진무백은 그 사실을 지금 이 순간에야 정확하게 파악했다.
청연도인이 여자와 눈을 마주쳤다가 먼저 고개를 돌렸다.
"규율 순찰이 끝나면 저녁 해가 지기 전에 다시 기회가 생깁니다. 그 안에 봐야 합니다."
진무백은 두 사람 사이를 한 번 더 봤다. 여자가 알고, 청연도인이 알고, 그리고 진무백만 모르는 무언가가 이 기록고 바깥 공기 속에도 있었다. 청연도인이 이름을 묻지 않는다. 여자가 이름을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두 사람은 서로를 보는 방식이 처음 만나는 사람의 방식이 아니었다. 진무백은 그것을 세 번째로 확인했다.
매화 향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그러나 그 자리에 다른 무게가 남았다. 오늘 안에 궤짝을 열어야 한다는 압박이, 그리고 청연도인이 저 여자에게 이름을 아직 묻지 않았다는 사실이. 진무백의 소매 안에서 문양 조각이 아직 차갑게 있었다. 꺼내지 않은 것이 옳은 선택이었는지, 아니면 이미 늦은 것인지, 저녁 해가 지기 전까지는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