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째 날 아침은 안개로 시작했다. 성벽 위로 낮게 깔린 안개가 훈련장 쪽까지 내려와 있어서, 점호 나팔 소리가 평소보다 멀고 뭉개진 것처럼 들렸다. 카일은 막사 문을 열기 전에 잠깐 멈췄다. 오늘은 묻기로 했다. 어제도, 그제도 그 결심을 미뤘는데, 오늘은 달랐다. 네 번째 자국이 생기기 전에 먼저 말을 걸어야 한다고 레오가 말했다. 아니, 레오가 말한 건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카일은 그 둘 사이 어디쯤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문을 열었을 때 자국은 이미 거기 있었다.
막사 벽 모서리, 돌 틈새에 날카로운 것으로 그은 선. 하나, 둘, 셋, 넷. 카일은 발걸음을 멈추고 그 자국을 세었다. 어젯밤 분명히 셋이었다. 오늘 아침 점호 나팔이 울리기 전,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어야 할 시간에 누군가 그것을 그었다. 카일은 고개를 돌려 구석 자리를 봤다. 기한은 무릎을 세우고 벽에 등을 기댄 채 앉아 있었다. 눈은 열려 있었지만 카일 쪽을 보지 않았다. 손은 무릎 위에 얹혀 있었고, 오른쪽 검지 끝에 희미하게 돌가루 같은 것이 묻어 있었다. 카일은 그것을 확인하고 시선을 거뒀다.
카일은 오늘 아침의 결심을 조용히 접었다. 말을 걸기에 지금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아니었다. 자국이 이미 그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무엇을 세는 것인지 몰라도, 오늘 그것은 카일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그 사실이 이상하게 무겁게 느껴졌다.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손을 내밀기 전에 뭔가가 한 발 먼저 움직이고 있었다.
배식이 시작되었다. 양동이 두 개, 그릇 열여섯 개. 카일은 줄 앞에 서서 아이들이 차례로 나오는 것을 지켜봤다. 오늘도 마지막 한 그릇이 남을 것이었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양동이 안에서 국자가 움직일 때마다 기름 냄새와 보리 냄새가 섞여 올라왔다. 막사 안 공기는 아직 밤의 냉기를 다 털어내지 못한 채였다.
열다섯 번째 아이가 그릇을 받아 들고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한 박자 느리게, 구석에서 누군가 일어서는 소리가 났다.
기한이었다.
소년은 말이 없었다. 눈을 내리깔고 줄의 끝으로 걸어왔다. 흉터가 있는 손이 그릇을 받아 들었다. 양동이를 젓는 카일의 손이 잠깐 멈칫했다가 다시 움직였다.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소년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릇을 받아 든 기한은 줄에서 벗어나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막사 안에 다른 소리들이 계속 있었기 때문에, 그 장면을 눈여겨본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카일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레오는 봤다.
훈련장으로 나가는 길에 레오가 카일 옆으로 걸어왔다. 딱히 맞춰 걸은 것도 아니었는데 어느새 어깨 높이가 나란했다. 레오는 앞을 보면서 말했다.
"먹었네."
"응."
"오늘 묻지 않았어?"
카일은 잠깐 생각했다.
"자국이 이미 넷이었어. 내가 일어나기 전에."
레오는 대꾸하지 않았다. 훈련장 입구 쪽에서 부교관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카일은 레오가 어딘가 생각에 잠긴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그 생각이 어디를 향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훈련장 흙바닥이 안개에 젖어 발밑에서 무겁게 눌렸다.
오전 훈련은 목검 대련이었다. 카일은 세 번째 상대와 붙었을 때 왼쪽 손목을 얻어맞고 목검을 떨어뜨렸다. 흙바닥에 무릎이 닿는 순간 부교관이 혀를 찼다. 목검이 땅에 박히는 소리가 짧고 둔하게 울렸다. 레오는 그 장면을 바라보다가 카일이 목검을 집어 드는 타이밍에 짧게 말했다.
"손목이 아니라 팔꿈치야. 힘이 거기서 새."
카일은 고개를 들었다. 레오는 이미 자기 대련 상대 쪽으로 몸을 돌리고 있었다. 조언인지 아닌지 구분하기 어려운 어조였다. 그러나 카일은 다음 대련에서 팔꿈치를 의식했고, 목검을 떨어뜨리지 않았다. 상대의 공격이 왼쪽으로 흘렀고, 카일의 목검이 그 흐름을 막아냈다. 부교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이 이 훈련장에서 통과를 의미하는 방식이었다.
점심 배식이 끝나고 막사 안이 잠시 조용해진 사이, 카일은 벽 쪽으로 걸어갔다. 자국 앞에 서서 손가락으로 선의 깊이를 짚어봤다. 얕지 않았다. 뭔가 단단한 것으로 그은 것이었다. 돌이나 쇠, 혹은 작은 날 같은 것. 카일은 기한의 손을 떠올렸다. 흉터가 있는 손이었다. 그릇을 받아 들 때 그 손이 잠깐 보였다. 뭔가를 쥐고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뜻은 아니었다. 선 하나하나의 간격이 일정했다. 급하게 그은 것이 아니었다.
기한은 오후에도 구석 자리에 있었다. 오전과 달리 무릎을 내리고 등을 벽에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자는 것인지 깨어 있는 것인지 분간이 안 됐다. 카일은 그 자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앉아 장부를 펼쳤다. 이름을 확인하는 척하면서 눈의 방향은 다른 곳을 향했다. 막사 안에서는 다른 아이 둘이 낮은 목소리로 뭔가를 주고받고 있었고, 그 소리가 배경처럼 깔렸다.
기한은 한 시간쯤 지나 눈을 떴다. 그리고 일어섰다. 막사 문 쪽으로 걸어가다 잠깐 멈췄다. 발걸음이 딱 한 박자 흔들렸다. 카일은 그것을 봤다. 문 옆에 걸린 작은 쇠고리에 기한의 시선이 닿았다가 떨어졌다. 쇠고리는 아무것도 걸려 있지 않았다. 소년은 그냥 문을 밀고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막사 안에 짧게 울렸다.
카일은 주머니 속에 손을 넣었다. 헝겊 조각의 감촉이 손끝에 닿았다. 오늘도 꺼내지 않았다. 붉은 기수단 문장이 찍힌 낡은 조각. 이것을 어디서 꺼내야 하는지, 누구에게 보여야 하는지,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다. 조각의 천이 손바닥 안에서 구겨졌다가 펴졌다.
저녁 불이 들어올 무렵 레오가 막사 문가에 서서 카일을 불렀다. 막사 안을 들어오지 않고 문틀에 기댄 채였다.
"그라스가 그랬어. 아이들 중에 벽을 세는 애가 있으면, 그건 날을 세는 게 아닐 수 있다고."
카일은 장부에서 눈을 들었다.
"그럼 뭘 세는 건데."
레오는 잠깐 말이 없었다. 문 밖에서 바람이 지나갔다. 성벽 위 어딘가에서 쇠사슬 소리가 가늘게 울렸다가 끊겼다.
"그라스도 몰랐대. 그래서 기다렸다고."
레오는 더 말하지 않고 자리를 떴다. 카일은 그 자리에 잠깐 앉아 있었다. 장부 위에 손이 놓인 채였다. 그라스는 이전에도 이런 아이를 만난 적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한 명인지, 여러 명인지, 레오가 직접 본 것인지 전해 들은 것인지. 아무것도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레오가 그 말을 꺼낸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어제도, 그제도 하지 않은 말을 오늘 한 것이었다. 그것이 기한이 배식 줄에 선 것과 관계가 있는지, 카일은 판단할 수 없었다.
밤이 되었다. 기한은 자기 자리에 돌아와 있었다. 그릇은 오늘 두 번 비워졌다. 아침과 저녁. 카일은 그것을 세지 않으려다가 결국 셌다. 벽의 자국은 여전히 넷이었다. 오늘 밤 사이에 다섯 번째가 그어질 것인지, 아니면 이 자국들이 가리키는 것이 카일이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다른 무언가인지. 그것은 여전히 열려 있었다. 카일은 주머니 안의 헝겊 조각을 손으로 감싼 채 눈을 감았다. 내일 아침 벽을 확인하는 것이 가장 먼저 할 일이 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