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째 날 아침, 자국은 여전히 넷이었다.
카일은 막사 문을 열기 전에 숨을 한 번 고르는 버릇이 생겼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몰랐다. 이 막사를 맡은 첫날부터였던 것 같기도 하고, 기한이라는 이름을 장부에 올린 날부터였던 것 같기도 했다. 어쨌든 그는 오늘도 문 앞에서 한 박자 멈췄다가 안으로 들어섰다. 새벽 공기가 등 뒤에서 밀고 들어왔다. 젖은 짚 냄새와 어젯밤 꺼지다 만 등불 기름 냄새가 섞여 있었다. 그는 습관처럼 벽 모서리 쪽을 확인했다.
네 줄이었다. 어제와 같았다.
카일은 속으로 셌다. 하나, 둘, 셋, 넷. 오늘 밤 사이에 다섯 번째가 생겼을 거라고 반쯤 믿고 있었는데, 아니었다. 그 사실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자국이 늘지 않은 것이 안도여야 하는지 불안이어야 하는지, 카일은 아직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는 장부를 펼치는 척하면서 다시 한 번 벽을 봤다. 네 줄은 변함없이 거기 있었다.
기한은 구석 자리에 없었다. 아침 배식이 시작되기 전인데도 빈 자리였다. 카일은 그릇 수를 세면서 마당 쪽 문을 힐끗 봤다. 열려 있었다. 바람이 안쪽으로 밀고 들어오는 걸 보면 누군가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 문 아래 흙바닥에 발자국이 두 줄 찍혀 있었다. 나간 것과 들어온 것. 한 사람이 두 번 오간 흔적이었다.
"어디 갔어요?"
카일이 옆에 있던 아이에게 물었다. 열두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로, 이름은 덴이었다. 덴은 숟가락을 핥으면서 마당 쪽으로 턱을 들었다.
"화장실이요. 새벽부터 나갔다 들어왔다 하던데요. 배탈 난 거 아닌가."
덴이 태연하게 말했다. 카일은 대답 대신 그 말을 머릿속에 얹어두었다. 새벽부터 나갔다 들어왔다. 그 말이 맞다면 기한이 벽에 자국을 긋는 것은 새벽이 아닌 다른 시간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오늘은 긋지 않은 것이고. 덴은 이미 다른 아이와 무언가를 낄낄대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카일은 그 웃음소리를 들으면서 장부 귀퉁이에 짧게 받아 적었다. 새벽, 두 번 이동. 자국 없음.
배식이 끝날 무렵 기한이 돌아왔다. 문을 조용히 열고 들어오더니 자기 자리에 앉았다. 신발 끝에 마당 흙이 묻어 있었다. 카일은 그쪽을 직접 보지 않고 장부에 눈을 두고 있었다. 기한은 그릇을 받아서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말 한마디 없이, 주변을 살피지도 않고. 그 고요함이 오히려 더 눈에 들어왔다. 조용한 아이가 아니라 조용하기로 결심한 아이의 고요함이었다.
훈련은 오전 중반부터 시작됐다. 안개는 어느새 걷혀 있었고 훈련장 흙이 발밑에서 퍽퍽 소리를 냈다. 카일은 목검을 쥐고 기본 자세 점검부터 시작했다. 아이들 사이에서 이 시간이 가장 시끄러웠다. 목검이 부딪히는 소리, 누군가 넘어지는 소리, 작게 욕하는 소리. 살아 있는 소음이었다. 기한은 줄 끝에 서 있었다. 목검을 쥔 손이 어제보다 조금 낮았다. 나쁘지 않은 변화였다. 카일이 그 점을 짚으려고 한 걸음 옮기는 순간, 덴이 옆에서 넘어지며 기한의 발을 밟았다. 기한은 목검을 놓쳤다. 목검이 땅에 떨어지며 둔탁한 소리를 냈고, 주변 아이 두엇이 웃었다.
"조용히 해."
카일이 낮게 말했다. 웃음이 잦아들었다. 덴이 머리를 긁으며 일어났고, 기한은 목검을 집어 들었다. 표정이 없었다. 화가 난 것도, 당황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집어 들고 자리로 돌아가 섰다. 카일은 그 움직임을 눈으로 따라가다가 시선을 끊었다.
레오가 나타난 것은 오전 훈련이 절반쯤 지났을 때였다. 그는 훈련장 외곽을 천천히 걸어오다가 카일 옆에 서더니 아무 말 없이 아이들을 한동안 지켜봤다. 갑옷 어깨받이가 움직일 때마다 쇠 마찰음이 낮게 났다. 그 시선이 기한에게 오래 머물렀다. 기한은 오늘 목검을 쥐고 있었는데 자세가 어색했다. 왼발이 오른발보다 너무 앞에 있었고, 손목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카일도 그걸 알고 있었지만 아직 건드리지 않고 있던 참이었다.
"발."
레오가 짧게 말했다. 기한이 멈췄다. 레오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기한은 잠시 내려다보더니 왼발을 뒤로 당겼다. 자세가 달라졌다. 어색하긴 해도 이전보다 나았다. 카일은 그 장면을 옆에서 봤다. 레오가 기한의 자세를 지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쩌면 카일이 없는 사이에 이미 몇 번 있었던 일인지도 몰랐다. 그 생각이 들자 카일은 뭔가 이미 자신이 모르는 곳에서 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이상한 감각을 느꼈다.
훈련이 끝나고 아이들이 흩어진 뒤, 레오가 카일 쪽으로 걸어왔다. 흙먼지가 그의 부츠 끝에 하얗게 앉아 있었다.
"그라스가 말했었지."
레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카일은 목검을 내리며 그를 봤다.
"벽을 세는 아이는 탈출을 준비하는 게 아니라고. 세는 건 시간이 아니라 조건이라고."
짧은 문장이었다. 레오는 그 말을 하고 나서 카일의 반응을 기다리지 않았다. 곧바로 발걸음을 돌려 훈련장을 빠져나갔다. 카일은 그 자리에 서서 레오의 뒷모습을 잠깐 봤다가 손에 쥔 목검 손잡이를 내려다봤다. 손바닥에 땀이 배어 있었다.
조건.
그 단어가 머릿속에서 한 번 울렸다. 날수가 아니라 조건이라면, 기한이 자국을 긋지 않은 오늘은 그 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날이라는 뜻인가. 카일은 그것이 무슨 조건인지 아직 알지 못했다. 그리고 레오가 왜 하필 오늘 그 말을 꺼냈는지도. 그라스에게서 직접 들은 것인지, 아니면 다른 경로가 있는 것인지. 물을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레오는 이미 없었고, 카일은 빈 훈련장에 혼자 서 있었다. 바람이 훈련장을 가로질렀다. 흙먼지가 일었다가 가라앉았다.
저녁 배식은 평소보다 늦게 시작됐다. 양동이 하나가 회랑 어딘가에서 뒤늦게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이 그 앞에 길게 줄을 섰고, 카일은 줄 끝에 기한이 서 있는 것을 봤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였다. 그릇을 두 손으로 받아 드는 자세는 여전히 어색했지만, 받았다. 그것만은 분명했다. 카일은 문 옆 쇠고리에 망토를 걸다가 손을 멈췄다. 기한의 오른손 검지가 눈에 들어왔다. 그릇을 잡는 방식이 어제와 달랐다. 오른쪽 검지를 그릇 바깥으로 살짝 내밀어서 잡고 있었다. 손가락 끝이 조금 뻣뻣한 것처럼 보였다. 카일은 그 손가락이 벽에 닿은 손가락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국을 긋는 손이었다. 오늘은 쓰지 않은 손.
줄이 줄어들면서 기한 차례가 됐다. 그릇을 받아 들고 돌아서는 순간, 기한이 카일과 눈이 마주쳤다. 한 박자. 기한이 먼저 시선을 내렸다. 카일도 고개를 돌렸다. 아무 말도 없었다. 그릇에 담긴 국물이 걸음에 흔들렸다. 그게 전부였다. 하지만 어제까지만 해도 그 눈 마주침 자체가 없었다. 카일은 그 사실을 망토 끈을 고쳐 매면서 혼자 확인했다.
밤이 되었다. 막사에 불이 들어오고 아이들이 하나씩 자리에 눕기 시작했다. 카일은 출입 기록을 정리하면서 벽 쪽을 한 번 봤다. 자국은 여전히 넷이었다. 오늘 밤에도 다섯 번째가 생기지 않는다면, 그것은 기한이 세는 것이 날수와 무관하다는 것을 더 분명하게 가리키는 셈이었다. 카일은 주머니 속 헝겊 조각을 손끝으로 만졌다. 꺼내지 않았다. 오늘도 꺼내지 않았다. 그것을 누구에게 보여야 하는지, 혹은 보여야 할 때가 아직 오지 않은 것인지. 그 판단이 아직 서지 않았다.
막사 안이 조용해졌다. 기한은 구석 자리에 누워 있었다. 눈을 감은 건지 뜨고 있는 건지 어둠 때문에 보이지 않았다. 카일은 그 자리를 오래 보지 않고 등불을 낮췄다. 불꽃이 작아지면서 벽의 자국 네 줄이 그림자 속으로 잠겼다. 오늘 밤이 지나면 벽이 달라져 있을 것인지, 아니면 내일 아침에도 네 줄이 그대로일 것인지. 그것은 내일 문을 열어봐야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카일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눈을 감지 못하고 한동안 천장을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