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열두 시 이십 분이었다. 이동조가 응급병동 복도를 완전히 벗어난 뒤 처음 멈춘 곳은 병원 동쪽 외벽과 주차장 사이의 좁은 통로였다. 지붕 처마가 낮게 내려와 있어서 두 사람이 나란히 서면 어깨가 닿았다. 세온은 거기서 멈춰 인원을 다시 셌다. 강태민, 하린, 정윤호, 오도혁. 자신까지 다섯. 유리와 박미숙을 남겨두고 온 숫자가 맞았다. 맞는다는 사실이 오히려 이상하게 무거웠다.
통로 바닥에 물이 고여 있었다. 어제 밤비 때문인지 배수관이 막혀 역류한 건지 알 수 없었다. 도혁이 그 물웅덩이 가장자리를 발끝으로 건드리더니 고개를 들었다.
"냄새 맡아봐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자 도혁이 다시 말했다.
"강 냄새예요. 수로랑 이 배수관이 연결돼 있는 거면 방향이 맞다는 거고."
태민이 도혁을 한 번 봤다가 시선을 돌렸다. 대꾸 없는 것이 긍정이라는 건 이제 다들 알았다.
하린은 통로 벽에 등을 붙이고 태블릿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주파수 선이 아까보다 안정적이었다. 병원 건물 안에서는 벽과 구조물 때문에 수신이 들쭉날쭉했는데, 외벽 밖으로 나오자 신호가 조금 더 또렷해진 것이다. 하린이 손가락으로 화면을 두 번 두드렸다.
"박선묵 쪽 주파수는 아직 같은 자리에 있어요. 근데 북서쪽 거는 오전이랑 채널이 달라요. 같은 발신원이 주파수를 바꾼 건지, 아니면 다른 데서 올라온 건지 아직 모르겠어요."
세온이 하린 쪽으로 몸을 틀었다.
"얼마나 걸려?"
"기준이 있어야 알죠. 지금은 그냥 잡히는 거 다 받아놓는 중이에요."
하린이 태블릿을 가슴 쪽으로 당기며 말했다. 목소리에 방어적인 기색은 없었다. 그냥 사실 그대로를 전달하는 말투였다. 세온은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모른다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 이 안에서는 오히려 믿음직했다.
태민이 통로 끝으로 걸어가 주차장 너머를 살폈다. 차들이 다섯 대 남아 있었다. 한 대는 유리창이 깨져 있고, 나머지는 그냥 세워진 채였다. 사람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태민이 돌아서며 말했다.
"수로 진입로가 두 군데야. 북쪽 격자 수문이랑 동쪽 콘크리트 계단. 격자 수문은 잠겨 있으면 돌아가야 하고, 계단은 개방이지만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각도가 너무 넓어."
세온이 도혁을 봤다. 도혁은 웅덩이 옆에 쪼그리고 앉아 운동화 끈을 고쳐 매고 있었다.
"도혁 씨, 전에 루트가 어쪽이었어요?"
도혁이 끈을 마저 묶고 일어섰다.
"격자 수문이요. 근데 그때는 수문 자물쇠를 박선묵 쪽에서 풀어줬어요. 나는 그냥 들어갔고."
짧은 침묵이 흘렀다. 윤호가 가방 끈을 고쳐 쥐며 낮게 물었다.
"그럼 지금은 잠겨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거네요."
도혁이 어깨를 한 번 으쓱했다. "높죠. 박선묵이 루트 관리하는 방식이 그래요. 자기가 열어줘야 들어올 수 있게." 태민이 그 말에 눈썹을 약간 당겼다. 자기가 열어줘야. 그 말의 뜻을 다들 같은 방향으로 소화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세온과 태민 사이에 의견이 갈린 건 그다음이었다. 세온은 동쪽 계단을 먼저 확인하고 수문 쪽은 대안으로 두자고 했다. 태민은 반대였다.
"계단 진입은 노출이 너무 커. 한 줄로 내려가는 동안 위에서 보면 다 보여. 수문이 잠겼는지 먼저 확인해봐야 해."
세온이 잠깐 생각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수문까지 가려면 주차장을 가로질러야 했고, 그쪽은 더 트여 있었다.
"수문까지 가는 길이 더 열려 있어요. 만약 거기도 막혀 있으면 이쪽으로 다시 돌아와야 하고."
"그러면 계단 쪽도 마찬가지 아니야." 태민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두 사람이 서로를 보는 사이 도혁이 옆에서 조용히 말했다. "제가 혼자 수문 가서 확인하고 올게요. 이 동네 지리는 나만큼 아는 사람이 여기 없잖아요."
태민이 도혁을 봤다. 세온도 봤다. 도혁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었다. 너무 아무렇지 않아서 오히려 읽기가 어려운 얼굴이었다. 세온이 입을 열었다.
"혼자는 안 돼요."
"왜요? 빠르잖아요."
"빠른 게 문제가 아니에요. 혼자 가면 확인이 안 돼." 도혁이 잠깐 세온을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그럼 누구랑 같이 가면 되죠?" 태민이 먼저 움직였다. "내가 간다."
둘이 주차장 쪽으로 사라진 뒤 통로에 남은 건 세온과 하린, 윤호였다. 하린은 태블릿을 계속 들여다보고 있었다. 윤호는 벽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실제로 자는 건지 쉬는 건지 알 수 없었는데, 세온이 보기엔 쉬는 척하는 것 같았다. 쉬는 척하면서 듣고 있는. 윤호는 그런 사람이었다. 세온은 그 점을 이제 싫어하지 않았다. 익숙해졌다는 게 더 정확했다.
칠 분쯤 지났을 때 태민이 먼저 돌아왔다. 도혁은 한 걸음 뒤에서 따라왔다. 태민의 얼굴이 평소보다 조금 굳어 있었다.
"수문 잠겨 있어."
세온이 고개를 끄덕이며 기다렸다. 태민이 말을 이었다.
"근데 자물쇠가 최근에 열렸다가 다시 잠긴 흔적이 있어. 녹 긁힌 자리가 새로워."
하린이 태블릿에서 눈을 들었다. "누가 다녀갔다는 거예요?"
도혁이 대신 말했다.
"그것만이 아니에요."
그가 주머니에서 손을 꺼냈다. 손바닥에 작은 것이 얹혀 있었다. 빨간 페인트 마커였다. 뚜껑이 없었고 끝이 말라 있었다.
"수문 오른쪽 콘크리트 벽에 표식이 있어요. 삼각형 하나에 선 두 개. 저도 처음 보는 거예요."
세온이 그 마커를 받아 들고 한참 들여다봤다. 삼각형. 선 두 개. 박선묵 쪽 표식인지, 전혀 다른 누군가의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었다.
윤호가 눈을 떴다.
"군 검문소 표식 아닌가요."
모두가 윤호를 봤다. 윤호는 눈을 반쯤 감은 채 말을 이었다.
"재난 초기에 군이 수로 거점 확보할 때 썼던 거예요. 나는 문건에서 봤고. 근데 그게 지금까지 남아 있다는 건…"
윤호가 말을 흐렸다. 태민이 낮게 물었다. "군이 아직 이 수로를 쓰고 있다는 거야, 아니면 그냥 오래된 표식이라는 거야." 윤호가 입을 다물었다. 대답하기 싫은 건지, 모르는 건지. 세온은 그 경계를 지금은 더 밀지 않기로 했다.
동쪽 콘크리트 계단으로 방향을 바꾸기로 결정이 난 건 그 이후였다. 태민이 선두, 세온이 중간, 하린과 윤호가 그 뒤, 도혁이 후미를 맡았다. 계단을 내려가기 전 세온이 한 번 위를 올려다봤다. 처마 너머 하늘이 회색이었다. 비가 올 것 같은 회색이 아니라 그냥 아무것도 없는 회색이었다. 하린이 옆에서 속삭였다.
"북서쪽 신호, 계단 내려가면 또 끊길 수 있어요."
세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끊기면 올라와서 다시 잡아."
하린이 잠깐 세온을 봤다가 고개를 숙였다. 뭔가 더 말하려다가 참은 것 같았다.
계단 아래로 내려가자 공기가 달라졌다. 습하고 차가웠다. 콘크리트 벽에서 물기가 스며 나오고 있었고, 발밑에 모래와 자갈이 섞여 있었다. 수로가 가까웠다. 도혁이 뒤에서 말했다.
"여기서부터 냄새 달라지죠."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달라지는 건 냄새만이 아니었다. 발소리가 달라졌다. 콘크리트 위에서 자갈 위로 바뀌면서 소리가 낮고 바삭해졌다. 수로 입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녹슨 철망이 반쯤 열린 채 걸려 있었다. 최근에 누군가 지나간 것처럼, 딱 그만큼만 열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