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열한 시 사십 분이었다. 처치실 안에 자원자가 세 명 섰다. 하린, 윤호, 그리고 도혁. 세온은 그 세 사람을 차례로 보다가 마지막으로 유리를 봤다. 유리는 박미숙의 손목을 다시 감고 있었다. 붕대를 교체하는 손이 흔들리지 않았다.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어떤 결심의 증거처럼 보였다.
처치실 안은 소독약 냄새와 오래된 피 냄새가 섞여 있었다. 환기가 안 된 공기가 낮게 깔렸다. 비상등이 벽 모서리에서 붉게 깜박이다가 멈추고, 다시 깜박였다. 아무도 그걸 신경 쓰지 않았다. 이미 사흘째 같은 리듬이었다.
"자원자 셋. 그리고 차 간호사."
세온이 천천히 말했다. 명단을 손에 쥐었다. 종이가 구겨져 있었다. 몇 번 접었다 폈다 했기 때문이었다.
"이동조는 열두 명. 박미숙 씨 포함 이동 불가 판정자 두 명은 다음 순환까지 여기 남는다. 기준대로 간다."
태민이 팔짱을 풀었다.
"순서."
짧게 말했다. 명단 순서를 묻는 것인지, 이동 순서를 묻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았지만 세온은 알아들었다.
"보행 가능, 부상 경미 순으로 먼저. 박미숙 씨는 마지막 순환에 맞춰 들것 이동."
세온이 말하면서 유리 쪽을 한 번 봤다. 유리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붕대 끝을 의료용 테이프로 고정하고 있었다.
"유리 씨가 남는 건 마지막 순환까지다. 그 이후엔 같이 나온다."
유리가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마지막 순환이 언제예요."
"두 시간 안."
태민이 대신 답했다. 세온을 보지 않고 유리에게 직접 말했다.
"두 시간 안에 못 들어오면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유리가 입술을 한 번 다물었다가 다시 열었다.
"알겠어요."
그게 전부였다. 두 시간이라는 시간이 너무 짧다거나, 너무 길다거나, 말하지 않았다. 처치실 안에서 그 두 마디가 유독 크게 들렸다. 박미숙이 눈을 감은 채로 숨을 들이쉬었다. 규칙적인 숨이었다. 그게 지금 이 방에서 가장 안정적인 소리였다.
윤호가 가방 끈을 고쳐 쥐었다. 어깨에 걸친 가방이 무거운지 한쪽으로 기울었다가 바로 섰다. 아무도 가방 안에 뭐가 들었냐고 묻지 않았다. 윤호도 먼저 말하지 않았다. 별첨 B를 꺼냈던 자리, 처치실 바닥 한쪽 모서리를 윤호가 잠깐 내려다봤다가 시선을 거뒀다. 그 종이는 이제 이동조 중 한 명의 주머니 안에 들어가 있었다.
도혁이 그 틈에 조용히 손을 들었다. 자원 의사를 밝힐 때와는 다른 손이었다. 더 작은 동작이었다.
"잠깐."
그가 말했다. 시선이 세온에게 갔다.
"남동쪽 방향. 내가 알고 있는 거 있어요."
처치실 안이 순간 조용해졌다. 태민의 눈이 도혁에게 고정됐다. 세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린이 태블릿을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들어 도혁을 봤다. 도혁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게 오히려 이상하게 보였다. 도혁이 시선을 피하지 않을 때는 보통 두 가지 중 하나였다. 완전히 준비가 됐거나, 아니면 더 이상 숨길 게 없거나.
"지붕에서 연기 봤을 때."
도혁이 계속했다. 말투가 평소보다 느렸다. 능청스러운 편이 없었다.
"그 방향이 박선묵 거점이랑 겹쳐요. 이 킬로미터 안쪽. 내가 전에 물건 넣은 루트 중 하나."
잠깐 멈췄다. "말 안 했습니다. 미안합니다."
태민이 팔짱을 다시 꼈다. 그게 태민이 화를 누르는 방식이라는 걸 이제 처치실 안 모두가 알았다. 그러나 태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세온이 먼저 입을 열었다.
"지금 말한 거야."
세온의 목소리가 낮았다. 낮은 목소리가 더 무거웠다.
"박선묵 거점 위치, 거래 루트, 응답 신호가 그쪽에서 왔을 가능성. 세 개 다 지금 말한 거야."
"네."
도혁이 짧게 답했다.
세온은 잠시 도혁을 봤다. 화를 내지 않았다. 화를 내는 대신 그 정보를 머릿속으로 정리하는 것처럼 잠깐 시선을 내렸다가 다시 들었다.
"그 루트로 이동 가능해?"
도혁이 조금 놀란 것 같았다. 꾸중을 예상했던 것처럼.
"가능은 해요. 위험 변수가 있는데, 선묵 쪽이 그 루트를 아직 쓰는지 모릅니다."
"확인해 줘."
세온이 명단을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이동 시작하고 나서 같이 확인한다. 들어온 김에 전부 꺼내."
마지막 문장이 부드럽지 않았다. 그러나 그게 처벌이 아니라 요청이라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태민이 그 말을 들으면서 팔짱을 풀었다. 풀었다가 다시 꼈다. 그것도 아무 말 없이.
하린이 그 순간 태블릿을 세온 쪽으로 내밀었다.
"세온 씨."
하린의 목소리가 작았지만 떨리지 않았다.
"아까부터 주파수 잡고 있었는데요. 남동쪽 말고."
화면에 파형이 가늘게 흔들리고 있었다. "북서쪽에서도 신호가 들어와요. 간헐적인데, 박선묵 거점 주파수랑 달라요. 이게 뭔지 모르겠어요."
세온이 태블릿을 받아 들고 파형을 봤다. 태민이 옆으로 다가왔다. 두 사람이 화면을 같이 보는 동안 처치실 안이 다시 조용해졌다. 박미숙의 숨소리가 그 침묵 안에서 규칙적으로 섞였다. 들이쉬고, 멈추고, 내쉬고.
"기록해 둬."
태민이 말했다. 하린에게 하는 말이었다.
"이동 출발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잡아봐. 간격이 일정하면 발신원이 있는 거야."
하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이는 게 대답인지 다짐인지 구분이 안 될 만큼 힘이 있었다. 유리가 그 모습을 잠깐 봤다. 하린이 사흘 전 처음 처치실에 들어왔을 때와 지금이 달랐다. 말수가 줄었고, 태블릿을 내려놓는 법이 없었다. 그게 성장인지 소진인지는 유리도 몰랐다.
세온이 처치실 문 쪽으로 돌아섰다. 손잡이에 손을 얹기 전에 처치실 안을 한 번 더 봤다. 유리가 박미숙 옆에 앉아 있었다. 박미숙은 눈을 뜨고 있었다. 유리를 보고 있는 건지 천장을 보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유리는 박미숙의 손등 위에 자기 손을 얹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두 시간."
세온이 문을 열면서 말했다. 유리를 향한 말이었다.
"알아요."
유리가 답했다. 돌아보지 않았다.
문이 열렸다. 복도의 공기가 처치실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소독약 냄새가 얇아진 공기, 먼지와 시간이 뒤섞인 냄새. 이동조가 하나씩 문을 나섰다. 하린이 태블릿을 가슴 앞에 안고 마지막으로 처치실을 돌아봤다. 유리와 눈이 마주쳤다. 유리가 턱을 한 번 끄덕였다. 가라는 뜻이었다. 하린이 문을 나섰다.
복도는 길었다. 비상등이 바닥 가까이에서 붉게 깔려 있었다. 세온이 앞장섰다. 태민이 그 뒤를 바짝 따랐다. 도혁이 중간쯤에 섰다. 자기가 아는 루트를 꺼내야 할 차례가 곧 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인지, 발걸음이 평소보다 조금 무거웠다. 윤호가 맨 뒤에서 걸었다. 가방이 어깨를 눌렀다. 윤호는 그 무게를 고쳐 지지 않았다.
처치실 문이 닫혔다. 유리는 그 소리를 들었다. 둔탁하고 무거운 소리였다. 박미숙이 그 소리에 반응하듯 손가락을 조금 움직였다. 유리의 손 위에서였다. 유리는 손을 빼지 않았다.
응급병동의 비상구 문이 닫히는 소리가 복도 끝에서 다시 들렸다. 다리가 완성되는 소리가 저렇게 날 수도 있다면, 그건 아마 아름답지 않을 것이다. 세온은 그 소리를 들으면서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복도 끝에 빛이 있었다. 아주 작고 불확실한 빛이었지만, 거기를 향해 걷는 것 말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