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하는 증인석에 앉지 않고 서서 말하겠다고 했다. 곽운제는 오래 걸릴 수 있으니 앉으라고 권했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제가 옮긴 명령을 받은 사람들은 서 있을 힘도 없이 끌려갔습니다. 다리를 벌주려는 뜻이 아니라, 그 사실을 잊지 않으려는 겁니다.” 다만 몸이 흔들리면 쉬라는 담소령의 조건은 받아들였다.
별당 벽에는 큰 시각표가 걸렸다. 왼쪽에는 멸문 전 석 달부터 오늘까지의 날짜가, 오른쪽에는 명령과 문서, 사람의 이동 칸이 있었다. 윤세하는 기억나는 대로 이야기를 꾸미지 않고 자신이 확인할 수 있는 날짜부터 짚었다. 첫 날짜는 청문파 약재를 위험 물품으로 다시 분류하라는 백무결의 구두 명령을 받은 날이었다.
그는 당시 청문파의 대사형이 아니라 무림맹에 파견된 연락 제자였다. 문파를 지키려면 맹 안의 사정을 알아야 한다는 녹담자의 명을 받고 들어갔다. 백무결은 그 약점을 이용했다. 청문파가 협조하지 않으면 서진해를 비롯한 어린 제자들의 명단을 사파 잔당에게 넘기겠다고 위협했고, 윤세하는 시간을 벌겠다며 문서 수정을 도왔다.
첫 수정은 약재 창고의 위치를 바꾸는 일이었다. 그는 빈 창고 번호를 적어 청문파 사람들을 살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빈 창고에는 감찰부가 잡아 온 약방 일꾼들이 갇혀 있었다. 수색대는 청문파 대신 그들을 끌고 갔다. 윤세하는 자신이 한 사람을 피하게 하려고 다른 사람을 위험에 밀어 넣었다는 사실을 뒤에야 알았다.
두 번째 날짜에는 담소린의 처방 필사본을 사저 문서방으로 옮겼다. 백무결은 치료법을 검토해 누명을 벗길 자료라고 말했다. 윤세하는 믿지 않았다고 했다. 이미 철분 먹으로 문장을 고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필사본을 내주었다. 그는 그날의 날씨와 문서방 등잔 수까지 기억하면서, 왜 거절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죽기 싫었습니다”라고 짧게 답했다.
방청석에서 한 유족이 비겁자라고 외쳤다. 윤세하는 그렇다고 답했다. 막금산이 돌아보았으나 유족을 제지하지 않았다. 곽운제는 욕설을 기록에서 빼겠다고 했지만 윤세하가 남겨 달라고 했다. 다만 그 한마디로 모든 행위를 설명하지는 말아 달라고 했다. 비겁함 속에서도 어떤 명령을 선택했고 누구에게 피해가 갔는지를 각각 적어야 책임이 흐려지지 않는다고 했다.
세 번째 날짜는 멸문 당일이었다. 윤세하는 백무결의 내실에서 학영회 수장 곽첨류의 부하가 붉은 명령패를 받는 것을 보았다. 명령에는 청문파 대전을 포위하고 문서고를 먼저 장악하며, 저항 여부와 상관없이 장문인과 의술 담당자를 데려오라고 적혀 있었다. 살아 있는 증인이 남으면 사파 내통 혐의로 공개 처형하라는 별지까지 있었다.
윤세하는 그 별지를 훔치지 못했다. 대신 봉인의 눌린 획과 명령 번호를 외웠다. ‘적삼-칠십이.’ 위원회가 북문 창고에서 회수한 명령대장을 펼치자 같은 번호가 찢긴 자리만 남아 있었다. 앞 번호는 학영회에 말 스무 필을 지급한 기록, 뒤 번호는 청문파 창고 인수 기록이었다. 비어 있는 한 줄이 윤세하의 기억과 양쪽 기록으로 채워졌다.
그날 윤세하는 서쪽 비상문을 열어 어린 제자 셋을 내보냈다고 말했다. 두 명은 산길에서 붙잡혀 죽었고 서진해만 막금산에게 닿았다. 자신이 모두를 구했다는 식으로 말할 수 없었다. 그는 뒤따라 나가지 않고 문서방으로 돌아가 백무결에게 비상문이 열렸다고 거짓 보고했다. 충성을 의심받지 않으려 도망친 제자들의 인상착의를 일부러 틀리게 말했지만, 그 과정에서 다른 마을 소년 하나가 붙잡혔다.
서진해는 처음 듣는 사실에 손을 움켜쥐었다. 자신이 산길에서 만난 추격대가 다른 방향으로 꺾인 이유가 윤세하의 거짓 보고였음을 알았다. 고마워해야 하는지 화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윤세하는 그의 시선을 받고 말했다. “네가 산 것은 기쁘다. 하지만 그 기쁨으로 붙잡힌 소년의 일을 덮지 않겠다.” 소년은 살아남았으나 한쪽 귀를 잃었고, 현재 위원회 보호 아래 있었다.
네 번째 날짜부터는 멸문 뒤의 오 년이었다. 윤세하는 감찰부 말단 관리로 남아 청문파 관련 장부를 옮겼다. 백무결이 원본을 없애려 할 때 세 권을 다른 창고에 숨겼고, 그 덕분에 거래 기록이 남았다. 동시에 의심을 피하려 학영회에 은신처 두 곳을 알려 주었다. 한곳은 비어 있었지만 다른 곳에서는 주방상의 동료가 붙잡혔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을 번갈아 했다는 말로 들리는군.” 정인각이 말했다. 윤세하는 고개를 저었다. “번갈아 한 것이 아니라 같은 선택 안에 둘 다 있었습니다. 장부를 살리려고 사람을 미끼로 썼고, 사람을 살리려 문서를 거짓으로 고쳤습니다. 결과를 나눠 적어 주십시오. 어느 쪽도 다른 쪽의 값이 되지 않습니다.”
담소령은 그에게 어머니 담소린을 마지막으로 본 날을 물었다. 윤세하는 고성 약방 뒷길에서 만났다고 했다. 담소린은 환자 이름을 돌려 달라고 요구했고, 윤세하는 감시가 붙었다며 도망가라고 했다. 그녀는 혼자 살려고 기록한 것이 아니라며 거절했다. 그날 밤 윤세하는 감시자의 말을 다른 길로 돌렸지만, 담소린이 어디로 갔는지 끝까지 확인하지 않았다.
담소린의 죽음을 보았느냐는 질문에는 아니라고 답했다. 혜산댁이 그 미결을 닫았다. 담소린은 그 뒤 고성의 폐사당에서 병자 둘을 치료했고, 오래된 상처와 과로로 사흘 뒤 숨을 거두었다. 다섯 번째 혜산이가 임종을 지켰으며 무덤 위치와 장례 기록이 남아 있었다. 백무결에게 살해됐다고 꾸미지도, 홀로 사라졌다고 남겨 두지도 않았다.
윤세하는 마지막 날짜로 위원회 명단이 바뀐 밤을 짚었다. 백무결은 고윤평을 위원으로 넣어 모든 원본을 내고로 모은 뒤 불을 내려고 했다. 윤세하는 그 회의를 엿듣고도 곧장 공개하지 않고 윤도겸에게만 알렸다. 자신이 체포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 지연 사이 혜산댁이 감시를 받았고 약방에 불이 붙었다.
윤도겸은 윤세하의 말 가운데 확인된 것과 남은 것을 구분했다. 명령 번호와 창고 이동은 장부로 확인됐고, 비상문 거짓 보고는 당시 경비 일지와 맞았다. 은신처를 넘긴 일은 붙잡혔던 동료의 증언이 필요했다. 담소린의 마지막 행적은 혜산 계보와 장례 장부가 뒷받침했다. 시각표의 빈칸은 지워지지 않고 그대로 남았다.
곽운제가 원하는 처분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윤세하는 감경을 청하지 않았다. 백무결 재판의 증인이 된 대가로 면책받지 않겠으며, 자신의 명령 전달과 은신처 노출을 별도 심리해 달라고 했다. 다만 자신이 아는 학영회 잔존 무기고 세 곳을 즉시 공동 봉인해 더 다치는 사람이 없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백무결 측 대리인은 윤세하가 처벌을 피하려 거짓 자백을 늘어놓는다고 공격했다. 윤세하는 품에서 작은 장부 한 권을 꺼냈다. 자신의 기억이 아니라 매달 받은 쌀과 은, 사저 출입 시각을 적은 생활 장부였다. 거창한 비밀 기록이 아니라 술값과 신발 수선비까지 있는 장부였고, 바로 그 평범한 날짜들이 감찰부 명령대장과 맞물렸다.
심리가 끝날 무렵 윤세하의 다리가 흔들렸다. 담소령은 약속대로 말을 끊고 의자에 앉혔다. 그는 끝까지 서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했지만, 서진해는 물 한 그릇을 건넸다. “앉았다고 말이 가벼워지지는 않습니다.” 용서한다는 말도 사형이라 부르는 말도 아니었다. 다만 다음 질문을 들을 수 있게 하는 물이었다.
벽의 시각표에는 윤세하가 살린 사람과 해친 사람, 숨긴 장부와 옮긴 명령이 서로 다른 칸에 남았다. 백무결과 학영회의 지휘 관계는 찢긴 명령 번호와 창고 대장, 사저 출입 기록으로 이어졌다. 윤세하는 자신의 이름을 어느 한 칸의 영웅이나 배신자로 끝내지 않았다. 그가 외운 날짜들은 면죄가 아니라, 책임을 피하지 못하게 만드는 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