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금산은 심리가 다시 열리기 전날 객잔의 아침 장사를 쉬었다. 문에는 병이 났다는 말도, 재료가 떨어졌다는 말도 붙이지 않았다. ‘주인이 말할 것이 있어 정오부터 연다’는 나무패 하나만 걸었다. 장터 사람들은 무슨 일인지 궁금해 마당에 모였고, 청문위원 둘과 윤도겸도 기록을 위해 찾아왔다.
식당 중앙에는 국밥 그릇 다섯 개가 놓였다. 네 그릇에는 밥과 국이 담겼지만 막금산 앞의 것만 비어 있었다. 그는 평소 입던 기름 묻은 앞치마를 두르고 도를 벽에 기대 놓았다. 만리독행의 옛 도객이 아니라 삭풍객잔 주인으로 말하겠다는 뜻이었다. 서진해는 그의 맞은편에 앉았고 담소령과 혜산댁은 양옆을 지켰다.
“내 이름은 막금산이고, 옛 이름은 막천류요.” 그가 입을 열었다. “청문파 선대와 함께 길을 걸었고 녹담자와 담소린이 기록을 나눌 때 운반로를 마련했다. 멸문 뒤에는 서진해를 객잔에 숨겼다. 여기까지는 이미 말한 일이다. 오늘은 내가 말하지 않은 일을 말하겠다.”
첫 번째는 담소린의 기록을 받지 않은 일이었다. 멸문 사흘 뒤 담소린은 환자 명부와 감찰부 요구서를 막금산에게 맡기려 했다. 막금산은 학영회가 자신의 뒤를 밟고 있으므로 기록과 서진해를 함께 지킬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기록을 고성으로 보내고 자신은 소년만 데려왔다. 그 선택 덕분에 서진해는 살았지만 담소린과 혜산 보관자들이 더 위험한 길을 홀로 걸었다.
“당시의 선택 자체를 잘못이라 말하려는 게 아니다.” 막금산은 빈 그릇 가장자리를 손가락으로 눌렀다. “그 뒤에 길이 열렸을 때도 나는 진해에게 기록을 알리지 않았다. 담소령이 찾아온 뒤에도 이 아이가 검을 다시 잡을까 두려워 입을 닫았다. 보호를 이유로 당사자의 선택을 내가 대신했다. 그건 내 책임이다.”
서진해는 그 말을 들으며 오 년의 부엌을 떠올렸다. 막금산은 자신의 상처에 약을 발랐고 밤마다 문밖 기척을 살폈다. 그 보호가 없었다면 살지 못했을 것이다. 동시에 사부의 검과 기록을 알 권리도 빼앗겼다. 고마움과 분노는 서로를 지우지 않았다. 그는 어느 한쪽만 고르지 않고 두 감정을 그대로 두었다.
두 번째 고백은 청락에 관한 것이었다. 막금산은 멸문 때 사부 녹담자의 검을 찾지 못했다고 말해 왔지만, 사실은 주방상이 백학루 지하에서 검을 꺼냈다는 전갈을 두 해 전에 받았다. 그때 바로 서진해에게 돌려주지 않았다. 학영회가 검을 미끼로 생존자를 찾을까 두려워 주방상에게 계속 보관하게 했다.
“그럼 비 오던 밤의 노인이 주방상이었습니까?” 서진해가 물었다. 막금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등을 굽히고 얼굴에 약랍을 붙여 늙은 나그네로 꾸몄다. 철완은 넓은 소매 안에 감췄고. 내가 청락을 돌려보내라고 한 것은 담소린의 전언을 받은 뒤였다. 더 늦추면 네가 아무것도 모른 채 죽을 것 같았다.”
막금산은 주방상이 보낸 봉서를 열었다. 편지의 첫 장에는 그의 철완 모양 인장이 있었고, 둘째 장에는 운반 경로와 상처를 입은 장소가 적혔다. 주방상은 객잔으로 오던 길에 학영회 정찰 셋에게 쫓겼다. 청락을 뽑아 한 사람의 창을 막았고, 독 묻은 칼이 오른쪽 옆구리를 스쳤다. 검의 새 피는 주방상의 것이었다.
청락에서 난 검은 기운도 사부의 원한이나 숨은 독공이 아니었다. 학영회가 쓰던 경맥 교란독이 주방상의 피에 섞여 남은 흔적이었다. 그는 상처가 번지는 것을 막으려고 청문파식 해독약인 청목향과 탄 백지초를 태워 연기를 쐬었다. 서진해가 맡았던 타 버린 약초 냄새는 그 치료에서 밴 것이었다.
주방상은 검을 건넨 뒤 바로 사라진 이유도 썼다. 골목 어귀에 정찰자 하나가 남아 있어 객잔 안으로 들어가면 서진해의 은신처가 드러날 수 있었다. 그는 빗속으로 돌아 나가 정찰자를 다른 길로 유인했고, 사흘 동안 폐사당에 숨어 상처를 다스렸다. 뒤에 상단 호위로 객잔에 들어왔을 때에도 추격망이 남아 있어 자신이 그 노인임을 밝히지 못했다.
“못 밝힌 것이 아니라 안 밝힌 거겠지.” 담소령이 말했다. 막금산은 그 지적을 받아들였다. 주방상도 편지 끝에 같은 말을 적었다. 위험이 줄어든 뒤에도 막금산의 부탁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침묵했고, 그 때문에 서진해가 핏자국을 원수의 것으로 오해하게 했다고 했다. 그는 현재 서쪽 염전 길을 지키는 중이며 위원회가 부르면 직접 출석하겠다고 거처와 날짜를 남겼다.
윤도겸은 봉서의 종이와 인장을 대조했다. E라는 표기 같은 제작 흔적은 어디에도 없고, 공문 날짜와 장소, 전달자의 손도장이 갖춰져 있었다. 혜산댁은 주방상의 옆구리 상처를 치료한 고성 의원의 장부 사본을 내놓았다. 비 오던 밤 다음 날 새벽, 오른쪽 옆구리의 독상과 청목향 처방이 기록되어 있었다. 편지와 진료 기록의 시각이 맞았다.
세 번째 고백은 더 오래된 피에 관한 것이었다. 막금산은 만리독행으로 살던 시절 청문파 선대의 부탁을 받아 밀수 상단을 습격했고, 그 과정에서 투항한 마부 하나를 죽였다. 명령을 전한 자만 악인이라 여기고 자신이 벤 사람의 사정을 묻지 않았다. 그 뒤 도를 놓고 객잔을 연 것은 속죄였지만, 죽은 이의 가족에게 이름을 밝히거나 배상하지는 않았다.
“청문파 복권을 말하면서 내 과거를 빼면, 좋은 이름만 골라 살겠다는 셈이다.” 막금산은 마부의 이름과 출신 마을을 기록에 넣어 달라고 했다. 곽운제는 오래된 살인이라 해도 별도 심리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막금산은 도망치지 않겠다고 손도장을 찍었다. 객잔과 재산 일부를 유족 회복에 쓰되, 유족의 의사를 먼저 묻겠다고 했다.
서진해는 막금산을 용서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마부의 유족을 대신할 수 없고, 자신에게 한 일도 한마디로 끝낼 수 없었다. 대신 물었다. “왜 빈 그릇을 놓으셨습니까?” 막금산은 국자를 바라보며 답했다. “내가 밥을 차렸다는 이유로 남의 몫까지 먹어서는 안 된다는 걸 기억하려고. 판단도, 이름도, 용서도 내 몫이 아닌 것이 있다.”
담소령은 막금산의 고백문에 자신이 확인한 사실과 확인하지 못한 사실을 나누어 적었다. 주방상의 운반과 치료는 문서로 확인됐고, 옛 마부 사건은 유족과 당시 동행자의 확인이 필요했다. 보호 명목의 침묵은 서진해와 담소령이 직접 겪은 사실로 기록했다. 고백이 길다고 모두 진실로 받아들이지 않고, 검증할 길을 함께 붙였다.
막금산은 앞으로 객잔 기록보관소의 상시 책임을 맡겠다고 했다. 그 일은 명예직이 아니었다. 열람 시간을 지키고 젖은 종이를 말리며, 보관자 둘이 모두 있는지 확인하고, 위험이 생기면 혼자 떠나지 않는 일이었다. 자신이 가장 못했던 일을 날마다 반복해 배우겠다는 선택이었다. 혜산댁은 그에게 첫 열람 장부를 내밀었다.
마당에 모인 이들 가운데 누군가가 “그래도 서진해를 살렸지 않느냐”고 말했다. 막금산은 그 말로 고백을 덮지 않았다. “살린 일은 살린 일이고, 빼앗은 선택은 빼앗은 선택이오. 하나로 다른 하나를 갚았다고 쓰지 마시오.” 윤도겸은 그 문장을 그대로 기록했다. 서진해는 처음으로 막금산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정오 종이 울리자 막금산은 빈 그릇에 밥을 조금 담았다. 고백을 끝냈다고 다시 가득 채우지는 않았다. 그는 먼저 다른 네 그릇에 국을 붓고, 마당의 사람들에게도 밥을 내었다. 청락의 노인과 마르지 않은 피, 타 버린 약향은 더는 알 수 없는 징조가 아니었다. 이름과 상처와 침묵의 책임이 각각 기록되었고, 남은 일은 그 기록 앞에서 살아가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