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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4-9화]

마지막 명령패의 홈

작성: 2026.08.17 07:13 조회수: 111
창작물 안내
[AI 생성물] 본 소설의 내용과 표지는 인공지능(AI) 모델을 통해 기획 및 작성된 허구의 창작물입니다.
이 콘텐츠는 AI가 창작한 연재소설입니다. 실제 인물이나 사건과 무관한 창작물입니다.

북문 창고의 공동 봉인을 자른 사람은 곽운제와 고성 현리, 장터 대표 세 명이었다. 어느 한쪽도 혼자 문을 열었다는 말을 할 수 없게 다섯 손이 매듭 위에 놓였다. 문짝이 열리자 오래 갇힌 기름과 가죽 냄새가 쏟아졌다. 창고 안에는 비어 있는 선반이 많았지만 바닥의 끌린 자국은 물건이 급히 옮겨졌음을 보여 주었다.

윤세하는 기억 속 문서방 배치와 창고 구조를 대조했다. 북쪽 벽 세 번째 기둥은 다른 것보다 소리가 가벼웠다. 막금산이 칼끝이 아니라 나무망치로 두드리자 속이 빈 울림이 났다. 기둥 겉판을 들어 내자 붉은 패 열두 개와 명령대장 한 권, 은을 나눈 작은 전표들이 나왔다. 모든 물건은 꺼낸 자리에 번호표를 놓고 입회자들이 본 뒤 옮겼다.

붉은 패 가운데 하나는 아래쪽 모서리가 깨져 있었다. 윤세하가 외운 명령 번호 ‘적삼-칠십이’가 앞면에 새겨졌고, 뒷면 홈에는 두 겹 봉인의 구름 획이 들어맞았다. 마지막 명령패였다. 청문파 대전을 포위한 학영회 별동대가 작전 뒤 반납한 물건이라는 줄도 대장에 남아 있었다. 반납 확인란에는 백무결의 수결이 있었다.

대장 다음 장에는 멸문 당일 지급한 말과 화유, 포승 수량이 적혀 있었다. 사람을 살려 데려오라는 장비가 아니라 문서고를 태우고 생존자를 묶기 위한 물품이었다. 그 아래에는 학영회 잔존자 스물세 명에게 최근까지 쌀과 은을 지급한 기록이 있었다. 약방 방화와 증인 수레를 움직인 사람들의 별칭도 빠짐없이 나왔다.

서진해는 대장을 품에 넣지 않았다. 창고 안에서 세 벌을 베끼고 첫말과 끝말, 찢긴 장의 위치를 대조표에 더했다. 원본은 다섯 입회자의 봉인 아래 위원회로 옮겼고 사본 두 벌은 다른 문으로 나갔다. 백무결이 이미 알고 있을 길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길이 막혀도 다른 사본이 도착하게 했다.

그날 정오 공개 심리가 열렸다. 백무결은 스스로 출석했다. 그는 마지막 명령패를 보자 한동안 말이 없었으나 곧 창고지기가 만든 위조품이라고 주장했다. 수결도 다른 문서에서 베껴 눌렀을 수 있고, 대장은 청문파 잔당이 몰래 넣었을 수 있다는 논리였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침착했다.

진묵선과 봉인 장인은 패의 홈에 굳은 밀랍이 오 년 전 것임을 설명했다. 새 밀랍과 달리 안쪽까지 갈색으로 산화했고, 창고 기둥의 먼지층도 최근에 열지 않았음을 보였다. 장터 목수는 기둥 못이 같은 자리에서 두 번 뽑힌 흔적이 없다고 확인했다. 백무결은 감정인들이 모두 매수됐다고 했다.

그때 늙은 말지기 왕칠복이 증인석에 섰다. 그는 멸문 당일 적삼-칠십이 패를 든 학영회 조장에게 말 스무 필을 내주었고, 사흘 뒤 패를 백무결이 직접 받아 기둥 속에 넣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오 년 동안 말하지 않은 이유는 아들이 학영회 급료 명단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들은 약방 화재 때 붙잡힌 자 가운데 하나였다.

“아들을 살리려고 이제 거짓말하는군.” 백무결이 말했다. 왕칠복은 고개를 저었다. “살려 달라고 하지 않소. 그놈이 한 일은 그놈이 받게 하시오. 나는 내가 본 일을 늦게 말한 죄를 받겠소.” 그의 진술은 영웅의 말이 아니었다. 가족을 숨긴 사람의 늦은 선택이었기에 오히려 급료 전표와 구체적으로 맞았다.

곽운제는 백무결에게 사저 인장함과 북문 창고 열쇠의 인수 기록을 제출하라고 했다. 백무결은 부맹주의 권한을 모욕하는 요구라며 거부했다. 그 순간 위원 다섯 가운데 이해관계로 빠진 둘을 제외한 셋과 외부 입회자들이 체포장 발부에 동의했다. 혐의는 문서 조작, 방화 교사, 증인 감금 시도와 불법 무장대 운용이었다.

경비대장이 체포장을 읽기 시작하자 대청 밖에서 종이 연달아 다섯 번 울렸다. 시장의 화재 종도, 성문의 비상 종도 아닌 짧고 날카로운 소리였다. 윤세하의 얼굴이 굳었다. 학영회가 철수할 때 쓰던 집결 신호였다. 방청석 뒤에서 짐꾼으로 위장한 사내들이 외투를 벗고 짧은 도를 꺼냈다.

첫 칼은 증인석이 아니라 벽의 시각표를 향했다. 서진해는 청락의 칼집으로 칼등을 받아 방향을 돌렸다. 종이는 찢기지 않았고 공격자의 손목도 잘리지 않았다. 막금산이 긴 탁자를 세워 방청인과 무장대 사이에 벽을 만들었다. 담소령은 아이와 노인을 동쪽 문으로 내보내며 넘어지지 않게 한 줄로 걷게 했다.

백무결의 호위 절반이 경비대를 막았고, 나머지는 그를 둘러싸 서쪽 계단으로 빠졌다. 서진해가 곧장 쫓으면 따라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남쪽 문에서 학영회 사내 둘이 화유 병을 들어 방청석에 던지려 했다. 그는 백무결에게서 등을 돌려 병 쪽으로 달렸다. 청락의 칼등이 첫 병을 빈 화로 안으로 밀었고, 둘째 병은 윤세하가 겉옷으로 감쌌다.

“사형, 서쪽을!” 서진해가 외쳤다. 윤세하는 고개를 저었다. “사람부터 빼. 저자가 가는 곳은 안다.” 그는 학영회 집결 신호가 운주성 서쪽 수문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성 밖 폐훈련장으로 이어지는 마른 수로가 있어 잔존 무장대가 모일 수 있었다. 지금 좇기보다 문을 닫고 주민을 피신시키는 편이 먼저였다.

막금산과 위원회 경비가 무장자 일곱을 제압하는 동안 서진해는 대청의 두 출구를 번갈아 지켰다. 그는 칼집으로 무릎을 치고 검코로 허리띠를 끊었다. 쓰러진 자가 다시 칼을 잡으면 발등 앞 바닥을 베어 경고했다. 담소령은 다친 경비와 공격자를 한쪽에 눕히되 무기를 멀리 치웠다. 누구도 불길 속에 남지 않았다.

혼란이 잦아들자 벽의 기록은 세 군데 찢겼지만 글을 읽을 수 있었다. 이미 네 보관처에 같은 시각표가 있었고 방청인 수십 명이 내용을 보았다. 윤도겸은 찢긴 종이를 그대로 봉했다. 공격이 어느 문장을 없애려 했는지도 증거가 되었다. 왕칠복은 달아나지 않고 아들이 붙잡힌 자리 곁에 남았다.

곽운제는 체포장을 취소하지 않았다. 백무결이 도주했다는 줄을 덧붙이고 서쪽 수문 경비에 사본을 보냈다. 장로 회의는 학영회 급료 대장의 스물세 이름을 모두 공개하되, 같은 이름을 가진 무고한 사람이 붙잡히지 않도록 나이와 흉터, 소속 창고를 함께 적게 했다. 분노한 군중이 먼저 움직이지 않도록 관도마다 안내인을 세우고, 체포 권한이 없는 사람은 의심되는 이를 따라가지 말고 가까운 경비초소에 알리게 했다.

해가 기울기 전 대청의 부상자는 모두 치료받았다. 사망자는 없었고 붙잡힌 무장자 일곱은 따로 진술하게 했다. 각 진술은 서로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방에서 받은 뒤 같은 질문에 대한 차이를 표로 남겼다. 그들은 백무결이 수문에 모이면 은과 새 신분패를 주겠다고 약속했으며, 공개 심리를 깨뜨리는 것이 마지막 임무였다고 말했다. 명령을 전달한 자는 고윤평이었고 별도의 윗선은 없었다.

서진해는 체포장 사본을 허리춤에 넣었다. 복수의 허가증처럼 쥐지 않기 위해 청락과 반대쪽에 찼다. 담소령은 화상 연고를 챙겼고 막금산은 포승과 등불을 준비했다. 윤세하는 수문의 두 출구와 학영회 훈련 대형을 종이에 그렸다. 어느 길도 혼자 맡지 않기로 했다.

서쪽 하늘에 붉은 노을이 번질 때 네 사람은 수문으로 향했다. 백무결은 도망쳤지만 공개 심리를 없애지 못했고, 마지막 명령패는 수십 손의 대조를 거쳐 남았다. 이제 닫아야 할 것은 사람의 목숨이 아니라 무장대의 칼과 달아날 길이었다. 서진해는 걸음을 재촉하면서도 앞서가는 주민 수레가 안전하게 골목을 벗어날 때까지 뒤를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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