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저녁 여섯 시가 넘으면 사무실은 반쯤 빈다. 절반은 퇴근하고, 절반은 통화 중이고, 나머지는 화면만 켜놓은 채 어딘가를 멍하게 보고 있는 상태다. 현우는 그 나머지 쪽이었다. 모니터 화면에는 오전 상담 요약이 반쯤 채워진 채로 커서가 깜빡이고 있었다. 그걸 채울 생각이 없는 건 아닌데, 손이 키보드 위로 가지 않았다.
강준혁이 나간 건 오후 세 시쯤이었다. 상담은 사십 분도 안 걸렸다. 짧고, 깔끔하고, 그래서 오히려 뭔가 빠진 것 같은 느낌이 남았다. 현우는 빈 종이컵을 쓰레기통에 던지면서 그게 뭔지 생각해봤다. 강준혁은 자기 것을 묻지 않았다. 보장이 어떻게 되는지, 보험료가 얼마인지, 청구가 어떻게 되는지. 그 당연한 것들을 하나도 묻지 않았다. 대신 마지막에 한마디만 남겼다. 수요일 맞죠, 임도현 씨. 확인인지 확인이 아닌지 모를 말투로.
현우는 그 말투를 몇 번 더 곱씹었다. 물어보는 것 같기도 했고, 못을 박는 것 같기도 했다. 상담실 문이 닫히고 나서도 그 목소리가 벽에 얇게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종이컵에 남은 커피 냄새가 쓰레기통 쪽에서 올라왔다. 싸고 쓴 냄새. 현우는 자기도 모르게 코를 찡긋했다.
"야, 현우야."
아라가 가방을 어깨에 걸치며 불렀다. 현우는 고개를 들었다.
"오늘 야근이야?"
"아니요, 그냥 좀 정리하려고요."
아라는 잠깐 멈췄다. 가방 끈을 한 번 고쳐 잡더니 책상 쪽으로 시선을 줬다. 현우의 수첩이 열린 채로 놓여 있었다. 이름이 몇 개 적혀 있었다. 아라가 읽을 수 있는 거리는 아니었지만, 그쪽을 봤다는 건 확실했다. 현우는 자연스럽게 수첩 위에 팔을 올렸다. 딱히 숨길 것도 없는데 손이 먼저 움직였다.
"수요일 예약, 오전 열 시 반이지?"
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라가 먼저 꺼낸 것이었다. 현우가 열기 전에. 물론 예약 시스템에 다 올라가 있으니까 알 수 있다.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강준혁도 나가면서 비슷한 걸 확인했었다. 두 사람의 말이 묘하게 겹쳤다.
"밥은 먹고 하는 거야."
그게 전부였다. 아라는 돌아서서 나갔다. 현우는 그 뒷모습이 문 너머로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그 말이 단순한 잔소리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인지 한 박자 늦게 생각했다. 잔소리치고는 타이밍이 정확했다.
현우는 팔을 치우고 수첩을 다시 펼쳤다. 세 개의 이름이 간격을 두고 적혀 있었다. 김정호. 오진수. 강준혁. 그 아래에 임도현이 네 번째로 적혀 있었다. 소개, 소개, 같은 팀, 협력업체. 각각의 이름 옆에 붙은 설명은 달랐지만, 출발점은 전부 같은 곳이었다. 펜 끝이 임도현이라는 글자 위에서 잠깐 멈췄다. 동그라미를 치려다가 그냥 내려놨다. 이유는 모르겠다. 손이 먼저 멈춘 것이었다.
배가 고프다는 걸 그제야 느꼈다. 점심을 편의점 삼각김밥 두 개로 때웠고, 강준혁 상담이 끝나고 나서는 종이컵 커피를 한 잔 더 마셨다. 그게 오후의 전부였다. 현우는 수첩을 덮고 가방을 집어 들었다. 아라 말이 맞았다.
1층 편의점에는 사람이 많았다. 저녁 시간이라 도시락 칸이 거의 비어 있었다. 현우는 남은 것 중에 덜 나쁜 걸 골랐다. 계산대 앞에 줄을 서면서 휴대폰을 꺼냈다. 오늘 통화 기록을 훑어봤다. 강준혁과의 통화는 없었다. 처음부터 예약은 문자로 왔고, 상담은 대면이었다. 임도현은 전화로 예약을 잡았다. 짧고, 정확하고, 불필요한 말이 없었다. 강준혁이랑 비슷한 느낌이었다. 현우는 그게 그냥 성격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아직 판단이 안 됐다. 뒤에 선 사람이 살짝 기침을 했다. 현우는 얼른 카드를 내밀었다.
도시락을 사무실로 들고 올라왔다. 전자레인지 앞에서 삼십 초를 기다리는 동안, 현우는 강준혁이 한 말을 다시 떠올렸다. 오진수 씨가 가입했냐고 물었을 때, 강준혁은 '가입했다'고 하지 않았다. '얘기는 들었다'고 했다. 그 차이가 사소한 건지, 아닌 건지. 전자레인지가 울렸다. 현우는 도시락을 꺼내면서 그 생각을 한 번 더 접었다. 내일 임도현을 만나면 뭔가 더 선명해질 수도 있다. 아니면 더 흐려질 수도 있다.
책상에 앉아서 도시락을 먹는데 휴대폰이 진동했다. 한 번. 두 번. 모르는 번호였다. 현우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받았다.
"네, 안녕하세요."
잠깐의 침묵이 있었다. 그러고 나서 목소리가 들렸다.
"현우 씨 맞죠? 저 오진수예요."
현우는 순간 등이 살짝 굳었다. 오진수. 강준혁 상담이 끝나고 나서 거의 두 달 만에 처음 들리는 목소리였다. 아니, 정확히는 직접 연락해온 게 처음이었다. 현우는 숟가락을 도시락 옆에 내려놓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자기도 모르게.
"아, 네. 오진수 씨. 오랜만이에요."
"바쁘세요?"
"아니요, 괜찮아요."
"강 대리가 다녀갔죠? 잘 됐나요?"
현우는 대답을 한 박자 늦게 했다. 강 대리. 강준혁을 강 대리라고 불렀다. 그러면 오진수와 강준혁은 직급 차이가 있는 건가. 아니면 그냥 팀 내 호칭인가. 현우는 수첩을 당겼다. 펜이 자연스럽게 손에 잡혔다.
"네, 다녀가셨어요. 잘 됐습니다."
"다행이다. 제가 좀 바빠서 직접 연락을 못 드렸는데, 신경을 써줘서 고마워요."
짧게 끊겼다. 현우는 그 끊김이 통화 품질 때문인지, 아니면 오진수가 다음 말을 고른 건지 알 수 없었다. 도시락에서 올라오는 김이 손등에 닿았다. 현우는 그것도 느끼지 못했다.
"임도현 씨는 내일 가시죠?"
"네, 오전에요."
"그 사람 좀 까다로울 수 있어요. 미리 얘기해두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현우는 펜 끝을 수첩에 댔다. 뭘 적어야 할지 몰라서 그냥 대고 있었다. 종이에 눌리는 감촉만 손끝에 전해졌다.
"어떤 부분이 까다로운 편인가요?"
"모르는 거는 모른다고 하면 돼요. 아는 척하면 바로 알아요, 그 사람이."
그게 끝이었다. 오진수는 그 말만 남기고 통화를 마쳤다. 현우는 화면이 꺼지는 걸 보면서 손에 쥔 펜을 내려다봤다. 수첩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펜 끝이 종이를 살짝 눌렀다 뗀 자국만 남아 있었다.
아는 척하면 바로 안다. 현우는 그 말을 소리 없이 한 번 더 읽었다. 조언인지, 경고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인지. 세 가지 중 어느 쪽으로 읽어야 하는지 몰랐다. 그리고 오진수는 왜 강준혁 상담이 끝난 당일 저녁에 전화를 했는가. 세 사람 사이에서 무언가가 실시간으로 오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현우는 그 느낌이 과한 건지 아닌지도 판단이 서지 않았다.
현우는 천천히 한 줄을 적었다. 오진수 직접 연락. 그 아래에 물음표를 하나 찍었다. 그러고는 잠깐 멈췄다가 물음표를 하나 더 찍었다. 손이 멈추지 않고 적어버린 것이었다. 두 개짜리 물음표가 나란히 놓였다. 현우는 그걸 보면서 피식, 소리가 날 뻔했다. 웃긴 건 아닌데, 어딘가 우습기도 했다. 이게 뭐라고.
도시락은 반쯤 식어 있었다. 현우는 남은 걸 억지로 먹으면서 창밖을 봤다. 건물 불빛이 군데군데 켜져 있었다. 수요일 오전 열 시 반. 임도현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현우는 뭘 먼저 봐야 할지 아직 몰랐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모름이 예전만큼 불안하지는 않았다. 오진수의 말이 힌트인지 함정인지는 내일 가면 안다. 모른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 그게 지금 현우가 확실히 아는 전부였다. 수첩을 덮었다. 물음표 두 개가 안쪽에서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