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안이 탁자 위에 내려놓은 것은 지도가 아니었다. 작은 동판 하나였다. 손가락 두 마디 너비에 표면을 얕게 긁어낸 문양 하나, 그게 전부였다. 엘리안은 그것을 집어들기 전에 한 번 쳐다봤다.
"마도회 연락 거점 표식입니다."
루키안이 먼저 설명했다.
"수도에 두 군데, 변경에 한 군데. 제가 추방될 때 이 표식이 찍힌 물건은 전부 반납하게 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건 반납 목록에 없었어요. 서기가 실수했는지, 아니면 누군가 일부러 뺐는지."
세라가 팔짱을 꼈다.
"그래서 그게 어디에 쓰인다는 거죠?"
"마도회 거점에 연락을 넣을 때 쓰입니다."
루키안은 잠깐 멈췄다가 덧붙였다.
"제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알리는 데도 쓸 수 있고요."
방 안이 잠시 조용해졌다. 아침 식사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탁자 위에는 아직 빵 부스러기가 남아 있었고, 창 너머로 동쪽 별채 쪽에서 망치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엘리안은 동판을 들어 문양 쪽을 빛 앞에 세웠다. 얕은 선들이 겹쳐 있었다. 직전 화에서 루키안이 복사본의 도장 문양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을 때, 엘리안은 그게 진짜 기억이 없는 건지 말하기 싫은 건지 판단을 미뤘다. 지금 이 동판은 그 판단을 다시 꺼내게 만들었다.
"연락을 넣으면 상대방이 뭘 알게 됩니까."
"제가 어디 있는지는 모릅니다. 거점 표식은 신호만 전달하고 발신 위치는 숨겨요."
루키안이 대답했다.
"그쪽에서 응답이 오면, 그 응답 안에 원본 장부가 어디 있는지 확인할 방법이 하나 생깁니다."
세라가 코웃음을 쳤다.
"방법이 하나 생긴다는 말이 가장 무서운 말이에요, 선생."
"저도 그래서 지금 이걸 꺼낸 겁니다."
루키안은 동판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혼자서는 안 됩니다. 이 연락을 넣는 순간 마도회 쪽이 움직이기 시작할 거고, 그 전에 여기가 준비돼 있어야 해요."
엘리안은 동판을 다시 탁자에 내려놓았다. 소리가 작았다.
"준비라는 게 무엇을 말하는 겁니까."
"루키안 선생이 이 거점에 나타났을 때 받아줄 수 있는 인간과 장소."
루키안이 직접 대답하는 대신 엘리안 쪽을 봤다. 그것 자체가 대답이었다. 엘리안은 그 시선의 뜻을 알았고, 대답하기 전에 잠시 시간을 뒀다.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하르트였다. 방으로 들어서면서 그는 루키안과 세라를 차례로 한 번씩 보고, 엘리안에게 고개를 숙였다.
"보고드릴 것이 있습니다."
"여기서 하십시오."
엘리안이 말했다.
하르트는 잠깐 망설였다. 그 망설임은 오래된 것이었다. 집사가 주인 앞에서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는 종류의 망설임이 아니라, 말 자체가 입 바깥으로 나오기를 거부하는 종류의 것이었다.
"부엌 복도 대기 자리를 쓰는 사람 중에 한 명이 어제 저녁 이후로 보이지 않습니다."
세라가 팔짱을 풀었다.
"이름이 뭡니까."
엘리안이 물었다.
"베론입니다. 재건 인력으로 삼 주 전에 들어온 목공 보조입니다."
하르트는 짧게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피넬이 봉투를 내려놓았던 그 대기 자리에, 어제 오후에 베론도 있었다는 증언이 확인됐습니다."
방 안이 또 조용해졌다. 이번에는 다른 종류의 조용함이었다. 엘리안은 아델린 쪽을 봤다. 아델린은 창가에 서 있었는데, 하르트의 말이 끝나는 순간에도 표정이 바뀌지 않았다. 창 밖을 향하고 있던 시선이 아주 천천히 탁자 위 동판 쪽으로 옮겨왔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게 전부였다. 엘리안은 그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베론을 찾으십시오."
엘리안이 하르트에게 말했다.
"도망쳤으면 어느 방향인지도요."
하르트가 나간 뒤 루키안이 중얼거렸다.
"타이밍이 좋네요. 제가 동판 얘기를 꺼낸 직후에."
"그게 타이밍이라고 생각합니까."
엘리안이 물었다.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루키안의 대답은 솔직했다.
"하지만 누군가 이 방에서 오늘 아침에 무슨 얘기가 오가는지 알고 싶어 했다면, 베론이 사라진 건 어제 저녁이에요. 조금 이르죠."
세라가 창가 쪽으로 두 걸음 옮겼다. 아델린과 나란히 서게 되는 거리였다.
"리온 영애, 베론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 있습니까?"
아델린이 세라를 봤다.
"재건 인력이면 제가 직접 접촉할 일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세라의 말투는 부드럽지 않았지만 날카롭지도 않았다. 그냥 사실처럼 물었다.
"수도 쪽에서 이 이름이 쓰인 적 있는지요."
아델린은 대답하기 전에 엘리안을 봤다. 엘리안은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고 가로젓지도 않았다. 그냥 보고 있었다.
"없습니다."
아델린이 말했다.
"제가 아는 한."
그 '아는 한'이라는 단서가 방 안에 작게 걸렸다. 루키안은 그것을 들었고, 세라도 들었다. 엘리안은 그걸 알면서도 더 묻지 않았다. 지금 이 자리에서 아델린을 압박하는 건 얻을 게 없는 방향이었다. 적어도 베론의 행방이 확인되기 전까지는.
망치 소리가 한 번 크게 울렸다가 멈췄다. 동쪽 별채 쪽에서 누군가 소리를 지르는 것이 희미하게 들렸다. 판자가 잘못 박혔거나, 아니면 못이 휘었거나, 그런 종류의 소리였다. 재건은 오늘도 하루치씩 쌓이고 있었다.
엘리안은 동판을 다시 집어들었다.
"루키안, 연락을 넣는 방법과 응답이 오는 경로를 오늘 오후까지 정리해 주십시오. 베론 건이 어떻게 정리되느냐에 따라 이 계획의 속도가 달라집니다."
루키안은 동판을 돌려받으면서 말했다.
"혹시 마도회 거점이 이미 이 방향을 주목하고 있다면, 제가 연락을 넣는 순간이 아니라 그 이전에 이미 신호가 갔을 수도 있습니다."
엘리안은 그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알고 있습니다."
세라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짧게 말했다.
"그럼 문이 열린 건지, 아니면 우리가 문 앞까지 끌려온 건지는 베론을 잡아야 알겠네요."
그리고 나가면서 문 손잡이를 잡았다가 한 번 더 방 안을 돌아봤다. 아델린 쪽으로 시선이 갔다가 엘리안에게로 왔다. 말은 없었다. 문이 닫혔다.
아델린은 창가에 그대로 있었다. 엘리안이 다가가지 않았고, 아델린도 먼저 움직이지 않았다. 바깥 바람이 창틀 사이로 얇게 들어왔다. 겨울이 채 가지 않은 변경의 공기였다.
"베론이 사라진 것과 동판이 이 방에서 꺼내진 것."
아델린이 먼저 말했다.
"영주님은 그 둘이 연결됐다고 보십니까."
"아직은 모릅니다."
엘리안이 대답했다.
"그래서 묻는 겁니다. 아는 한이라고 하셨으니까."
아델린은 잠시 창 밖을 봤다. 동판이 없는 손이 치마 옆선을 짧게 쥐었다가 놓았다.
"수도에 베론이라는 이름을 쓰는 사람이 한 명 있었습니다. 카이런 공작가 쪽 심부름꾼이었는데, 제가 직접 본 것은 아닙니다. 소문이었어요."
엘리안은 그 말을 천천히 소화했다.
"왜 처음에 바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소문입니다. 이름이 같다는 것만으로는 같은 사람인지 알 수 없어요."
아델린의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아까 세라의 질문에 바로 대답했을 때와는 속도가 달랐다. 그 속도 차이가 엘리안에게는 충분했다.
"알겠습니다."
엘리안은 더 묻지 않았다. 지금 당장 진실을 전부 꺼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아델린과의 관계를 쓸모없이 소모하는 일이었다. 그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베론의 행방, 루키안의 계획, 그리고 마도회 거점이 이미 이쪽을 보고 있을 가능성.
방에서 나오면서 엘리안은 복도 끝 창문 너머로 성 안마당을 내려다봤다. 하르트가 병사 두 명과 함께 서쪽 출입구 쪽으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베론이 나갔다면 그 방향이 가장 가깝다는 뜻이었다. 엘리안은 그 동선을 눈으로 따라가다가 멈췄다. 출입구 기둥 옆에 어제 배치된 경비가 지금 자리에 없었다. 교대 시간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그건 확인해 봐야 알 수 있었다.
문은 열려 있었다. 다만 그 문이 안에서 열린 건지 바깥에서 열린 건지는, 아직 아무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