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아홉 시 십이 분, 최병호의 도착 확인을 마친 하린은 태블릿 배터리를 다시 계산했다. 공개 호출에 사용한 채널과 밤부터 잡히던 약한 북서 주파수는 중심값이 달랐다. 같은 구조망의 중계 채널일 수도 있었고 전혀 다른 발신일 수도 있었다.
민세온은 그 차이를 확인하기 위해 옥상 전실로 다시 올라가자고 했다. 강태민은 발판이 빠진 설비 사다리를 그대로 쓰지 않겠다고 했다. 이재현이 창고에서 짧은 고정 사다리와 볼트를 가져왔고, 조성우는 앉은 자리에서 체결 순서를 읽었다.
태민은 새 사다리를 기존 난간 두 곳에 묶었다. 한 점이 풀려도 추락하지 않도록 로프를 따로 걸었다. 하린은 장비를 등에 메지 않고 작은 가방에 넣어 세온이 아래에서 줄로 올리게 했다.
차유리는 세 사람이 올라가기 전 병동 인계를 확인했다. 박미숙과 박무성은 각각 산소 연결이 유지됐고, 이재현의 두통과 조성우의 발목, 최인서의 어깨, 은별의 기침은 다음 확인 시각이 정해져 있었다.
정윤호와 오도혁도 옥상에 가고 싶어 했다. 세온은 좁은 전실에 사람이 몰리면 위험하다고 판단해 둘은 아래에서 문서와 기존 기록을 대조하도록 했다. 정보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모든 사람이 같은 장소에 갈 필요는 없었다.
아홉 시 이십 분, 하린은 옥상 전실 난간에 도착했다. 북서쪽 급수탑 아래로 흰 운반차가 멀어지는 것이 보였다. 서쪽 게이트 방향에는 낮은 지붕과 철제 담장이 겹쳐 있었다.
하린은 먼저 남동쪽 방송을 수신했다. ‘북문 대기, 이동 가능자 우선 확인’이라는 문장이 반복됐다. 박선묵의 목소리와 비슷했지만 녹음인지 실시간인지 알 수 없었다.
세온은 방송 내용을 적으며 최병호 인계 사실을 남동 채널에 보내지 않았다. 게이트 운영자가 병원 사람들의 의료 이동까지 자동으로 알 권리는 없었다. 필요한 경우 총원과 입장 조건만 다시 협의하기로 했다.
북서쪽 약한 주파수는 처음에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하린이 안테나 각도를 바꾸자 짧은 세 음이 잡혔고 곧 채널 중심이 조금 움직였다. 잡음이 강해 문장은 들리지 않았다.
“아침 구조 호출이랑 부호가 다릅니다.” 하린이 말했다. “중계기 점검음일 수도 있고, 다른 장치일 수도 있어요.”
태민은 도혁이 이 방향 신호를 알고 있는지 물어보자고 했다. 세온은 아래 무전으로 질문하되 답을 유도하지 않았다. ‘북서 약한 세 음 신호를 전에 들은 적 있는가, 있다면 언제와 어디인가’라고 물었다.
도혁은 한참 뒤 응답했다. 병원 밖 물류 이동 때 비슷한 소리를 들은 적은 있지만 어느 운영자인지 모른다고 했다. 박선묵 쪽에서는 주로 남동 주파수를 썼다고 덧붙였다.
정윤호는 별첨 B 첨부 도면에 북서 통신 중계 표시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 작동 주체와 도면 작성 시점이 같다는 보장은 없다고 했다. 그는 문서를 꺼내지 않은 채 설명하는 자기 행동도 원장에 남겨 달라고 요구했다.
아홉 시 이십팔 분, 하린은 비상 신호탄 대신 반사판을 사용했다. 도시 위로 불필요한 불빛을 쏘지 않고, 북서 급수탑과 남동 게이트 방향에 서로 다른 간격의 빛을 보냈다. 누가 답하는지 방향과 시각을 비교하기 위한 것이었다.
남동쪽에서는 일 분 뒤 짧은 두 번이 돌아왔다. 북서쪽 급수탑 쪽에서는 네 분 뒤 긴 빛 한 번이 보였지만 사람 손인지 유리 반사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하린은 두 번째 반응을 ‘응답’이라고 쓰지 않았다.
그때 옥상 전실 바닥의 유리 조각이 바람에 밀려 세온 발밑으로 왔다. 태민이 손을 들어 움직임을 멈추고, 세 사람은 무릎으로 기지 않고 서 있는 위치를 바꿨다. 하린은 장비를 난간에 올려두지 않고 가방 안에 고정했다.
아홉 시 삼십칠 분, 남동 채널에서 오도혁의 이름이 불렸다. 세온과 태민은 동시에 하린을 봤다. 도혁을 찾는 사람이 박선묵인지 다른 운영자인지는 목소리만으로 확정할 수 없었지만, 도혁이 사전 연락을 했다는 기록과 맞닿는 순간이었다.
세온은 아래로 내려와 공개 스피커로 그 호출을 모두가 듣게 했다. 도혁에게 혼자 답할지 묻지 않고, 답변이 필요하면 원장 앞에서 공동으로 하자고 말했다.
도혁은 한동안 입을 다물었다. 박미숙의 산소 기계음과 최인서가 고정띠를 고치는 소리만 들렸다. 마침내 그는 박선묵에게 움직일 수 있는 여섯 명만 보냈고 환자 셋은 말하지 않았다고 다시 인정했다.
“왜 북서 신호 이야기는 안 했습니까?” 태민이 물었다.
“그때는 나도 몰랐어요.” 도혁이 말했다. “선묵이 이쪽 길을 열 수 있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만 연락했습니다. 내가 자리를 얻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는 거래의 세부와 수로 열쇠까지는 말하지 않았다. 세온은 지금 확인된 축소 보고와 자기 이익 기대만 적었다. 침묵한 부분이 있다는 사실도 기록했지만 내용까지 상상해 채우지 않았다.
하린은 남동 호출에 공동 답신을 보냈다. 현재 열두 명, 의료 지원 필요 환자 두 명, 이동 보조와 부상자 포함, 입장 기준과 평가 책임자 공개 요구. 개인 이름과 위치 상세는 보내지 않았다.
답신은 곧 오지 않았다. 북서 약한 주파수도 다시 잡음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최병호 의료 인계처럼 실제 차량과 담당자, 도착 확인으로 닫힌 일과 달리 이 두 신호는 아직 열린 증거였다.
아홉 시 사십오 분, 유리는 박미숙의 손목 붕대 아래 피부가 눌려 어두워진 것을 발견했다. 즉시 감염 반점이라고 부르지 않고 붕대를 느슨하게 하고 순환과 체온, 경계를 관찰했다. 이동 계획에 재평가 시각을 넣었다.
박무성은 농축기 연결이 안정됐지만 긴 이동에는 산소통이 필요했다. 최인서는 팔을 들 수 없고 조성우는 발목을 디딜 수 없었다. 현재 열두 명의 이동은 한 줄로 달려갈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세온은 지붕에서 본 방향과 아래에서 확인한 상태를 한 장에 겹쳤다. 남동에는 조건이 불투명한 문, 북서에는 확인된 의료 릴레이와 아직 주체를 모르는 약한 신호, 병원 안에는 서로 다른 속도의 열두 사람이 있었다.
아홉 시 사십팔 분, 하린은 안테나 전원을 껐다. 세상에 살아 있는 신호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길을 정하지 않았다. 누가 보냈고 어떤 책임을 지는지 확인될 때까지, 빛과 목소리는 사람을 움직이는 명령이 아니라 다음 질문의 위치였다.
옥상에서 내려오는 길에 새로 고정한 사다리의 위쪽 볼트가 한 번 돌아갔다. 태민은 하린을 먼저 내려보내지 않고 안전줄에 체중을 분산시킨 뒤 이재현에게 아래에서 공구를 올려 달라고 했다. 세 사람이 차례로 내려온 뒤 사다리는 출입 금지 표식을 달았다.
하린은 북서 방향 반사광이 있었던 정확한 각도를 창틀에 분필로 표시했다. 다음 관찰자가 같은 위치에서 비교할 수 있게 했지만, 오래된 표식과 혼동되지 않도록 날짜와 시각을 함께 썼다.
세온은 도혁의 축소 보고 진술을 그에게 다시 읽어 줬다. 도혁은 환자 셋을 빼고 보행 여섯만 알렸다는 문장을 고치지 않았다. 다만 박선묵이 환자를 제외하라고 직접 명령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정윤호는 MCP 표 옆에 자기 문서 미공개 상태를 썼다. 문서를 가진 사실, 본문과 첨부 도면이 분리돼 있다는 진술, 현장 대조 전이라는 세 문장이었다. 숨긴 정보가 있다는 비난과 실제 정보 내용을 구분했다.
열두 명은 점심 전 재평가 시각을 정했다. 환자 상태, 부상자 보행 가능 범위, 신호 변화, 서비스문 경로를 각각 다른 사람이 확인한다. 한 신호가 선명해졌다는 이유로 이 모든 조건을 건너뛰지 않는다.
박미숙은 손목 붕대를 느슨하게 한 뒤 손가락 색이 조금 돌아오는 것을 직접 확인했다. 유리는 그 변화가 압박 때문일 가능성을 높이지만 감염 여부를 확정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 관찰은 이후 문 앞 선별 기준을 따질 때 중요한 기록이 됐다.
병동 벽에는 남동, 북서, MCP 세 제목이 서로 떨어져 붙었다. 선 하나로 이어진 곳은 아직 없었다. 사람들은 빈 공간을 불안으로 채우지 않고 다음 현장 확인이 들어올 자리를 그대로 남겨 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