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오후는 세탁소에서 제일 한가한 시간이었다. 오전 손님이 빠지고 저녁 손님이 몰려오기 전, 드라이클리닝 기계가 마지막 사이클을 마치면 가게 안이 잠깐 조용해진다. 열기도 같이 가라앉는다. 강민주는 그 짬을 이용해 행거 정리를 끝내고 카운터 앞에 섰다. 영수증 묶음을 날짜 순으로 다시 맞추다가 창밖을 봤다. 골목이 평소 같았다. 평소 같은데 뭔가 달랐다.
빈 점포 셔터가 반쯤 열려 있었다.
민주는 한 번 더 봤다. 셔터 아랫단이 허리 높이쯤에서 멈춰 있었다. 평소에는 항상 바닥까지 내려와 있었다. 잠금장치 소리도 들린 적 없고, 누가 드나드는 걸 본 적도 없는데. 민주는 카운터를 나와 골목으로 나갔다. 어제 비가 지나간 탓인지 골목 바닥 타일이 아직 덜 말라 있었다. 발밑에서 물기가 올라오는 것 같은 눅눅한 냄새가 났다. 신발 앞코가 살짝 젖었다.
셔터 앞에 서자 안이 보였다. 점포 내부는 텅 비어 있었다. 형광등도 없고, 집기도 없고, 바닥엔 먼지 자국만 줄줄이 나 있었다. 냄새가 났다. 오래된 먼지 냄새 아래에 뭔가 탄 것 같은, 싸한 냄새. 민주는 코를 찡긋하면서 셔터 안쪽을 좀 더 들여다봤다.
"뭐 봐요."
옆에서 목소리가 났다. 황 사장이었다. 세탁소 기준으로 두 칸 건너에서 생선구이 식당을 하는 황 사장은 앞치마를 두르고 담배를 손에 들고 있었다. 점심 영업이 끝나고 잠깐 쉬는 중인 것 같았다. 민주가 셔터 앞에 멈춰 서 있는 걸 보고 자연스럽게 걸어온 모양이었다.
"셔터가 열려 있어서요."
황 사장도 시선을 옮겼다. 잠깐 보더니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오늘 처음이에요? 나는 어제도 저렇게 반쯤 열린 거 봤는데. 바람에 그런 줄 알았지."
"바람에 셔터가 저렇게 열려요?"
황 사장이 담배를 한 번 더 피우다 대답했다.
"그러게. 잠금이 망가진 건지."
그러고는 셔터를 한 번 발로 툭 건드렸다. 셔터가 약간 흔들렸다. 잠금 걸린 소리가 나지 않았다. 황 사장이 눈썹을 올렸다가 내렸다.
두 사람은 잠깐 서 있었다. 민주는 셔터 아래로 허리를 굽혀 들어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생각했다. 남의 점포였다. 그런데 남의 점포가 이 건물 안에 있고, 이 건물 안에 자기 세탁소가 있었다. 민주는 결국 무릎을 굽히고 셔터 아래로 들어갔다.
"어이, 강 사장."
황 사장이 말리는 것도 반쯤 들어오는 것도 아닌 목소리로 불렀다. 민주는 안에서 대답했다.
"잠깐만요."
황 사장이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따라 들어오지는 않았다.
안쪽은 더 어두웠다. 눈이 적응하는 데 몇 초 걸렸다. 민주는 휴대폰 손전등을 켰다. 빛이 벽면을 훑었다. 처음엔 그냥 낡은 벽이었다. 회반죽이 군데군데 들뜬 것, 페인트가 갈라진 것. 오래된 상가 건물에서 흔히 보는 것들. 그런데 왼쪽 벽 아랫단 쪽이 좀 달랐다. 회반죽 색이 주변과 달랐다. 새로 발라놓은 것처럼 하얗고, 경계선이 너무 반듯했다. 누가 일부러 덧대놓은 것 같은 부분이었다.
민주는 그쪽으로 걸어갔다. 발밑에 먼지가 일었다. 가까이서 보니 그 경계 안쪽 표면이 살짝 부풀어 있었다. 손으로 살짝 눌렀더니 안이 비어 있는 것처럼 느낌이 달랐다. 한쪽 끝을 손톱으로 건드렸더니 회반죽 조각이 쉽게 떨어졌다. 민주는 멈칫했다. 손가락 끝에 회반죽 가루가 묻었다. 그 아래로 검은 것이 보였다.
황 사장이 셔터 아래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뭐 있어요?"
"와서 보세요."
황 사장이 결국 들어왔다. 담배는 밖에 비벼 끈 모양이었다. 두 사람이 손전등을 같은 방향으로 향하자, 벽 안쪽이 드러났다. 회반죽 뒤로 배선관이 보였다. 배선관이 열화로 녹아 있었다. 전선 피복이 탄 자국이 남아 있었고, 그 주변으로 시커멓게 그을린 부분이 배선관을 따라 길게 이어졌다. 누군가 그 위에 새 회반죽을 발라 덮어놓았다. 경계선이 반듯한 이유가 그것이었다. 자로 잰 듯 덧댄 이유가.
황 사장이 한마디도 안 했다. 민주도 한동안 말이 없었다. 손전등 빛이 그을음 위에 그대로 고여 있었다.
"언제 탄 거예요, 이게."
민주가 먼저 물었다. 황 사장은 손전등을 받아 좀 더 가까이 대봤다.
"그을음이 오래됐어. 새까매. 최근이 아니야, 이건."
"그런데 누가 이걸 그냥…."
말이 거기서 잘렸다. 민주는 말 대신 벽 표면을 다시 봤다. 새로 바른 회반죽 위에 위쪽으로 연결된 배선관이 있었다. 그 배선관은 벽 위쪽으로 이어졌다. 건물 2층 방향으로.
황 사장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강 사장. 이거 박재원한테 말하면 안 돼."
민주가 황 사장을 봤다.
"왜요."
황 사장이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이번엔 눈을 똑바로 봤다.
"이거 알고도 덮은 사람이 있다는 거잖아. 그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함부로 말했다가는, 우리가 먼저 당해."
민주는 그 말을 곱씹었다. 황 사장이 처음으로 뭔가를 알고 있는 사람처럼 말했다. 아니면 알고 있는 게 아니라, 알아버렸다는 두려움으로 말하는 건지. 황 사장의 앞치마 끝이 손에 잡혀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쥔 것 같았다.
두 사람은 셔터 아래로 다시 기어나왔다. 골목 공기가 안보다 훨씬 선명하게 느껴졌다. 민주는 등을 세우고 빈 점포 셔터를 내려다봤다. 황 사장이 새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며 말했다.
"사진은 찍었어요?"
민주가 휴대폰을 들어 보였다.
"세 장."
황 사장이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잘했네."
그게 다였다. 두 사람은 더 이야기하지 않고 각자 자기 가게로 돌아갔다. 황 사장이 돌아서다 한마디 더 던졌다.
"그 셔터, 오늘 저녁엔 닫혀 있을 거야. 내가 봤다는 거 아무도 모르게 해요."
민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셔터를 한 번 더 봤다. 반쯤 열린 채로 오후 햇빛을 받고 있었다.
세탁소 안으로 들어오자 기계 열기가 다시 얼굴에 닿았다. 민주는 카운터 앞에 섰다. 손전등을 끄고 휴대폰 화면을 봤다. 사진 세 장. 까맣게 탄 전선, 서툴게 덧댄 회반죽, 그 경계선. 손가락으로 사진을 확대했다. 배선관 위쪽으로 이어진 관이 선명하게 잡혔다.
그때 가게 문이 열렸다. 옆 문구점 이 사장 아내였다. 드라이클리닝 맡긴 코트를 찾으러 온 것이었다. 민주는 얼른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영수증 번호를 확인했다.
"어머, 강 사장 얼굴이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아니요, 좀 더웠어요."
"더워요? 지금 밖이 얼마나 선선한데. 요즘 일이 많죠? 우리 남편도 강 사장 세탁소 믿고 맡긴다고 하던데."
이 사장 아내가 코트를 받아 들면서 한마디 더 얹었다.
"그나저나 옆 빈 점포 셔터 열려 있던데, 누가 들어갔다 나온 것 같더라고요. 발자국이 있었어."
민주는 멈칫했다.
"그래요?"
최대한 자연스럽게 대꾸했다.
"요즘 건물 주인이 뭔가 하려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조심해요, 강 사장."
이 사장 아내가 코트를 들고 나갔다. 문이 닫히면서 골목 냄새가 잠깐 들어왔다가 사라졌다.
민주는 서랍을 열었다. 최용배가 두고 간 도면을 꺼냈다. 빈 점포 위치를 찾았다. 도면 위에서 배선이 표시된 구간을 손가락으로 짚어봤다. 빈 점포 왼쪽 벽, 2층 방향. 도면에는 그 구간에 아무 수정 표시가 없었다. 보수 기록도 없었다. 그런데 벽 안에는 탄 전선이 있고, 누군가 그것을 덮었다. 도면 위에 손가락이 멈췄다. 2층 배선관이 이어지는 끝 지점. 한서영이 살았던 공간과 겹치는 구간이었다.
가게 안이 다시 조용했다. 기계가 멈춘 시간. 민주는 도면을 테이블에 펼쳐놓은 채 카운터 의자에 앉았다. 탄 전선이 언제 탄 것인지, 누가 그걸 덮으라고 했는지, 그 배선이 2층에서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아직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그런데 오늘은 처음으로 '모른다'가 아니라 '숨겨져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저녁이 됐다. 준수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오늘 일찍 들어가. 몸 좀 나아졌어.'
민주는 화면을 보면서 답장을 쓰다 멈췄다.
'잘됐다' 라고 쓰려다 지웠다. '들어오면 같이 먹자'라고 다시 썼다. 전송하고 나서 도면을 한 번 더 봤다. 오늘 찍은 사진 세 장과 도면을 함께 들고 갈 사람이 누구인지, 민주는 아직 정하지 못했다. 그러나 혼자 들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만큼은, 벽 앞에서 이미 알아버린 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