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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2-9화]

벽이 먼저 알고 있었다

작성: 2026.05.23 23:32 조회수: 9
창작물 안내
[AI 생성물] 본 소설의 내용과 표지는 인공지능(AI) 모델을 통해 기획 및 작성된 허구의 창작물입니다.
이 콘텐츠는 보험을 소재로 한 창작물이며 실제 상품 추천이나 보장 판단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수요일 오후는 세탁소에서 제일 한가한 시간이었다. 오전 손님이 빠지고 저녁 손님이 몰려오기 전, 드라이클리닝 기계가 마지막 사이클을 마치면 가게 안이 잠깐 조용해진다. 열기도 같이 가라앉는다. 강민주는 그 짬을 이용해 행거 정리를 끝내고 카운터 앞에 섰다. 영수증 묶음을 날짜 순으로 다시 맞추다가 창밖을 봤다. 골목이 평소 같았다. 평소 같은데 뭔가 달랐다.

빈 점포 셔터가 반쯤 열려 있었다.

민주는 한 번 더 봤다. 셔터 아랫단이 허리 높이쯤에서 멈춰 있었다. 평소에는 항상 바닥까지 내려와 있었다. 잠금장치 소리도 들린 적 없고, 누가 드나드는 걸 본 적도 없는데. 민주는 카운터를 나와 골목으로 나갔다. 어제 비가 지나간 탓인지 골목 바닥 타일이 아직 덜 말라 있었다. 발밑에서 물기가 올라오는 것 같은 눅눅한 냄새가 났다. 신발 앞코가 살짝 젖었다.

셔터 앞에 서자 안이 보였다. 점포 내부는 텅 비어 있었다. 형광등도 없고, 집기도 없고, 바닥엔 먼지 자국만 줄줄이 나 있었다. 냄새가 났다. 오래된 먼지 냄새 아래에 뭔가 탄 것 같은, 싸한 냄새. 민주는 코를 찡긋하면서 셔터 안쪽을 좀 더 들여다봤다.

"뭐 봐요."

옆에서 목소리가 났다. 황 사장이었다. 세탁소 기준으로 두 칸 건너에서 생선구이 식당을 하는 황 사장은 앞치마를 두르고 담배를 손에 들고 있었다. 점심 영업이 끝나고 잠깐 쉬는 중인 것 같았다. 민주가 셔터 앞에 멈춰 서 있는 걸 보고 자연스럽게 걸어온 모양이었다.

"셔터가 열려 있어서요."

황 사장도 시선을 옮겼다. 잠깐 보더니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오늘 처음이에요? 나는 어제도 저렇게 반쯤 열린 거 봤는데. 바람에 그런 줄 알았지."

"바람에 셔터가 저렇게 열려요?"

황 사장이 담배를 한 번 더 피우다 대답했다.

"그러게. 잠금이 망가진 건지."

그러고는 셔터를 한 번 발로 툭 건드렸다. 셔터가 약간 흔들렸다. 잠금 걸린 소리가 나지 않았다. 황 사장이 눈썹을 올렸다가 내렸다.

두 사람은 잠깐 서 있었다. 민주는 셔터 아래로 허리를 굽혀 들어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생각했다. 남의 점포였다. 그런데 남의 점포가 이 건물 안에 있고, 이 건물 안에 자기 세탁소가 있었다. 민주는 결국 무릎을 굽히고 셔터 아래로 들어갔다.

"어이, 강 사장."

황 사장이 말리는 것도 반쯤 들어오는 것도 아닌 목소리로 불렀다. 민주는 안에서 대답했다.

"잠깐만요."

황 사장이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따라 들어오지는 않았다.

안쪽은 더 어두웠다. 눈이 적응하는 데 몇 초 걸렸다. 민주는 휴대폰 손전등을 켰다. 빛이 벽면을 훑었다. 처음엔 그냥 낡은 벽이었다. 회반죽이 군데군데 들뜬 것, 페인트가 갈라진 것. 오래된 상가 건물에서 흔히 보는 것들. 그런데 왼쪽 벽 아랫단 쪽이 좀 달랐다. 회반죽 색이 주변과 달랐다. 새로 발라놓은 것처럼 하얗고, 경계선이 너무 반듯했다. 누가 일부러 덧대놓은 것 같은 부분이었다.

민주는 그쪽으로 걸어갔다. 발밑에 먼지가 일었다. 가까이서 보니 그 경계 안쪽 표면이 살짝 부풀어 있었다. 손으로 살짝 눌렀더니 안이 비어 있는 것처럼 느낌이 달랐다. 한쪽 끝을 손톱으로 건드렸더니 회반죽 조각이 쉽게 떨어졌다. 민주는 멈칫했다. 손가락 끝에 회반죽 가루가 묻었다. 그 아래로 검은 것이 보였다.

황 사장이 셔터 아래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뭐 있어요?"

"와서 보세요."

황 사장이 결국 들어왔다. 담배는 밖에 비벼 끈 모양이었다. 두 사람이 손전등을 같은 방향으로 향하자, 벽 안쪽이 드러났다. 회반죽 뒤로 배선관이 보였다. 배선관이 열화로 녹아 있었다. 전선 피복이 탄 자국이 남아 있었고, 그 주변으로 시커멓게 그을린 부분이 배선관을 따라 길게 이어졌다. 누군가 그 위에 새 회반죽을 발라 덮어놓았다. 경계선이 반듯한 이유가 그것이었다. 자로 잰 듯 덧댄 이유가.

황 사장이 한마디도 안 했다. 민주도 한동안 말이 없었다. 손전등 빛이 그을음 위에 그대로 고여 있었다.

"언제 탄 거예요, 이게."

민주가 먼저 물었다. 황 사장은 손전등을 받아 좀 더 가까이 대봤다.

"그을음이 오래됐어. 새까매. 최근이 아니야, 이건."

"그런데 누가 이걸 그냥…."

말이 거기서 잘렸다. 민주는 말 대신 벽 표면을 다시 봤다. 새로 바른 회반죽 위에 위쪽으로 연결된 배선관이 있었다. 그 배선관은 벽 위쪽으로 이어졌다. 건물 2층 방향으로.

황 사장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강 사장. 이거 박재원한테 말하면 안 돼."

민주가 황 사장을 봤다.

"왜요."

황 사장이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이번엔 눈을 똑바로 봤다.

"이거 알고도 덮은 사람이 있다는 거잖아. 그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함부로 말했다가는, 우리가 먼저 당해."

민주는 그 말을 곱씹었다. 황 사장이 처음으로 뭔가를 알고 있는 사람처럼 말했다. 아니면 알고 있는 게 아니라, 알아버렸다는 두려움으로 말하는 건지. 황 사장의 앞치마 끝이 손에 잡혀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쥔 것 같았다.

두 사람은 셔터 아래로 다시 기어나왔다. 골목 공기가 안보다 훨씬 선명하게 느껴졌다. 민주는 등을 세우고 빈 점포 셔터를 내려다봤다. 황 사장이 새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며 말했다.

"사진은 찍었어요?"

민주가 휴대폰을 들어 보였다.

"세 장."

황 사장이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잘했네."

그게 다였다. 두 사람은 더 이야기하지 않고 각자 자기 가게로 돌아갔다. 황 사장이 돌아서다 한마디 더 던졌다.

"그 셔터, 오늘 저녁엔 닫혀 있을 거야. 내가 봤다는 거 아무도 모르게 해요."

민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셔터를 한 번 더 봤다. 반쯤 열린 채로 오후 햇빛을 받고 있었다.

세탁소 안으로 들어오자 기계 열기가 다시 얼굴에 닿았다. 민주는 카운터 앞에 섰다. 손전등을 끄고 휴대폰 화면을 봤다. 사진 세 장. 까맣게 탄 전선, 서툴게 덧댄 회반죽, 그 경계선. 손가락으로 사진을 확대했다. 배선관 위쪽으로 이어진 관이 선명하게 잡혔다.

그때 가게 문이 열렸다. 옆 문구점 이 사장 아내였다. 드라이클리닝 맡긴 코트를 찾으러 온 것이었다. 민주는 얼른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영수증 번호를 확인했다.

"어머, 강 사장 얼굴이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아니요, 좀 더웠어요."

"더워요? 지금 밖이 얼마나 선선한데. 요즘 일이 많죠? 우리 남편도 강 사장 세탁소 믿고 맡긴다고 하던데."

이 사장 아내가 코트를 받아 들면서 한마디 더 얹었다.

"그나저나 옆 빈 점포 셔터 열려 있던데, 누가 들어갔다 나온 것 같더라고요. 발자국이 있었어."

민주는 멈칫했다.

"그래요?"

최대한 자연스럽게 대꾸했다.

"요즘 건물 주인이 뭔가 하려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조심해요, 강 사장."

이 사장 아내가 코트를 들고 나갔다. 문이 닫히면서 골목 냄새가 잠깐 들어왔다가 사라졌다.

민주는 서랍을 열었다. 최용배가 두고 간 도면을 꺼냈다. 빈 점포 위치를 찾았다. 도면 위에서 배선이 표시된 구간을 손가락으로 짚어봤다. 빈 점포 왼쪽 벽, 2층 방향. 도면에는 그 구간에 아무 수정 표시가 없었다. 보수 기록도 없었다. 그런데 벽 안에는 탄 전선이 있고, 누군가 그것을 덮었다. 도면 위에 손가락이 멈췄다. 2층 배선관이 이어지는 끝 지점. 한서영이 살았던 공간과 겹치는 구간이었다.

가게 안이 다시 조용했다. 기계가 멈춘 시간. 민주는 도면을 테이블에 펼쳐놓은 채 카운터 의자에 앉았다. 탄 전선이 언제 탄 것인지, 누가 그걸 덮으라고 했는지, 그 배선이 2층에서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아직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그런데 오늘은 처음으로 '모른다'가 아니라 '숨겨져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저녁이 됐다. 준수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오늘 일찍 들어가. 몸 좀 나아졌어.'

민주는 화면을 보면서 답장을 쓰다 멈췄다.

'잘됐다' 라고 쓰려다 지웠다. '들어오면 같이 먹자'라고 다시 썼다. 전송하고 나서 도면을 한 번 더 봤다. 오늘 찍은 사진 세 장과 도면을 함께 들고 갈 사람이 누구인지, 민주는 아직 정하지 못했다. 그러나 혼자 들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만큼은, 벽 앞에서 이미 알아버린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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