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오전은 세탁소에서 제일 바쁜 날이 아니었다. 화요일 저녁에 맡긴 것들이 목요일 아침에 찾으러 오는 패턴이 있긴 했지만, 열 시 전까지는 대체로 조용했다. 민주는 카운터 뒤에서 영수증 묶음을 정리하고 있었다. 스팀 기계가 낮게 돌아가는 소리가 가게 안을 채웠고, 그 열기가 목 언저리까지 올라왔다. 창문을 조금 열어두었는데도 골목 쪽에서 들어오는 바람이 별로 없었다.
유순희가 들어온 건 그즈음이었다. 이 사장 아내. 1층 끝 구석에서 반찬 가게를 하는 사람. 민주보다 네 살 위인데 말투는 열 살 위처럼 편하고 느렸다. 비닐 봉투 두 개를 카운터에 올려놓으면서 들어왔는데, 드라이클리닝 맡길 게 있어서 왔는지 아니면 그냥 얘기하러 왔는지 구분이 안 됐다.
"언니, 어제 황 사장이 전화했어요. 뭐 얘기 나눴어요?"
민주는 봉투를 받으면서 고개를 들었다.
"무슨 얘기를 했는지 들었어요?"
"아니요. 그냥 전화가 왔었다고 이 양반이 귀띔을 해서요. 근데 황 사장이 전화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잖아요. 그 사람이 먼저 전화를 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민주는 영수증 묶음을 내려놓았다. 유순희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황 사장은 불려 다니는 사람이지, 먼저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 사람이 먼저 전화를 했다는 건 뭔가가 달라진 거였다. 민주는 잠깐 생각하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언니, 혹시 2층 기억해요? 옛날에 거기 살았던 사람들."
유순희가 봉투를 다시 정리하는 척 손을 움직이다가 멈췄다. 잠깐 허공을 봤다.
"살았죠. 우리가 여기 온 게 십오 년 됐는데, 그때도 2층에 누가 있었어요. 젊은 여자 혼자였나, 아님 모녀였나. 잘 기억은 안 나는데. 거기 있다가 갑자기 나갔어요. 이사 간다고 제대로 인사도 없이."
"갑자기요?"
"그게 이상했어요. 짐 같은 것도 별로 없이 나갔거든요. 이 양반이 그때 좀 이상하다고 했는데 나는 뭐 사람마다 다르지 하고 넘겼고."
유순희가 말을 이으면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다음에 2층이 완전히 비었어요. 그러고 나서 한동안 공사 소리가 났는데, 뭘 고친다고 하는 건지 아무도 말을 안 해줬어요."
공사 소리. 민주는 그 단어를 가슴 안쪽에 박아두었다. 말로 묻지 않았다. 유순희가 기억을 꺼내는 속도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기계가 사이클을 마치는 소리가 짧게 났다가 다시 조용해졌다.
박명자가 들어온 건 유순희의 이야기가 끝난 지 십 분쯤 지나서였다. 세탁소 문을 두드리고 들어오는 사람이 드문데 명자는 항상 두드렸다. 습관처럼. 문을 열기 전에 두드리고, 들어오면서 먼저 눈으로 안을 훑었다.
"민주 씨, 이 씨 아줌마도 계시네. 잘됐다."
명자가 들어오면서 유순희를 보고 눈을 반짝였다. 마치 오늘 이 세 명이 한자리에 있는 게 처음부터 계획된 것처럼.
민주는 카운터 뒤에서 나왔다.
"명자 씨, 앉아요."
의자가 두 개뿐이라 명자는 카운터 끝에 반쯤 걸터앉았다. 누군가 이 상황을 밖에서 봤다면 세 아줌마가 가게에서 수다 떤다고 생각했을 거였다. 그게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민주 머릿속을 스쳤다.
"제가 요 며칠 좀 수소문을 했거든요."
명자가 낮은 목소리로 시작했다.
"이 건물 세입자가 오고 간 게 꽤 되잖아요. 그 사람들 중에 연락 닿는 사람 있나 해서. 전 주인이 여기 살았던 아파트 부녀회 아는 언니가 있어서 물어봤어요."
유순희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삼 년 전에 1층 중간 구간에서 작은 불이 났대요. 전기 합선이라고 했는데 바로 덮었다고. 그때 거기 있던 분식집 사장님이 한 달 만에 나갔고, 그다음 자리 들어온 데가 여섯 달 버티다가 또 나갔어요. 이유가 뭔지는 아무도 모르는데 임대료 때문이라고만 알고 있고."
명자가 잠깐 말을 끊었다.
"근데 그 분식집 사장님이 나가면서 '여기 벽이 이상하다'고 했대요. 그게 소문으로 돌았는데 건물주 측에서 근거 없는 소리라고 막았고."
민주는 숨을 한 번 천천히 내쉬었다. 삼 년 전 합선. 분식집. 벽이 이상하다. 조각들이 흩어져 있었지만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다. 민주가 직접 봤던 탄 전선의 단면이 머릿속에서 겹쳤다. 그건 오래된 것이었다. 새로 탄 게 아니라 오래전에 탔다가 그냥 덮인 것.
"그분이랑 연락이 돼요?"
"그게 지금 경기도 쪽으로 이사 갔는데, 전화번호를 어제 받았어요."
명자가 가방에서 작은 수첩을 꺼냈다. 끝이 접힌 수첩이었다. 오래된 것이었다. 페이지를 넘기는 손이 능숙했다.
"오 씨라는 분인데, 내가 먼저 전화는 못 하겠고. 민주 씨가 해주면 좋겠어요."
민주가 번호를 받아 들었다. 종이 위의 숫자가 선명했다.
"제가요?"
"어, 민주 씨가 제일 말을 잘하잖아. 나는 너무 직접적으로 나가고 유 씨는 너무 돌려 말하고."
명자가 유순희를 보며 피식 웃었다.
유순희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명자를 봤다.
"내가 언제 돌려 말해요, 나 직접적인 사람이에요."
"아니에요, 유 씨는 돌려요. 이번에 이 양반한테 냉장고 새로 사달라고 하는 것도 삼 주째 돌리고 있잖아요."
"그건 타이밍을 보는 거지, 돌리는 게 아니에요."
세 사람이 동시에 웃었다. 세탁소 안에서 웃음소리가 난 게 며칠 만인지 민주는 몰랐다. 기계가 낮게 돌아가는 소리 위로 웃음이 짧게 얹혔다가 가라앉았다. 그 짧은 순간에 민주는 뭔가 가슴이 헐거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민주는 번호를 적은 종이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명자 씨, 이거 황 사장은 알아요?"
명자의 표정이 잠깐 굳었다.
"황 사장은 아직 안 말했어요. 그 사람은 뭔가를 알면서 말을 안 하는 것 같아서. 우리끼리 먼저 확인하고 나서 얘기하는 게 나을 것 같았어요."
유순희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 생각 했어요. 황 사장이 이상하게 조심스럽더라고요. 박재원 씨 얘기만 나오면 특히."
박재원. 그 이름이 나오자 세탁소 안의 공기가 달라졌다. 민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황 사장이 그 이름 앞에서 말을 막았던 순간이 다시 떠올랐다. 단순한 조심이 아니라는 걸 민주도 이미 느끼고 있었다. 황 사장이 무언가를 알고 있다면, 왜 먼저 꺼내지 않는가. 무서운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그 사람이 먼저 전화를 했다는 것도 계속 마음에 걸렸다.
유순희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일단 그분한테 전화해봐요. 벽이 이상하다고 한 게 우리가 본 것이랑 같은 건지 아닌지 확인해야 하잖아요. 기억이라도 맞으면 그게 증거가 되는 거 아니에요?"
민주는 창밖을 봤다. 골목이 평온했다. 빈 점포 셔터는 내려져 있었다. 오늘도. 저 셔터 뒤에 무슨 냄새가 남아 있는지, 벽 안에 뭐가 숨어 있는지,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아무도 몰랐다.
"전화해볼게요."
민주가 말했다.
"그 전에 황 사장한테 한 번만 더 가볼게요. 이번엔 박재원 얘기 직접 꺼내보고."
명자가 수첩을 가방에 다시 넣으면서 조용히 말했다.
"조심해요, 민주 씨. 아직 우리가 가진 게 사진 세 장이랑 기억들이잖아요. 그게 패턴인지 사고인지는 아직 모르는 거고."
민주도 알았다. 패턴이 되려면 기억이 더 모여야 했다. 그리고 모인 기억은 결국 누군가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혼자 들고 있던 사진 세 장이 오늘 처음으로 다른 사람들의 기억과 맞닿았다. 아직 아무것도 증명된 게 없었다. 그래도 민주는 어제보다 덜 혼자였다. 그게 오늘 버텨낼 이유였다. 세탁소 문이 닫히고, 기계가 다시 사이클을 시작했다. 주머니 안의 종이가 조용히 무게를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