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다섯 시 사십 분이었다. 차유리는 복도에서 들어온 다섯 명을 처치실 안 벽을 따라 앉히고 나서야 자기 발이 차갑다는 걸 알아챘다. 바닥이 냉기를 올려보내고 있었다. 방진화 밑창이 닳아서 그런 건지, 철문이 열리면서 복도 공기가 한꺼번에 들어온 탓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어느 쪽이든 달라지는 건 없었다.
다섯 명 중 두 명은 스스로 걸어 들어왔다. 한 명은 어깨를 잡아줘야 했고, 나머지 두 명은 처음부터 바닥에 앉아 있던 상태였다. 유리는 그중 가장 안쪽에 앉은 여자를 한 번 더 봤다. 마흔 초반으로 보였다. 얼굴 오른쪽이 긁혀 있었고, 손목 안쪽에 붕대가 감겨 있었는데 감은 사람이 의료인이 아닌 건 분명했다. 매듭이 손가락 마디 방향으로 잘못 묶여 있었다. 유리는 그 매듭을 보는 순간 이미 손을 뻗고 있었다.
"이름 말할 수 있어요?"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박미숙이요."
목소리가 낮고 건조했다. 울었다가 그친 사람의 목소리였다. 유리는 손목 붕대를 풀어 보면서 질문을 계속했다. 언제부터 이랬는지, 열이 났는지, 숨 쉬는 게 힘든 적이 있었는지. 여자는 짧게 대답했고, 틀린 대답은 없었다. 그런데 붕대가 벗겨지는 순간 유리의 손이 한 박자 멈췄다. 안쪽 피부 색이 이상했다. 상처 때문일 수도 있었다. 압박이 너무 오래 가서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다른 이유일 수도 있었다. 유리는 그 가능성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다시 붕대를 감으면서 "잘 됐어요"라고만 했다. 박미숙은 고맙다고 하지 않았다. 그냥 눈을 감았다.
나머지 네 명을 확인하는 데 십오 분이 걸렸다. 한 남자는 오른쪽 무릎이 부어 있었고, 다른 한 명은 귀 뒤쪽에 작은 열상이 있었다. 두 명은 탈수 증상이 있었다. 유리는 남은 식염수 팩을 꺼내면서 속으로 숫자를 셌다. 팩이 세 개였다. 사람은 다섯이었다. 이 계산은 끝이 없는 종류였다.
하린은 처치실 한쪽 구석에서 무전기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앉아 있었다. 응답 버튼을 눌렀던 손 위치 그대로였다. 버튼은 이미 놓았지만 손은 아직 거기 있었다. 무전기는 가끔 잡음을 냈다가 다시 조용해졌다. 호흡 소리는 다시 들리지 않았다. 하린은 유리 쪽을 한 번 봤다가 시선을 내렸다. 뭔가를 물어보고 싶은 표정이었지만 타이밍을 못 찾고 있었다. 유리도 먼저 묻지 않았다. 물어봐야 대답이 없는 질문이 있다는 걸 두 사람 다 알고 있었다.
정윤호는 창쪽 벽에 기대 서 있었다. 유리가 다섯 명을 확인하는 동안 그는 가방을 앞으로 안고 있었다. 오래된 습관처럼 자연스러운 자세였다. 유리는 그 가방을 처음부터 의식하고 있었다. 어제도, 그 전날도, 그 전전날도 그는 그 가방을 몸에서 떼지 않았다. 무거워 보였다. 구급용품이나 식량이 들어 있기엔 모양이 납작했고, 서류 같은 게 들어 있기엔 꽤 여러 겹이었다. 유리는 그것을 물어보지 않았다. 물어볼 자격이 있는지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전환점은 사소한 데서 왔다. 복도 쪽에서 들어온 남자 하나가 갑자기 구역질을 시작했다. 유리가 즉시 뛰었고 하린이 비닐봉투를 찾아 뒤졌다. 윤호도 반사적으로 몸을 움직였고, 그 순간 가방이 바닥에 떨어졌다. 지퍼가 절반 열려 있었다. 안에서 종이 묶음 하나가 삐져나왔다. 유리는 환자 등을 두드리면서 그것을 봤다. 보지 않은 척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종이 묶음 맨 위에 찍힌 글자가 눈에 들어오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재난안전과 내부지침 별첨 B. 인쇄체였다. 위에 날짜가 있었는데 봉쇄 이틀 전이었다.
윤호가 먼저 가방을 집었다. 유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환자가 어느 정도 진정되고, 하린이 구석으로 물러난 뒤, 두 사람 사이에 짧은 침묵이 생겼다. 유리가 먼저 입을 열지 않아도 됐다. 윤호가 먼저 말했다.
"봤죠."
"봤어요."
그는 가방을 다시 어깨에 메지 않고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것 자체가 대답 같았다.
"봉쇄 전날 받은 거예요. 재난안전과 내부지침인데, 공개 배포용 아니에요. 별첨 B는 수용 인원 상한선이랑 우선 배제 기준이 담겨 있어요. 나이, 기저질환, 독립 이동 불가 여부로 순위를 매기는 거예요."
그는 말하면서 바닥을 봤다. 유리를 피하는 게 아니라 말의 무게를 정리하는 것처럼 보였다.
유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윤호가 계속했다.
"처음에 여기 왔을 때 꺼내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기준대로 하면 48번 환자는 첫날 명단에서 빠져요. 이름 모름 환자는 당연히 없어요. 유리 씨가 그렇게 하겠냐고요."
그는 잠깐 멈췄다가 덧붙였다.
"나도 그러고 싶지 않았고요."
"그래서 안 꺼낸 거예요?"
"꺼내면 그 기준으로 결정해야 할 것 같아서요. 종이가 있으면 종이대로 가게 돼 있거든요. 나는 그걸 알아요. 나한테는요."
유리는 윤호를 봤다. 그가 틀린 말을 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기준이 있으면 기준에 의존하게 된다. 그게 편하기 때문이다. 그 편함이 언제 무기가 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이 사람은 그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종이를 가방 안에 넣었다. 그게 다였다. 유리는 그것이 용기인지 비겁인지 판단하지 않기로 했다. 판단할 에너지가 없기도 했고, 판단한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기도 했다.
"별첨 B 보여줘요."
윤호는 잠깐 유리를 봤다가 가방 지퍼를 열었다. 종이 묶음을 꺼냈다. 유리는 손전등을 켜서 읽기 시작했다. 빠르게 읽었다. 안에는 표가 있었다. 이동 가능 여부, 연령대, 기저질환 항목별 점수가 적혀 있었다. 총점이 낮으면 후순위였다. 후순위 아래에는 '비수용 권고'라는 항목이 있었다. 그 항목 아래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없다는 게 더 명확했다. 유리는 그 빈칸을 한 번 더 봤다. 빈칸이 설명보다 많은 것을 말하고 있었다.
하린이 구석에서 보고 있다는 걸 유리는 알았다. 못 본 척하지 않았다.
"하린아, 이리 와."
하린이 천천히 다가왔다. 유리는 표를 하린 쪽으로도 기울였다.
"이게 원래 재난 때 쓰는 기준이야. 우리가 지금까지 이걸로 결정하지 않았다는 거 알지?"
하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이 없었다. 무서운 게 아니라 처리하고 있는 얼굴이었다.
"그럼 왜 이제 보여줘요?"
유리는 대답하기 전에 윤호를 봤다. 윤호가 대답했다.
"복도 사람들 더 들어오면 이 기준 쓰라고 압박이 올 거예요. 모르면 대응을 못 해요."
"누가 압박을 해요?"
"아직 모르지만, 반드시 와요."
윤호는 거기서 말을 멈췄다.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유리는 그 멈춤이 어디서 오는 건지 알 것 같으면서도 확신하지 않았다. 그가 이미 알고 있는 이름이 있는 건지, 아니면 그냥 오래 공무원을 한 사람의 감각인 건지. 그 경계가 지금은 보이지 않았다.
새벽 여섯 시가 가까워지면서 처치실 안이 조금씩 더 밝아졌다. 비상등 붉은빛은 그대로였지만 천장 유리 틈으로 바깥 빛이 조금씩 스미기 시작했다. 박미숙은 눈을 감고 있었다. 열이 있는지 없는지 유리는 다시 이마를 짚어봤다. 체온은 정상 범위였다. 그런데 손목 안쪽 붕대를 풀었을 때 봤던 피부 색이 자꾸 머릿속에 남았다. 유리는 그것을 지금 말해야 하는지 아닌지 저울질했다. 확인할 수단이 없었다. 확인할 수단이 없는 상태에서 말하면 공포만 만들었다. 그래서 말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옳은 건지는 몰랐다.
무전기가 다시 잡음을 냈다. 하린이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다가 멈췄다. 호흡 소리는 없었다. 잡음만 있었다. 잡음도 오래가지 않았다. 세 사람이 동시에 그쪽을 봤다가 각자 시선을 거뒀다. 유리는 별첨 B를 다시 접었다. 가방 안에 넣어 돌려주지 않았다. 자기 방호복 안주머니에 밀어 넣었다. 종이가 안감에 닿는 소리가 작게 났다. 윤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게 이 새벽에 두 사람 사이에 생긴 첫 번째 약속이었다. 말이 없어서 더 무거운 종류의 약속이었다.